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4.11.23 03:01
나 홀로 즐기는 가장 짜릿하고 모험적인 액티비티는 단연 카 레이싱이 아닐까. 운전석에 앉아 서킷(레이싱 트랙)을 시속 200㎞로 내달리면 코로나19 스트레스가 저 멀리 달아난다. 강원도 인제에 자리한 인제스피디움은 최고의 스피드를 만끽하는 곳이다. 총연장 3.908㎞ 서킷이 일반인에게도 개방돼 짜릿한 레이싱을 경험할 수 있다. ATV레저카트장과 인제스피디움클래식카박물관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서킷이 내려다보이는 4성급 호텔과 콘도가 있어 한여름 가족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인제스피디움 정문에서 오르막길을 오르면 정면으로 컨트롤타워와 피트빌딩이 보인다. 피트빌딩 앞에는 화려하게 꾸민 자동차들이 있다. 왼쪽 위로 선수와 관객을 위한 숙박 시설인 호텔과 콘도가 자리한다. 콘도 앞 전망 포인트에서 경기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당시 북한 응원단이 인제스피디움에 묵었는데, 당시 북한 응원단 방문을 기념하는 상설 전시관이 피트빌딩에 있다. 응원단이 남긴 메시지와 그들이 두고 간 담배 등이 흥미롭다. 다양한 부대시설 서킷은 앨런 윌슨(Alan Wilson)이 디자인했다. 그는 전 세계 20여 개 서킷을 디자인했으며, 국제자동차연맹의 트랙
미국의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은 “친구를 얻는 가장 좋은 길은 스스로 친구가 돼주는 것”이라고 했다. 둘이 떠나는 여행조차 부담스러운 요즘, 길 위에서 자신과 친구가 되면 어떨까. 누군가와 함께 즐기는 것이 익숙하던 액티비티도 홀로 도전해보면 자신을 더욱 믿고 사랑하는 계기가 된다. 아름다운 자연과 상쾌한 바람이 함께 달려줄 춘천 의암호 자전거길과 물레길은 나 홀로 액티비티를 시도하기에 더없이 좋은 코스다. 의암호는 1967년 의암댐이 완공되면서 만들어진 인공 호수다. 의암리 옷바위 근처 협곡을 막아서 의암호라 이름 붙였는데, 이를 계기로 산악 도시 춘천이 호반 도시로 탈바꿈했다. 의암호는 경관이 수려한 삼악산 자락과 그림처럼 떠 있는 상중도, 하중도, 붕어섬 등이 어우러져 자연호 못지않은 풍광을 자랑한다. 타원형 호수 둘레를 따라 마련된 자전거길은 약 30㎞에 이르는 코스 대부분이 완만해서 초보자도 쉽게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자전거 도시 춘천은 자전거 도시로 유명하다. 북한강부터 소양강까지 조성된 낭만자전거길에서도 의암호자전거길이 가장 인기다. 쉬엄쉬엄 달려도 3시간 정도면 넉넉하게 다 둘러볼 수 있고, 소양강처녀상과 소양강스카이워크, 애니메이션박물관
‘대한민국 우주 항공의 메카’ 전남 고흥에 있는 남열해돋이해수욕장은 떠오르는 관광 명소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해돋이 풍경과 넓고 깨끗한 모래톱, 울창한 솔숲 등으로 입소문을 타다가, 몇 해 전부터 ‘남도를 대표하는 서핑 포인트’로 이름을 알렸다. 앞바다를 막는 섬이 없으니 먼바다에서 밀려온 파도가 크고 깨끗해 서핑에 안성맞춤이다. 이런 파도가 4월부터 10월까지 꾸준히 밀려와 서핑 시즌도 길단다. 2019년에는 이곳에서 도쿄올림픽 출전 서핑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렸다. 때 묻지 않은 자연과 호젓한 분위기도 남열해돋이해수욕장의 자랑이다. 옥색 바다와 마주한 황금빛 모래톱에는 휴지 한 장 없다. 남도 끄트머리 고흥반도에서도 외진 곳에 자리 잡아 사람 손을 덜 탄 덕이다. 해수욕장 인근에 번듯한 식당 하나 없을 정도로 오염과는 거리가 멀다. 울창한 솔숲에 들어앉은 캠핑장에는 유료 몽골텐트도 있다. 아름다운 풍경 개인 장비가 있는 서퍼라면 캠핑장에 머물면서 온종일 서핑을 즐기기 좋다. 남열해돋이해수욕장의 터줏대감 ‘낭만서프하우스’를 비롯한 몇몇 서핑 숍에서 장비 대여와 서핑 강습을 한다. 초보자도 90분 강습을 받으면 혼자서 짜릿한 서핑에 도전할 수 있다. 얕은 바다
