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지기’ 윤미향-이용수 와해 풀스토리

어쩌다…길 갈린 옛 동지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후원금 사용처 문제 등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둘은 지난 30년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을 함께 해왔다. <일요시사>는 이 할머니의 입장과 윤 당선인을 둘러싼 논란을 조명했다.
 

▲ 최근 이용수 할머니와 갈등을 빚고 있는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

윤미향 당선인을 향한 논란은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 후원금 회계 처리 논란 ▲후원금 불법 유용 및 횡령 의혹 ▲윤 당선인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협정 사전 인지 여부라는 세 가지 축으로 크게 나뉜다. 윤 당선인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대표를 거쳐 정의연의 이사장을 맡았다. 이후 21대 총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비례대표 7번을 배정받아 당선됐다.

한일협정
무슨 일이…

논란은 윤 당선인과 지난 30년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투쟁해온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부터 촉발됐다. 이 할머니는 지난 7일, 수요집회 후원금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사용한 적이 없다는 주장과 함께, 2015 한일협정 이전에 윤 당선인이 이를 알고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 할머니에 대한 사과와 함께 기금 운용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지난 30년간 이 운동을 같이 해오며 가족같이 지내셨던 할머님의 서운함, 불안감, 분노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후원금 관리 의혹에 정의연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활 안정만을 목적으로 하는 인도적 지원단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자신들의 활동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후원금 지원에만 국한되지 않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내외 여론을 조성하는 등 다른 여러 사업에도 후원금이 쓰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정의연은 지난 2017∼2019년 3년간 기부금 수입·지출 내역도 공개했다.

정의연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사용처가 지정된 ‘목적기금 기부금’을 제외한 나머지 일반 기부금 총 22억1900여만원 중 약 41%에 해당하는 9억1100여만원을 ‘피해자 지원 사업비’로 집행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금이 적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정의연은 피해자들의 건강 치료 지원, 정기 방문, 생활 물품 지원 등에 후원금을 써왔고, 정의연의 설립 취지는 단순한 현금 지원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이사장은 “만약 정의연이 위안부 생활안정만을 위한 지원단체였다면 1990년대 초반 피해자 지원법이 만들어졌을 때 해산해야 했다“며 “그랬다면 역사 교과서에 성 노예제 문제는 한 줄도 포함되지 못했고, 유엔서도 성노예제 문제로 규정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수요집회 후원금 의혹
“할머니에 쓴 적 없어”

현재 정의연은 ▲피해자 지원 ▲수요집회 ▲평화비 건립 지원▲전시성 폭력 재발방지 사업 ▲기림 사업 ▲장학사업 등 인권 운동을 위한 여러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피해자 지원금은 1990년대 초반에 제정된 ‘위안부피해자법’에 따라 정부가 지급하고 있다.


정의연은 190년대 초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정신대할머니 생활기금모금 국민운동본부’를 설립해, 모금 활동 후 재정적·의료적 지원 등을 가능토록 하는 지원법 제정 운동을 전개해 국내 입법을 이끌어낸 바 있다.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 이후 다수 언론에선 22억원 공시 누락, 3300여만원 맥주집 행사, 후원금 수혜 인원 임의 기재 논란 등으로 정의연의 회계 처리에 대한 문제를 보도했다.

정의연은 지난 2018년 ‘기부금품 모집·지출명세서’에서 22억7300만원의 기부금 수익을 2019년으로 이월한다고 공시했지만, 정작 2019년 이월 수익금은 ‘0원’으로 표시했다. 이에 정의연은 “회계처리의 오류가 아니라, 회계감사를 마친 회계자료를 국세청 공시에 입력하는 과정서 누락이 발생한 것”이라 해명했다.
 

▲ 수요집회 ⓒ고성준 기자

또 맥주 체인점서 지난 2018년 3339만원을 지출했다는 지적에 대해 국세청에 제출하는 기부금품 지출 명세서란에는 대표 지급처 한 곳만을 작성하게 돼있어 모금사업비 지출 총액 중 사업비 지출액이 가장 컸던 후원의 밤 지급처를 대표로 기재했음을 밝혔다.

아울러 피해자 지원사업 수혜자를 ‘999명’ ‘99명’ 기재에 대해서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활동 특성상 수혜자가 특정되지 않아 임의로 기재했음을 설명했다.

한국공익법인협회 소속 김덕산 회계사는 정의연 회계 논란과 관련해 한 라디오 방송서 “국세청 홈택스에 공개된 정보들만 보고 있는데 이게 빙산의 일각과 같은 제한적 정보라서 이것만 가지고 문제가 있다, 없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조금 더 세심하게 작성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자녀 유학비
형사 배상금

정의연이 임의의 수를 넣은 것은 논란의 소지를 일으킬 수 있어 경솔했다는 지적이다.

