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테마주’ 상지건설 수상한 지배구조 대해부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4.25 13:32:43
  • 호수 15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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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성 거래 정지 풀리자 ‘3만3000원↑’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테마주로 언급되는 상지건설의 주가가 급상승하고 있다. 임무영 전 상지건설 사외이사가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대통령 후보 대선캠프에 합류했다는 점 때문에 테마주로 분류된다. 다만, 상지건설 실소유주 오정강 회장과 ‘기업사냥꾼’ 간의 거래 정황은 풀리지 않는 의혹으로 남아있다.

지난 16일 오전 9시27분 상지건설은 전일 대비 5900원(22.96%) 상승한 3만1550원에 거래됐다. 임무영 전 사외이사는 지난해 3월 퇴임했지만, 오리엔트정공, 형지글로벌 등과 묶여 주가가 급등했다. 주가는 지난 2일부터 이날 거래일까지(매매 정지일 제외) 897% 올랐다.

투기 과열
매매 중지

투기성 매수세가 몰리자 상지건설은 ‘투자 경고 종목’으로 지정됐고 지난 10일 한 차례 매매가 정지됐다. 이후에도 폭등세를 이어가자 상지건설은 투자위험종목으로 지정되면서 전날 하루 또 한 번 매매가 정지됐다.

이재명 대표와 기업 간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고 시가총액이 100억~4000억원 수준으로 작아 주의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기존 발행주식의 60%에 달하는 보통주로 전환될 수 있는 전환사채(CB)가 존재하는 등 지배구조와 관련된 불확실성도 주요 변수로 꼽힌다.

기업 본연의 사업과 무관하게 정치 테마주로 분류돼 주가가 급등한 만큼 금융당국의 증권신고서 효력 심사도 까다롭게 진행될 예정이다.


상지건설은 지난 2월부터 200억원 규모 주주우선 공모 방식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있다. 이후 4차례에 걸쳐 정정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일정이 미뤄졌다. 액면가 5000원에 신주 400만주를 발행하겠다는 계획이다. 3월까지 주가가 유상증자 발행 예정 가격보다 낮았던 만큼 유상증자 성공 가능성은 희박하게 여겨졌다.

상지건설 주가는 연초부터 3월까지 줄곧 5000원을 밑돌았다. 이달 들어 주가가 급등하면서 유상증자가 성공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 시작한 이유다.

주가 급등 이후 지배구조와 관련된 변동성도 커졌다. 기존 상지건설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아틀라스팔천→ 광무·중앙첨단소재→ 상지건설’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아틀라스팔천 최대주주는 오정강 엔켐 회장이다. 오 회장은 엔켐 지분 21.5%를 보유한 최대주주기도 하다.

최근에는 엔켐과 함께 KT 손자회사 이니텍을 인수했다. 지난 1일 245억원을 썼고, 오는 30일 이니텍에 100억원을 추가 출자한다. 엔켐은 본격적인 수직 계열화에 나섰다. 이니텍 인수를 기점으로 기존 관계사였던 광무, 중앙첨단소재와의 지배구조 개편도 진행하는 모양새다.

오 회장의 개인 회사에 분산돼있던 지분을 그룹사 내로 거둬들이면서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대선 이캠프 출신 사외이사로
실소유주와 기업사냥꾼 거래 의혹

지난 3일 광무 최대주주는 아틀라스팔천에서 ‘협진’으로 변경됐다. 협진은 엔켐그룹의 전략적 투자처로 알려진 곳이다. 엔켐과 아틀라스팔천 등은 광무 및 중앙첨단소재 등의 2대주주로 남아있는 만큼 엔켐과 협진의 협력 관계는 이어질 전망이다.


협진은 상지건설 지분 14.82%도 보유하고 있는데, 광무 최대주주에 오르면서 상지건설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했다. 지분을 취득한 지 2년 만이다. 시장에서는 오 회장이 ‘아틀라스팔천→ 광무→ 중앙첨단소재→ 상지건설’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전략적 파트너인 협진과 공동 경영하는 것으로 바라봤다.

주가가 급등하자 이를 노린 주식 거래 등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 4일 상지건설은 보유하고 있던 CB 120억원어치를 영파, 글로벌제1호조합, 엠제이앤리 등에 153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CB는 2022년에 발행된 건으로 약 1년 뒤인 2023년 11월 상지건설이 132억원에 매수한 것이다.

