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선라이즈F&T’ 미심쩍은 6년 행적

죽지 않는 관피아…제식구 봐주기?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해외 자본 및 기술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자 지정된 경제자유구역은 각종 인프라, 세제 및 행정적 인센티브 등을 제공하는 일종의 경제특구 개념이다. 당연히 외국인 투자기업을 대상으로 세제 감면부터 규제 완화까지 파격적인 혜택이 뒤따른다. 하지만 평택항을 거점으로 삼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서는 다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2010년 설립된 '(주)선라이즈에프앤티(이하 선라이즈)'는 고관세 농산물을 수입해 가공하는 회사다. 선라이즈는 여타 농산물 가공업체와 차별화된 입지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바로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업체라는 점이다. 경제자유구역에 터전을 잡았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선라이즈는 이득을 얻고 있다. 수입한 농산물 원재료를 인근 가공설비로 곧바로 보낼 수 있게 돼 유통비 절감 효과를 불러왔고 줄어든 유통비는 가격 경쟁력 상승으로 이어졌다.

경쟁사 밟고
나홀로 쑥쑥

선라이즈 홀로 누리는 입지 혜택에 볼멘소리가 곳곳서 나왔지만 지금껏 선라이즈는 황해자유경제구역에 들어선 유일한 농산물 가공업체로 등록돼있다. 2012년 이후 경제자유구역에 농산물 가공 제조 업종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세관장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법 개정이 이뤄진 탓이다. 정부 차원서 더 이상 농산물 가공업체를 자유경제구역에 들이지 않겠다고 공표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자 몇몇 업계 종사자는 선라이즈가 특혜를 누린다고 주장한다. 자유경제구역에는 애초부터 농산물 가공설비가 들어설 수 없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제법 보인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들은 무슨 이유로 항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가공공장을 짓고 유통비를 추가로 투입하면서 공장을 운영하겠냐는 것이다.

실제로 선라이즈가 지금의 자리에 농산물 가공설비를 갖추자 수많은 경쟁업체들이 경기도 해양항만정책과에 불만을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자유구역 안에 가공설비 인허가를 내달라고 요구하자 법 개정을 거치며 더 이상의 업체 진입을 막았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반면 경기도 측은 원래 이 구역에 농산물 가공업체가 들어서는 건 허가되는 일이었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 즉, 허용된 곳에 선라이즈만이 설비를 들였고 이후 개정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경기도 해양항만정책과 관계자는 “법 개정 전에는 가공업체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시 해당 업무를 하던 직원이 없기 때문에 서류상 차원에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점점 커지는
밀수 논란

입지를 둘러싼 구설은 시작에 불과하다. 한술 더 떠 몇몇 사람들은 선라이즈가 조직적인 밀수를 벌인다는 충격적인 주장마저 내놓고 있다.

관세청은 국내 농업인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 농산물에 대해서는 고관세 정책을 취하고 있다. 다만 가공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수입해오는 농산물은 고관세 정책서 한발 비껴간다. 콩나물콩을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의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콩을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의 관세만 반영된다. 

지난 2010년부터 올해 11월말까지 선라이즈가 국내에 수입한 농산물은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이다. 이들 모두 세율이 높은 고관세 품목이다. 건조녹두의 관세율은 607.5%에 달한다. 물론 가공 목적이라면 관세는 현격이 낮아진다. 

조직적인 밀수 가능성 제기
눈에 안보이는 무언가 있나

문제는 밀수 가능성이다. 가공용 수입 농산물을 시중에 유통하면서 당국의 적발을 비껴갈 수 있다면 엄청난 폭리가 가능해진다. 한 수입 농산물 유통업자는 “이미 평택항에선 선라이즈가 밀수를 저지른다고 보는 시각이 다수”라며 “당장 공장만 가도 알 수 있다. 현재 갖춘 설비만으로는 대단위 수입물량을 온전히 소화해낼 여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고추가루(관세 270%)를 24톤 컨테이너에 가득 실어서 밀수한다고 가정하면 1톤당 1000만원 가량의 차액이 생긴다. 선라이즈가 2010년부터 현재까지 수입한 고추가루는 약 1만4609톤. 만약 수입한 고추가루를 선라이즈가 온전히 밀수에 이용했다면 무려 1460억원의 차액이 발생한다.

고추가루는 그나마 관세가 낮은 축에 속한다. 관세가 높은 품목일수록 밀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대차익이 클 수밖에 없다.

