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미꾸라지 승츠비’ 승리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2.25 10:20:06
  • 호수 12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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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조리 잘도 피하네 ‘군대 가면 끝?’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승리가 버닝썬 폭행사건 논란으로 이미지를 제대로 구겼다. 그동안 자신을 버닝썬 대표이사라고 홍보해왔지만 정작 사건이 불거지자 책임 회피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반면 버닝썬 폭행사건은 마약·성폭행 등 논란이 확대됐다. 현재 승리는 경찰 수사 대상에도 올랐다. 

 

▲ ⓒ승리 인스타그램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1월24일로 거슬로 올라간다. 빅뱅의 멤버 승리가 운영하는 클럽으로 알려진 버닝썬서 김상교씨가 클럽 이사와 보안요원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늑골이 부러지는 등 상해를 입었다. 이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추가적인 폭행을 당했다는 김씨의 주장과 전면 부인 중인 경찰, 폭행은 인정하나 김씨의 범죄로부터 시작됐다는 클럽 측의 삼자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끝없는 논란
경찰은 뒷북

그런데 김씨가 버닝썬 이사와 보안요원들에게 폭행당한 영상이 공개되자 여론이 들끓었다. 서울강남경찰서는 김씨의 주장이 잘못됐다며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맞고소했다. 이어 지난달 29일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신고자 김씨와 클럽 이사의 상호 폭행 등 혐의로 피의자로 모두 입건, 강력팀서 엄정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여론은 경찰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경찰이 클럽과 유착해서 김씨를 무리하게 제압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여러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 버닝썬의 대표이사라고 밝혔던 승리는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승리는 사건이 언론을 통해 공론화되기 며칠 전 이사직을 내려놓았다. 일각에선 ‘꼬리 자르기’라는 지적이 나왔다. 


침묵하고 있던 승리는 지난 3일 본인의 SNS를 통해 이번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승리는 “실질적인 클럽의 경영과 운영은 제 역할이 아니었고, 처음부터 관여하지 않았다”며 “이번 사건도 처음부터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하였던 점 깊이 반성하고 머리 숙여 사죄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승리는 사건이 불거졌음에도 콘서트를 강행해 팬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지난 16∼17일까지 서울올림픽공원서 ‘퍼스트 솔로 투어-더 그레이티스트 승리-파이널 인 서울’이란 이름으로 콘서트를 연 것. 

공연 직전까지 버닝썬 폭행사건에 대한 승리의 도의적 책임 논란이 거셌다. 팬들은 콘서트 입장권 예매를 잇달아 취소하기까지 했다. 지난 16일 그 첫 번째 무대인 서울 공연서 승리는 팬들에게 사과했지만 과연 이런 엄청난 사건을 앞에 두고 해외공연까지 강행하는 게 옳은 판단이었는지에 대해 뒷말이 많다. 

버닝썬 대표이사라고 자랑하더니… 
논란 불거지자 책임 회피하기 바빠  

현재 승리의 사건인지 및 책임여부가 가장 큰 쟁점이다. 버닝썬은 승리가 사건 당일에 클럽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인 효연은 개인 SNS에 지난해 11월24일 승리와 함께 찍은 사진을 게재했다. 승리 클럽 버닝썬 폭행사건에 효연 인스타그램에는 “언니 도망쳐”와 같은 댓글이 달렸다.

이어 승리도 열흘 후인 12월4일 같은 날 찍은 사진을 게재했다. 사건 당시 근무하던 직원의 인스타그램에는 사건 당일에 승리가 있었던 건 맞지만, VIP 입구가 아닌 일반 입구에 있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양현석은 입장문을 통해 “승리는 2018년 11월24일 오전 3시까지 클럽에 있었고, 사건 발생은 오전 6시경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KBS는 승리가 지난달 13일경 클럽에 출근할 때 “여기가 언론사가 취재하는 곳이냐” “여기가 그렇게 가드가 사람을 때린다면서요?”라고 말했다는 버닝썬 전직 직원의 증언을 보도했다. 승리가 사건 공론화 전 이미 폭행사건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다만 전직 직원은 승리가 사건이 일어난 날짜에는 클럽에 있었으나 사건이 일어난 시각에는 부재했다고 증언했다. 
 


승리는 그로부터 열흘 뒤인 1월24일 버닝썬의 사내이사직서 물러났고, 클럽의 감사를 맡고 있던 승리의 모친도 자리서 물러났다.

한편 승리는 예능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와 <나 혼자 산다> 등의 예능서 자신이 클럽을 운영한다고 주장했다. 승리는 “사람들이 생각했을 때 연예인분들 사업이면 이름 빌려주고, 얼굴만 그렇게 하는 줄 아는데 저는 직접 다 한다. 안 그러면 신뢰를 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사건의 책임 여부와 별개로, 승리는 클럽의 실소유주가 아니었다는 해명 때문에 거짓말을 해왔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막상 책임져야 할 상황이 오자 말을 바꿔 팬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팬들도 돌아선 
무책임한 대처

