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의 재발견 ④경주 불국사와 석굴암

다시 쓰는 수학여행기

경주의 다른 이름은 ‘대한민국 수학여행 1번지’다. 경주라는 두 글자에 수학여행을 떠올리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수학(修學)은 ‘학문을 닦는다’라는 뜻이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는 추억만 쌓고 왔다. 그래서 경주로 다시 떠나본다. 당시 못 채운 ‘수학’의 꿈을 품고.

수학여행 대표 코스 불국사(사적)부터 시작이다. 매표소에서 일주문과 천왕문을 거쳐 불국사로 오르는 길, 오래전 기억이 가물가물 되살아난다. 대웅전(보물)으로 가는 길목의 돌계단 앞에 이르자 기억은 선명해진다. 우뚝한 범영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계단이 있다. 그때는 챙겨 보지 못한 안내문이 눈에 띈다. 동쪽 자하문 앞 계단이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극락전으로 향하는 안양문 앞 계단이 연화교와 칠보교(국보)다. 수학여행 때 단체 사진을 찍던 청운교와 백운교는 지금도 불국사 인증 사진 명소다.

인증 사진 명소

청운교와 백운교, 연화교와 칠보교는 신라 재상 김대성이 불국사를 짓기 시작한 751년(경덕왕 10년)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한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다리 아래 속세와 위쪽 부처 세계를 이어준다는 의미가 있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전체 34계단, 연화교와 칠보교는 18계단이다. 규모는 다르지만, 계단 형태로 만든 다리라는 점과 다리 아래가 무지개 모양인 점 등은 비슷하다. 전자는 웅장함이, 후자는 섬세함이 돋보인다.

양쪽 돌계단 다리 모두 보존을 위해 출입이 금지된 상태라 옆길을 통해 대웅전으로 가야 한다. 대웅전 뜰에 들어서자마자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역사에 관심 없는 이라도 두 탑을 보는 순간, 탄성을 내지른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탑 모두 국보다. 석가탑의 문화재 명칭은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이지만, 우리에겐 원래 이름 석가여래상주설법탑을 줄여서 부르는 석가탑이 익숙하다.

뜰 동쪽과 서쪽에 마주 선 두 탑 역시 751년(경덕왕 10년)에 건립한 것으로 추측한다. 높이는 다보탑 10.29m, 석가탑 10.75m로 비슷하나 생김새는 확연히 다르다. 동쪽의 다보탑은 특수한 탑 형태를, 서쪽의 석가탑은 일반적인 형태를 취한다. 수학여행 때 두 탑 앞에서 어느 게 다보탑이고 석가탑인지 헷갈린다는 학생이 종종 있었다. 선생님은 10원짜리 동전을 꺼내 보이며 “10원짜리 동전에 나오는 탑이 다보탑이다”라고 하셨다. 요즘 아이들은 10원짜리 동전을 볼 일이 별로 없겠지만, 1970~1990년대 학생들에게 다보탑은 10원짜리 동전에 나오는 친숙한 탑이다.


다보탑과 석가탑은 강탈과 도굴의 아픔을 겪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다보탑을 해체·보수하면서 사리와 사리장치를 비롯한 유물이 모두 사라졌다. 기단 돌계단 위에 있던 돌사자도 넷 중 하나만 남았다. 1960년대 도굴로 손상된 석가탑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여러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때 발굴된 유물은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라는 이름으로 국보에 지정됐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알려진 <무구정광대다라니경>도 포함한다.

우리나라 대표 문화 관광 도시
초중고 수학여행 단골코스

사리장엄구는 현재 불국사 천왕문 인근에 세운 불국사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수학여행 때 박물관에 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자책할 필요 없다. 불국사박물관은 2018년에 개관했으니 이전 수학여행객은 기억 못 하는 게 당연하다. 다시 찾은 불국사에서 국보로 지정된 여러 유물도 살펴볼 수 있어 더욱 알차다.

불국사에서 나와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린다. 불국사와 세트 코스인 석굴암 석굴(국보)은 751년(경덕왕 10년)에 만들기 시작해 774년(혜공왕 10년)에 완성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효성이 지극한 김대성이 현세와 전생의 부모를 위해 각각 불국사와 석굴암을 창건했다고 한다.

토함산 중턱에 화강암으로 석굴을 만들고 본존불을 모셨다. 내부는 직사각형 전실과 원형 주실, 두 곳을 연결하는 통로로 구성된다. 온화한 본존불을 중심으로 전실과 주실 벽면에 여러 불상을 정교하게 새겼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 유리 너머로 본존불과 부조를 감상할 수밖에 없다. 석굴암 내부는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공동 등재됐다. 입장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주말·공휴일 오전 8시부터 / 연중무휴), 관람료는 각각 어른 6000원, 청소년 4000원, 어린이 3000원이다(만 70세 이상·부모 동반 7세 이하 무료). 불국사박물관 관람료 별도.