선라이즈 측은 이 같은 세간의 인식에 대해 터무니 없다는 입장이다. 애초에 적법한 통관을 거쳐 수입 농산물을 가져왔고 이를 통해 가공해왔는데 음해세력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펼친다는 주장이다. 엄청난 금액을 착복했다면 공장이 가동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외부의 시각과 달리 설비를 운영하는 것 조차 빠듯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선라이즈 관계자는 “행여 밀수를 했다면 엄청난 이득을 취해야 하는데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달리 우리 회사는 경기 불황의 여파를 체감하는 수준에 불과하다”며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고 말하는 외부인들의 논조에는 지극히 불온한 발상이 담겨 있다”고 성토했다.

곳곳에 퍼진
불법 흔적들

그러나 지난해 생강구근(종자) 유통 과정을 돌이켜 보면 선라이즈의 해명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엿보인다. 국내서 유통되는 생강 종자는 대부분이 중국산이다. 국내산보다 발아율이 뛰어나고 품질 면에서 우수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생강 종자철인 매년 3∼4월에는 중국산 생강이 200컨테이너(4800톤) 이상 수입된다.

선라이즈 역시 생강을 대단위로 수입하던 업체다. 특히 지난해에는 3월25일부터 4월14일까지 24차례에 걸쳐 생강구근를 국내에 다량 들여왔다. 공교롭게도 선라이즈는 이 시기에 수입한 상당수 생강 물량을 충남·경북에 위치한 다수의 지역 농협에 종자용으로 판매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농산물 가공업체가 수입 농산물을 직접 유통하는 것은 법으로 엄격히 금기시되는 행위다.

다만 충남·경북의 지역 농협과 직접 거래한 곳이 선라이즈의 자회사인 천하무역이라는 점에서 해석의 여지가 존재한다. 그러나 자회사의 이름으로 거래가 이뤄졌더라도 선라이즈가 수입한 농산물의 상당량을 천하무역이 유통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쉽사리 떨치긴 힘들다.

이 경우 제조가공을 목적으로 수입한 생강이 원재료로 유통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77.3%의 관세가 아닌 가공용 8% 관세가 매겨진 생강이라면 이는 보통 사안이 아니다. 

이 같은 내용에 대해 천하무역 측은 강력히 부인했다. 천하무역 대표는 “정식 허가를 받고 종자용으로 들여온 상품”이라며 “천하무역은 선라이즈의 자회사지만 그렇다고 밀수로 무작정 규정짓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선라이즈가 유독 구설에 휘말리는 이유는 뭘까. 농산물 수입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관공서와 선라이즈의 연계 가능성 때문이다. 선라이즈의 태생 과정을 되짚어봐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관 공무원 출신 모여 퇴직후 새살림
심증 가득한 특혜 의혹과 수많은 구설

선라이즈는 세관에 몸담았던 공무원들이 퇴직 후 주축이 돼 만들어진 회사다. 대표인 유모씨를 비롯해 핵심 창립멤버로 꼽히는 8명 가운데 5명이 세관 공무원 출신이다. 얼마 전 회사에 합류했던 조모씨 역시 평택세관서 실세로 손꼽히던 인물이다.

평택세관, 식물검역소 등 통관 관련 업무처들이 선라이즈 품목을 검사할 때 유독 통과 빈도가 높다는 공공연한 소문도 떠돈다. 고관세 품목 수입 시 세관, 식물검역소의 감시 아래 유통경로와 원자재 사용내역을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데 선라이즈는 여기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지적이다.

한 농산물 수입업자는 “선라이즈는 관련 관공서의 도움 없이 커왔다고 말하겠지만 업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며 “그게 아니라면 굳이 다들 퇴직 후 같은 곳에 모여 사업을 차렸겠나”고 반문했다.

물론 선라이즈와 관련 관공서의 연결고리가 표면상으로 명확히 드러난 건 없다. 세관 전체의 문제로 확대해석하기에도 무리가 따른다. 평택세관 역시 선라이즈와 관련된 소문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평택세관 관계자는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드러난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평택세관서 불거진 공무원의 금품수수 사건은 선라이즈와 몇몇 공무원들의 유착 가능성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지난 13일 평택직할세관 직원이 보세창고 업자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던 정황이 포착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평택직할세관 직원 박모씨(6급)는 2013부터 2014년까지 보세창고 업자로부터 수십만원씩 수십차례에 걸쳐 10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았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경찰은 최근 관련 보세창고와 관세사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평택세관은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박씨를 직위 해제했다.

소문으로 떠도는
유착관계

놀랍게도 박씨는 지난 18일 “경찰 조사를 받게 돼 힘들고 가족들한테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후 자신의 아파트 다용도실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박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사건 경위를 조사 중이다. 더구나 박씨는 그동안 선라이즈와의 유착설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인물이다. 

한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선라이즈를 상대로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세관본부와 중앙지검 외사부 역시 선라이즈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