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자산신탁-시행사 갈등 ‘용역 어깨들’ 동원 현장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9.18 11:04:35
  • 호수 15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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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장악한 떡대들 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교보생명의 100% 자회사인 교보자산신탁이 지난달 31일 새벽 법원의 판결문도, 집행문도 없이 용역 수십명을 투입해 단지를 점거했다. 당시 교보자산신탁 상무이사 A씨가 직접 용역원을 지휘해 충격을 안겼다.

업계에 따르면 이날 새벽 6시20분경, 교보자산신탁 임직원 3명을 포함해 약 40여명의 용역 인력이 경기 용인시 수지구의 ‘죽전테라스앤139’ 관리사무소 잠금 장치를 파손하고 내부를 점거했다. 이 과정에서 엘리베이터 운행이 예고 없이 중단됐으며, 상가와 비상 계단 등 공용 공간에 용역 인력이 배치돼 입주민들의 이동이 제한됐다. 결국 경찰 기동대 버스 2대와 다수의 경찰 인력이 출동했으나 혼란은 한동안 지속됐다.

책임 전가

시행사인 ㈜보정PJT 측은 죽전테라스앤139 단지가 시공사 동광건설의 법정관리로 인해 준공이 9개월 이상 지연되고 있으며, 빗물 누수와 난간 흔들림 등 심각한 하자가 발생한 상태라고 밝혔다. 현재 시행사 본사 직원들은 1년째 현장에 상주하며 관리와 보수를 책임지고 있다.

반면, 죽전테라스앤139의 책임준공 확약형 관리형 개발신탁(책준형 개발신탁)을 맡은 교보자산신탁은 용역을 동원해 관리사무소와 상가 복도를 무단 점거하는 불법 자력 행위를 감행했다.

책준형 개발신탁은 신탁사가 사업의 준공을 보증하는 구조다. 시공사의 신용 위험이 커지면 신탁사가 자금을 직접 투입해야 하기에 2022년 하반기 이후 금융권의 뇌관으로 꼽혔다. 당시만 해도 신탁업계와 금융권에서는 “책임 준공 리스크가 어디까지 확산될지 알 수 없다”는 공포가 팽배했다.


실제로 2022년 말 기준 책준형 사업장은 285개에 달했고, 공사가 진행 중인 사업장은 282개였다. 잠재 사업비 부담은 무려 10조원에 이르렀다. 실제로 교보자산신탁은 7분기 연속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배경에는 교보자산신탁의 심각한 재무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회사는 2024년 누적순손실 1377억원, 올해 1분기에도 499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7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대손충당금은 지난 2년간 약 25배 증가했으며, 생존을 위해 약 6200억원 규모의 긴급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조혁종 대표가 돌연 사임한 것도 이 같은 위기의 심각성을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시공사의 부실로 입주 지연과 하자가 잇따르면서 약 50세대가 매매대금 반환소송을 제기하는 등 입주민들의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교보자산신탁의 ‘선관주의 의무’ 위반 논란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최근에는 인천 영종도 웨스턴 그레이스 호텔에서 관리비 미납으로 전기 공급 중단 위기까지 초래하며 건물 운영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교보자산신탁이 행한 이번 사건은 형법상 주거침입죄(형법 제319조), 재물손괴죄(형법 제366조), 그리고 민법상 불법행위(민법 제750조)에 해당할 수 있다.

대법원도 “집행권원 없는 자력구제는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일관되게 판시해 왔다(대법원 2004다37775 판결 등).


