우리만 안 갈 수도 없고…'코로나 시대' 여름휴가 신풍속도

연일 푹푹 찌는데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지난해 국내를 강타한 코로나19(이하 코로나)로 인해 위축된 휴가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수도권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됐다. 이에 따라 휴가를 계획하고 있는 이들과 업계는 거리두기가 가능한 휴가를 트렌드로 내세우고 있다. 

비대면,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휴가를 즐기기 위한 방법으로 최소 인원, 개인활동을 통한 휴가 각광을 받고 있다. 관련 업계도 코로나에 따른 여파로 ‘비대면 휴가’가 뜨고 있다.

4단계 비상
지방으로∼

코로나가 장기화되며 전반적인 관광 활동에 빨간불이 켜졌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전국적으로 집 근처의 자연 친화적 공간이나 가족과 함께 안전하게 야외활동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이에 따라 자신의 생활권역 내에서 일상과 연계된 관광을 즐기는 생활관광을 중심으로 관광활동이 재편되고 있다.

편안한 불안보다는 불편한 안전을 선택하는 원거리 청정지역, 자연 친화 관광수요도 대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접근성이 나빠도 코로나 미발생 지역이나 청정 이미지가 강한 지역으로의 관광이 선호되고 있는 것.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조사한 ‘코로나 국민 국내여행 영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안전에 대한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광 욕구는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끝나지 않고 있는 코로나 위기와 국내 관광산업의 타격 등을 고려하면 온전한 수요 회복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여행 업계는 백신 접종률이 30%를 넘기며 집단면역 형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자 여름 휴가철에 맞춰 여행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 전망했다. 그러나 이달 초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 따라 여행 트렌드도 함께 변화하고 있는 추세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자들은 새로운 여행 방법을 모색했다. 해외에 간다는 기대감 역시 줄어든 상태다. 

여행자들은 곧바로 국내로 시선을 돌렸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인원 제한이 생기자 사람들은 소규모로 인원을 구성해 여행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방식은 코로나 사태가 끝나더라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내 여행객 수가 증가하자 캠핑, 등산 등 자연을 택해 근교를 여행하는 방식도 각광받고 있다. 

셀프 거리두기로 스스로 안전 챙기기 
관광·수영은 위험…최대한 멀리 뚝

가장 관심 받는 여행 방식인 캠핑은 코로나 이전과 비교했을 때 크게 활성화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캠핑 인구는 약 600만명, 지난해에는 700만명을 돌파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10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국내 캠핑 산업은 매년 30%씩 성장해 올해는 4조원대를 넘어섰다. 


폐업했던 캠핑장들이 다시 문을 열기도 했다. 캠핑의 상승세로 다양한 캠핑 방법도 주목받고 있다. 과거에는 캠핑용품 등을 챙기고 떠나던 2010년대에는 럭셔리 캠핑인 글램핑이 인기였다면 코로나를 겪으며 숙박시설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자 ‘차박’(차에서 머무르며 숙식을 해결하는 형태)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차박이 주목받는 이유는 캠핑보다 훨씬 외부와 단절된 점과 독립된 공간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고가의 캠핑카와 달리 차량이 없어도 렌트만 한다면 차량 자체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게 가능하다. 

또 최소한의 장비로 혼자서도 간단하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차박과 더불어 젊은 층이 선택한 휴가 방식은 다름 아닌 ‘등산’이다. 

등린이(등산+어린이 합성어)라는 말이 등장했을 만큼 최근 등산은 새로운 여행법 중 하나다. 실내보다 외부활동을 하는 게 안전하다는 판단에서다. 인원 제한 탓에 혼자 떠날 수 있는 휴가 중 하나라는 평가도 나온다. 

전년 대비 올해 등산객 수는 42%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다. 등산을 선택한 이유는 언제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는 SNS에 등산을 인증하기도 한다. 그러나 등산객 수가 증가한 만큼 오히려 거리두기가 불가해 접촉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지적이 있다. 

