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온다. 한쪽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쪽 부분에서 문제가 불거지는 식이다. 이를 풍선효과라고 한다. 야당(당시 여당)은 새 정부 출범 전 검수완박 법안으로 검찰을 틀어막았다. 그러자 경찰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찰은 문재인정부 5년 내내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검찰개혁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검찰에 대한 문 전 대통령의 생각은 임기 말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을 보름 남겨둔 지난달 25일 방영된 JTBC <대담-문재인의 5년>에서도 검찰에 대해 “정치적으로 무소불위 권력을 누리기 쉬운 검찰”이라고 언급했다. 손석희 JTBC 순회 특파원이 던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부랴부랴
진행했는데…
70년 넘게 유지돼온 형사사법 체계에서는 검찰의 힘이 경찰보다 강했다. 경찰은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아야 했고, 기소권이 없어 ‘기소 의견’ ‘불기소 의견’ 등 사건에 대한 의견만 제시할 수 있었다.
검경 간 힘의 차이는 문재인정부 들어 뒤바뀌기 시작했다. 문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을 개혁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검수완박(형사소송법, 검찰청법 개정안) 등의 입법 절차를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그 결과 검찰의 기소독점주의가 깨졌고 수사권 일부가 경찰과 공수처로 이양됐다. 당초 검찰개혁의 목표는 ‘검찰의 권한 축소’였다. 검찰의 힘이 쪼그라들면서 상대적으로 다른 수사기관의 권한이 강화됐다. 특히 경찰은 ‘비대화’를 우려해야 할 수준으로 몸집을 불렸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 처리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문재인정부 관련 수사를 막기 위해 검수완박을 서둘렀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실제 검수완박 법안은 입법부터 공포까지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은 임기를 1주일 앞두고 진행한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검수완박 법안을 공포했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 등을 통해 법안 처리 저지를 위해 총력전을 펼쳤으나 민주당의 국회 다수 의석에 밀려 역부족이었다. 윤 대통령은 국민투표 등의 초강수를 내밀었으나 역시 진행되지 못했다.
검찰 인사 이어 경찰 깜짝 인사
치안정감 물갈이 경찰청장 누구?
검수완박 법안대로면 검찰이 현재 가지고 있는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권 중 3개(공직자·방위사업·대형참사)는 당장 오는 9월부터 제외된다. 선거범죄는 지방선거를 감안해 올해 말까지 남겨두기로 했다. 결국 내년부터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범죄수사 범위는 부패와 경제 사건에 한정되는 것이다.
민주당은 제외된 범죄수사권을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경찰 등으로 옮기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흥미로운 점은 윤 대통령이 인수위원회 때인 당선인 시절부터 수사기관 장악을 위해 여러 포석을 깔았다는 점이다.
먼저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한동훈 당시 법무연수원 연수위원을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당초 한 장관은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내 요직으로 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인사에 민주당은 물론 정치권도 깜짝 놀랐다.
한 장관은 취임 직후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을 부활시킨 데 이어 검찰 인사를 단행했다. 이른바 친정부 검사로 분류됐던 친문 검사가 줄줄이 좌천됐고, 문정부에서 한직을 전전했던 ‘윤석열 사단’이 요직을 차지했다.
여기에 김오수 전 검찰총장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사퇴하면서 검찰총장 임명권도 윤 대통령과 한 장관 손에 들어왔다. 검찰총장 인선 완료 후 검찰 인사를 단행하면 초토화에 가깝게 망가졌던 검찰 조직이 어느 정도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인사권으로
판 흔든다
대검찰청 차장검사,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내 요직이 윤석열 사단으로 채워지면서 문정부 관련 수사가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그동안 ‘뭉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지부진 했던 수사가 활기를 띠는 모양새다. 검찰 내부에서는 수사권이 박탈되는 9월 전까지 사건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런 와중에 경찰이 복병으로 떠올랐다. 경찰은 문정부 들어 숙원이었던 수사권 조정에 성공했다. 검찰의 수사권도 넘겨받으면서 경찰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해졌다. 경찰이 검찰이 담당했던 권력형 비리 사건 수사의 핵심으로 떠오른 것.
실제 현재 경찰은 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이 성남시장을 맡던 시절 발생한 성남FC 후원금 의혹, 이 고문의 아내인 김혜경 여사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을 수사하고 있다. 앞으로 드러날 사건의 수사권 역시 경찰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경찰청을 외청으로 둔 행정안전부 장관에 이상민 당시 법무법인 김장리의 대표변호사를 지명했다. 판사 출신의 이 장관은 서울 충암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해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혀왔다. 검찰은 한 장관에, 경찰은 이 장관에 맡긴다는 ‘좌동훈, 우상민’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
이 장관은 취임식도 하기 전에 경찰 통제 방안을 마련하라고 행안부에 지시했다. 경찰 수사권이 크게 확대되는 것과 반비례해 통제 장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장관이 직접 나선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장관이 경찰개혁을 명분삼아 검찰 수사권을 복원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다.
