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의 재발견 ④경주 불국사와 석굴암

다시 쓰는 수학여행기

경주의 다른 이름은 ‘대한민국 수학여행 1번지’다. 경주라는 두 글자에 수학여행을 떠올리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수학(修學)은 ‘학문을 닦는다’라는 뜻이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는 추억만 쌓고 왔다. 그래서 경주로 다시 떠나본다. 당시 못 채운 ‘수학’의 꿈을 품고.

수학여행 대표 코스 불국사(사적)부터 시작이다. 매표소에서 일주문과 천왕문을 거쳐 불국사로 오르는 길, 오래전 기억이 가물가물 되살아난다. 대웅전(보물)으로 가는 길목의 돌계단 앞에 이르자 기억은 선명해진다. 우뚝한 범영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계단이 있다. 그때는 챙겨 보지 못한 안내문이 눈에 띈다. 동쪽 자하문 앞 계단이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극락전으로 향하는 안양문 앞 계단이 연화교와 칠보교(국보)다. 수학여행 때 단체 사진을 찍던 청운교와 백운교는 지금도 불국사 인증 사진 명소다.

인증 사진 명소

청운교와 백운교, 연화교와 칠보교는 신라 재상 김대성이 불국사를 짓기 시작한 751년(경덕왕 10년)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한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다리 아래 속세와 위쪽 부처 세계를 이어준다는 의미가 있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전체 34계단, 연화교와 칠보교는 18계단이다. 규모는 다르지만, 계단 형태로 만든 다리라는 점과 다리 아래가 무지개 모양인 점 등은 비슷하다. 전자는 웅장함이, 후자는 섬세함이 돋보인다.

양쪽 돌계단 다리 모두 보존을 위해 출입이 금지된 상태라 옆길을 통해 대웅전으로 가야 한다. 대웅전 뜰에 들어서자마자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역사에 관심 없는 이라도 두 탑을 보는 순간, 탄성을 내지른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탑 모두 국보다. 석가탑의 문화재 명칭은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이지만, 우리에겐 원래 이름 석가여래상주설법탑을 줄여서 부르는 석가탑이 익숙하다.

뜰 동쪽과 서쪽에 마주 선 두 탑 역시 751년(경덕왕 10년)에 건립한 것으로 추측한다. 높이는 다보탑 10.29m, 석가탑 10.75m로 비슷하나 생김새는 확연히 다르다. 동쪽의 다보탑은 특수한 탑 형태를, 서쪽의 석가탑은 일반적인 형태를 취한다. 수학여행 때 두 탑 앞에서 어느 게 다보탑이고 석가탑인지 헷갈린다는 학생이 종종 있었다. 선생님은 10원짜리 동전을 꺼내 보이며 “10원짜리 동전에 나오는 탑이 다보탑이다”라고 하셨다. 요즘 아이들은 10원짜리 동전을 볼 일이 별로 없겠지만, 1970~1990년대 학생들에게 다보탑은 10원짜리 동전에 나오는 친숙한 탑이다.


다보탑과 석가탑은 강탈과 도굴의 아픔을 겪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다보탑을 해체·보수하면서 사리와 사리장치를 비롯한 유물이 모두 사라졌다. 기단 돌계단 위에 있던 돌사자도 넷 중 하나만 남았다. 1960년대 도굴로 손상된 석가탑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여러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때 발굴된 유물은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라는 이름으로 국보에 지정됐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알려진 <무구정광대다라니경>도 포함한다.

우리나라 대표 문화 관광 도시
초중고 수학여행 단골코스

사리장엄구는 현재 불국사 천왕문 인근에 세운 불국사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수학여행 때 박물관에 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자책할 필요 없다. 불국사박물관은 2018년에 개관했으니 이전 수학여행객은 기억 못 하는 게 당연하다. 다시 찾은 불국사에서 국보로 지정된 여러 유물도 살펴볼 수 있어 더욱 알차다.

불국사에서 나와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린다. 불국사와 세트 코스인 석굴암 석굴(국보)은 751년(경덕왕 10년)에 만들기 시작해 774년(혜공왕 10년)에 완성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효성이 지극한 김대성이 현세와 전생의 부모를 위해 각각 불국사와 석굴암을 창건했다고 한다.

토함산 중턱에 화강암으로 석굴을 만들고 본존불을 모셨다. 내부는 직사각형 전실과 원형 주실, 두 곳을 연결하는 통로로 구성된다. 온화한 본존불을 중심으로 전실과 주실 벽면에 여러 불상을 정교하게 새겼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 유리 너머로 본존불과 부조를 감상할 수밖에 없다. 석굴암 내부는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공동 등재됐다. 입장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주말·공휴일 오전 8시부터 / 연중무휴), 관람료는 각각 어른 6000원, 청소년 4000원, 어린이 3000원이다(만 70세 이상·부모 동반 7세 이하 무료). 불국사박물관 관람료 별도.