호캉스, 집콕
치유관광 선호

이동으로 인한 코로나 확산 두려움 때문에 한 곳에 머무는 것을 택하는 방식도 최근 트렌드다. ‘스테이케이션(stay+vacation)’을 통해 한 곳에 머물며 장기 투숙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스테이케이션이란 집 또는 호텔이나 리조트 등의 숙소에서 머물며 여유를 즐기거나 조용하게 휴가를 보내는 여가 방식이다. 스테이케이션에서 가장 큰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호캉스는 코로나 시대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최신 인프라를 적용해 디지털화된 넷플릭스 등의 OTT 서비스를 투숙객에게 제공하는 숙박시설도 증가하는 추세다. 또 호텔 내부에서 캠핑을 즐기는 상품까지 출시됐다. 

이 같은 숙박업소들은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적용해 고객이 장기투숙으로도 관심 갖도록 유도한다. 최근에는 호텔 등이 잠시 머무는 곳이 아니라 쉼을 위한 휴가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직장인들이 개별적으로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호텔 객실에서 업무를 볼 수 있어 호텔은 이제 객실이 아닌 사무실로도 활용된다. 

관련 상품으로 ‘워크케이션(Work+Vacaion)’이 등장했다. 코로나 사태로 재택근무가 장기화되면서 편안한 환경이 마련된 호텔에서 근무와 휴식을 동시에 하려는 고객들을 노린 상품이다.

집콕(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행위)족의 비율도 늘었다. 코로나로 인해 바깥 외출이 자제된 최근 휴일이 되면 집에 텐트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집콕으로 인해 ‘홈 캠핑’을 즐기기 위해 베란다 같은 공간에 풀장 등을 마련해 간이 수영장을 만들기도 한다. 빔 프로젝터를 활용해 영상을 시청하는 일도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다. 이런 분위기는 올해 여름휴가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소규모
야외활동

벽지와 가구 등 각종 인테리어 소품으로 여름휴가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직장생활로 인해 평소 하지 못했던 일들을 여름휴가를 활용해 진행하기도 한다.

자녀가 있는 가정의 휴가 풍경도 바뀌고 있다.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의 경우 대부분 자녀의 방학 시기에 맞춰 여행을 계획하는 게 보통이다. 또 가족과 함께 동네 공원, 뒷산 등 동네탐방을 하는 경우도 늘었다.

관련업계도 여름휴가에 발맞춰 휴가에 관한 식품들을 내놨다. 그 결과 배달과 가정식의 비중이 증가했다. 그 중 밀키트(손질된 식재료와 딱 맞는 양의 양념, 조리법을 세트로 구성해 제공하는 제품) 등이 포함된 가정 간편식이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집에서 쉽게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 안전하게 휴가를 보내고 싶은 이들의 선택 방식이다.


코로나로 인해 휴가 풍경도 바뀌었다. 호캉스, 집캉스 등 다양한 형태의 휴가 방식이 쏟아져 나온다. 해당 방식들의 장점은 별도의 계획을 하지 않아도 부담없이 해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또 단순히 관광으로 여겨지던 휴가가 휴식을 지향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는 역할도 함께한다. 

다만 호캉스 등의 스테이케이션은 대중의 보복성 심리가 뒤따랐다는 분석이 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피로도가 증가함에 따라 이에 대한 반발로 도심 등 호텔에서 휴가를 즐기기 때문이라는 것. 

이 같은 이유로 힐링과 치유를 위한 프로그램들도 마련됐다. 웰빙(Wellbing)과 건강(Fitness)을 의미하는 ‘웰니스’ 관광도 코로나로 몸과 마음을 달랜다는 취지에서 발생된 휴가 방식 중 하나다. 그동안 단순히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방식이 아니라 치유를 위한 관광의 목적이 더해진 셈이다. 

백신 접종으로 기대 컸는데
여행업계는 다시 암흑으로

제주도는 2016년부터 제주형 웰니스 관광산업을 도지사 공약 사업으로 선정해 추진해왔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코로나가 확산된 뒤 급부상했다. 제주도는 지난 5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웰니스 관광 육성 및 지원 조례도 제정했다.