담양에 비행장이 있다. 영산강 옆에 자리한 작은 비행장에서 훈련과 교육 등의 목적으로 경비행기가 날았다. 최근에는 일반인이 경비행기 체험에 도전한다. 경비행기는 조종사 옆자리에 한 사람만 탈 수 있기에 혼자 즐기는 액티비티로 제격이다. 경비행기 체험을 하려면 먼저 불안감을 떨쳐야 한다. ‘위험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불안감은 누구나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제주에 갈 때 비행기를 타면서 불안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경비행기 사고율은 일반 항공기 수준이다. 엔진이 꺼지는 위험 상황에서는 고도의 10배까지 활공 비행해 비교적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다. 담양비행장에서 경비행기 교육과 체험을 운영하는 에어로마스터 박문주 수석교관은 “경비행기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고 말한다. 경비행기 체험은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교육과 장비가 필요 없다. 누구나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다. 안전 담양비행장은 잔디가 깔려 널찍한 공간이 시원해 보인다. 경비행기 몇 대가 있는데, 작고 귀엽다. 운항하는 기종은 빙고(Bingo)로 이탈리아의 경비행기 제작사에서 만들었고, 관광과 훈련용으로 좋다고 한다. 조종사가 점검을 끝내고 탑승 신호를 보낸다. 조
남해군의 가장 큰 섬 남해도는 예전에 ‘화전(花田)’으로 불렸다. 섬 전역에 꽃이 흔하게 피어 붙은 살가운 별칭이다. 조선 중종 때 학자 김구는 남해도로 유배된 뒤, 섬의 수려함과 풍류에 반해 ‘화전별곡(花田別曲)’을 쓰기도 했다. 남해군 남면의 섬이정원은 ‘섬 전역이 꽃밭’이라는 남해도의 옛 이름과 사연을 담아낸 곳이다. 다랑논과 돌담을 꽃밭으로 꾸민 정원이 남쪽 바다를 바라보고 소담스럽게 들어섰다. 남해바래길 다랭이지겟길은 다랭이마을에서 유구마을을 지나 평산항까지 이어진다. 유구마을에서 바다를 등지고 언덕을 20분 걸으면 섬이정원이다. 자동차 한 대가 오가는 비포장 길 끝자락에 외딴 정원이 숨어 있다. 차명호 대표는 2016년 섬이정원을 일반에 공개했다. 2007년에 제주도 대신 남해의 다랑논을 정원의 터전으로 선택하고, 2009년부터 꽃밭을 꾸미기 시작했다. 시금치와 마늘이 자라던 다랑논이 계절 따라 수선화, 꽃창포, 물망초, 금계국, 목마가렛, 수국, 세이지, 동백꽃 등이 피는 유럽풍 정원으로 차곡차곡 변모했다. 총면적 1만5000㎡ 섬이정원에 피는 꽃은 400여 종에 이른다. 하늘연못정원 섬이정원은 다랑논과 논을 받치는 돌담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국내 최초 도심형 수목원인 국립세종수목원은 경기 포천의 국립수목원, 경북 봉화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이어 세 번째로 선보인 국립 수목원이다. 축구장 90개를 합친 것과 비슷한 65㏊ 규모로, 사계절전시온실을 비롯한 20개 공간에서 다양한 기후대에 서식하는 식물 2834종, 172만본을 감상할 수 있다. 울창한 수목과 어우러진 고층 빌딩의 스카이라인은 국립세종수목원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풍경이다. 관람은 사계절전시온실에서 시작한다. 매표소가 있는 방문자센터에서 사계절꽃길을 따라가면 국립세종수목원의 랜드마크인 사계절전시온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최고 높이 32m에 총면적 9815㎡인 웅장한 건물은 바닥을 제외한 벽과 천장을 모두 유리로 마감해, 크리스털로 만든 거대한 꽃처럼 보인다. 실제 온대 중부 권역 식물 자원을 대표하는 붓꽃을 모티프로 설계했다. 다양한 식물 사계절전시온실에서는 우리가 흔히 보기 힘든 지중해와 열대 지역에 서식하는 다양한 식물을 만난다. 스페인 알람브라궁전을 본뜬 지중해온실에는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바브나무, 항아리를 닮은 케이바물병나무, 파인애플처럼 생긴 카나리아야자, ‘공룡의 먹이’라고 불리는 울레미소나무 등 지중해성 기후에서