이번 거래로 상지건설은 약 20억원의 이익을 얻었다. 해당 CB 전환가격은 액면가인 5000원으로 CB 신규 투자자는 단기에 3배 이상 수익이 발생한다.

해당 CB는 보통주 240만주로 전환 가능한데, 이는 기발행주식 수의 60%에 달하는 규모다. 지난해 말 기준 상지건설 최대주주는 중앙첨단소재로 지분 18.6%(특수관계인 포함)를 보유하고 있다. 전환사채 보통주 전환이 이뤄지면 10% 초반대로 낮아진다.

시장 관계자는 “해당 CB가 보통주로 전환되면 기존 최대주주인 중앙첨단소재 지배력이 약화될 수 있는 만큼 미리 협진이 경영권 참여를 선언해 경영 안정성을 유지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재명 테마주’로 엮인 상지건설을 지배하는 오 회장이 이니텍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언급됐다. 이니텍 투자처 측에 김 전 회장 등 문제의 인물들이 개입됐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당초 이니텍은 PEF 운용사인 로이투자파트너스 및 사이몬제이앤컴퍼니에 매각되는 것으로 예상됐으나 갑작스레 인수자가 엔켐으로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KT DS 산하 금융보안 전문 업체 이니텍의 새 주인은 지난 1일 엔켐으로 낙점됐다.

다시 보이는
엔켐·이니텍

엔켐과 중앙첨단소재가 보유한 이니텍의 주식은 각각 342만주(17.3%), 328만주(16.6%)로 엔켐이 최대주주가 됐다. 문제는 이니텍을 인수하는 두 회사 실적이 모두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엔켐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3650억원, 순손실 5711억원에 달했다. 2023년에도 매출 4246억원에 순손실 560억원을 냈다.

중앙첨단소재도 적자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2022년 순손실 182억원, 2023년 484억원, 2024년 768억원으로 적자 폭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엔켐이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약 1020억원이지만 단기차입금은 1064억원에 달한다. 1년 내 갚아야 할 차입금 규모가 엔켐이 현재 보유한 현금보다 많은 셈이다.

지난해 말 엔켐의 유동비율은 70.1%에 불과하다. 유동비율은 1년 안에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인 ‘유동자산’을, 같은 기간 내에 상환해야 할 ‘유동부채’로 나눈 값이다. 이 비율이 100%에서 150% 이상이면 기업의 단기적인 재무 건전성이 양호한 수준으로 평가되나, 100% 이하일 경우 단기 채무를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진다.


신주 261만2288주를 배정받아 주당 7430원에 매입하기로 한 엔켐은 이달 30일까지 194억원을 납입해 이니텍 신주를 인수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재무건전성이 양호하지 않은 엔켐의 유동비율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인수 과정서 자금조달에 동참했던 유니베스트투자자문은 지난 3월 김 전 회장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유니베스트는 지난 3월12일 KT DS와 이니텍, 그리고 매각 주간사인 삼정KPMG에 ‘이니텍 주식회사 양수도 계약자의 자격 확인의 건’이라는 공문을 보냈다.

유니베스트는 이니텍 매각 과정에 범죄 연루 의혹이 있는 인물들이 개입해 투자자들과 고객들의 항의와 우려가 이어지고 있어 공문을 발송하게 됐다고 밝혔다.

유니베스트는 “당사는 불법 대북송금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가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김 전 회장, 일명 ‘이용호 게이트’의 당사자인 이용호 전 G&G 회장을 비롯해 조직폭력배, 사채업자들과 함께 이니텍 인수전에 나섰다는 점에서 항의 및 피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니텍 우선협상대상자인 사이몬제이앤컴퍼니가 지난 2월27일 제3자인 김 전 회장 등에게 매각됐다는 것이 유니베스트의 주장이다. 사이몬의 주인이 바뀌면서 이니텍 인수 계약자 지위도 제3자에 양도됐다는 얘기다.

알게 모르게
희석된 구조


유니베스트는 “공동계약자 중 1인인 사이먼제이앤컴퍼니는 제3자를 대상으로 유상증자를 진행해 대주주 지위를 제3자에 넘긴 뒤 대표이사를 선임해 본 계약자의 지위를 제3자에 양도했다”고 밝혔다. 이어 “양수인 지위를 제3자에 양도하는 것에 대해 매도인 및 매각 주간사가 사전에 통보받고 양도인이 서면동의했는지 매도 측의 입장을 구한다”고 촉구했다.