죽전테라스앤139 내부 점거
폭력 사태에 불안한 주민들

시행사 보정PJT 관계자는 “법원의 집행관도 없이 정식 경비업 허가조차 없는 용역을 투입해 입주민과 직원들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했다”면서 “입주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체 비용으로 관리와 하자 보수를 이어가고 있으며, 이번 사태와 관련해 고소장을 접수하고 경찰에도 신고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어 “교보자산신탁이 경영 위기를 이유로 시행사의 주도권을 무력으로 장악하려는 시도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교보자산신탁의 책임 준공 지연과 부실 시공으로 인해 10여년간 쌓아온 사업 기반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시행사 측은 “300억~400억원대의 예상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프로젝트였지만, 교보자산신탁의 일방적인 행위로 단 하루 만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우리는 오직 안전하고 정확한 준공을 위해 노력해 왔을 뿐”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시행사는 단기간에 분양을 완판한 성과를 냈으나, 교보자산신탁이 주도한 책임 준공 과정에서 발생한 하자와 갈등으로 인해 결국 의미와 수익을 모두 포기하게 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특히, 시행사는 입주민 안전과 편의를 위해 수차례 보수공사를 요청했지만 교보자산신탁은 “신탁 보수와 대주단의 원금·이자 상환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 결과, 현재 단지는 비가 오면 전 세대에 물이 새고,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주차장은 스케이트장처럼 미끄럽게 변하고, 전기 설비에서 위험 신호가 발생하는 등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시행사 관계자는 “우리는 365일 24시간 현장을 지키며 수해 현장을 복구하듯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교보자산신탁은 최소한의 비용 지급조차 ‘배임’ 운운하며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보자산신탁은 책임 준공 지연과 부실 시공 책임을 모두 시행사 측에 전가하는 셈이다. 이로 인해 시행사는 300억원대의 예상 수익을 통째로 잃게 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책임준공 과정서 하자와 대치
강영욱 대표 지시? 묵묵부답

시행사 측은 “세대당 명도비를 요구한 적도 없다.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보상받는 것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을 비웠다. 다만 최소한의 기본 비용만을 요구했을 뿐인데, 교보자산신탁이 이를 빌미로 우리를 매도하고 있다”며 분노를 드러냈다.

교보그룹 차원의 조직적 개입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가 단순히 강영욱 교보자산신탁 대표의 독단적 판단인지, 아니면 모회사인 교보생명과 신창재 회장이 사전에 승인하고 지시한 조직적인 계획인지를 두고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일요시사>는 강 대표에게 직접 연락해 용역 동원을 지시한 적이 있는지 등 물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한편, 부동산신탁회사들은 2분기(4~6월)에도 실적 악화로 고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2분기에만 수백억원 이상 손실을 기록한 곳도 나왔다. 부채비율 등 다른 재무 지표들도 악화하고 있다. 신탁사가 수주했던 사업장의 분양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공사가 지연되면서 이에 따른 비용을 신탁사들이 떠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21일 한국기업평가가 14개 부동산신탁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 신탁사들의 2분기 총 영업수익(매출액)은 436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 분기보다 584억원 증가한 수치다. 신탁 보수와 이자 수익 등은 전분기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일부 회사의 리츠(REITs·부동산 투자신탁) 관련 수익이 늘었다.

그러나 수익성을 따져 보면 재무 상황은 악화했다. 14개 사는 119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영업외 손익과 법인세 등을 반영한 순손실 규모도 1343억원에 달했다. 평균 부채비율도 1분기(3월 말) 81.3%에서 2분기 84.3%로 올랐다.

충당금 적립이 늘고 영업외비용도 증가해 한 분기에만 수백억원의 손실을 기록한 곳들도 많다. 가장 큰 손실을 기록한 곳은 우리자산신탁이다. 이 회사는 2분기에만 8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순손실도 762억원에 달한다.

영업손실 기준으로는 우리자산신탁을 포함 6곳이 분기 손실을 기록했다. KB부동산신탁(-468억원), 교보자산신탁(-325억원), 무궁화신탁(-92억원), 코리아신탁·대신자산신탁(각각 -39억원)이 적자를 봤다. 순손실 기준으로는 우리자산신탁과 무궁화신탁(-447억원), KB부동산신탁(-305억원), 교보자산신탁(-246억원), 코리아신탁(-36억원) 등이 적자를 기록했다.

신탁사들이 건설사가 약속된 기한 안에 공사를 완공하지 못하면 대신 공사를 책임지고 준공하거나 손해배상을 하는 책임 준공 확약을 맺었는데 이런 의무를 이행하면서 지출이 늘어난 것도 신탁사 수익성 악화의 큰 원인이다.


알고도 묵인?