‘하늘이 우릴 향해 열려 있는’ 여름이다. 쪽빛 하늘을 이고 강릉으로 달려간다. 다음 순서로 ‘바다에 풍덩’을 상상했다면 죄송하다. 올여름은 ‘꽃밭에 퐁당’하려 한다. 선교장에 피어오른 탐스러운 연꽃과 능소화, 경포가시연습지에 수줍게 고개 내민 가시연이 강릉의 여름을 활짝 꽃 피우고 있다. 강릉 선교장(국가민속문화재 5호)은 조선 시대 사대부 살림집이다. 오래전 경포호는 지금보다 규모가 훨씬 커서 선교장 인근까지 이르렀다. 배를 타고 건너다닌다 해 이 동네를 배다리마을(船橋里)이라 불렀고, 선교장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집주인은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의 11대손 이내번이다. ‘조선 시대 한양 밖의 가장 큰 한옥’이라 불릴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는데, 처음부터 이런 규모는 아니었다. 1700년대 이내번이 지은 안채로 시작해서 대를 이어 점차 증축했다. 국가민속문화재 선교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연지와 짝을 이룬 활래정을 만난다. 1816년 건립한 활래정은 온돌방과 누마루로 구성된다. 반은 땅 위에, 반은 연못 위에 있는 ‘ㄱ 자형’ 구조다. 전면 돌출된 누마루를 연못에 설치한 돌기둥이 받치는 형태다. 연못과 정자의 합은 언제나 고혹적이지만, 연꽃이 만발하는
‘대나무의 고장’ 담양 하면 초록이 떠오르지만, 여름엔 다르다. 날이 더워지면 배롱나무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담양 곳곳이 진분홍빛으로 물든다. 그중에 압도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 고서면에 있는 담양 명옥헌 원림(명승 58호)이다. 농염한 배롱나무꽃이 활짝 핀 이곳에 발을 디디면, 별세계에 온 듯 착각에 빠진다. 그림처럼 들어앉은 정자와 독야청청 푸른 잎을 자랑하는 소나무, 붉은 꽃이 만발한 배롱나무가 환상적인 소우주를 보여준다. 정자 앞 연못은 이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세상에”와 같은 감탄사가 자동으로 나오고, 여기저기서 “좋다”는 말이 들린다. 조선 시대 정원 배롱나무를 일컫는 이름도 많다. 꽃이 100일 동안 핀다고 해서 ‘백일홍’, 줄기를 간지럽히면 가지가 움직인다고 ‘간지럼나무’라고도 한다. 농부들은 배롱나무꽃이 질 때쯤 쌀밥을 먹는다 해서 ‘쌀밥나무’라고 한다. 배롱나무는 서원이나 사찰에서 흔히 보인다. 100일 동안 피고 지는 배롱나무꽃처럼 끊임없이 학문과 마음을 갈고닦으라는 뜻으로 심는다. 명옥헌 원림은 담양 소쇄원(명승 40호)과 함께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민간 정원이다. 명옥헌의 역사는 조선 시대 선비 오희도에서 출발한다. 벼슬에 큰
저수지는 흐르는 물을 저장해 필요할 때 사용하는 인공적인 수리 시설이다. 물이 넉넉하니 자연스레 주변으로 나무와 풀이 우거지고, 바람이 없는 날에는 잔잔한 수면이 거울처럼 하늘을 담아낸다. 언제부턴가 그 서정적인 풍경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관광지로 입소문 난 저수지가 여럿 있다. 가장 유명한 저수지를 꼽으라면 단연 화순의 세량지 아닐까. 한국을 넘어 2012년 미국 뉴스 전문 방송국 CNN까지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50곳’으로 선정했다니, 그 빼어난 경치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세량지는 농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1969년에 준공했다. 둑을 의미하는 세량제로도 불린다. 유효 저수량 5만4000t이고, 이 물을 받아 농사짓는 땅이 3만3000㎡에 이른다. 샘이 있는 마을이라고 ‘새암골’로 불리던 이곳 주민에게 더없이 귀한 물이다. 흙을 쌓아 올린 둑은 길이 50m에 높이 10m 남짓. 호수 호(湖) 자를 붙일 만큼 드넓은 저수지와 비교하면 그리 큰 규모는 아니다. 