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승리 클럽 버닝썬’ 성추행 막다 수갑 찬 사연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12.21 17:15:09
  • 호수 11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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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CCTV 공개 거부하고 되레 영업방해죄로 입건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승리 클럽으로 알려진 버닝썬 이사가 성추행하는 걸 목격했다. 이걸 막았다가 버닝썬의 보디가드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 현장서 즉각 경찰에 신고했지만, 수갑을 찬 건 나였다. 경찰 조사 과정서 경찰로부터 3차례 폭행과 온갖 조롱을 당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CCTV 공개를 요구했지만, 경찰 측에서 거부했다. 경찰이 ‘버닝썬을 비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지난 12월18일 버닝썬 폭행 피해자 김상교씨는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경찰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상교(28)씨는 지난 18일 <일요시사>와 만나 “경찰이 클럽 버닝썬을 비호하는 과정서 자신에게 부당한 공권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망한 영상 감독이자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페미니스트다. 올해 제17회 미쟝션 단편영화제의 공식 트레일러 영상을 제작했다. 정준영, 나인뮤지스, 서사무엘, 킬라그램, 나다 등 가수들의 뮤직비디오 미술감독을 맡았다.

김씨는 올바른 페미니즘을 알리기 위해 지난해 가수 디아가 발표한 타이틀곡 ‘비행소녀’의 미술감독으로 재능기부를 했다. 또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죽어가는 홍대 골목 상권을 살리는 페스티벌에도 무료 봉사한 이력도 있다.

이랬던 김씨가 지난달 24일 영업방해 및 공무집행방해로 강남경찰서에 입건됐다. 무슨 일이 있던 걸까. 김씨의 주장을 토대로 이날 있었던 일을 재구성했다. 

지난달 24일 토요일 새벽 2시. 김씨는 지인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빅뱅 승리가 운영 중인 클럽으로 알려진 강남 버닝썬을 갔고 거기서 보드카 한 잔과 샴페인 세 잔을 마셨다. 과음하는 스타일은 아니었기에 정신은 맑았다. 

오전 6시50분경 버닝썬서 나오는 길에 한 여성이 급하게 다가와 김씨의 왼쪽 어깨 뒤로 숨었다. 그러자 술에 취한 한 남성이 여성의 겨드랑이와 가슴 사이를 움켜쥐며 끌어당겼다. 이 남성은 버닝썬 이사였다. 여성은 김씨를 붙잡고 버텼는데 김씨는 버닝썬 이사가 반강제적으로 여성을 대하는 것 같아 그를 막아섰다. 그러자 버닝썬 이사가 김씨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김씨는 보디가드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보디가드들은 도움을 청한 김씨를 갑자기 집단구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김씨를 VIP 출구로 끌고 가 내던지는 등 구타를 멈추지 않았다. 겨우 뒷걸음질로 도망치던 김씨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7시2분에 112에 ‘집단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김씨는 보디가드들을 붙잡기 위해 “도망가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이들은 또다시 김씨를 구타했다. 

그로부터 8분 뒤인 7시10분경 역삼지구대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당시 경찰은 김씨가 바닥서 맞는 장면을 목격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씨는 “그런데 경찰은 집단폭행한 보디가드들을 다급하게 클럽 출구 안으로 밀어넣었다”고 주장했다. 다른 경찰은 갑자기 김씨를 제압한 후 뒷쪽으로 수갑을 채웠다. 

상식적으로 이해가지 않은 상황이었다. 경찰이 신고자이자 집단폭행당한 김씨를 체포한 것이다. 보수적으로 쌍방폭행으로 보였다면, 김씨를 폭행한 보디가드들도 함께 연행해야 하는 게 타당했는데도 경찰은 김씨만 경찰차에 태웠다. 심지어 미란다 원칙도 고지하지 않았다. 
 

▲ ▲상교씨는 역삼지구대서 경찰관들에게 폭행당한 후 본인의 모습을 직접 촬영했다.

김씨 입장에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차 안에서 김씨는 경찰들에게 “이게 무슨 일이냐? 내가 신고자고 (경찰도)폭행을 목격하지 않았느냐?”고 재차 물었다. 그러자 경찰은 “OO 좀 조용히 하고 가자”며 욕설을 했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경찰차 안에서 폭행까지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집단폭행을 당해 갈비뼈가 아팠다. 뒷쪽으로 수갑을 채워 숨쉬기도 힘들었다. 경찰관에게 ‘수갑을 좀 풀어달라’고 하니 계속 조용하라고 욕만 했다”며 “재차 ‘아파 죽겠으니깐 좀 풀어달라’고 하니 한 경찰관이 아프다는 갈비뼈를 주먹으로 움켜쥐었다. 아파서 몸부림치자 어깨를 강하게 3대나 때렸다”고 말했다. 

