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현기환-이영복-법무법인 ‘정인’ 삼각 커넥션 전말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1.02 10:55:49
  • 호수 10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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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얽히고설킨 ‘상부상조’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이영복-현기환-법무법인 정인’이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정황을 <일요시사>가 단독 확인했다. 특히 해당 법인의 대표변호사로 있는 이기중 변호사는 부산 엘시티(LCT) 시행사의 실질 소유주인 이영복 청안건설 회장과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사건을 맡아 변호해주는가 하면 현 전 수석이 지난 18대 국회의원으로 있을 때 정치후원금을 낸 사실이 있다. ‘엘시티 스캔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 사람의 관계 규명이 불가피해 보인다.
 

검찰은 최근 엘시티 사업과 관련해 각종 비리 의혹을 추적하고 있다. 엘시티 시행사인 엘시티PFV의 실질 소유주인 이영복 청안건설 회장이 자신의 마당발 인맥을 이용, 정관계에 전방위 로비를 했다는 정황이 포착되면서부터다. 엘시티PFV는 엘시티 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법인이다.

엘시티 스캔들
전방위적 로비

앞서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은 엘시티 사업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왔다. 이영복 회장이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사업 규모가 바뀌는 등 석연찮은 신호가 포착됐기 때문이다.

당초 5만㎡였던 사업 용지는 갑자기 6만5934㎡로 늘어났고, 아파트를 지을 수 없던 곳은 주거용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60m였던 고도 제한은 411m로 7배나 뛰었다. 환경영향평가는 단 한 차례도 실시되지 않았으며, 교통영향평가는 단 한 번의 심의로 통과됐다.

당시 시민단체 측은 “고층 아파트 건설로 교통난이 예상된다”고 이의를 제기했지만, 부산시는 이를 묵살했다. 특혜성 인허가 조치가 이루어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된 이유다.


엘시티 스캔들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은 “이영복 회장이 엘시티 인허가권을 위해 부산 지역 정치인은 물론 주요 공공기관 고위직에 전방위 로비를 했다”는 첩보를 입수, 수사에 들어갔다. 지난 10월24일에는 부산지검 특수부(부장검사 임관혁)로 사건을 이관하고 수사팀을 대폭 확대했다.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이영복 회장은 도피를 선택했다. 그러나 수사팀 규모 확대와 복수의 언론으로부터 자신에 대한 의혹이 연이어 보도되자 지난 11월10일 검찰에 자수했다. 중간에 자수 의사를 번복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그의 소재를 확인한 경찰은 서울에 위치한 한 모텔서 이 회장을 체포했다.

특수부는 이 회장이 과연 누구에게 로비를 했느냐에 초점을 맞췄다. 회삿돈 705억원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이 회장은 엘시티 인허가권 승인을 위해 이 돈을 부산지역 정관계에 고루 뿌린 의혹을 받고 있었다.

이영복-현기환
‘엘시티’ 몸통

여기서 등장하는 이름이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다. 검찰에 따르면 현 전 수석은 이 회장으로부터 엘시티 관련법인 자금으로 구입한 10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 275장을 받았다. 또한 엘시티 설계 담당 건축사사무소 명의로 된 법인 신용카드 1장을 이 회장으로부터 제공받아 총 7660만원 상당을 썼다.

뿐만 아니라 현 전 수석은 서울 강남구의 한 식당서 이 회장과 만나 “엘시티 사업 등과 관련해 제반 편의를 제공해 달라”는 취지로 33회에 걸쳐 총 3159만원가량의 술값을 대납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현 전 수석이 이 회장 등으로부터 받은 금품은 총 4억3000여만원에 이른다.
 

이에 특수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하 특가법)상 뇌물수수·알선수재,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현 전 수석을 구속기소, 지난 12월19일 정식 재판에 넘겼다. 현재 특수부는 구속영장에 기재되지 않은 금품수수 혐의를 포착해 추가 수사를 진행 중이다.


두 사람은 단순한 비즈니스 차원을 넘어 오랜 세월 친분관계를 맺어왔다.

현 전 수석은 이 회장과의 연루의혹이 불거진 지난 11월21일 ‘엘시티 수사와 관련한 입장’이라는 A4용지 1장 분량의 자료를 통해 “이영복 회장이 추진해온 엘시티 사업과 관련해 어떤 청탁이나 압력을 행사한 적도 없고 도피에 협조한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면서도 “이 회장과 개인적 친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관계일 뿐”이라고 인정했다.

엘시티 ‘몸통들’ 줄줄이 재판으로
이영복-현기환 금품제공·수수 혐의

그러나 두 사람이 인간적인 관계 이상이라는 정황이 최근 압수수색에 의해 드러났다. 검찰이 전국 골프장 14곳의 지출 내역을 확보한 결과, 현 전 수석과 이 회장을 비롯해 유력인사 4명이 함께 20여차례 이상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검찰이 이 회장의 비자금을 추적하는 과정서 나왔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수부는 이 회장이 골프 접대를 통해 정관계, 법조계, 금융권 유력 인사들을 상대로 엘시티 인허가 해결과 시공사 유치,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과 관련된 청탁을 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기중 변호사가 이들 두 사람과 함께 지난 2012년 12월부터 2015년 2월 사이에 총 5차례 라운드를 돌았다는 사실이다. 이 변호사는 이 회장의 법조계 핵심 인맥 중 한명으로 꼽힌다. 그는 지난 2010년부터 법무법인 정인에 들어와 현재 대표변호사로 있다.