이 작은 저수지가 먼 나라까지 이름을 알린 계기는 산벚나무 꽃이 흐드러진 봄날 아침에 촬영한 사진 몇 장 덕분이다. 유명 출사지 이제 막 새어 들기 시작한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연둣빛 잎사귀와 연분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고성은 가슴 아픈 분단의 현실이 실감 나는 곳이다. 도로에 수시로 보이는 군용 지프와 트럭, 검문소가 북녘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고성은 천혜의 자연환경이 여행자를 맞아주는 곳이기도 하다. 고요한 호수와 운치 있는 바다가 낭만적인 여행을 보장한다. 고성에서 첫손으로 꼽히는 여행지가 화진포(강원기념물 10호)다. 강 하구와 바다가 맞닿은 곳에 생긴 석호로, 물은 담수와 해수의 중간 성격을 띤다. 강릉 경포호와 속초 영랑호도 석호다. 10km 산책로 화진포는 거대한 ‘8자 형’이다. 둘레 16km, 넓이 2.3㎢로 국내에서 가장 큰 석호다. 호수는 남쪽과 북쪽으로 나뉘며 남호 주변으로 갈대밭, 조류관찰대 등 자연 탐방 지대가 자리한다. 길이 10km에 이르는 산책로도 잘 정비됐다. 화진포는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하다. 겨울이면 고니(천연기념물 201-1호) 수천 마리가 날아들어 말 그대로 ‘백조의 호수’가 된다. 호숫가에는 갈대가 우거지고, 울창한 소나무 숲이 이어진다. 화진포(花津浦)는 여름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서 붙은 이름이다. 재미난 전설도 있다. 먼 옛날 고성에 이화진이라는 부자가 살았다. 어느 날 건봉사에서 내려온
때로는 인공적인 것도 자연과 어울린다. 드넓은 공원, 아름다운 호숫가 주변에 들어선 빌딩 숲이 그렇다. 공원과 호수는 클수록 좋다. 그래야 빌딩 숲에 주눅 들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으니. 뉴욕 센트럴파크나 수원 광교호수공원처럼 말이다. 일산호수공원의 1.7배,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광교호수공원은 2013년에 문을 열었다. 90여년 전 농업용 저수지로 처음 생겨나 해방 이후 유원지로 수원 시민들의 사랑을 받다가, 광교신도시 건설과 더불어 호수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광교호수공원은 이웃한 두 호수가 8자를 이룬 모양이다. 원천호수와 신대호수를 따라 총 6.5km에 이르는 수변 산책로를 만들고, 6가지 테마 공간으로 다양한 재미를 더했다. 수변 공간 ‘어번레비’를 중심으로 ‘신비한 물너미’ ‘재미난 밭’ ‘행복한 들’ ‘커뮤니티 숲’ ‘조용한 물숲, 향긋한 꽃섬’ 등을 꾸며, 국토교통부가 주최하는 2014대한민국경관대상에서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경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국내 최대 규모 바닥분수와 공연장, 전망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원천호수는 주말이면 사람들로 붐빈다. 조금 떨어진 신대호수에선 더 여유 있는 산책을 즐기기 좋다. 둘 사이에는 숲속
안동은 예부터 ‘두 물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으로 영가(永嘉)라 불렀다. 두 물〔永〕은 낙동강과 반변천이다. 하지만 안동으로 이어진 물길은 강이라는 이름을 잠시 접고 호수로 남았다. 안동댐과 임하댐을 건설하면서 안동호와 임하호라는 거대한 호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청량산을 휘감고 내려오던 낙동강 물길은 도산서원을 거쳐 한 굽이 지나면 예끼마을과 만난다. 안동댐 건설로 예안면이 대부분 물에 잠기자, 서부리 일대에 살던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예끼마을이 조성됐다. 차마 고향을 버리지 못한 이주민의 서글프고 애잔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선성현문화단지 조성 사업’에 이어 ‘이야기가 있는 마을 조성 사업’을 시작하면서 ‘예술의 끼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예끼마을이라 했다. 문화단지 마을 입구에서 내려다보면 마을과 안동호 풍광이 어우러진다. 1976년에 조성한 마을이라 바둑판처럼 구획된 모양이 단순한 느낌도 들지만, 돌아다니다 보면 정겹고 유쾌하다. 근민당, 구 우체국, 마을회관 등은 갤러리로 탈바꿈하고, 마을 곳곳에 벽화와 작품이 전시된다. 선성현문화단지 입구 골목은 냇가 풍경을 트릭 아트처럼 꾸며 사진 촬영 장소로 인기다. 예끼마을을 대표하는 선성수상길은 잔
