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어깨 무거운 김창룡 경찰청장 내정자

첫째도 개혁 둘째도 개혁 셋째도 개혁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청와대가 김창룡 부산지방경찰청장을 차기 경찰청장으로 내정함에 따라 그의 이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치안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만큼 현 정부의 국정 이해도가 높은 것이 이번 내정에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평이 나온다.
 

▲ 김창룡 경찰청장 내정자

오는 23일 임기가 끝나는 민갑룡 경찰청장의 후임으로 김창룡 부산지방경찰청장이 내정됐다. 김 내정자는 검경 수사권조정, 자치경찰제 도입 등 ‘경찰 개혁’을 완성해야 할 중책을 맡게 된다.

청장 내정
파격 발탁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은 지난달 26일 브리핑을 통해 “김 내정자는 치안 업무 전반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고 현장 업무뿐 아니라 탁월한 정책기획 능력과 추진력으로 조직 내부로부터 신망받고 있다”며 “수사 구조 개혁 및 자치경찰제 도입 등 경찰개혁을 차질 없이 추진해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부산지방경찰청장이 경찰청장으로 내정되는 것은 박근혜정부였던 2013년 이성한 전 경찰청장 이후 7년 만이다. 지난 두 번의 경찰청장 모두 경찰청 차장이 내정된 것과 비교하면 ‘파격 발탁’으로 볼 수 있다. 

통상 경찰청 차장이나 서울경찰청장이 청장 자리에 오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경찰청 본청과 지방청, 해외 주재관, 청와대까지 두루 거친 경력 등이 김 내정자 발탁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김 내정자 지명에는 영남 출신이라는 지역적 안배가 일부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경남 합천군 출생인 만큼 ‘호남 편중인사’라는 비판서 벗어나 있다.

김 청장은 경남 합천 출신으로 부산 가야고와 경찰대 법학과(4기)를 졸업했다. 경찰청 본청서 생활안전국장, 정보국 정보1과장을 역임했으며 경남지방경찰청장, 서울 은평경찰서장 등도 맡아 정책과 현장을 두루 경험한 인물로 꼽힌다.

특히 미국 워싱턴DC 주재관, 브라질 상파울루 총영사관 영사를 경험하는 등 해외 경험도 풍부한 편이다. 이 때문에 다양한 부서에서 근무한 장점과 외국 근무를 토대로 외국 우수사례를 접목해 치안정책 수준도 올릴 수 있다는 평을 받는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근무…대통령과 인연
국정운영 이해도 높아…PK 지역 안배도 고려

김 청장은 문재인정부 이후 초고속 승진을 이어왔다. 워싱턴 주재관(경무관)으로 근무하던 2017년 12월, 경찰청 생활안전국장(치안감)으로 승진했다. 경찰 내부에선 외국서 근무하는 고위급 간부를 진급시키는 것을 매우 이례적으로 보고 있다. 

김 청장은 2018년 12월 경남지방경찰청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7개월 만인 지난해 7월 부산지방경찰청장(치안정감)으로 승진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으로 재직하던 당시 함께 청와대서 근무했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국정기조를 잘 실현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때문에 현 정부에 치우친 수사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 청장은 전날 경찰청장 임명 제청 동의 안건을 심의한 경찰위원회 임시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일한 경력이 경찰청장 직무 수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인사 대상자가 인사권자의 인사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김 내정자는 일찌감치 이용표 서울경찰청장(56·경찰대 3기), 장하연 경찰청 차장(54·5기)과 함께 신임 경찰청장 하마평에 올랐다.
 

경찰 안팎에선 “이 청장과 장 차장의 ‘2파전’으로 좁혀지는 듯하다”는 말이 오간 만큼 청와대가 김 내정자를 낙점한 게 뜻밖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한 경찰 간부는 “최근 분위기를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로도 보인다”고 말했다.

김 내정자는 청와대의 선택을 받은 만큼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게 강점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자치경찰제 등 경찰 개혁을 완성할 적임자란 평이 나오는 동시에 야당서 경찰의 중립성을 공격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한다. 