부동산신탁업계 관계자는 “지난 몇 해 동안 부동산신탁사들의 주 수익원이었던 책임 준공형 신탁에서 수익이 나지 못하고 오히려 대손충당금이 늘고 소송을 당하는 등 큰 부메랑이 돌아오고 있다”며 “신탁사들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리츠와 정비사업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기존 토지 신탁 사업에 비해 수수료도 낮고 장기간 진행되는 사업이라 당분간 수익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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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사법개혁안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사법부가 빌미를 제공했단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당리당략을 위해 허점이 많은 법안을 밀어붙인단 비판도 있다. 대통령 재판중지법 추진을 엮어 이재명 대통령까지 패로 쓰려 했던 민주당의 진짜 속내는 뭘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지난달 20일 ▲대법관 증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변경 ▲법관 평가에 변호사협회 평가 반영 ▲하급심 판결문 전면 공개 ▲압수수색 영장 발부 전 사전심문제 도입 등 5대 사법개혁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법 왜곡죄 신설과 재판소원 제도는 별도로 추진할 예정이다. 5대 개혁안 확정 발표 민주당의 사법개혁안 발표 이후 대법원과 야권은 즉각 반발했다. 대법원이 특히 반발했던 개혁안은 대법관 증원이었다. 민주당 안에 따르면, 현행 14명인 대법관은 4년 동안 매년 4명씩 늘려 30명까지 채운다.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내에 신임 대법관 16명과 임기 만료 후 교체되는 대법관 10명 등 총 26명을 임명한다.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실에 “대법관 증원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대법원은 “대법관 과반수 또는 절대다수가 일시에 임명되면, 정치적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후임 대법관 임명 때마다 논란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도 지난달 22일 국회서 진행된 ‘민주당의 입법에 의한 사법 침탈 긴급 토론회’에서 “민주당의 사법개혁안은 사법 해체안”이라며 “사법부의 중립성은 온데간데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사법부 스스로 민주당에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빌미로 작용하는 구체적 사례는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부장판사의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 취소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등이다. 지 부장판사는 지난 3월 윤 전 대통령 측의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했다. 핵심 근거는 “수사 관련 서류가 법원에 있었던 시간은 구속기간에 산입하지 않는 게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이어 “기술이 발달해 정확한 서류 접수·반환 시간을 확인할 수 있고, 관리하는 게 어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을 시간 단위로 계산한 후 “구속 기한이 만료됐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 제66조 제1항은 “구속기간의 초일은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1일로 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 부장판사가 집필에 참여해 지난 2022년 발간된 <주석 형사소송법>도 “구속기간 계산은 시간이 아닌 일(日)로 한다”며 “구속기간은 날짜 단위 계산법을 따른다”고 명시했다. 검찰이 지 부장판사의 구속 취소에 즉시항고를 제기하지 않아 반발은 더욱 커졌다. 이후 지 부장판사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재판을 비공개하거나 “보석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밝히는 등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 5월부터는 “고급 룸살롱에서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대법원은 제21대 대통령선거를 33일 앞둔 지난 5월1일 이 대통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지난 3월28일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이 대통령 사건 기록을 받았고, 4월22일 전원합의체에 넘겼다. 이로부터 불과 9일 후 상고심 선고가 진행됐기 때문에 논란이 발생했다. 빌미 제공한 사법부에 몰아치는 민주 왜? 당리당략 위해 여야 번갈아 “대법관 증원” 민주당은 “기록 6만쪽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졸속 재판”이라고 반발했다. 법원 내부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초고속 절차 진행”이라며 “대법원은 왜 정치를 하느냐는 국민적 비판까지 감수한 무리한 행동을 하느냐”는 반발이 나왔다. 이후 범여권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사법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특유의 일사불란한 몰아치기 전술로 사법개혁안을 한꺼번에 처리하려 하고 있다. 보복을 위해 대법원을 무력화하려는 것일 가능성도 스스로 노출하고 있다. 사법개혁안 중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추진 ▲법 왜곡죄 신설 등이다. 대법관 증원론은 1994년부터 제기됐다. 상고허가제는 밀려드는 상고심 접수에 대응하기 위해 1981년부터 운영됐다가 위헌 논란이 제기돼 1990년 폐지됐다. 대법관 증원론은 상고허가제 폐지 이후 대안으로 거론됐다. 대법원은 당시에도 반대 의견을 밝혔다.