다향 그윽한 차밭에 앉아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흩뿌린 물감처럼 점점이 번지는 초록 세상도 멍하니 바라보며 느린 여행을 만끽하자. 게으른 상춘객의 팔자 좋은 소리라 해도 상관없다. 가끔 게으름 부리며 보낸 시간이 더 소중하게 기억되기도 하니까. 하동은 우리나라 최대 야생 차 생산지다. 화개면과 악양면에만 야생 차밭 300여곳이 있다. 그 면적이 무려 627ha. 이들 차밭에서 연간 1020t이 넘는 차를 생산한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차의 30%에 이르는 양이다. 섬진강 물길 따라 화개면에 들어서면 하동십리벚꽃길로 유명한 화개천 너머로 야생 차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야생이라는 이름처럼 형태도, 위치도 제각각이다. 물길 옆 너른 평지에 자리한 차밭이 있는가 하면, 섬마을 다랑논처럼 산기슭에 계단식으로 축대를 쌓아 조성한 차밭도 있다. 최적의 조건 지리산과 섬진강에 인접한 화개·악양 일대는 안개가 많고 다습하며, 찻잎을 따는 시기에 일교차가 커 차나무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으로 평가받는다. 하동 야생 차는 이런 독특한 환경과 재배법으로 2015년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됐으며, 2017년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의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정금차밭은
융단을 깐 듯한 차밭에서 향긋한 차를 즐기다 보면 어지러운 마음도 가지런해진다. 차밭은 전남 보성이 유명하지만, 전북 익산에도 차밭 여행지가 있다. 익산시 웅포면 입점리에 가면 차밭에서 야생 차를 맛보고, 녹차 만드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익산은 차 애호가 사이에서 이름난 지역이다. 우리나라 최북단 야생 차나무 군락이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날씨를 좋아하는 차나무는 주로 남쪽 지방에서 재배하지만, 보성이나 하동보다 위쪽에서도 자란다. 웅포면 입점리 산30번지에 2009년 익산시가 큼지막하게 세운 야생차북한계군락지(N 36°03′) 표석이 있다. 직접 체험 표석 뒤는 임해사 터다. 임해사는 숭림사의 말사로, 구전에 따르면 조선 초기에 소실됐다. 사찰에서 차를 많이 마신 시기로, 이때부터 차나무를 키운 것으로 추정한다. 절이 소실된 뒤에도 차나무는 살아남아 지금까지 이어온 듯하다. 야생 차나무는 대규모 차밭과 달리 산에서 소규모로 자라며, 이곳 절터 부근에서 볼 수 있다. 차나무의 생육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따로 손대지 않아 주변에 풀이 우거졌다. 그래서 다른 차밭처럼 정갈한 모습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절터 위로 봉화산 자락을 따라 차나무 군락이 펼
