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미문의 국정농단, 국기문란 사태로 검찰 조사에 응해야할 대통령이 누구를 엄단하라고 말할 자격이 있느냐.” (16일,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브리핑)
최근 ‘최순실 유탄’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엘시티(LCT, 부산 해운대 초고층 주거복합단지) 사업 비리사건에 대해 철저한 수사와 연루자 엄단 지시를 내렸다. 국책사업이 아닌 민간사업 비리사건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 수사를 지시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 박 대통령은 엘시티 비리사건에 측근 인사들이 개입됐다는 의혹이 일자 법무부에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관련자들을 엄단하라고 지시했다. 수백억원대의 횡령 및 사기혐의로 수배 중이던 엘시티 시행사인 이영복 청안건설 회장은 100일이 넘도록 검찰 수사망을 피해 다니다 최근 자수했다.
타이밍 상 이 회장의 깜짝 자수가 ‘최순실 사태’의 국면전환용이 아니냐는 음모론이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제 보도는 최씨로 국한됐다.
복수의 언론에 따르면, 한 시민단체는 이 회장이 최씨와 같은 계원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최씨가 엘시티 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했을지도 모르니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언론보도엔 박 대통령과 직접적으로 관련됐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해당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하고 연루자들을 엄단하라고 지시했다.
사안의 중대성, 대통령을 ‘언니’라고 호칭할 정도의 가까운 사이인 최순실씨가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있더라도 ‘퇴진(하야) 요구’를 받고 있는 대통령이 나서서 검찰 수사를 종용하는 것을 반길 국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 대통령이 정작 자신을 둘러싼 여러 의혹들에 대해선 “검찰 조사, 특검을 수용하겠다”고만 말했을 뿐, 2주가 다 되어가는 데도 조사 날짜조차 안 잡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선 “대통령이 특권 뒤에 숨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검찰은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안종범 전 수석과 정호성 전 비서관 수사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실제로 안 전 수석의 수첩과 정 전 비서관의 전화기에서 발견된 녹음파일 등 증거물들을 근거로 대통령의 혐의가 상당 부분 드러났다는 보도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마비된 국정과 5%대로 추락해버린 지지도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 시간이 작금의 사태를 해결해줄 리는 만무하다. 밍기적 대는 모습은 오히려 국민에게 피로감과 반발심만 안길 뿐이다.
‘시간 끌기’라고 판단한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당 의원들이 청와대 앞에서 “조사 연기와 같은 꼼수를 중단하고 당장 검찰 조사에 응하라”며 항의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상황은 점점 악화될 뿐이다. 실제로 지난 5일 1차 광화문 집회 때는 20만명, 12일의 2차 집회엔 10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지 않았던가.
하루 빨리 최씨와 관련한 의혹들에 대해 위법 여부를 떠나 당당하게 조사받아야 한다. 만약 철저한 조사를 통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부분이 밝혀진다면 그에 합당한 심판을 받으면 된다. 물론, 고위 관리층 수사 때마다 정치적 수사로만 그치곤 했던 ‘성역 없는 수사’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