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04.12 13:48
필자가 중학교 2학년 재학 시절의 어느 날, 사회 과목 선생님이 “지금까진 개인이 국가를 위해 존재했지만 오늘부턴 국가가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시대가 됐다”고 강조하면서, 앞으론 국가와 개인과의 관계에 대한 시험문제가 나올 경우 지금까지와 반대로 국가가 개인을 위한 쪽을 선택해야 정답이라고 했었다. 그 후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형이나 동생에게 피해가 안 되는 선에서 부모를 졸라서라도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라고 조언했다. 당시 우리 반 학생들은 담임선생님 덕에 다른 반보다 훨씬 많이 도시 고등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철학과 교수는 “이기주의는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이익을 챙기는 것이지만, 개인주의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이익을 챙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교수는 “과거엔 이기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이 성공했지만, 이젠 개인주의를 지향해야 성공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필자가 중학교 2학년(1973년) 때부터 우리나라에 제도적으로 개인주의가 사회 전반에 싹트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사실 이기주의가 팽배했을 땐 경쟁서 이겨야 했기에, ‘No. one’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고, 피터지게 싸우
둘러싸서 구경한다는 뜻의 웨이관 문화가 시작된 건 대표적으로 2006년 펑위 사건을 꼽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다 쓰러진 할머니를 발견한 펑위는 할머니를 도와 병원에 데려다주었는데, 할머니는 되려 밀쳐서 넘어진 거라며 펑위를 소송 걸어 선의를 베풀고도 4만위안, 우리 돈으로 678만원에 달하는 벌금을 내게 됐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남을 도우면 손해 본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돕지 않는 웨이관 문화가 시작됐습니다. 결국 중국은 2017년 선의로 타인을 구하려다 피해를 준 경우 배상 책임이 없도록 하는 선한 사마리아인법안을 발표했지만, 그럼에도 아직 중국인들은 웨이관 문화에 손 들어주고 있습니다. 다행히 최근 젊은 층 중심으로 웨이관 문화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습니다. <khg531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