이문호 버닝썬 대표이사도 승리가 클럽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 대표는 “승리와 저는 오랜 친구 사이이며 제가 클럽을 준비할 때 컨설팅 의뢰를 제안했다”며 “승리는 본인이 직접 경영하고 운영을 맡았던 다른 사업체들과는 달리 버닝썬에서는 컨설팅과 해외 DJ 컨택을 도와줬을 뿐, 버닝썬의 실질적인 운영과 경영에는 개입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버닝썬 사건은 현재 마약·성폭행 등으로 논란이 확대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버닝썬 논란과 관련해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 18일 버닝썬 직원이 마약류 투약 혐의로 처음 구속됐다. 경찰은 지난 주말 버닝썬서 마약 유통을 책임졌다는 의심를 받고 있는 중국인 여성 A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일명 ‘애나’라고 불리는 이 여성은 VIP 고객을 상대로 마약을 판매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또 승리가 애나와 함께 찍은 사진이 지난 12일 SNS에 게시되어 삽시간에 퍼졌다. 중국인 애나는 불법체류자이며 지난해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승리는 지난 13일 다른 매체를 통해 “클럽에 있다가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시기에 찍어드린 것”이라며 “사진을 찍은 시점이 정확하게 언제인지, 저 분이 어떤 분인지 잘 기억이 나질 않을 정도”라고 밝혔다.

승리도 수사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클럽 운영진이 마약 유통 및 성범죄 의혹 등을 인지하고도 방치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중이다. 이 때문에 과거 이사직에 있던 승리도 수사 대상에 포함됐고 경찰은 승리의 소환 조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어디까지 책임?
포토라인 설까?

승리는 그룹 빅뱅서 서브보컬과 리드댄서를 맡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6개월여간 연습생 기간을 거친 후, 빅뱅 멤버로 데뷔했다. 일본서 활동 시 불리는 예명은 V.I.로 ‘Victory’서 따온 줄임말이다. 그는 2011년 첫 솔로 음반 ‘V.V.I.P’를 발매했다. 

승리는 1990년 12월12일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수의 꿈을 키웠던 그는 정암초등학교를 거쳐 천곡중학교 시절 댄스 그룹의 ‘일화’의 멤버로서 활동했다. 2005년 그는 제2의 신화를 발굴하는 리얼리티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Mnet <레츠 코크플레이 배틀신화>에 지원했다.
 


그는 자신의 춤 실력에 자신감이 있었지만, 신화 멤버가 직접 6명의 멤버를 뽑아 남성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시키는 프로젝트서 실력 부족을 이유로 최종 탈락했다. 

이후 승리는 오디션을 통해 YG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으로 발탁됐다. 2006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된 서바이벌 프로그램 <리얼다큐 빅뱅(BIGBANG)>에 출연했다. 하지만 9회에서 장현승(현재의 트러블 메이커 멤버)과 함께 최종 멤버로는 탈락했다. 

탈락 위기 속에서 주어진 마지막 오디션에서 승리는 기회를 잡았다. 빅뱅 멤버로서의 필요성 5가지 이유를 밝히며 타샤니의 곡 '하루하루'를 불러 그동안 못 보여준 자신의 노래 실력을 뽐냈다.

양현석 대표의 마음을 움직인 승리는 극적으로 지드래곤, 태양, T.O.P, 대성과 함께 YG엔터테인먼트서 제작하는 최초의 아이돌 힙합 그룹 빅뱅 멤버로 정식 합류하게 됐다. 승리는 빅뱅의 멤버 태양과 함께 그룹 내에서 가장 뛰어난 춤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사건 일파만파 확대…마약·성폭행까지 수사  
경찰 뇌물 오간 내용 확인…승리 수사대상에

007년 9월 재학 중이던 숭의고등학교를 자퇴했으며 2009년 7월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해 10월에는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수시모집에 특기자 전형 연기 경력자 부문으로 입학했지만, 바쁜 연예활동으로 자퇴했다. 


빅뱅은 2006년 8월19일 첫 싱글 'Bigbang'을 발표했고, 같은 날 YG패밀리 10주년 콘서트서 첫 무대에 섰다. 2006년 9월23일 음악 프로그램 <쇼! 음악중심>에서 공식 데뷔를 했다. 승리는 그해 12월에 발매된 빅뱅의 첫 번째 정규 음반 BIGBANG Vol.1에 수록된 '다음 날'에서 첫 솔로곡을 불렀다. 

빅뱅은 2007년 첫 번째 EP 'Always'의 발매와 동시에 타이틀 곡 ‘거짓말’로 엄청난 메가히트를 기록했다. 이후 두 번째 EP 'Hot Issue'의 ‘마지막 인사’와 세 번째 EP 'Stand Up'의 ‘하루하루’가 연이어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최정상의 대세 그룹으로 우뚝 섰다.

2011년 1월20일 승리는 첫 솔로 EP 음반 'V.V.I.P'를 발매했다. 이 음반은 ‘VVIP’와 ‘어쩌라고’의 더블 타이틀곡으로 구성됐다. 승리는 총 7곡의 수록곡 중에서 6곡의 작사, 작곡에 참여했다. 그는 이 음반으로 <엠카운트다운>서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 

승리는 2012년 7월쯤부터 일본 버라이어티 방송에 출연하기 시작하며 솔로로서의 첫 활동을 시작했다. 각종 일본 방송국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후지TV <사키가게 온카쿠 반즈케>의 스페셜 MC도 맡았다. 

솔로 활동으로 
전성기였는데… 

승리는 2013년 초 그룹의 멤버 대성과 일본 활동에 주력하고자 도쿄 숙소서 거주했다. 2013년 7월28일 YG엔터테인먼트는 승리의 두 번째 EP 음반 ‘Let's Talk About Love’를 그해 8월19일에 발매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9월 말까지 한국서 자신의 앨범을 홍보했으며 승리는 2013년 10월9일에 그의 첫 번째 일본어 음반 Let's Talk About Love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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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