국립경주박물관도 빼놓으면 안 된다. 신라의 천년 역사와 문화유산을 한눈에 살펴보는 곳으로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특별전시관, 월지관, 어린이박물관, 옥외 전시장 등을 갖췄다. 신라역사관에는 금관총, 황남대총, 천마총에서 나온 국보·보물급 유물이 상당수 전시된다. 교과서에서 봄 직한 신라 시대 금관 같은 문화재가 눈앞에 있으니 신기하다. 옥외 전시장에도 성덕대왕신종(국보),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등 귀한 유물이 많으니 놓치지 말자.

신라 시대 고분군 대릉원(사적)은 역사 학습장이자 산책 코스로 훌륭하다. 평지에 봉긋봉긋 솟아오른 고분이 고도(古都) 경주의 위상을 보여준다. 고분 사이 산책로를 걷는 발걸음에 기품이 실린다. 내부 관람이 가능한 천마총, 거대한 쌍분인 황남대총, 신라 13대 왕 미추이사금의 무덤인 미추왕릉(사적)이 주요 볼거리다. 황남대총과 목련이 어우러지는 포인트는 전국구 포토 존으로 사랑받는다.


첨성대 야경

첨성대(국보)도 수학여행 단체 사진 단골 코스다. 선덕여왕 때 만든 것으로 추정하는 관측대로, 높이 약 9m다. 부채꼴 돌을 27단으로 차곡차곡 쌓아 원통 부분을 올리고, 정상부에는 돌을 정(井) 자형으로 놓았다. 첨성대는 별을 보던 장소인 만큼 밤에 더 신비롭다. 달빛과 조명이 은은한 첨성대 야경으로 경주 여행을 마무리하자.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불국사→석굴암→국립경주박물관→대릉원→첨성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불국사→석굴암→경주월드→동궁과 월지→첨성대
둘째 날: 국립경주박물관→월정교→황리단길→대릉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불국사 www.bulguksa.or.kr
-석굴암 http://seokguram.org
-국립경주박물관 https://gyeongju.museum.go.kr
-경주문화관광 www.gyeongju.go.kr/tour/index.do

문의 전화
-불국사 054)746-9913
-불국사관광안내소 054)746-4747
-석굴암 054)746-9933
-국립경주박물관 054)740-7500
-대릉원 054)750-8650

대중교통
[버스] 서울-경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2~12회(06:50~  22:00) 운행, 약 3시간30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7~8회(07:00~17:20) 운행, 약 4시간 소요. 고속버스·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10번·11번 시내버스 이용, 불국사 정류장 하차, 불국사(불이문 매표소)까지 도보 약 7분. 불국사나 불국사매표소 정류장에서 12번 시내버스 이용, 석굴암주차장 정류장 하차, 석굴암(매표소)까지 도보 약 3분.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경주시교통정보센터 054)779-6849, http://its.gyeongju.go.kr [기차] 서울역-신경주역, KTX 하루 17~20회(05:15~21:30) 운행, 2시간~2시간50분 소요. 신경주역 정류장에서 700번 시내버스 이용, 불국사 정류장 하차, 불국사(불이문 매표소)까지 도보 약 7분. 불국사나 불국사매표소 정류장에서 12번 시내버스 이용, 석굴암주차장 정류장 하차, 석굴암(매표소)까지 도보 약 3분.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경주시교통정보센터 054)779-6849, http://its.gyeongju.go.kr

자가운전
불국사·석굴암 / 경부고속도로→경주 IC에서 경주·경주국립공원 방면→배반네거리에서 울산·불국사 방면 우회전→산업로 8.1㎞ 이동→불국사 방면 좌회전→불국로→불국사→불국로 방면 좌회전 후 직진→석굴로·석굴암 방면 좌회전→석굴암

숙박 정보
-불국사한옥팜스테이: 경주시 진티길, 010-5489-1742, http://불국사한옥.com
-신라부티크호텔프리미엄: 경주시 강변로, 054)745-3500, http://sillaboutique.co.kr
-황남관한옥호텔: 경주시 포석로, 054)620-5000, http://hwangnamguan.co.kr

식당 정보
-불국사밀면(밀면+석쇠불고기): 경주시 불국장터길, 054)773-6161
-함양집 보불로점(한우물회): 경주시 보불로, 054)746-9990
-시즈닝(파스타): 경주시 첨성로99번길, 054)774-7477, www.instagram.com/__seasoning

주변 볼거리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경주 계림, 경주동궁원, 경주엑스포대공원, 보문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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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