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여행 ②태안 네이처월드

12월 여행의 밤은 꽃보다 반짝여서

서해 일몰은 12월에 한층 장엄하다. 충남 태안군은 남북으로 길쭉한 서쪽 해안이 바다와 접한다. 그래서 소문난 일몰 명당이 많고, 연말이면 여행객이 모여든다. 태안이 한 해를 마무리하기 좋은 여행지인 까닭은 또 있다. 해가 지고 나면 태안빛축제가 불을 밝힌다.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이는 불빛이 다시 한번 우리를 설레게 한다.

태안빛축제는 네이처월드에서 열린다. 600만 개 발광다이오드(LED) 전구가 오색찬란하다. 사람이 만든 불빛이지만, 마치 겨울의 왕국에 핀 꽃인 양하다. 가장 먼저 남문광장의 커다란 ‘선물 상자’ 조형물이 반긴다. 선물 상자를 열어보듯 두근대는 마음으로 발을 들인다.

선물상자 열어보듯

그 뒤편 ‘TAEAN FESTIVAL’ 글자 옆에는 태안빛축제 안내도가 있다. 마음 내키는 대로 걸어도 무방하지만, 네이처월드가 생각보다 넓다. 안내도 사진을 찍어두면 위치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일반적인 첫 코스는 ‘선물 상자’ 왼쪽의 실내 전시실 ‘빛축제전시관’이다. 천장이 낮아 색색 불빛이 한층 가깝게 느껴지는 통로형 전시실이다. 머리 위를 수놓은 전구가 은하수처럼 반짝거린다. 전시관 반대편 출구로 나오면 가벼운 장면전환이 일어난다. 다시 눈앞에 태안빛축제 전경이 펼쳐지며 본격적인 빛의 향연이 시작되는 듯하다.

그때부터 빛이 부르는 대로 자유롭게 걸음을 떼어보자. 오른쪽 대각은 ‘하트철길’과 ‘조명동산’이 차례로 나온다.


하트 조명이 겹겹이 반짝이는 ‘하트철길’은 연인들이 인생 사진을 찍기에 그만이다. 왼쪽은 ‘트로이목마’로 이어진다. ‘트로이목마’는 네이처월드에서 단일 조형물로는 가장 높다. 어떻게 보면 공룡을 닮은 듯해서 아이들이 좋아한다. ‘트로이목마’ 근처에 유일한 카페가 있다.

토요일만 영업하는데 관람객이 적을 때는 문을 닫기도 한다. 네이처월드는 편의 시설이 아쉽다. 따뜻한 음료 정도는 미리 챙기기를 권한다. ‘트로이목마’를 지나서 작은 섬들과 다리를 품은 중앙 연못에 이른다. 세로로 긴 연못 가운데 ‘만남의다리’가 있다. 다리 아래쪽(동쪽) ‘고니포토존’은 태안빛축제 축제지기가 네이처월드 최고의 포토 존으로 꼽은 곳이다.

다정하게 머리를 맞댄 고니 한 쌍이 사랑스럽다. 특히 연못 속 작은 섬의 반영과 어울려 화려함을 뽐낸다. 관람객은 스마트폰 카메라를 손에서 쉬이 떼지 못한다.

연못 위쪽(서쪽)은 물가에 덱이 있어 사진 찍기에 적당하다. 덱에서 좀 더 서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소원터널’을 지나 ‘숲속LED정원’으로 향한다. ‘숲속LED정원’의 꽃과 나비 조형물은 올해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공작’ 조형물도 눈길을 끈다. 이쯤이 하이라이트라 생각해선 곤란하다. ‘만남의다리’ 북쪽 전망대에 오르면 알 수 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빛의 향연
해상인도교서 즐기는 다양한 볼거리

전망대는 태안빛축제 전경을 감상하는 장소에 그치지 않는다. 주변 조망은 기본, ‘은하수카펫’과 ‘메인LED동산’을 위한 전용 전망대라 해도 손색이 없다. 전망대 서쪽 ‘은하수카펫’은 대형 꽃을 수놓은 거대한 조명 카펫이다. 다채로운 불빛이 어우러져 신이 그린 한 폭의 그림 같다.

‘메인LED동산’은 태안빛축제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작품이다. ‘메인LED동산’을 거닐 때는 전체 문양을 알 수 없지만, 전망대에서 태극기 문양의 진가가 드러난다. ‘메인LED동산’ 서쪽에 ‘출렁다리’가 있는데, 물가에 세운 남녀의 얼굴 조명이 이색 풍경을 연출한다.


