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수 기자 =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엘시티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영복 청안건설 회장이 수사 도중 사라져 행방이 묘연하다. 벌써 두 달째다. 그를 놓친 검찰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 홀연히 사라진 이 회장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공사 전부터 각종 의혹이 달렸던 ‘엘시티(LCT)’가 수사선상에 오른 건 지난 7월21일.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3부는 서울과 부산에 있는 시행사(청안건설) 등을 압수수색했다. 컴퓨터와 분양 관련 서류 등을 확보한 검찰은 청안건설이 엘시티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서 금융사(부산은행)를 속여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자금으로 320억원을 대출받고, 회삿돈 200억원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확보했다.
생사불명 도망자
검찰은 비자금 사용처를 겨냥하고 있다. 정·관계에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특히 사업 인허가권을 가진 부산 고위 공무원과의 밀착을 의심하고 있다. 사업 진행 과정서 불거진 부실평가, 헐값 매각, 규제 해제, 용도변경 등 각종 특혜성 행정도 수사 대상이다.
그도 그럴 게 비자금을 조성한 청안건설의 실질적인 오너 이영복 회장은 엘시티 사업의 핵심 인물로, 정·관·법조계 등에 상당한 인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지역에선 고위 공무원, 정관계 인사, 검찰까지도 이 회장의 로비를 안 받은 사람이 없다는 소문이 파다할 정도다.
수사는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검찰은 지난 8월10일부터 공사 관계자들을 줄줄이 구속했다. 청안건설 고위 임원들도 쇠고랑을 찼다. 남은 건 이 회장뿐. 그런데 이 회장이 잠적하면서 수사는 사실상 올스톱됐다. 검찰은 뒤늦게(8월16일) 이 회장을 지명수배했지만,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검찰은 부랴부랴 이 회장의 행방을 좇고 있다. 처음 이 회장의의 도피 사실이 알려졌을 때만 해도 검거를 자신했다. 검찰 관계자는 “검거반이 소재를 파악하고 위치를 추적 중이라 곧 검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호언장담했던 검찰의 검거 소식은 아직까지 들리지 않고 있다. 벌써 두 달째다.
그렇다면 홀연히 사라진 이 회장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검찰 안팎에선 이 회장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자 온갖 ‘설’이 난무하고 있다. 여러 의혹과 관측이 나돌고 있는 것.
먼저 ‘해외출국설’이 제기된다. 이 회장이 사라진 게 확인된 것은 지명수배 직전이다. 그보다 훨씬 전에 도망갔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 회장이 본격적인 검찰의 추적 직전 해외로 출국했다는 시나리오가 그래서 나온다. 이 회장은 충분히 그럴 만한 거물급 인사다. 돈도 많다. 그의 개인 재산만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맥락에서 ‘밀항설’도 배제할 수 없다. 수배 이후 배로 몰래 외국으로 도망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밀항은 피의자들이 법망을 피해 달아나는 대표적인 수법. 일본이나 중국, 홍콩,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단골’밀항지로 꼽힌다. 2008년 중국으로 밀항한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이 그 사례다.
수사망을 유유히 빠져나간 기업인들도 한둘이 아니다. 만약 밀항했다면 그의 도피행각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해외 인사들과도 친분이 있어 해외로 나갔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해외출국설과 밀항설의 연장선상서 ‘비호설’도 힘을 받고 있다. 누구의 도움 없이는 도피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다. 이 회장은 건설업계서 ‘큰손’으로 알려져 있다. 평소 거물급 인사와도 친분을 자랑했다는 후문이다.
잠적이 길어지면서 ‘신변이상설’까지 부상하고 있다. 검찰이 잡을 수 없는 사고가 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다. 바로 특정 세력에 의한 ‘납치감금설’과 ‘살해설’이다. 나아가 검찰 추적은 물론 특정 세력의 압박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자살설’까지 대두된 상황이다.
사실 이 회장의 도피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가 처음 알려진 건 1998년 ‘부산판 수서비리’사건이라 불리는 다대-만덕지구 택지개발 사업 때다. 당시 동방주택건설 사장이었던 이 회장은 이 사업을 주도했는데, 이 과정서도 지금과 같은 비자금 조성과 헐값매입, 인허가 특혜 등의 의혹이 일었다.
물론 정·관계 로비 의혹도 있었다. 부산시 고위 공무원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고, 정치인의 차명계좌에서 뭉칫돈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사건 역시 대형 게이트로 비화될 조짐을 보였지만, 이 회장이 돌연 잠적해 2년간이나 도망을 다니면서 흐지부지됐다. 이 회장은 2001년 12월 자수했으나 끝내 ‘윗선’을 불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통된 논란도 있다. 바로 ‘안 잡냐 못 잡냐’는 것이다.
국감장에서도 검찰의 늑장 수사와 수사 의지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정의당 노회찬 의원은 “부산시가 공원용지를 매입해 건설사에 공여하고 군부지는 헐값에 파는 등 엘시티는 건설 비리의 종합 백과사전”이라며 “지난 7월 검찰이 이영복 엘시티 회장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받았는데 사전에 정보가 누출됐다는 의혹도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은 “시중에 엘시티 회장이 판검사 접대 장부를 가지고 있어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 것 아니냐는 말이 있다”며 “대검 감찰본부서 부산지검에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도 했는데 접대 장부의 실체가 있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뒤에 누구 있나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은 이 회장의 사건 무마 로비 의혹도 제기했다. 박 의원은 “입을 열지 않은 다대·만덕 특혜사건 때와 달리 이번에는 이 회장이 관련자를 다 불겠다고 엄포를 놓아 검찰이 긴장해서 이 회장을 안 잡는다는 말도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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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기사> 엘시티는?
엘시티는 부산 해운대에 들어서는 국내 최고층 주거 복합단지다. 총사업비가 2조7000억원 넘게 들어가는 엘시티는 해운대해수욕장을 낀 6만5934㎡ 부지에 101층 랜드마크타워 1개동(높이 411.6m)과 85층 주거타워 2개동(331.1m, 339.1m)으로 건설된다. 주거타운은 882가구. 전용면적 144∼244㎡로 평균 분양가가 3.3㎡당 2700만원이다. 펜트하우스 2채는 3.3㎡당 7200만원이다. 지난해 분양에서 평균 17.8 대 1, 최고경쟁률 68.5 대 1을 기록했다. 지난해 10월 착공해 2019년 11월 말 완공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