법무법인 정인은 부산지역 향판(지역법관제, 법관의 인사 안정성을 위해 특정 고등법원 관할 안에서만 근무하게 한 제도)의 대표주자다. 인적 구성을 보면 부산지법·부산고법 판사 출신들이 즐비하다.

특히 이기중 변호사는 정인에 들어오기 직전 부산고등법원장을 지낸 이력이 있다. 이에 대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모 의원실 보좌관은 “정인은 부산·경남지역 향판들이 만든 법인”이라며 “부산고등법원장은 검찰총장으로 올라가기 위한 루트일 정도로 굉장히 힘있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를 포함해 법무법인 정인 소속 변호사들이 이 회장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맡아 변호해 준 사실을 취재 결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영복-이기중
법조계 인맥

대표적인 사례가 오션타워입주자대표회의 측이 이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이다. 오션타워는 엘시티 시행사인 엘시티PFV뿐만 아니라 청안건설 등 이 회장의 회사 6곳이 입주해 있는 건물이다.

판결문·등기부등본 등 관련 자료를 확인해본 결과, 이 회장은 지난 2005년부터 관리비·용역비·보험금 등을 내지 않았고, 이에 대표자 측은 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때 이 회장을 변호해준 곳이 바로 법무법인 정인이다.
 


이기중 변호사가 직접 나선 사건도 있다. 경기도에 위치한 한 주택건설 업체의 대표는 지난 2006년 7월 이 회장에게 80억원을 대여해줬는데, 해당 건이 특가법상 횡령·배임으로 재판에 넘겨진 것이다. 이 변호사는 해당 업체 대표의 변호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업체 측에 전화한 결과, 이 변호사와 법무법인 정인을 잘 모른다는 다소 황당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시 대표를 지근거리서 수행한 측근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그 사람들(이기중 변호사, 법무법인 정인)은 우리가 알고 있던 사람들이 아니다”라며 “부산 변호사(이기중 변호사) 중 재판부 판사와 함께 근무하며 인맥이 있던 사람이 있다고 추천이 들어와 선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엘시티 시행사의 고문변호사 겸 관련 기업의 대주주다. 복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시행사 엘시티PFV의 대주주 ‘에코하우스’ 지분 41%를 보유하고 있다. 에코하우스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기중 변호사의 이름이 최대주주에 올라가 있다.

이영복-이기중 크고 작은 사건 변호
현기환-이기중 후원 1000만원 전달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매일경제>를 통해 “2014년쯤 이영복 회장이 에코하우스 지분을 사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해 사비로 회계상 감정가인 700만여원을 주고 지분을 매입했다”며 “친분이 있는 이 회장이 우호 지분 확보 차원서 부탁한 것으로 생각해 뭐하는 회사인 줄도 모르고 지분을 매입해줬다”고 해명했다.


이 변호사와 해당 법무법인은 현 전 수석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던 것으로 확인된다. 본지가 확보한 지난 18대 국회의원 당시 현 전 수석의 정치후원금 내역을 보면 이 변호사와 법무법인 정인의 또 다른 변호사 두 사람이 지난 2010년 12월13일 각각 500만원씩, 총 1000만원을 현 전 수석에게 후원한 사실이 있다.

야권의 한 의원실 보좌관은 “국회의원에게 후원금 주는 건 그 사람이 유명해서가 아니다”라며 “친분으로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 사람, 특히 이기중 변호사가 법인의 대표변호사라는 점을 본다면 현 전 수석과 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한 법무법인 정인은 과거 현 전 수석이 연루된 공천 헌금 사건도 변호했다. 해당 사건의 핵심은 현 전 수석이 부산 동구서 당선된 현영희 전 의원으로부터 3억원의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었다.

현기환-이기중
후원금 지급

종합해봤을 때 이 변호사와 법무법인 정인은 2010년 전부터 이 회장, 현 전 수석과 유착관계를 맺어왔다. 본지는 이 변호사의 해명을 듣기 위해 법무법인 측에 여러 차례 전화를 하고 메모도 남겼지만, 회신은 오지 않았다. 법무법인의 비서로부터 “(이기중 변호사에게) 메모가 전달됐다”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아직도 묵묵부답인 상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좌불안석’ 서병수 부산시장 왜?

엘시티 사업과 관련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관계가 다시 한번 드러났다.

이영복 회장으로부터 2억원가량의 돈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알선수재)로 서병수 부산시장의 측근 김모씨가 구속된 것이다. 부산지검 특수부는 지난 12월23일 김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앞서 장성훈 부산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김씨는 지난 2012년 공천 헌금 사건 당시 현영희 전 의원과 함께 친박 외곽조직이었던 ‘포럼부산비전’의 공동대표를 맡았던 인물이다. 엘시티 비리와 관련해 이미 구속기소된 현기환 전 수석도 해당 포럼의 특별회원이었다.

검찰은 김씨가 서병수 부산시장의 측근이라는 점, 부산 최대 친박 조직인 포럼부산비전의 핵심 인사라는 점에 주목해, 엘시티 인허가와 관련한 대가성 여부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김씨는 “소명이 가능한 정기적인 입금일 뿐 대가성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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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