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위안부 재판 거래 의혹, 씁쓸한 대목이다. 양승태 사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송까지 개입하려한 정황이 드러났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 회복은 그들에겐 그저 먼 세상의 이야기였던 걸까. 말복의 무더위와 함께 국민적 공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광복 73주년을 바라보는 이때에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살펴봤다.
<일요시사>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문의한 결과 현재 제기된 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송은 총 세 건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1건이 진행 중이고, 나머지 2건은 모두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한다. 현재 양승태 사법부의 위안부 재판 거래 의혹으로 불거진 소송은 지난 2016년 1월28일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제기한 소송이다.
사법부 농락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015년 12월28일 성사된 한일 위안부 합의 이틀 뒤, 2013년 제기된 위안부 피해자들의 조정 신청에 대해 불성립 결정을 내렸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민사조정이 신청된 이후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던 때와 다른 모습이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과의 관계를 민사상 조정해달라”며 이를 신청한 바 있다.
민사조정 불성립 결정에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단 한 차례도 심리가 열리지 않았다. 현재 3년 가까이 법원에서 계류 중이며 이 과정서 6분이 별세했다.
최근 검찰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의 이동식저장장치(USB)서 ‘위안부 손배판결 보고’라는 문건을 입수했다. 문건은 지난 12·28한일 위안부 합의 직후인 2016년 1월 초 작성됐다. 법원행정처가 고 배춘희 할머니 등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내겠다고 예고한 소송을 분석한 내용이었다.
문건 내용은 ‘소송을 각하하거나 기각하는 게 적절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12·28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송 움직임이 일어나자 미리 결론을 지은 것이다. 그 근거로 소멸시효나 대일협정상 청구권 소멸 등을 들었다. 실제 소송은 그해 1월28일에 제기됐는데, 이미 소송 한 달 전부터 대비에 들어간 셈이다.
한국 정부 상대로 1건
일본 정부 상대로 2건
이어 2016년 8월30일 두 번째 소송이 접수됐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이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12·28한일 위안부 합의가 2011년 헌법재판소 결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피해자들은 정신적·물질적 손해를 이유로 생존자 한 명당 각 1억원의 위자료를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일 위안부 합의와 헌법재판소 결정의 차이를 제기한 것은 지난 2011년 8월 헌법재판소의 판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위안부 피해자 109명이 제기한 헌법소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배상 청구권에 대해 한국 정부가 노력을 다하지 않는 건 위헌”이라며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12·28한일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들과의 적극적인 소통보다 정부의 일방적 합의였다는 비판이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까닭이다.
2018년 6월15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해당 소송서 패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위안부 합의에 대한 법적 책임 인정이나 일본이 위안부 관련 재단에 출연하기로 합의한 10억엔의 성격이 불분명한 점 등 부족하고 불충분한 점이 많은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외교적 행위는 국가 간의 관계서 폭넓은 재량권이 허용되는 영역”이라며 “이를 고려하면 국가가 원고 측의 주장처럼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헌법재판소의 ‘공무원은 일정한 범위서만 행사 가능한 재량권을 갖는다’는 결정과 배치된다”고 반박했다. 공무원의 재량권은 사안에 따라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위안부 피해자 측은 항소한 상태다. 이미 소송 중에 3분이 별세한 상태다.
한 차례도 심리 열리지 않고
3년 가까이 계류 중인 소송도
마지막 소송은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한다. 위안부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지난 2016년 12월 일본정부를 상대로 30억3000여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원고와 피고가 각각 한국과 일본인 점을 미뤄 위안부 피해자 측은 지난해 4월 법원행정처를 통해 일본 외무성에 소장을 송달했다.
그러나 일본 외무성은 헤이그송달협약 13조에 따라 “자국의 안보 또는 주권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해 이행할 수 없다”며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헤이그송달협약이란 협약 체결국 간 민사 혹은 상사 재판을 진행할 시 관련 서류의 해외송달에 관한 협약이다.
일본이 소장을 거부한 건 지난해 8월 열린 첫 재판서 드러났다. 이날 서울중앙지법은 “송달반송은 예상하지 못했다. 다른 외교경로를 통한 송달 방법이 있는지 알아봐야 할 것 같다”며 외교적 노력을 주문했다.
피해자 측은 같은 해 11월 해결방법을 묻는 내용의 사실조회서를 외교부에 제출했다. 이에 외교부는 두 달이 지나서야 “일본 외무성으로부터 고지 받은 사실이 없다”며 “나머지 사항에 대해선 소관부처인 법원행정처에 문의하길 바란다”고 답했다.
법원행정처가 일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던 정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소송 중에 3분이 세상을 떠났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문제를 삼는 부분은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할 사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이 아닌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왔다는 것”이라며 “지금까지의 정황들을 봤을 때 단순히 고 배춘희 할머니 소송뿐 아니라 그 이후에 있는 재판까지 사법부가 영향을 끼쳤으리란 합리적 의심을 거둘 수 없다”고 밝혔다.
이젠 27명
이 관계자는 “공무원의 재량권 해석부터 개인 청구권까지 정부의 해석이 너무나 다르다”며 “법원이란 곳은 이럴 수 없는 곳”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할머니들은 누구도 이 문제를 제기해주지 않았을 때 홀로 문제를 제기해 지금까지 싸워왔다. 그것을 어떻게 정치적 이익을 위한 도구 쓸 수 있었단 말인가”라며 토로했다.
한편 한국에 남은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지난 7월1일 김복득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27명으로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