차향은 마당 깊숙이 머문다. 꽃향기에 수수한 한옥 향까지 어우러져 완연한 휴식이 찾아든다. 강화초지대교와 맞닿은 강화도 길상면에는 전통찻집 두 곳이 따사롭다. 온수리(전등사로) 전등사 죽림다원과 장흥리(길상로) 도솔미술관은 한옥에 기대 전통차를 마시는 공간이다. 이른 오전에 찾은 전등사는 고즈넉함이 더하다. 아침 햇살이 산사의 여백을 채우는 사색의 시간이다. 죽림다원은 마당 너머 천년 고찰 전등사를 품에 안고 있다. 달각거리는 다기 소리와 목탁 소리가 간간이 뒤섞이는 이 시간이 평화롭다. 죽림다원은 20여년 전에 문을 열었다. 신도들이 차를 마시며 잠시 쉬다 가는 휴식 공간이 본격적인 찻집으로 모습을 바꿨다. 나무 탁자로 채운 다원 마당에는 전등사 대조루와 종루가 병풍처럼 드리워진다. 대조루 계단 너머에는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 약사전, 범종 등이 수줍게 담겨 있다. 14가지 한약재 한옥 찻집 죽림다원은 단청과 커다란 서까래가 운치 있다. 내부에는 형형색색 도자기들이 전시되고, 탁자마다 놓인 화분이 봄 분위기를 더한다. 한가한 시간에 들르면 창가 자리에 앉아 전등사를 만끽해도 좋다. 벚꽃이 지고 나면 수선화, 백리향, 작약, 돌단풍, 철쭉, 매발톱이 꽃망울
그윽하게 퍼지는 차향에 온몸의 긴장이 스르르 풀린다. 찻잔에 깃든 온기를 느끼며 눈을 감고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본다. 일상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와 마주한 순간, 온갖 상념으로 가득한 머릿속을 비우면 비로소 마음에 평안이 찾아든다. 제주 취다선리조트는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힐링 공간이다. 다도와 요가, 명상 체험이 색다른 여행을 선물한다. 취다선리조트에서 보내는 하루는 향기로운 차향과 함께 시작된다. 이른 아침 지하 1층 명상룸에서 진행하는 차 명상은 투숙객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명상룸은 한쪽 벽면을 유리로 마감해 바깥의 자연이 온전히 느껴진다. 반짝이는 햇살과 싱그러운 풍경에 잠기운이 순식간에 달아난다. 보글보글 끓는 찻물과 쪼르륵 차를 따르는 소리에 들뜬 기분이 가라앉는다. 각자 자리를 잡고 방석을 두껍게 깔고 앉아 명상을 위한 자세를 가다듬는다. 자연과 함께 차 명상 중에 마시는 차는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도록 도와준다. 찻잔을 받아 들고 먼저 영롱한 빛깔과 따스한 온기를 느껴본다. 은은한 차향을 맡으며 마지막에 차 한 모금을 머금은 채 천천히 내면에 집중한다. 자연스럽게 차를 넘긴 뒤엔 호흡법을 통해 명상을 이어간다. 처음엔 어렵지만 들고 나는 호흡
여름이나 가을, 겨울도 좋지만 봄이면 생각나고 찾고 싶은 공간이 있다. 완주 소양면에 자리한 아원고택도 그런 곳이다. 대청에 앉아 있으면 종남산의 부드러운 능선이 마음을 느긋하게 만들어준다. 소맷자락으로 슬그머니 봄바람이 불어오고, 처마 아래로 스며든 봄볕이 무릎을 따뜻하게 데운다. 창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은 액자에 담긴 수묵화 같다. 아원고택은 방탄소년단이 ‘2019 서머패키지 인 코리아’ 영상과 화보를 찍으면서 알려졌다. 2016년 11월 문을 연 아원(我園)은 ‘우리들의 정원’이라는 뜻. 원래 아원고택이 있던 자리는 산비탈과 논밭이었다. 건축가 전해갑 대표가 경남 진주의 250년 된 고택과 전북 정읍의 150년 된 고택을 이곳으로 고스란히 옮겨왔다. 기본 뼈대는 그대로 살리고, 서까래와 기와만 교체했다고 한다. 우리들의 정원 아원고택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원갤러리&뮤지엄으로 입장해야 한다. 성곽처럼 보이는 단단한 콘크리트 구조물 위로 한옥의 날렵한 처마를 절묘하게 올렸다. 이곳은 한옥과 달리 현대적인 공간이다. 한옥 아래 자리한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내부는 갤러리 공간인데, 1년에 2~3회 현대미술 초대전을 연다. 가운데 놓인 커다란 탁자에서