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심리불속행 기각 특례는 1994년 도입됐다. 하지만 상고심 접수는 나날이 늘었다. 지난해에 접수된 상고심 접수 건수는 동일인에 의한 과다 소송을 제외하면 1만3026건이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설치를 시도했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사건만 전담하고, 상고법원은 그 외 상고심을 맡아 사실상 4심 법원 체제로 운영하려던 시도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법원행정처를 내세워 ▲불법 로비 ▲재판 거래 ▲판사 사찰 등을 저질렀단 의혹이 불거졌다. 양 전 대법원장 등 당시 대법원 수뇌부는 현재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상고허가제는 “국민이 상고심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있어 섣불리 꺼내기 어렵다. 상고법원 설치는 금기시됐다. 심리불속행 기각 특례는 누가 봐도 한계에 부딪힌 지 오래다. 남은 대안은 대법관 증원밖에 없다. 하지만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론이 거론될 때마다 강하게 반대해 왔다. 사법부는 1994년에도 “인구 1억2000만명인 일본의 대법관 수도 15명”이라며 “법령 해석의 통일이라는 대법원의 고유 기능 측면에서 볼 때, 대법관 13명도 많은 숫자”라고 주장했다. 이후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론이 제기될 때마다 ▲전원합의체 유지 ▲파기환송 증가로 인한 송사 비용 증가 ▲재판 지연 ▲인사청문회·임명 지연 등 논점을 제시하면서 반대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정략적으로 접근한다. 국민의힘의 전신 한나라당은 지난 2010년 우리법연구회 좌편향 논란을 제기하면서 대법관 증원을 시도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비법관 출신 8명을 포함해 대법관을 24명으로 늘리자”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명박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하려고 한다”며 반발하는 등 현시점에선 기시감이 느껴지는 상황이 이어졌다. 대법원은 당시에도 크게 반발했다. 여야는 대법관을 20명으로 늘리기로 합의했다가 곧 백지화시켰다. 돌고 도는 직권남용 당시 한나라당이 우리법연구회 소속 법관들을 겨냥해 대법관을 늘리기로 한 것처럼, 민주당도 대법원의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이후 급하게 대법관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 재판에 대한 보복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발생했다. 우리 정치권은 눈앞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긴 안목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을 급하게 밀어붙여 부작용을 양산하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법 왜곡죄 신설은 지난해에 이어 다시 추진된다. 범여권은 꾸준히 법 왜곡죄 신설을 시도했다. 제20대 국회에선 정의당 심상정 전 의원이 발의했으나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제21대 국회에선 민주당 김남국 당시 의원(현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이 발의했다. 지난해엔 민주당 이건태 의원이 발의했다. 지난해까진 검사·사법경찰관 등 수사 업무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발의됐으며, 이번 추진엔 법관도 포함된다. 1년여 동안 법관도 법 왜곡죄 적용 대상에 포함돼야 할 정도로 달라진 변수는 지 부장판사 관련 논란과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엔 심각한 오류들이 있다. 민주당은 이미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쪼개는 검찰 해체 법안 통과를 완수했다. 이에 따르면, 중대범죄수사청에 소속될 검사는 수사관 신분으로 전환된다. 공소청에서 근무할 검사는 기소·공소 유지만 맡는다. 부장검사를 지낸 김상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는 지난 6월 발표한 <법 왜곡죄에 관한 소고>에서 “기소 이후엔 절차 지휘권이 법원으로 넘어간다”며 “검사는 판사에 의한 법 왜곡죄의 공범으로 가담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해체 이후 검사에겐 수사권이 없고, 공소 유지는 법관이 전담하는데, 검사가 어떻게 법 왜곡죄를 저지르는 주체가 되느냐”는 취지의 반박이다. 김 부교수는 법관을 법 왜곡죄 적용 대상에 포함하는 민주당의 시도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법 왜곡죄 도입이 특정인의 특정 사건을 염두에 두고 추진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도저히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해 법안엔 검사 등 수사기관으로 규율 범위가 한정됐지만, 대법원이 특정인에게 불리한 판결을 선고하자, 12일 만에 법관을 적용 대상에 추가해 발의했다”고 꼬집었다. 대통령 구하기? 그러면서 “이 의심은 막연한 추정이 아니라 고도의 개연성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 왜곡죄는 독일 형법으로부터 비롯됐다. 독일의 법 왜곡죄는 “법관 등이 재판 등을 하면서 당사자 일방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법을 왜곡하면 징역형에 처한다”는 취지의 법률이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면 처벌한다”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이하 직권남용죄)의 법관 전용 특별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법 왜곡죄에 대해선 “법관에 대해서도 이미 있는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있다”면서 “굳이 신설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아울러 직권남용죄에 대해서도 “정치권이 정치 보복 목적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다수의 고위공직자에게 직권남용죄가 본격적으로 적용된 시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이후 출범한 문재인정부의 검찰도 박근혜정부 인사들에게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기소하는 사례가 많았다. 