행안부와 경찰청에 따르면 이 장관은 최근 장관 산하에 있는 정책자문위원회 분과 중 하나인 ‘경찰제도 개선 자문위윈회’(이하 자문위)를 꾸렸다. 자문위는 국가경찰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을 비롯해 자치경찰제를 통한 국가경찰 권한 축소 방안 등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개혁
힘 빼기?
김창룡 경찰청장의 임기도 오는 7월이면 마무리된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검찰과 경찰의 수장을 한꺼번에 임명할 수 있는 ‘양손의 떡’을 쥐게 된 셈이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경찰청장 후보군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경찰 인사를 깜짝 단행했다.
경찰청장(치안총감) 임명 전 치안정감 인사를 진행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원래 경찰청장 임명 후 치안정감 승진 인사가 나는 게 일반적이었다.
정부는 지난 24일 치안감 5명을 치안정감으로 승진시키는 인사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치안정감은 치안총감 바로 아래 계급으로 국가수사본부장, 경찰청 차장, 서울·부산·경기남부·인천경찰청장, 경찰대학장 등 7개 자리가 있다.
승진 대상자는 송정애 경찰청 경무인사기획관, 윤희근 경찰청 경비국장, 우철문 경찰청 수사기획조정관, 김광호 울산경찰청장, 박지영 전남경찰청 등 5명이다.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을 제외한 현직 치안정감 6명 중 5명이 물갈이된 것이다.
승진 대상자는 지역과 입직 경로 면에서 균형 있게 안배됐다는 평가다. 전북·전남·충청·PK(부산·경남)·TK(대구·경북) 등 지역적으로 한쪽에 쏠리지 않았다. 입직 경로 또한 경찰대 2명, 순경, 행정고시, 간부 후보 출신 등이 다양하게 포진됐다.
김광호 청장은 울산 출신으로 서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후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했다. 경정 특채로 2004년 경찰로 전직, 울산경찰청 홍보담당관, 경찰청 대변인, 경찰청 사이버수사국장, 울산경찰청장 등을 역임했다.
수사기관에 친윤 체제 구축
민주, 검수완박 성공 맞아?
박지영 청장은 전남 해남 출신으로 1993년 경찰 간부 후보 41기로 경찰에 입문했다. 전남담양서장, 서울 양천경찰서장, 경찰청 정보화장비정책관, 중앙경찰학교장, 전남경찰청장 등을 거쳤다.
송정애 국장은 전북 정읍 출신으로 1981년 순경 공채로 시작해 2016년 대전·충남 지역 최초 여성 총경, 2018년 대전경찰청 최초 여성 경무관을 지냈다. 지난해 여성으로는 역대 3번째로 경찰청 국장이 됐다. 송 국장은 여성으로 3번째, 여성 순경 출신으로는 최초로 치안정감에 오르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윤희근 국장은 충북 청주 출신으로 경찰대 7기다. 경찰청 경무담당관, 서울 수서경찰서장, 서울청 정보관리부장 등을 역임했다. 우철문 국장은 경북 김천 출신으로 서울 서초경찰서장과 경찰청 범죄예방정책과장으로 일했다.
경찰공무원법상 경찰청장은 치안정감 중에 선임하도록 규정돼있다. 이번에 승진한 5명을 비롯해 6명이 차기 경찰청장 후보가 된다.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은 임기가 정해져 있어 경찰청장 후보군에서 제외된다. 이번 인사를 두고 윤 대통령이 검찰에 이어 경찰에도 ‘친윤 체제’를 구축해 지배력을 높이려 한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향후 설치될 중수청 인사권도 윤 대통령이 갖고 있다. 공수처장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임명권도 대통령에 있다.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은 별도의 인사청문회 없이 행안부 장관 제청으로 국무총리를 거쳐 임명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윤 대통령이 마음먹고 인사권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검찰, 경찰, 공수처, 중수청 모두 ‘친윤 인사’로 깔아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일종의 ‘우회로’도 많은 상황이다. 법무부 장관의 상설특검도 한 방식이다. 특별검사임명법은 ‘이해관계 충돌이나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검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에 대해 법무부 장관이 특검을 발동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이 정부의 의지대로 특정 사건에 대한 특검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회로 타고
수사 정조준
민주당 내부에서는 검수완박 강행으로 윤 대통령에게 오히려 ‘칼’을 선물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과 검사 출신 법무부 장관, 판사 출신 행안부 장관 등이 검수완박 법안의 허점을 이용해 검찰 권한 축소에도 수사 전선을 넓히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