세무 당국은 정의연의 공시 서류를 확인한 결과 기부금 수익 이월 부분과 지원사업 수혜자 등에서 오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탈세 등의 고의성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관계자는 “정의연에 고시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재공시를 요청할 계획으로, 추가 조사를 검토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후원금 불법 유용 및 횡령 의혹과 관련해서도 정의연은 전혀 그럴 일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이사장은 지난 13일 열린 수요집회에서도 개인적 자금 횡령이나 불법 운용이 절대 없고, 매년 변호사와 공인회계사로부터 회계감사를 받았고 문제없다는 답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이는 후원금 운용 등을 놓고 윤 당선인의 딸 유학자금을 두고 의혹이 불거지자 해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에선 윤 당선인 부부의 연수입에 비해 딸의 미국 유학자금 비용이 커 출처가 의심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 이용수 할머니

윤 당선인 딸은 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로스앤젤레스(UCLA)로 유학해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윤 당선인 부부가 신고한 연수입으로 이를 지원하기에는 무리라는 주장이다.

이에 윤 당선인은 남편의 간첩조작사건 배상금으로 딸의 유학자금을 대고 있다고 밝혔다. 윤 당선인 남편 김삼석씨는 친동생 은주씨와 함께 1993년 남매간첩단 사건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무죄 선고를 받아 지난 2018년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서도 승소했다.

“중요 사안
빼고 알렸다”

당시 윤 당선인 남편에게는 형사배상금은 1억9000만원이, 남편 모친과 당선인, 딸 등 가족에게 지급된 민사배상금은 8900만원이 지급됐다. 윤 당선인은 딸 학비 등으로 현재까지 지출한 돈은 한화로 1억원 정도라고 밝혔다.

다음 논란은 윤 당선인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 사전 인지 의혹과 윤 당선인이 일본의 합의금 10억엔 화해·치유재단 기금을 받지 않도록 피해 할머니들을 회유했다는 의심으로부터 비롯됐다.


윤 당선인 측에 따르면 실제로 전날 외교부가 합의 내용 일부를 알린 것은 사실이다. 다만 책임 통감, 사죄·반성, 일본 정부 국고 거출 등의 내용이 있었고, 불가역적 해결, 국제사회 비판자제, 소녀상 철거 등 예민한 사안들은 모두 빠져 있었다.

외교부 역시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확인, 국제사회 비난·비판 자제 등 한국 쪽이 취해야 할 조치가 있다는 것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는 기존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의 결론이 맞다고 확인했다.

아울러 할머니들 회유 주장에 대해서 정의연 측은 “당시 민변서 2015 한일합의에 대한 국가소송을 제기했고, 그 과정서 할머니들 의사 확인하기 위해 일일이 만나봤다. 기금을 받아도 그 문제에 대응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명드렸다. 화해·치유재단의 기금 수령 여부는 전적으로 할머니들이 결정하시게끔 했다”고 해명했다.

이후 정의연은 화해·치유재단 지원금을 받지 않은 피해 할머니들에게 모금액으로 1억원씩 지급했다.

윤 당선인과 이 할머니는 30년간 역사 속에서 잊혀지던 위안부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여성 인권을 위해 맞서 싸워온 동지다. 두 인물 모두 인권유린에 대한 정의로운 해결로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에 기여하며 미래세대를 위한 역사교육 및 추모 사업 등에 크게 힘써왔다.

쏟아지는 의문·질문들
회계 논란 정의연 사과

이 할머니의 측근인 최봉태 변호사는 “할머니는 정의연과 30년간 동지다. 할머니께서 정의연이나 윤 당선인에게 섭섭한 말씀을 하셨더라도 좀 더 잘하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그는 “윤 당선인이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 된다든지, 수요시위를 안 해야 한다는 것은 할머니의 진의를 100% 왜곡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는 이 할머니에게 윤 당선인에게 부정적인 기자회견을 하면 본래 취지가 전달이 되지 않고, 자칫 잘못하면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겠다며 말린 것으로 알려졌다. 
 

▲ 수요집회서 발언하는 정의연 대표

최 변호사는 이 할머니가 “윤 당선인과 나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하느냐”며 최 변호사에게 역정을 냈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여러 논란에 대해 “정의연과 (이 할머니의)관계를 이간질하려는 움직임은 일본 극우의 먹잇감밖에 더 되지 않는다”며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을 보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 할머니의 진의를 파악해야 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정치권서도 이를 둘러싼 설전이 한창이다. 미래통합당 장능인 상근부대변인 논평을 통해 “시민당 윤 당선인과 관련한 회계 부정 의혹이 끝없이 나오고 있다”며 윤 당선인에 대한 업무상 횡령 의혹을 둘러싼 집권여당의 사과와 강력한 징계를 촉구했다.

반면 민주당은 정의연이 설혹 작은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이로 인해 활동의 의미와 성과가 부정돼선 안 된다는 입장을 냈다. 21대 당선인들 중 일부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정의연 운동이 없었다면 전시상황서 인권이 어떻게 짓밟혔는지, 일본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세상에 드러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갑자기
공방전 왜?

정의당도 역시 기부금 논란과 위안부 문제는 별개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의당 강민진 대변인은 “본 사안을 정치 공세의 도구로 삼아 시민운동의 의의를 훼손하고 이전 정권의 과오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규탄받아야 한다”며 “정의연의 기부금 의혹 문제와 특정 정치인의 자질 문제, 위안부 해결을 위한 시민운동의 의의와 박근혜정권 당시 이뤄진 한일 합의의 문제점은 각각 별개의 사안으로 접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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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