해당 조례는 웰니스 관광 협의체 구성, 인증제 도입, 상품개발 등 코로나로 어려워진 상황에서 주민 소득 창출을 위한 행정, 재정적 지원 사항들이 포함된 조례다.

정부 관련 부처도 웰니스 관광 지속성장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웰니스 관광과 지역관광, 지역의 네트워크가 결합된 형태의 관광 클러스터를 선정했다. 한국관광공사도 한국형 웰니스 관광지들을 선정해 관련 사업을 진행 중이다. 

착륙 없는 비행 상품도 있다. 지난해 여행업계가 심각한 타격을 입으면서 내놓은 상품으로 가장 이색적인 여행 중 하나로 꼽힌다. 해당 상품은 평소처럼 입국수속을 밟은 뒤 상공서 머물다 비행기를 탄 곳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방식이다.

말 그대로 여행가는 기분을 내는 셈이다. 국내 주요 여행사들은 항공사와 계약을 맺고 항공기를 이용하는 비행 상품을 출시함에 따라 여행객들의 반응 역시 긍정적인 편이다. 국내부터 해외까지 일시적인 무착륙 비행도 가능하다. 

다만 일각에서는 해당 현상들이 일시적일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코로나 펜데믹 장기화로 인해 “여행업계에 실질적인 도움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백신으로 인한 ‘트래블 버블(코로나 유행 상황 속 방역이 잘되고 있는 국가 안에서는 자유로운 관광을 허용하는 말)’ 추진 소식까지 이어지면서 여행업계는 여행객 증가를 기대했다.

그러나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적용 되면서 당분간 회복세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호텔과 숙박업계 역시 정원의 2/3 수준까지만 고객을 받을 수 있어 늦게 예약한 고객부터 예약 취소를 요청하기도 한다.

누가 뭐래도 
건강 최우선

여행업계 등에서 어려운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다양한 상품을 출시하고 있지만 결국 코로나가 끝나지 않는 이상 예년의 상태로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여행 심리가 위축될 상황이 다시 도래했다”며 “여행업계가 또다시 생존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코로나 피서지 표정
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신규 확진자 수가 지난 13일 1100명대를 기록하며 일주일째 1000명을 넘는 수치를 나타냈다.

기존 바이러스보다 전파력이 강한 인도 유래 델타 변이가 전체 변이 바이러스 검출 건수의 60%를 넘었다.

이에 따라 방역당국은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를 적용했다. 4단계가 적용된 후 수도권에 거주하는 이들은 휴가철을 맞아 비교적 확진자 수가 낮은 지방으로 떠나는 추세다.

지난 11일 동해안 해수욕장에만 수만명이 몰렸다. 강원 지역 해수욕장에 피서객이 몰리면서 속초, 양양 등 각 지역 해수욕장에는 휴가를 즐기는 이들로 가득했다.

확진자수 적은 지방으로
벌써 해수욕장 사람 몰려 

부산의 경우 본격적인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전국의 관광객들이 부산으로 몰려올 것으로 예상돼 코로나에 대한 경계심은 더욱 심각한 편이다. 최근 부산의 감염 확산이 지난달 서울의 한 확진자가 부산의 주점을 다녀간 뒤 시작됐기 때문이다.

부산은 결국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적용했다. 해수욕장 입장객 수가 평년보다 줄었지만 인파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수도권이 방역 조치를 강화하면서 비수도권 해수욕장 등으로 관광객이 몰린 탓이다. 

서해안 보령 대천해수욕장에도 지난 11일 해수욕장을 찾은 인파는 6만여명이다. 휴가객이 몰렸지만 현지 상인들도 찾아오는 손님에 대한 우려가 크다.

자칫 집단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불안감과 감염자 증가로 인한 휴업이 두렵기 때문이다. 한 자영업자는 “수도권에서 방문하는 이들의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해 받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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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