산책은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이다. 더불어 오랜 세월 명상의 한 과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숲속을 거닐며 강의와 토론을 즐겨 산책을 뜻하는 페리파토스학파로 불렸다. 독일 철학자 니체도 “모든 위대한 생각은 걷기에서 나온다”고 했다. 걷고 사유하며 예술적인 감성까지 물씬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산책로가 있다. 경기도 안양에 자리한 안양예술공원이다. 안양예술공원의 역사는 1930년대, 그러니까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안양역장이었던 혼다 사고로가 삼성천을 막아 천연 수영장을 만들고, ‘안양풀’이라고 이름 붙였다. 피서객을 끌어모아 막대한 철도 수입을 챙기려는 목적이었다. 1969년에 정부가 국민관광지로 ‘안양유원지’를 지정하면서 해마다 평균 100만명이 몰려, 수도권 최고의 피서지로 자리매김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안양유원지란 이름을 여전히 익숙하게 사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연과 함께 하지만 1977년 유례없는 대홍수가 안양유원지를 휩쓸었다. 천연 수영장이 참혹하게 파괴되고, 상류에서 토사와 자갈이 쏟아져 옛 모습을 완전히 잃었다. 1984년 국민관광지 지정이 취소되면서 안양유원지의
푸를 청(靑)에 담쟁이 라(蘿). 봄이면 담쟁이덩굴 푸르른 대구 청라언덕에는 오래된 붉은 벽돌집이 오순도순 자리 잡았다. 비슷한 듯 저마다 개성을 뽐내는 벽돌집은 지은 지 100년이 훌쩍 넘는 근대 문화유산이다. 원래 더 많은 집이 있었지만, 지금 남은 건 세 채뿐. 모두 20세기를 전후해 대구로 온 미국 선교사들이 지은 건물이다. 미국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들어온 건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다. 개항장 부산을 통해 대구로 온 선교사들은 청라언덕에 자리 잡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장례를 치르지도 못한 시신을 묻던 곳이라, 별다른 텃세 없이 이방인들이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청라언덕이란 이름도 이들이 언덕 곳곳에 심은 담쟁이덩굴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독특한 분위기 달구벌대로에서 언덕을 오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은 블레어 주택(대구유형문화재 26호)이다. 1901년 한반도에 들어온 선교사 블레어가 살던 집으로, 1910년경 지었다. 당시 최첨단 공법인 콘크리트로 기초를 다지고, 굴뚝이 높은 2층 벽돌집을 올렸다. 2층 박공을 대부분 차지하는 반원형 유리창이 눈길을 끈다. 이 창은 2층에 있는 선룸(sunroom)으로, 자연광을 끌어들이는
쌍산재는 운조루, 곡전재와 함께 구례 3대 전통 가옥이다. 주거 공간에 자연을 품고 누리는 별서 정원을 더한 쌍산재는 2018년 전남 민간정원 5호로 지정돼, 전통과 역사뿐 아니라 정원의 가치를 더하며 이름을 높였다. 최근에는 tvN 예능 프로그램 〈윤스테이〉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구례 여행의 핫 플레이스가 됐다. 외국인에게 한국의 멋과 맛을 선사하는 체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쌍산재가 고택의 매력을 보여주며 관심을 끌었다. 임세웅 문화관광해설사는 “쌍산재는 들어가서 보지 않으면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집”이라고 표현했다. 쌍산재는 그만큼 섬세하고 자연스러우며, 둘러볼수록 놀라움이 가득한 고택이다. 규모가 큰 대갓집을 예상하고 왔다가 눈앞에 보이는 모습에 실망하다가도, 안으로 들어갈수록 짙은 매력에 빠진다. 주거 공간만 생각하다가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에 들어서면 여행자 스스로 느끼고 몰입하기 때문이다. 고택의 매력 쌍산재는 당몰샘에서 시작한다. 1000년이 넘은 당몰샘은 지독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늘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면서 물맛도 좋다. 쌍산재가 위치한 상사마을은 구례를 대표하는 장수 마을인데, 당몰샘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