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농심 계열사 농산물 밀반출 스캔들

6년을 끌어온 티끌 찾기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장지선·구동환 기자 = 피고인의 유죄를 자신했던 검찰이 ‘유니패스’로 인해 곤란한 지경에 처했다. 유니패스에 남겨진 통관 기록이 검찰의 기존 입장과 상충되는 형태를 보여준 덕분이다. 이참에 사건의 도화선 역할을 했던 태경농산마저 소환되는 양상이다.

2019년 6월 검찰은 이성열씨와 그의 동생에 대한 불구속구공판을 결정했다. 검찰은 두 사람을 슈퍼마린종합물류(창고보관업, 이하 슈퍼마린), 슈퍼코리아종합물류(무역업)의 실질적 운영 주체로 인식하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 혐의를 적용했다. 현재 검찰과 피고인 측은 수원지검 평택지원에서 치열한 법정 다툼을 진행 중인 상황이다.

치열한
공방전

검찰은 피고인이 중국에서 2013년 12월4일부터 12월30일 사이에 순차적으로 수입한 태경농산 소유의 냉동홍고추 1848톤을 본인 소유의 슈퍼마린 보세창고에 업무상 보관하던 중 일부를 특정 시기에 임의 처분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특히 이성열의 주도 하에 해당 품목에 대한 계획적인 밀반출이 행해졌다는 뜻을 분명히 한 상태다. 검찰 측 주장에 따르면 피고인이 2013년 12월8일부터 2015년 1월29일 사이에 임의 처분한 냉동홍고추는 1064톤에 달한다. 약 10억원에 해당하는 가치다.

검찰 측 주장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사안은, 피고인이 냉동홍고추 1064톤 가운데 57.58톤을 특정 일자에 임의 처분 했는가에 관한 것이다. 


공소 내용을 보면, 검찰은 피고인들이 2015년 1월29일 공모관계에 따라 창고에 보관 중이던 냉동홍고추 57.58톤을 지게차를 이용해 트럭에 옮겨싣고, 매입업자들에게 운송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처분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정 일자를 지목한 것에서 검찰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검찰 측 주장을 백지화시킬만한 증거가 뚜렷하게 부각되면서 재판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검찰이 특정한 2015년 1월29일라는 피고인의 냉동홍고추 임의 처분 시기가 오히려 검찰의 발목을 잡는 배경으로 작용한 모습이다.

앞서 검찰은 2015년 1월29일 피고인 측이 태경농산 소유의 냉동홍고추 수입 물량 가운데 ▲SNKo024131102857(중량 10만8600kg) ▲SiTRAPT218666(중량 12만kg) ▲SiTRAPT218667(중량 12만kg) ▲SNKo024131202039(중량 11만6100kg) ▲NoLDY349E819(중량 24만kg) ▲NoLDY350E814(중량 16만kg) ▲SNKo024131203027(중량 10만3600kg) ▲NoLDY350E815(중량 16만kg) 등 '화물상환증번호(B/L NO)'가 붙은 8개 화물에서 임의로 57.58톤을 빼돌렸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개별 화물 당 임의 처분 중량은 ▲SNKo024131102857 1만8460kg ▲SiTRAPT218666 1만9200kg ▲SiTRAPT218667 1만6800kg ▲SNKo024131202039 480kg ▲NoLDY349E819 600kg ▲NoLDY350E814 720kg ▲SNKo024131203027 620kg ▲NoLDY350E815 700kg 등이다. 피고인이 불법 행위가 확연히 드러나는 걸 방지하고자 각각의 B/L NO를 지닌 화물에서 일정량을 덜어내는 번거로움을 감수했다고 판단한 검찰의 시각이 드러난다. 

손발 안 맞는 
불협화음

흥미로운 점은 ‘유니패스’라고 불리는 ‘한국형 전자통관시스템’ 상에서 검찰 측 주장과 대치되는 흔적이 눈에 띈다는 사실이다. 피고인 측이 빼돌렸다는 냉동홍고추가 2015년 1월29일 이후에도 창고에 잔존했음을 유니패스가 확인시켜 준 것이다.