7시15분경 김씨는 역삼지구대로 연행됐다. 김씨가 경찰관을 향해 “어떻게 경찰이 신고한 사람을 때리냐. 내가 신고한 사람”이라고 외치자 한 경찰이 “이 OO가 조용히 하라니깐. 아직도 떠드네”라며 김씨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후 구둣발로 얼굴을 3차례 찼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서 김씨는 유리문에 얼굴을 부딪혀 입 안과 코에 출혈이 발생했다. 그는 한 시간가량 역삼지구대서 수갑이 채여진 채 입과 코에 출혈이 나고 있는 상태로 방치됐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경찰이 버닝썬 관계자들을 숨겨주고 있다는 심증과 수갑을 채운 채 폭행할 수도 있다는 위협을 느꼈다. 어렵게 수갑을 찬 채로 모친에게 연락해 당시의 상황을 알렸다. 

약 한 시간 뒤인 8시20분경 김씨 모친이 역삼지구대에 도착했다. 당시 피를 흘리고 있는 김씨를 목격한 모친은 “여기서 조사를 받으면 안 될 것 같다”며 119와 112에 다시 신고했다. 15분 뒤에 도착한 119 구급대원들은 김씨의 상태를 보고 “응급환자다. 급히 검사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 측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병원에)보내줄 수 없다고 막았다. 

김씨는 앞서 역삼지구대에 들어오는 과정서 입 안과 코에 출혈이 발생했는데 멈추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지켜본 경찰관들은 “저 OO 가래침 뱉는 거 동영상 찍어라. 공무집행 방해로 넣게”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때 경찰관 4명이 자신의 동영상을 찍었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김씨는 “경찰들은 동영상을 찍으며 나를 조롱했다. 찍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멈추지 않았다. 난생 처음 모욕감과 모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8시45분경. 김씨는 강남경찰서에서 조사 받기 위해 수갑을 풀었다. 김씨는 동영상 촬영을 주도한 경찰에게 “이건 침이 아니고 당신들이 폭행해서 나는 피”라며 진술서에 피를 뱉고 경찰을 향해 던졌다. 당시 해당 경찰은 “저 OO, 다시 잡아”라고 했으며, 10여명의 경찰이 김씨를 다시 제압했다. 이 과정서 김씨에겐 2차 출혈이 발생했고 다시 수갑이 채워졌다. 역삼지구대는 김씨에 대해 공무집행방해죄로 이날 오전 10시까지 추가 조서를 꾸몄다. 

그 후 김씨 모친이 직접 경찰에 다시 신고해 역삼지구대서 강남경찰서로 사건을 이관해 다시 조사가 시작됐다. 수사관들은 김씨가 술을 많이 마셔 취했던 게 아니냐고 추궁했다. 수사관은 “거짓말 하면 너 고소할 거야”라고 압박했다. 김씨는 “네, 제가 거짓말을 했으면 고소하시고요. CCTV만 확인하면 될 일이잖아요, 제발 좀 확인해주세요”라고 사정했다.
 

▲ ▲▲ 경찰과 버닝썬 관계자에게 폭행을 당한 뒤 모친의 신고로 구급대원들이 역삼지구대로 출동해 상교씨를 검진하고 있다.

수사관들은 김씨를 폭행한 버닝썬 보디가드와 대질 심문에 들어갔는데 그는 어느 순간 주폭이 돼있었다. 버닝썬 보디가드들은 “김씨가 반강제적으로 여자에게 스킨십을 했다. 만취해 술병을 깨고 쓰레기를 던지며 행패를 부렸다”고 진술했다. 경찰이 버닝썬 보디가드의 진술에만 의존해 편파수사를 했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경찰은 김씨에게 수차례 사건 경위서를 다시 쓰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조사는 이날 오후 2시30분까지 이어졌다. 김씨는 몸이 아파 경찰 측에 병원에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 측은 “당신은 가해자라서 48시간 동안 못 나간다”며 김씨에게 ‘공무집행방해’라고 적힌 종이를 내보였다. 

모친이 경찰 측에 사정한 끝에 3시경, 겨우 경찰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김씨는 병원서 갈비뼈 골절 전치 4주, 횡문근융해증(근육이 녹아 혈액에 스며드는 증상) 진단을 받았다. 

이후 김씨는 경찰 측에 당시의 상황이 담긴 CCTV 공개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당시의 상황을 확인하지 못했다.