네이처월드는 현재 야간에만 개방한다.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운영 시간은 오후 5시30분~10시(9시까지 입장, 연중무휴), 입장료는 어른 9000원, 유아·청소년(36개월~19세) 7000원이다. 비 오는 날에는 점등하지 않으므로 미리 확인하고 방문하는 게 안전하다. 반려동물 동반 시 목줄과 배변 봉투를 지참해야 하며, 중·대형견은 입마개 착용이 필수다.

네이처월드에서 드르니항이 멀지 않다. 이곳에 해상인도교 ‘대하랑꽃게랑’이 있어 일몰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일대에서 대하와 꽃게가 많이 잡혀 붙은 이름으로, 다리 모양도 대하와 꽃게를 형상화했다. 대하랑꽃게랑은 태안반도의 드르니항과 안면도 백사장항을 잇는다.

두 항은 자동차로 이동하면 약 5㎞를 돌아가야 하지만, 걸어서 오갈 때는 대하랑꽃게랑을 건너면 된다. 음식점이나 상가는 백사장항 쪽에 많고, 한적하게 일몰을 누리기에는 드르니항이 적당하다. 해가 길마섬 쪽으로 지는데, 태안의 꽃지해수욕장이나 운여해변과 견줄 만하다. 대하랑꽃게랑은 야경이 또 다른 볼거리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태안해양유물전시관도 가볼 만하다. 자동차로 닿는 태안의 가장 서쪽, 신진도에 위치한다. 군청이 있는 시가지에서 약 20㎞ 거리지만, 가족이 재미나게 보고 체험하는 전시관이다. 전시관은 1~2층으로 나뉘는데, 특별전시실을 제외한 상설전시실은 실제에 가깝게 재현한 마도1호선이 두 층을 아우르며 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해, 층의 구분이 중요하지 않다.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1층 수중발굴체험전시실은 ‘수중 문화유산 실감 영상 체험’과 ‘수중 발굴 가상현실(VR) 체험’ 프로그램으로 구성해 아이들에게 인기다. 전시관 야외에서 안흥항까지 해상인도교가 놓여 일대의 바다 풍경도 한 눈에 들어온다.

태안읍 백화산 남서쪽에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있다. 지난해 10월에 개관한 태안의 ‘신상’ 여행지이자, 전국에서 세 번째 동학 기념관이다. 태안은 내포 지역 동학혁명군이 마지막 항전을 벌인 곳이다. 기념관에는 동학혁명과 태안의 동학혁명 역사를 4가지 주제로 전시한다.

전시는 주로 1층에서 관람하고, 2층 휴게실에서 기념관 뒤 교장바위 쪽 갑오동학혁명군추모탑으로 길이 연결된다. 백화산 정상 방향으로 가면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국보)을 만난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태안해양유물전시관→드르니항→네이처월드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태안해양유물전시관→드르니항→네이처월드
-둘째 날: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

관련 웹 사이트 주소
-네이처월드(태안빛축제) www.ffestival.co.kr
-태안관광 www.taeantours.com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태안해양유물전시관 www.seamuse.go.kr/taean

문의 전화
-네이처월드 041)675-9200
-태안군청 관광진흥과 041)670-2583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태안해양유물전시관 041)419-7000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041)670-5967


대중교통
[버스] 서울-태안,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14회(07:20~20:20) 운행, 약 2시간10분 소요.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루 6회(07:50  ~20:00) 운행, 약 2시간40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4회(07:20~18:10) 운행, 약 2시간30분 소요. 태안공영버스터미널에서 731번 버스 이용, 모레논 정류장 하차, 네이처월드 남문매표소까지 도보 약 340m.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태안여객 041)675-6674~5 태안대중교통정보 www.taean-pti.kr

자가운전
서해안고속도로 홍성톨게이트→갈산교차로에서 내포로·해미 방면 1.3km→상촌교차로에서 천수만로·남당리·천북·안면 방면 좌회전, 23km→원정교차로에서 안면대로·안면·고남 방면 좌회전, 98m→마검포길 마검포·신온리 방면 오른쪽, 1km→마검포길 마검포 방면 우회전, 988m→네이처월드

숙박 정보
-어나더비치: 남면 곰섬로, 010-2859-6249, www.anotherbeach.co.kr
-스테이앤드스튜디오 여여재: 남면 몽대로, 010-3223-1183, www.yeoyeojae.com
-그람피하우스: 남면 안면대로, 010-8515-6653, www.grumpy.co.kr

식당 정보
-생생왕꽃게(생생왕정식): 남면 천수만로, 041)675-4133, www.sjcrab.modoo.at
-원조뚝배기식당(우럭젓국): 태안읍 시장5길, 041)674-0098
-몽산포제빵소(마늘빵): 남면 우운길, 041)675-9802

주변 볼거리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 유류피해극복기념관, 만리포해수욕장, 천리포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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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