한 예로 앞서 언급한 8개 화물 가운데 SNKo024131102857라는 B/L NO가 부여된 화물의 경우 유니패스에서 총 중량 10만9143kg 중 9만590.7kg에 관해 2015년 7월13일자로 반출이 기록돼있다. 그리고 해당 B/L NO에서 나머지 총중량 1만8552.3kg에 대해서는 동일 날짜에 미반출로 정리됐고, ‘폐기촉탁’이 기재돼있다.


이를 기존 검찰 측 주장에 대입해 보면, 피고인이 해당 B/L NO에서 임의 처분했다는 태경농산 소유의 냉동고추 1만8460㎏는 정황상 미반출로 정리된 냉동홍고추에 포함돼있었다고 해석해도 무리는 아니다. 즉, 피고인들이 임의 처분했다는 냉동홍고추는 2015년 1월29일 이후에도 창고에 존재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은 B/L NO가 붙은 나머지 7개 화물에서도 동일하게 목격됐다. 이들 모두 2015년 7월13일자로 미반출로 정리됐고, 폐기촉탁 결정이 내려졌음을 유니패스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검찰 측 주장과 상반된 유니패스 상에서의 냉동홍고추 57.58톤에 대한 기록은, 곧 검찰과 유니패스 가운데 한 곳의 사실관계가 잘못됐을 가능성을 내포한다. 일단 유니패스에 기재된 내용의 오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희박하다.

유니패스는 개인과 기업이 물품을 수입 혹은 수출할 때 거치는 신고, 검사, 세금 납부 등의 통관절차를 온라인으로 처리 및 확인 가능한 시스템이다. UN 세계전자정부평가 6년 연속 1위를 차지하면서 시스템의 우수성을 재확인 시킨 바 있다. 관세청 역시 유니패스의 신뢰도에 대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는다.

관세청 대변인은 “유니패스에 등록된 정보와 실제 화물 정보가 다른 경우는 없다. 유니패스의 신뢰도는 100%”라며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입력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순 있지만, 관세를 매기는 과정에서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2년 걸린 태경농산 고추 통관
유니패스 신뢰도에 작아진 검 왜?

유니패스에서 목격된 '반입신고' 중량과 '수입신고' 중량 사이에서의 알 수 없는 간극은, 검찰 측 주장을 부정적으로 보게 하는 또 다른 증거나 마찬가지다. 검찰의 공소 내용을 흔들만한 흔적이라는 점에서 사안의 중대성은 한층 커진다.

앞서 언급한 SNKo024131102857 화물의 경우 유니패스 상에서 2013년 12월4일 반입신고가 이뤄졌고, 엿새 뒤에는 수입신고가 뒤따랐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특징은 중량 감소가 발견됐다는 점이다. 반입신고 당시 10만9143kg였던 중량은 수입신고를 거치며 9만590.7kg로 줄었다.

통상 '반입신고' 물량과 '수입신고' 물량의 변동이 없다는 점에서 해당 사례는 지극히 이례적이다. 반입신고일과 수입신고일 사이에 창고에 쌓여 있던 물량 일부를 빼돌린다는 건 위험요소가 클 수밖에 없다. 해당 행위가 곧바로 감시망에 걸릴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좀처럼 보기 힘든 이 같은 광경은 앞서 언급한 특정 B/L NO 화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SiTRAPT218666(반입 12만kg, 수입 10만800kg, 누락 1만9200kg) ▲SiTRAPT218667(반입 12만kg, 수입 10만3200kg, 누락 1만6800kg) ▲SNKo024131202039 (반입 11만6100kg, 수입 11만5620kg, 누락 480kg) ▲NoLDY349E819(반입 24만kg, 수입 23만9400kg, 누락 600kg) ▲NoLDY350E814(반입16만kg, 수입, 15만9280kg, 누락 720kg) ▲SNKo024131203027(반입 10만3600kg, 수입10만2980kg, 누락 620kg) ▲NoLDY350E815(반입16만kg, 수입15만9300kg, 누락 700kgk) 등 나머지 7개 B/L NO 화물에서도 연속적으로 비슷한 광경이 목격됐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8개 B/L NO 화물의 누락중량의 합산이 57.58톤이라는 데 있다. 앞서 검찰 측에서 피고인들이 2015년 1월29일 임의 처분했다고 주장한 중량과 반입 및 수입 과정에서 누락된 중량이 일치하는 셈이다.