국립경주박물관도 빼놓으면 안 된다. 신라의 천년 역사와 문화유산을 한눈에 살펴보는 곳으로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특별전시관, 월지관, 어린이박물관, 옥외 전시장 등을 갖췄다. 신라역사관에는 금관총, 황남대총, 천마총에서 나온 국보·보물급 유물이 상당수 전시된다. 교과서에서 봄 직한 신라 시대 금관 같은 문화재가 눈앞에 있으니 신기하다. 옥외 전시장에도 성덕대왕신종(국보),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등 귀한 유물이 많으니 놓치지 말자.

신라 시대 고분군 대릉원(사적)은 역사 학습장이자 산책 코스로 훌륭하다. 평지에 봉긋봉긋 솟아오른 고분이 고도(古都) 경주의 위상을 보여준다. 고분 사이 산책로를 걷는 발걸음에 기품이 실린다. 내부 관람이 가능한 천마총, 거대한 쌍분인 황남대총, 신라 13대 왕 미추이사금의 무덤인 미추왕릉(사적)이 주요 볼거리다. 황남대총과 목련이 어우러지는 포인트는 전국구 포토 존으로 사랑받는다.


첨성대 야경

첨성대(국보)도 수학여행 단체 사진 단골 코스다. 선덕여왕 때 만든 것으로 추정하는 관측대로, 높이 약 9m다. 부채꼴 돌을 27단으로 차곡차곡 쌓아 원통 부분을 올리고, 정상부에는 돌을 정(井) 자형으로 놓았다. 첨성대는 별을 보던 장소인 만큼 밤에 더 신비롭다. 달빛과 조명이 은은한 첨성대 야경으로 경주 여행을 마무리하자.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불국사→석굴암→국립경주박물관→대릉원→첨성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불국사→석굴암→경주월드→동궁과 월지→첨성대
둘째 날: 국립경주박물관→월정교→황리단길→대릉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불국사 www.bulguksa.or.kr
-석굴암 http://seokguram.org
-국립경주박물관 https://gyeongju.museum.go.kr
-경주문화관광 www.gyeongju.go.kr/tour/index.do

문의 전화
-불국사 054)746-9913
-불국사관광안내소 054)746-4747
-석굴암 054)746-9933
-국립경주박물관 054)740-7500
-대릉원 054)750-8650

대중교통
[버스] 서울-경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2~12회(06:50~  22:00) 운행, 약 3시간30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7~8회(07:00~17:20) 운행, 약 4시간 소요. 고속버스·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10번·11번 시내버스 이용, 불국사 정류장 하차, 불국사(불이문 매표소)까지 도보 약 7분. 불국사나 불국사매표소 정류장에서 12번 시내버스 이용, 석굴암주차장 정류장 하차, 석굴암(매표소)까지 도보 약 3분.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경주시교통정보센터 054)779-6849, http://its.gyeongju.go.kr [기차] 서울역-신경주역, KTX 하루 17~20회(05:15~21:30) 운행, 2시간~2시간50분 소요. 신경주역 정류장에서 700번 시내버스 이용, 불국사 정류장 하차, 불국사(불이문 매표소)까지 도보 약 7분. 불국사나 불국사매표소 정류장에서 12번 시내버스 이용, 석굴암주차장 정류장 하차, 석굴암(매표소)까지 도보 약 3분.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경주시교통정보센터 054)779-6849, http://its.gyeongju.go.kr

자가운전
불국사·석굴암 / 경부고속도로→경주 IC에서 경주·경주국립공원 방면→배반네거리에서 울산·불국사 방면 우회전→산업로 8.1㎞ 이동→불국사 방면 좌회전→불국로→불국사→불국로 방면 좌회전 후 직진→석굴로·석굴암 방면 좌회전→석굴암

숙박 정보
-불국사한옥팜스테이: 경주시 진티길, 010-5489-1742, http://불국사한옥.com
-신라부티크호텔프리미엄: 경주시 강변로, 054)745-3500, http://sillaboutique.co.kr
-황남관한옥호텔: 경주시 포석로, 054)620-5000, http://hwangnamguan.co.kr

식당 정보
-불국사밀면(밀면+석쇠불고기): 경주시 불국장터길, 054)773-6161
-함양집 보불로점(한우물회): 경주시 보불로, 054)746-9990
-시즈닝(파스타): 경주시 첨성로99번길, 054)774-7477, www.instagram.com/__seasoning

주변 볼거리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경주 계림, 경주동궁원, 경주엑스포대공원, 보문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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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