경찰 개혁… 
과제 산더미

경찰대 4기인 민갑룡 현 청장에 이어 또 한 번 ‘기수 역전’ 인사란 점도 경찰 조직에는 변수다.

경찰 내부엔 여전히 경찰대 1∼3기들이 주요 보직에 포진해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대 4기가 연달아 낙점됐으니 윗기수 일부는 용퇴를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창룡 신임 경찰청장 내정자는 12만명이 넘는 경찰 조직을 이끌면서 경찰 개혁을 완성해야 한다. 특히 국가 경찰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비대해진 경찰 권력을 분산하는 ‘경찰 힘빼기’를 완수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다.

지난달 26일 경찰과 정치권에 따르면 문재인정부가 집권 후반기 주력하는 권력기관 개혁 중 경찰 개혁의 핵심은 검·경 수사권 조정 후속작업과 자치경찰제 도입, 국가수사본부 신설 등이다.

민갑룡 현 경찰청장이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 개혁을 위한 주춧돌을 쌓았다면 김창룡 내정자는 경찰 개혁 완성을 위한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와 기와도 올려야 한다.

경찰은 현재 수사권 조정 후속작업으로 하위법령 정비 등 수사 체계 및 절차 개편을 추진 중이다. 경찰과 검찰을 수직적 관계서 상호협력 관계로 재설정하고 검사의 수사지휘권 폐지 및 경찰 1차 수사종결권 부여의 내용 등이 담긴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은 이미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대한 후속작업으로 경찰은 책임수사 강조, 수사역량 균질화, 전문성 강화 등의 방향이 반영된 4개 분야 80여개 과제를 다루고 있다.

비대해진 경찰 권한을 분산·통제하기 위한 작업도 김 내정자가 임기 내 해결해야 할 과제다. 무엇보다도 21대 국회에서는 자치경찰제 도입 방안이 본격 논의될 전망이다. 김 내정자는 국회서 여야 의원들과 관련 법 개정안을 논의해야 한다. 특히 법 통과 후에는 제도 안착까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

자치경찰제 도입은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권을 통제하는 핵심 방안으로 꼽힌다.

김 내정자도 자치경찰제 도입 및 안착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김 내정자는 지난해 7월 부산지방경찰청장으로 업무를 시작할 당시 취임 일성으로 “수사구조 개혁과 자치경찰제 도입 등을 위해 국민들의 믿음과 지지를 얻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국가수사본부 신설과 정보경찰 통제, 경찰대 개혁 등도 김 내정자가 풀어야 할 과제다. 국가수사본부의 경우 경찰청장으로부터 독립된 개방직 국가수사본부장을 두고, 본부장이 수사부서 소속 경찰을 지휘·감독하게 하는 내용이 골자다.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 제고라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한편에선 이 같은 취지와 달리 경찰 권한의 비대화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는 만큼 향후 추진 과정서 난항이 예상된다.


경찰 권력을 나눠주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과정서도 혼선과 잡음이 발생할 수 있다. 김 내정자는 국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국가경찰이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고 여러 기관과의 매끄러운 업무 공조도 이끌어내야 한다.

특히 자치경찰제는 경찰을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분리한 후 국가경찰 인력과 업무를 광역자치단체에 생기는 자치경찰에 넘기는 게 핵심이다. 자치경찰은 생활 안전 등 주민과 밀착된 민생 치안활동에 집중하고 국가경찰은 정보·보안·외사·경비, 수사, 전국 규모의 민생치안을 담당하게 된다. 