이후 유니베스트와 서울프라이빗에쿼티(PE)가 본계약 체결일인 2월28일 각각 계약금 26억원, 58억5000만원을 준비했으나 사이몬이 제3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계약금을 지급했다는 것이 사측의 설명이다.

유니베스트는 “사이몬을 통해 지급된 대상 회사의 계약금은 쌍방울그룹이 인수해 운영 중인 코스닥 상장사 비투엔㈜의 관계사를 거쳐 유입된 자금으로 당사는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니텍 임원으로 선임해달라고 통보된 명단에는 쌍방울그룹 계열사인 나노스(현 SBW생명과학) 사외이사를 지낸 임무영 전 사외이사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니베스트는 이를 근거로 “매도인은 실질적인 양수인을 파악하고 있었는지, 이 같은 상황임에도 계약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로이투자파트너스와 사이몬 컨소시엄 측은 “사실무근”이라면서 “상대 측(유니베스트투자자문)이 이니텍 거래를 깨뜨리려고 일방적인 주장을 유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률적인 대응도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상한 자금을 받은 적이 없다”며 “우리도 금융기관인 만큼 불법자금을 받으면 계약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쌍방울 김성태 또 등장
얽히고설킨 ‘검은 손’

한편, 오 회장이 광무를 인수하는 과정에는 A씨가 등장한다. 오 회장이 최대주주(53%)인 아틀라스팔천은 자본금 1억원으로 설립된 법인이고 설립 이후 증자를 한 적이 없다. 오 회장의 출자금은 5300만원이고, 누군가가 4600만원을 투자했다는 얘기다.

오 회장 외의 주주로는 17.01% 지분을 보유한 이승규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아틀라스팔천의 대표는 설립 당시부터 신진형씨로 아틀라스팔천의 주주는 아니다. 신씨는 광무(당시 릭스솔루션)의 전환사채 75억원어치를 매입한 에스엘파워라는 회사의 대표이사로 두 회사의 대표를 동시에 맡고 있다.

에스엘파워는 에너토크가 지분 전부를 매각하자마자 타인의 자금을 빌려 광무의 전환사채 76억원을 매입했다. 또, 에스엘파워의 전환사채 60억원을 매입한 곳은 전고체 리튬이차전지업체인 비상장사 티디엘이다. 2023년 8월 엔켐의 자회사로 편입된 곳이다.

엔켐은 티디엘 대표이사 김유신의 지분을 198억원에 사기로 하고, 엔켐의 특수관계자인 솔리듐시너지펀드가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200억원을 투자한다.

당초 2021년 11월에 잔금 지급까지 끝내기로 했던 에스엘파워는 수차례 중도금과 잔금 지급일을 연기하다가 2022년 2월에 1차 중도금 18억원, 3월에 2차와 3차 중도금 33억원, 4월에 잔금 18억원 등으로 나눠 대금을 치른다. 그런데 그해 2월에 20억원어치, 3월에 25억원어치, 4월에 11억원어치의 전환사채를 장외매도한다.

에스엘파워에 재매각된 전환사채는 그해 3월과 4월에 걸쳐 주당 464원에 전량 주식으로 전환된다. 전환사채가 주식으로 전환되는 동안 광무는 5대 1의 주식병합을 하게 되고 4605원으로 거래를 재개하는데, 전환한 주식을 바로 처분했더라도 100% 가까운 수익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에스엘파워가 취득한 광무의 전환사채는 오 회장이 소유한 또 다른 회사인 상지카일룸이 인수했던 전량이다. 2021년 3월에 발행됐고 상지카일룸이 3개월 만에 상환을 요구하는 바람에 되샀다가 약 4개월 만에 에스엘파워에 재매각했다.

거미줄
관계도

당시 상지카일룸의 실질적인 주인은 신동걸이었고, 회장은 한종희, 대표는 A씨를 끌어들인 최기보였다. 상지카일룸은 광무 전환사채를 상환받고 난 직후 160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그렇게 발행된 신주를, 이미 일부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오 회장의 중앙첨단소재서 인수한다.

광무 인수에 참여했던 엑시옴파트너스, 스트라타조합, 씨에도어투자조합, 리앤리파트너스 등은 모두 광무의 전 최대주주였던 중앙디앤엠과 상지카일룸과 연관된다. 거슬러 올라가면 리더스기술투자와 관련이 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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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