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장악 나선 윤석열의 큰 그림

양손 떡 쥐고 문정부 조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온다. 한쪽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쪽 부분에서 문제가 불거지는 식이다. 이를 풍선효과라고 한다. 야당(당시 여당)은 새 정부 출범 전 검수완박 법안으로 검찰을 틀어막았다. 그러자 경찰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찰은 문재인정부 5년 내내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검찰개혁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검찰에 대한 문 전 대통령의 생각은 임기 말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을 보름 남겨둔 지난달 25일 방영된 JTBC <대담-문재인의 5년>에서도 검찰에 대해 “정치적으로 무소불위 권력을 누리기 쉬운 검찰”이라고 언급했다. 손석희 JTBC 순회 특파원이 던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부랴부랴
진행했는데…

70년 넘게 유지돼온 형사사법 체계에서는 검찰의 힘이 경찰보다 강했다. 경찰은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아야 했고, 기소권이 없어 ‘기소 의견’ ‘불기소 의견’ 등 사건에 대한 의견만 제시할 수 있었다. 

검경 간 힘의 차이는 문재인정부 들어 뒤바뀌기 시작했다. 문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을 개혁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검수완박(형사소송법, 검찰청법 개정안) 등의 입법 절차를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그 결과 검찰의 기소독점주의가 깨졌고 수사권 일부가 경찰과 공수처로 이양됐다. 당초 검찰개혁의 목표는 ‘검찰의 권한 축소’였다. 검찰의 힘이 쪼그라들면서 상대적으로 다른 수사기관의 권한이 강화됐다. 특히 경찰은 ‘비대화’를 우려해야 할 수준으로 몸집을 불렸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 처리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문재인정부 관련 수사를 막기 위해 검수완박을 서둘렀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실제 검수완박 법안은 입법부터 공포까지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은 임기를 1주일 앞두고 진행한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검수완박 법안을 공포했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 등을 통해 법안 처리 저지를 위해 총력전을 펼쳤으나 민주당의 국회 다수 의석에 밀려 역부족이었다. 윤 대통령은 국민투표 등의 초강수를 내밀었으나 역시 진행되지 못했다. 

검찰 인사 이어 경찰 깜짝 인사
치안정감 물갈이 경찰청장 누구?

검수완박 법안대로면 검찰이 현재 가지고 있는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권 중 3개(공직자·방위사업·대형참사)는 당장 오는 9월부터 제외된다. 선거범죄는 지방선거를 감안해 올해 말까지 남겨두기로 했다. 결국 내년부터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범죄수사 범위는 부패와 경제 사건에 한정되는 것이다. 

민주당은 제외된 범죄수사권을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경찰 등으로 옮기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흥미로운 점은 윤 대통령이 인수위원회 때인 당선인 시절부터 수사기관 장악을 위해 여러 포석을 깔았다는 점이다. 

먼저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한동훈 당시 법무연수원 연수위원을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당초 한 장관은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내 요직으로 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인사에 민주당은 물론 정치권도 깜짝 놀랐다. 


한 장관은 취임 직후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을 부활시킨 데 이어 검찰 인사를 단행했다. 이른바 친정부 검사로 분류됐던 친문 검사가 줄줄이 좌천됐고, 문정부에서 한직을 전전했던 ‘윤석열 사단’이 요직을 차지했다. 

여기에 김오수 전 검찰총장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사퇴하면서 검찰총장 임명권도 윤 대통령과 한 장관 손에 들어왔다. 검찰총장 인선 완료 후 검찰 인사를 단행하면 초토화에 가깝게 망가졌던 검찰 조직이 어느 정도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인사권으로
판 흔든다

대검찰청 차장검사,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내 요직이 윤석열 사단으로 채워지면서 문정부 관련 수사가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그동안 ‘뭉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지부진 했던 수사가 활기를 띠는 모양새다. 검찰 내부에서는 수사권이 박탈되는 9월 전까지 사건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런 와중에 경찰이 복병으로 떠올랐다. 경찰은 문정부 들어 숙원이었던 수사권 조정에 성공했다. 검찰의 수사권도 넘겨받으면서 경찰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해졌다. 경찰이 검찰이 담당했던 권력형 비리 사건 수사의 핵심으로 떠오른 것. 

실제 현재 경찰은 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이 성남시장을 맡던 시절 발생한 성남FC 후원금 의혹, 이 고문의 아내인 김혜경 여사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을 수사하고 있다. 앞으로 드러날 사건의 수사권 역시 경찰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경찰청을 외청으로 둔 행정안전부 장관에 이상민 당시 법무법인 김장리의 대표변호사를 지명했다. 판사 출신의 이 장관은 서울 충암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해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혀왔다. 검찰은 한 장관에, 경찰은 이 장관에 맡긴다는 ‘좌동훈, 우상민’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

이 장관은 취임식도 하기 전에 경찰 통제 방안을 마련하라고 행안부에 지시했다. 경찰 수사권이 크게 확대되는 것과 반비례해 통제 장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장관이 직접 나선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장관이 경찰개혁을 명분삼아 검찰 수사권을 복원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다. 