경찰은 전체 인력 12만명 중 4만명이 자치경찰로 넘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수사본부가 신설되면 수사경찰 2만명이 빠질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경찰 인력의 절반이 줄어드는 상황서 경찰 조직의 안정화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청문회 준비
증명 해내야

이에 김 내정자는 전날 열린 경찰위원회에 참석한 뒤 “국민 안전과 공정한 법 집행, 경찰개혁에 대한 국민 여러분들의 기대와 요구를 잘 알고 있다”며 “차분하게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일선 경찰관들의 애로사항을 상부에 전달할 통로라고 환영을 받은 직장협의회(직협) 제도도 안착시켜야 한다. 김 내정자는 노사협의회인 직협에 대해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부산경찰청장 취임 초부터 직협을 적극 지원한다는 자세를 보였다. 현재 부산경찰청 직협 출범이 임박했으며 부산경찰청 소속 일선 경찰서에서는 직협이 일부 설립됐다.

지난해 9월엔 부산경찰청 직원협의회(현장활력회의) 발대식에 참석해 “관행으로 정착됐던 수직적·계급적 문화를 수평적·민주적 문화로 전환해야만 하는 시기에 직면했다”며 “관리자들과 직원이 함께 소통하며 민주적인 조직문화를 조성하자”고 말한 바 있다.

김 청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 대응하기 위한 절차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경찰청은 지난달 29일, 김학관 경찰대 교수부장(경무관)을 팀장으로 총 14명의 인사청문회 준비팀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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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등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경찰청장 내정자가 발표되면 내정자는 10명 안팎의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팀을 꾸린다. 김 내정자가 부산지방경찰청장 역임 중 내정된 만큼 준비팀은 부산지방경찰청에 꾸려진다. 

준비팀을 누가 이끌어나갈지도 주목된다. 보통 준비팀은 경무관 직급서 맡는데, 차기 경찰청장이 가장 신임하는 인물 중 하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향후 치안감 승진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8년 현 민갑룡 청장이 내정된 이후 준비팀을 맡았던 송민헌 당시 정보심의관은 이후 치안감으로 승진해 본청 요직인 기획조정관을 거쳐 현재 대구지방경찰청장으로 영전했다.

열린 사고 부드러운 리더십…조직 장악력은?
검경 수사권 조정, 경찰개혁 등 막중한 임무

이번 준비팀에는 류미진 경찰청 여성대상범죄수사과장 총경, 남제현 수사구조개혁팀 총경, 김원태 정보4과장 총경, 박순석 경찰개혁 테스크포스(TF) 경정, 박진우 직장협의회 TF 경정, 손광혁 국회계장 경정, 이용욱 범죄예방기획계장 경정, 주승은 법무계장 경정, 김완기 홍보협력계장 경정, 박경서 감찰조사계장 경정(이상 경찰청 소속), 소동현 서울 방배경찰서 여청과장 경정, 김나영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과 경감이 포함됐다.

준비팀은 각종 정책과 비전을 마련하는 파트와 개인신상 문제를 담당하는 기능으로 나뉘어 청문회를 준비하게 된다. 현재로선 김 내정자의 개인적 흠결은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산도 4억4000여만원으로, 서울 강동구 암사동 아파트 한 채를 부인과 공동명의로 보유하고 있어 현 정부 고위직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다주택 논란서도 자유롭다.

다만 정책적으로는 검증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

현재 경찰의 최대 과제는 검경 수사권조정, 자치경찰제 등 ‘경찰 개혁’의 완성인데, 김 내정자의 경우 수사·기획 부서 경험이 적다는 점이다. 관련 기능 경력이 없더라도 경찰개혁을 추진할 ‘적임자’임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 김창룡 경찰청장 내정자 ⓒ청와대

김 내정자와 문재인 대통령과의 과거 인연이 주목받으며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 우려도 나오는 만큼 이를 불식시킬 필요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협상 실패
시간 지연

인사청문회법상 국회는 정부로부터 요청서를 받은 날부터 20일 이내에 청문회를 마쳐야 한다. 청문회가 종료되면 3일 이내에 심사경과보고서 또는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국회의장에 제출해야 하며 이후 대통령에게 경과보고서가 송부된다. 정부는 이번 주 안으로 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안을 국회로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청장 인사청문회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맡는다. 다만 이날 여야가 국회 원 구성 협상에 실패하면서 인사청문회 일정이 확정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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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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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