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우리나라를 첨단제품 수출 허가신청 면제국가(화이트 리스트)서 제외했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화이트 리스트 제외 대응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는 중인데 아직까지 대응방안과 수위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한일군사정보교류협정(GSOMIA) 폐기, WTO 제소로 맞불을 놓는 방안과 대체수입처 확보, 피해 기업 지원 등 국내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동시에 제시되고 있다.
이 같은 조치들은 일정한 한계가 있다. 맞대응 조치는 양국 간 관계를 더욱 악화시켜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에 빠질 우려가 있다. 대일 의존도가 높은 품목의 공급선 다변화는 가격과 품질 문제가 걸림돌이 된다. 일례로 일본이 불화수소 수출을 규제하자 중국과 러시아서 대체품목을 공급받으려 했으나 관련 업계에선 품질 검증이 되지 않아 당장 사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확실한 해결방안으로 대일 의존도가 높은 수입품목을 국산화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것이다.
최근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수출 규제 품목 중 불화수소는 2~3개월 내 국산화가 가능하고, 폴리이미드는 다른 국산 소재로 대체할 수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수출규제 품목인 포토레지스트도 국내 수요를 충당할 만큼의 대체 공급선을 확보했다는 소식이 있다. 일단 급한 불은 끄게 됐으나 향후 수출규제 품목이 대폭 늘어난다면 이 같은 대응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우리는 핵심소재와 부품을 일본서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다른 나라로 수출해왔다. 우리나라의 수출 규모가 커질수록 일본의 이득은 더 커지는 구조였다. 급기야 일본 수출규제로 인해 우리 경제가 타격을 입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재나 부품을 일본에 의존하는 구조서 벗어나려면 기초과학을 발전시켜야 한다. 과거의 기술자립 정책이 실현되지 못한 것은 우리의 기초과학 수준이 높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20명이 넘는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은 기초과학을 토대로 높은 기술력을 쌓았다.
지금부터라도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한다. 대학이나 연구소 중 분야별 경쟁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곳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나눠먹기식 국고지원은 지양해야 한다. 열 곳에 10억씩 지원하는 것보다 한 곳에 100억원을 투입하는 것이 낫다. 그래도 세계적 명문대학에 비하면 적은 돈이다.
국내 대학이 경쟁력을 갖고 뛰어난 성과를 창출하려면 훌륭한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뛰어난 인재의 상당수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 정착하는 구조다.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우수한 학생이 국내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아낌없는 지원을 해야 한다.
뛰어난 학생을 선발해 석박사 과정 중 등록금과 해외연수 지원은 물론이고, ‘최소한’ 중견기업 수준의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한다면 지금보다 더 높은 잠재력을 가진 이들을 국내 대학원서 육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선 자국 내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연구자가 노벨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대학원도 높은 연구 역량을 확보한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대학원의 학문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기초과학 분야의 대가들을 국내로 초빙해야 한다. 은퇴한 연구자의 명성만 빌려오는 것이 아니라, 한창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자를 영입해야 한다. 특정 대학서 하기 어렵다면 국가가 나서 수십억을 지급해서라도 학문을 전수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위기는 기회가 될 것이고 그렇게 돼야 한다. 후세에 길이 남을 대반전의 역사가 시작되기를 바란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