김씨는 변호인을 통해 법원에 증거보존을 신청했고 지난 18일, 서울중앙지법은 경찰에 버닝썬, 역삼지구대, 경찰차의 블랙박스를 제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김씨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경찰과 유흥업소서 일어난 사건·사고가 흐지부지 덮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들었다. 실제로 그들이 용의주도하다고 느꼈다. 잘못된 공권력 행사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는 걸 막고 싶다”고 말했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사건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다”면서도 “당사자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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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한상진 기자 =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28일 실행에 옮겼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란 핵 보유 가능성 차단’ ‘이란 정권교체’ ‘중동지역 미국 영향력 강화’ ‘석유 패권 우위’ 등이다. 아울러 이란 석유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는 중국 견제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란과 8차례에 걸쳐 핵 협상을 진행했다. 이란 측에서 트럼프정부에 큰 사업적 이익을 제안하기도 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봤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란이 핵 능력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이란 수뇌부 제거 없이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공습 이틀 후인 지난 2일(현지시각) 37년간 이란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공습 결정 여러 요인 하메네이는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 및 국방 관련 요직을 거치며 권력기반을 다졌다. 이후 국회의원과 이슬람공화당 지도부를 역임했고, 지난 1981년 대통령에 선출돼 두 차례 연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란 내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대해서도 잇달아 강경하게 진압했다. 지난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반발하는 시위를 비롯해, 지난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시위는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경제난이 누적됐고,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진 것이었다. 이란 당국은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란 내 정치 지형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행동이 끝난 후 이란인들에게 “여러분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직접 나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 있었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다시 붙으면 친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처럼 직접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이란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는 세력이 원유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미·이 전쟁 여파 국내 강타 금융, 산업 등 전방위 요동 이렇게 되면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중동지역 원유 생산에도 관여하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훨씬 넘어서는 시장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지난 3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낙폭(452.22포인트)을 기록했고,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77조원 넘게 줄었다. 주요 코피스 종목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4769조4000억원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376조9396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전 거래일 대비 약 126조6803억원 감소했다. 주가는 이날 9.88% 급락하며 5거래일 만에 20만원 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도 100만원 선이 깨지며, 시총이 86조9497억원(11.50%) 줄었다. 이 밖에 현대차(-11.72%), LG에너지솔루션(-7.96%), 삼성바이오로직스(-5.46%) 등 주요 기업들의 시총 감소분이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방산주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가가 19.83% 오른 143만2000원, 한화시스템은 29.14% 오른 14만67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LIG넥스원은 11.15% 오른 68만8000원을 기록하며 상한가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투자심리가 악화하며 7.24% 급락한 5791.91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다.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고,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지난 3일과 4일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중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금융권 직격타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지난 4일 오전 9시25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189.43포인트(3.27%) 내린 5602.48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199.32포인트(3.44%) 내린 5592.59에 개장했다. 코스닥지수는 35.83포인트(3.15%) 내린 1101.87에 거래 중이다. 지수는 전날보다 25.62포인트(2.25%) 내린 1112.08에 개장했다. 환율 역시 급등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 자산 회피 심리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1500원 돌파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4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20분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1506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500원 밑으로 하락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환율이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산업계도 고환율에 따른 환경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단가 측면에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과 결합할 경우 실질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반도체와 조선 업종은 단기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항공과 철강은 비용 부담이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현재 시장의 공급 제약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상승 일정 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의 경우 수주 산업인 만큼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고환율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 선주사에 인도하는 구조라, 이미 3~4년치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 환율 흐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조선 업계 특성상 달러로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단기적 관점에서 환율 상승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양날의 검이다. 미국 수출 및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달러 강세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자동차 한 대에 수백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원자재 부담이 상존한다. 다른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지만, 역시 환율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종 별로 희비 교차 항공의 경우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 주요 비용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3~4월은 항공업계 전통적 비수기다. 개학과 함께 공휴일이 적어 여객 수요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기 때문이다. 항공기 이용률이 낮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 부담도 확대돼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는 1개월 시차를 두고 항공권 가격에 반영된다. 다음 달에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인상된 유류할증료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 부담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강은 업종 특성상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이를 철강 제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구조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유업계에는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 달러 상승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지만, 수출할 때에도 높아진 달러가 적용돼 비용 부담이 상쇄된다. 특히 이전에 저렴하게 사들인 원유에 대한 재고 평가이익 인식은 재무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원유 재고 평가이익은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재고) 가치가 시세 변동으로 장부상에 이익으로 올라가 실적에 반영되는 현상을 뜻한다. 유가 상승 시 저가로 산 원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기름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L당 56.9원 오른 1845.4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18일(1802.7원)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주가·환율·유가 변동 산업계 직결 모건스탠리 “수출지향 한국 더 민감”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L당 61.6원 상승한 1784.6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 상승 폭은 더 컸다. 서울 지역 경유 평균 판매가는 1811.2원으로 전날보다 103.8원 뛰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도 1741.8원으로 하루 만에 1700원을 돌파했다. 싱가포르 석유 제품 시장가에 연동된 국내 주유소 가격은 통상 2∼3주 차이를 두고 국제 유가 변동이 반영된다. 다만 전쟁 확산 우려 등에 따라 주유 수요가 늘고 환율 변수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식 경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을 틈타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는 주유소들을 제재하기 위해 ‘최고가격 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주유소 담합 조사 등 시간이 필요한 조치에 앞서, 즉각적인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다. 또 주유소 담합 적발 시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기로 하는 등 유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 장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중동 사태에 편승한 시장교란 행위 근절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현재 국내 석유류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며 국제 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국내 가격에 실질적 영향을 줄 시점은 결코 아니다”며 “석유류 최고 가격의 지정 등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행정 조치를 활용해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에서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 가격 지정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수입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쟁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중국보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각)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체탄 아야 등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 경제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유가 변동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진짜 대전 터지면… 이어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해 태국·대만·인도 등이 상대적으로 성장 측면에서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전쟁에 따른 아시아의 전체적 여파는 유가 상승 수준과 고유가 지속 기간에 달려있다”면서 “현재까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jins.h@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