문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을 지내면서 직권남용죄를 다수 적용했던 사람은 바로 윤 전 대통령이었다. 실제로 검찰의 직권남용죄 총처분 건수는 2011년 4057건서 2020년엔 1만4050건으로 늘어난 통계도 제시됐다. 직권남용죄에 대해선 “개념이 모호해서 악용될 소지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무원의 직권은 어디까지인지, 무엇이 남용인지, 직권과 행사에 방해를 받은 권리에 인과관계가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취지의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이렇게 하면 범죄가 성립돼 처벌을 받는다”고 명확하게 규정돼야 한다는 법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 수사·기소를 하는 수사기관과 판단을 하는 법관의 재량에 판단이 좌우되는 일이 많다. 권성 전 헌법재판관은 지난 2006년 직권남용죄에 대한 헌법소원 당시 “조항이 모호해서 정권교체 후 정치 보복을 위한 고위공직자 처벌에 이용될 우려가 있다”며 위헌 취지의 소수 의견을 냈다. 이 파기환송에 “판사 법 왜곡 처벌” 수사권 없어지는데 검사도 포함 추진 권 전 재판관은 지난 2022년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용을 방지하려면 요건을 명백히 규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위헌 의견을 냈다”며 “우려했던 현상들이 현실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가 의견을 밝혔을 때 서둘러 개정했다면,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진 않았을 거라서 아쉽다”고 덧붙였다. 권 전 재판관이 발언했던 시점은 윤 전 대통령 취임 후 약 5개월이 지난 시기였다. 문정부도 직권남용죄의 함정에 빠져, 문 전 대통령 재임 중인 지난 2019년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등이 직권남용죄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에 대한 징역 2년형을 확정했다. 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통일부에 대해서도 “인사권과 관련된 직권남용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연루돼 기소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은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 2022년 10월엔 ‘서해 피격 공무원 월북 조작’ 의혹과 관련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 문정부 인사들이 불구속 기소됐다. 문정부 검찰총장으로서 다수의 직권남용을 지휘했던 윤 전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다수의 직권남용 혐의 때문에 구속 기소됐다. 민주당은 한동안 “대통령 재임 중엔 진행 중인 형사재판을 중지한다”는 취지의 대통령 재판중지법을 추진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전 다수의 형사재판을 받고 있었고,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던 사건도 있었던 현실을 고려한 법안 추진이었다. 발의 시점도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다음 날인 지난 5월2일이었다. 민주당은 ‘국정안정법’이란 별명까지 붙여가면서 이달 안에 처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반발은 정작 대통령실에서 나왔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3일 “재판중지법은 불필요하단 게 대통령실의 일관적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도 “여당에 사법개혁안 중 대통령 재판중지법 제외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후 “민주당이 이 대통령까지 옭아매 패로 쓰려던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다. 대통령 재판중지법에 따르면, 현직 대통령이 받는 형사재판은 임기 중에만 중지된다. 퇴임 이후엔 다시 진행되기 때문에 유죄를 선고받으면 수감 생활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따라서 일각에선 “진짜 이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공소 취소”라고 주장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지난 6월 “공소를 취소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후 비판받은 사람은 민주당 정청래 대표였다. ▲유엔 총회 ▲아세안 정상회의 ▲APEC 정상회의 등 이 대통령의 정상외교 일정이 겹친 시기에 대통령 재판중지법을 강하게 추진한 사람이 정 대표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대통령을 구했다는 프레임을 설정해서 당 대표 재선에 활용하고, 차기 대권까지 노리려는 것”이란 일각의 분석도 나온다. 법률적 이해관계 민주당의 사법개혁안엔 이 대통령의 법률적 이해관계가 묶인 내용이 다수 포함돼있다. 아울러 “특정 정치인이 자기 정치를 위해 현임 대통령까지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법률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오류에 대한 지적에도 개의치 않는다. “보복·당리당략·자기 정치를 위해 막 던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는데도 특유의 몰아치기가 작동한다. 민주당이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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