행안부와 경찰청에 따르면 이 장관은 최근 장관 산하에 있는 정책자문위원회 분과 중 하나인 ‘경찰제도 개선 자문위윈회’(이하 자문위)를 꾸렸다. 자문위는 국가경찰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을 비롯해 자치경찰제를 통한 국가경찰 권한 축소 방안 등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개혁
힘 빼기?

김창룡 경찰청장의 임기도 오는 7월이면 마무리된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검찰과 경찰의 수장을 한꺼번에 임명할 수 있는 ‘양손의 떡’을 쥐게 된 셈이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경찰청장 후보군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경찰 인사를 깜짝 단행했다.

경찰청장(치안총감) 임명 전 치안정감 인사를 진행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원래 경찰청장 임명 후 치안정감 승진 인사가 나는 게 일반적이었다.


정부는 지난 24일 치안감 5명을 치안정감으로 승진시키는 인사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치안정감은 치안총감 바로 아래 계급으로 국가수사본부장, 경찰청 차장, 서울·부산·경기남부·인천경찰청장, 경찰대학장 등 7개 자리가 있다. 

승진 대상자는 송정애 경찰청 경무인사기획관, 윤희근 경찰청 경비국장, 우철문 경찰청 수사기획조정관, 김광호 울산경찰청장, 박지영 전남경찰청 등 5명이다.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을 제외한 현직 치안정감 6명 중 5명이 물갈이된 것이다. 

승진 대상자는 지역과 입직 경로 면에서 균형 있게 안배됐다는 평가다. 전북·전남·충청·PK(부산·경남)·TK(대구·경북) 등 지역적으로 한쪽에 쏠리지 않았다. 입직 경로 또한 경찰대 2명, 순경, 행정고시, 간부 후보 출신 등이 다양하게 포진됐다. 

김광호 청장은 울산 출신으로 서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후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했다. 경정 특채로 2004년 경찰로 전직, 울산경찰청 홍보담당관, 경찰청 대변인, 경찰청 사이버수사국장, 울산경찰청장 등을 역임했다. 

수사기관에 친윤 체제 구축
민주, 검수완박 성공 맞아?

박지영 청장은 전남 해남 출신으로 1993년 경찰 간부 후보 41기로 경찰에 입문했다. 전남담양서장, 서울 양천경찰서장, 경찰청 정보화장비정책관, 중앙경찰학교장, 전남경찰청장 등을 거쳤다. 


송정애 국장은 전북 정읍 출신으로 1981년 순경 공채로 시작해 2016년 대전·충남 지역 최초 여성 총경, 2018년 대전경찰청 최초 여성 경무관을 지냈다. 지난해 여성으로는 역대 3번째로 경찰청 국장이 됐다. 송 국장은 여성으로 3번째, 여성 순경 출신으로는 최초로 치안정감에 오르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윤희근 국장은 충북 청주 출신으로 경찰대 7기다. 경찰청 경무담당관, 서울 수서경찰서장, 서울청 정보관리부장 등을 역임했다. 우철문 국장은 경북 김천 출신으로 서울 서초경찰서장과 경찰청 범죄예방정책과장으로 일했다. 

경찰공무원법상 경찰청장은 치안정감 중에 선임하도록 규정돼있다. 이번에 승진한 5명을 비롯해 6명이 차기 경찰청장 후보가 된다.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은 임기가 정해져 있어 경찰청장 후보군에서 제외된다. 이번 인사를 두고 윤 대통령이 검찰에 이어 경찰에도 ‘친윤 체제’를 구축해 지배력을 높이려 한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향후 설치될 중수청 인사권도 윤 대통령이 갖고 있다. 공수처장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임명권도 대통령에 있다.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은 별도의 인사청문회 없이 행안부 장관 제청으로 국무총리를 거쳐 임명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윤 대통령이 마음먹고 인사권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검찰, 경찰, 공수처, 중수청 모두 ‘친윤 인사’로 깔아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일종의 ‘우회로’도 많은 상황이다. 법무부 장관의 상설특검도 한 방식이다. 특별검사임명법은 ‘이해관계 충돌이나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검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에 대해 법무부 장관이 특검을 발동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이 정부의 의지대로 특정 사건에 대한 특검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회로 타고
수사 정조준

민주당 내부에서는 검수완박 강행으로 윤 대통령에게 오히려 ‘칼’을 선물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과 검사 출신 법무부 장관, 판사 출신 행안부 장관 등이 검수완박 법안의 허점을 이용해 검찰 권한 축소에도 수사 전선을 넓히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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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