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국회는 이번에도 선거구 획정 시한을 넘겼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구 획정은 총선 1년 전까지 마무리돼야 한다. 잇단 국회 파행과 선거제 개편안을 둘러싼 여야의 충돌이 유효했다. 사실 국회가 시한을 지키지 못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선거구는 매번 총선이 임박한 가운데 획정됐다. 이를 가슴 졸이며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차기 총선을 준비하는 정치 신인들이다.
지난 15일은 21대 총선을 딱 1년 앞둔 때였다. 국회는 이날까지 선거구를 획정해야 했다. 공직선거법 제24조 2항에 따르면 국회는 국회의원 지역구를 선거일 전 1년까지 확정해야 한다. 그러나 여야 간 합의가 요원해지면서 ‘불법 국회’라는 오명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국회는 일찌감치 총선모드로 전환됐지만 유야무야 법정 시한을 넘기게 됐다. 국회가 법을 지키지 않은 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여야는 매번 총선을 코앞에 두고 선거구를 획정했다.
부랴부랴
국회는 지난 16대 총선서 65일 전에 선거구를 획정했다. 17대 총선에서는 37일을 앞두고 획정을 매듭지었다. 국회는 18대서 47일 전, 19대서 44일 전, 20대서 42일 전에 각각 선거구를 획정해 비판의 대상이 됐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선거구 획정은 선거제 개편안의 등장으로 더욱 복잡해졌다”며 “지난날에 비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거제 개편안은 선거구 획정의 최대 변수로 꼽힌다. 선거구 획정 과정서 지역구는 확대되거나 축소된다. 선거제 개편안은 지역구의 의석수 축소와 비례성 강화를 골자로 한다. 가뜩이나 지역구 의석수의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서 선거제 개편안이 교차하는 꼴이다.
여야는 선거제 개편안을 두고 첨예한 대립 구도를 형성했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선거제 개편안에 합의했다. 여야 4당은 국회의원 정수를 300석으로 유지하되 지역구 의석을 축소하고 비례대표를 확대했다.
지역구 의석은 현행 253석서 225석으로 줄였고, 비례대표는 현행 47석을 75석으로 늘렸다.
한국당은 여야 4당의 합의안과 결이 다른 안을 제시했다. 한국당은 국회의원 정수를 270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폐지, 270석 모두 지역구 의원으로 대체하자고 주장했다. 지역구 의석 축소와 비례성 강화가 핵심인 여야 4당의 개편안과 정면 배치되는 셈이다.
결국 여야 4당은 한국당을 제외한 채 합의된 개편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웠다. 여야 4당은 선거제 개편안을 비롯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이하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패스트트랙에 안착시키는 데 합의했다. 한국당은 ‘날치기 악법’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여야 4당 내부서도 파열음이 나왔다.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서 선거제 개편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는 데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바미당 내에선 공수처법의 세부사항에 대해서도 이견이 제기됐다. 바미당은 더불어민주당과 공수처의 기소권 여부를 두고 갈등을 겪었다. 선거구 획정에 걸림돌이 늘어나면서 역대 최악의 전례를 남기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는 형국이다.
선거제 개편 변수…선거구 획정 깜깜
‘자리 뺏길라’ 참다못해 법적 대응도
전국 57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정치개혁공동행동’은 획정 기한을 넘긴 국회를 비판했다. 정치개혁공동행동은 지난 15일,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을 열어 “4월 안에도 선거법 개정에 관한 어떤 유의미한 진전이 없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선거법 개정을 가로막은 국회의원 모두에게 손해배상과 직무유기 등 민형사상 책임을 묻고 내년 총선서도 정치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국회는 또 국민 앞에서 약속을 깨뜨렸다”고 일갈했다.
당장 피해를 보는 건 정치 신인들이다. 지난 총선을 살펴보면 선거 시작 한두 달 전에 선거구가 획정됐다. 지역구는 획정 과정을 거쳐 확대되거나 축소된다. 선거구가 총선을 얼마 앞두지 않은 상황서 갑작스럽게 변경될 경우 정치 신인들은 예상치 못한 지역서 다시 선거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 신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인지도”라며 “새로운 지역이 포함될 경우 정치 신인들은 다시 이름을 알려야 하는데 총선을 목전에 둔 때라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정치 신인들이 피선거권을 충분히 보장해달라며 토로하는 까닭이다.
현역 의원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이들은 이미 지역적 기반과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한 만큼 지역구 변경에 있어 정치 신인들에 비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일각서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는 것을 기득권 야합이라고 비판하는 까닭이다.
피해를 보는 건 유권자도 마찬가지다. 선거구 획정이 늦춰지는 만큼 유권자의 알권리가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권자는 후보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취득하기 어렵다. 매번 총선 때마다 ‘깜깜이 선거’가 키워드로 부상하는 이유다.
고래 싸움에…
지난 20대 총선서 정치 신인들은 선거구 획정이 차일피일 미뤄지자 법적 대응에 나선 바 있다. 당시 새누리당(한국당의 전신) 예비후보들은 서울행정법원에 국회를 상대로 ‘부작위 위법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부작위 위법확인 소송은 행정기관이 법률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법원의 확인을 구하는 재판이다. 당시 이들은 ‘유권자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자신의 지역구에 적합한 후보를 선택하지 못한 점’과 ‘예비후보가 어느 지역서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인 점’ 등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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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기사> 정치 신인 가산점은?
그간 정당에선 총선에 도전하는 정치 신인들을 상대로 가산점을 부여했다. 국회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현역 의원과의 대결을 최대한 공평하게 조정하려는 취지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 신인들에게 어느 정도의 가산점이 부여될지 주목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정치 신인에게 이전보다 더 많은 가산점을 주기로 결정했다. 민주당 총선공천기획단은 지난 16일 4차 회의를 통해 공천 룰을 잠정 결정했다.
민주당은 정치 신인에게 기존 경선 과정서 받는 10%의 가산점을 비롯해 공천심사서도 10%의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이른바 ‘현역 의원 프리미엄’을 줄이겠다는 의지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