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05.20 09:40
범죄를 예방하고 통제하는 전통적 제도를 우리는 ’형사사법(Criminal Justice)‘이라고 부른다. 이는 범죄자(Criminal) 정의, 범죄자 사법을 의미한다. 그간 국내 형사사법 제도는 가해자·범죄자 중심으로 이뤄졌다. 범죄자에게 죄에 상응하는 법의 심판을 내리면 ’사법 정의‘가 실현됐다고 말한다. 다만 죄에 상응하거나 죄보다 훨씬 무거운 처벌을 내렸다고 해서 국가나 사회가 할 일을 다했다고 볼 수 있을까? 물론 전통적인 ‘형사사법’ ‘범죄자 사법’ 틀에서 보면 정의가 실현됐다고 봐야할 것이다. 사법 정의가 실현되더라도 바뀌지 않는 사실이 있다. 바로 피해자다. 가해자가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도 피해자가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피해를 당한 그대로인 것이다. 이래도 우리는 사법 정의가 실현됐다고 할 수 있을까?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국가는 범법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워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내린 것으로 사법 정의 실현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피해자는 당사자임에도 자신의 역할을 검사라는 국가가 대신하는 과정에서 주변인으로 전락하게 된다. 사법 절차에서 별다른 역할을 할 수 없고,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 그야말로 ‘잊힌
얼마 전 어느 전직 국회의원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이 많은 사람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임기 중 끝나지 않았던 재판이 임기를 끝내고 나서야 확정됐고, 그는 국회의원으로 4년을 활동할 수 있었다. 임기 중 형이 확정됐다면 당연히 당선 무효였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국내에 그치지 않는다. 재판을 받던 미국 전직 대통령이 다시 당선되자 그에 대한 거의 모든 재판이 줄줄이 중단 혹은 연기됐고, 그에 대한 사법 판단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설령 유죄가 확정돼도 스스로 사면할 것이라는 소문이 들리는 것을 보면, 정치인에 대한 사법 정의 실현은 일반적 잣대와 사뭇 다른 듯하다. 이 같은 현실을 초래하는 데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단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이라는 가면 아래서 벌어지는 고의적인 재판 지연 전술이 숨어 있다. 판사를 바꿔 달라거나 변호인을 변경한다거나 일정을 핑계로 들거나 건강상 이유를 들이대는 등 재판을 지연시킬 수 있는 방법은 부지기수다. 법원의 문제로 재판이 길어지거나 지연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미국서도 재판해야 할 사건이 지나치게 많아서 지연될 수도 있으며, 그것이 사법제도의 문제 중 하나라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