이 같은 정황을 고려하면 이번 사안은 기막힌 우연이기에 앞서, 수입신고 단계에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8개의 화물에서 중량을 따로 떼어냈다고 보는 게 그나마 현실적이다. 또한 2015년1월29일 이전에 슈퍼마린 창고에서 일부 수량이 잠적했거나 잠적처리됐다는 점에서 피고인의 임의 처분 의혹을 해소시키는 증거로 작용한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기막힌 우연
예고된 오류

다만 오랜 기간 피고인을 주목해 온 검찰의 지난 행적을 감안하면 소송 결과는 물론이고, 검찰의 향후 대처 역시 섣불리 예단하긴 힘든 상황이다. 태경농산의 형사 고소에서 촉발된 해당 사건은 최초 수원지검 평택지청이 맡았다가 2015년 8월7일 수원지검으로 이송됐고, 이듬해 1월 수원지검 여주지청, 같은 해 5월 수원지검 평택지청으로 이송됐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두 달 뒤 다시 여주지청, 같은해 12월 수원지검 안산지청, 2017년 3월 평택지청으로 이송됐다가 2017년 6월이 돼서야 기소중지가 결정됐다. 그러나 2018년 9월에 기존 평택지청에서 제주지검으로 이송이 결정됐고, 2019년 6월이 돼서야 사건번호가 생성되기에 이른다. 재판이 열리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족히 흐른 것이다.

이렇게 되자 최근 들어 해당 사건 관련자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형사소송의 시작점 역할을 담당했던 태경농산으로 향하고 있다. 농심의 자회사인 태경농산은 2015년 피고인을 형사 고소했고, 검찰의 피고인에 대한 조사가 시작했다.

다만 태경농산은 2013년 12월 경 수입된 자사 냉동홍고추 1848톤이 약 2년 가까이 지나서야 통관이 완료되는 동안 사태 수습에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통상 수입에서부터 통관까지는 길어야 2주가량이 소요된다. 더욱이 통관이 지체되는 과정에서 태경농산이 신용장대금결제, 수입신고필증, 물류비 집행 내역, 창고비 결제 내역 등을 제대로 처리했느냐에 대한 의문도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태경농산 측은 민사소송을 통해 모든 부분이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태경농산 관계자는 “2017년 민사소송을 통해 승소판결을 받았고 충분히 소명했다”며 “아직 형사건이 진행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말하기 곤란한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평소 피고인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몇몇 관련업종 종사자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부산에서 무역업에 종사했던 피고인은 2010년 4월 평택항 인근에 슈퍼마린을 설립했고, 2012년 1월 보세창고업 특허를 취득하며 평택항에서 빠르게 입지를 키웠다. 

다만 슈퍼마린과 비슷한 시기에 평택항 인근 황해경제자유구역에 들어선 선라이즈에프앤티(농산물 수입 및 원자재 가공)와는 갈등의 연속이었다. 출범 초기부터 각종 규제 면제, 특혜 의혹은 물론이고, 고관세 품목 밀반출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선라이즈에프앤티와 대립각을 세웠던 사람이 피고인이었다.

이유 있는
죽이기?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수많은 구설에 휘말린 근본적인 이유는 이 회사가 평택세관 공무원들이 주축이 돼 설립됐다는 점 때문이었다. 더욱이 정치권과의 연루설이 끊임없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최근 ‘윤석열 X-파일’을 통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친인척과의 연결고리에 대한 의혹이 쏟아진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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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