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과 채움이 있는 가을 정원 ③옥천 수생식물학습원

‘바람보다 앞서가지 마세요’

대청호 품에 안긴 수생식물학습원은 대전이 아니라 옥천에 있다. 경부고속도로 대전 IC로 나와 대청호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도로를 달리면 막다른 곳에 닿는다. ‘이런 곳에 뭐가 있나?’ 의아한 생각이 드는데, 불쑥 대청호가 보이고 수생식물학습원이 나타난다.

수생식물학습원은 코로나19 시대를 거치면서 떠오른 명소다. 2020년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가을 비대면 관광지’에 들어 널리 알려졌고, TV 방송을 타면서 옥천의 대표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수생식물학습원’이란 공식 명칭보다 ‘천상의 정원’이란 별칭이 잘 어울린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돌계단을 오르면 매표소가 있다. 학습원 홈페이지(www.waterplant.or.kr)에서 예약해야 입장이 가능하며, 쾌적한 환경을 위해 하루 입장객은 최대 240명으로 제한한다. 이용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동절기 오후 5시), 일요일에 쉰다.

천상의 정원

입장료는 어른 6000원, 청소년 4000원이다. 주말에는 경쟁이 치열하니 예약을 서두르자.

학습원으로 들어가려면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 저절로 허리 숙여 인사하는 자세가 된다. 문을 나오면 ‘좁은 길’이 이어진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오솔길이다. 좁은 문과 좁은 길을 지나야 비로소 학습원의 카페 앞마당에 닿는다. 자연 앞에 겸손한 마음을 갖자는 주서택 원장의 뜻이 담겨있다.


마침 정원을 돌보는 주 원장을 만났다. 오랫동안 목사로 활동한 주 원장은 이른 퇴임 후 꿈을 가꿀 공간을 찾아 대전과 옥천 일대를 헤맸다. 그러다 지금 이 자리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당시는 수풀에 덮인 폐허였지만, 대청호 바로 옆이라 꾸미면 괜찮은 정원이 탄생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고.

학습원은 2009년에 문을 열었다. 초창기에는 도시인이 풍요로운 농촌을 누릴 수 있게 했고, 지금은 사색과 성찰을 추구하는 정원으로 자리매김했다. “동선을 따라 둘러보시면 우리 정원을 잘 느낄 수 있어요. 곳곳에 수련이 많아요. 꽃도 보시고, 성찰의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주 원장에게 꼭 봐야 할 것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하니 돌아온 대답이다. 주 원장은 다시 일하러 가면서 “나는 정원지기예요. 손이 닿으면 정원, 손 놓으면 잡초밭이지요”라고 한다.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옥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 정원
치유의 숲 산책로에서 스트레소 해소

학습원을 둘러보는 동선은 카페 앞마당에서 시작한다. 카페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천상의 바람길’이 있고, 왼쪽에 전망대와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당 등이 있다. 천상의 바람길 입구에 쌓인 검은 돌은 변성 퇴적암으로 지질학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발견된 돌인데, 마치 정원을 꾸미기 위해 배치한 듯 자연스럽다.

천상의 바람길로 들어가면 곧 대청호가 나타난다. 대청호를 향해 툭 튀어나온 지형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나무에 붙은 ‘바람보다 앞서가지 마세요’라는 말이 재밌다.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진다. 전망 덱에서 드넓은 대청호가 한눈에 잡힌다. 대청호가 이렇게 잘 보이는 장소도 드물다. 돌 위에 뿌리를 내린 암송(岩松)이 제법 크다. 나무의 생명력이 경이롭다.

암송을 지나면 언덕에 오른다. 여기서 학습원이 한눈에 펼쳐진다. 건물이 3~4채 보이는데, 색이 다소 어둡다. 변성 퇴적암의 빛깔과 어울리게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덕분에 자연과 건물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다시 만난 카페 앞마당에서 ‘전망대, 작은 교회당’ 이정표를 따른다. 다소 가파른 길을 오르면 ‘달과 별의 집’ 건물 앞에 닿는다.


전망대인 옥상으로 가려면 아찔한 철 계단을 올라야 한다. 위험해서 통제하는데, 평일에 사람이 없을 때는 관리소에 이야기하고 올라갈 수 있다. 탕탕 철 계단을 밟고 올라가자 학습원 전체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대청호를 거느리는 학습원이 그야말로 천혜의 장소에 자리한 걸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당’은 손바닥만 하다.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가면 십자가가 놓여있다. 십자가 옆에 헌금함이 보인다. 여기 모인 돈은 옥천군에 사는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한다. 3년 동안 모인 금액이 무려 50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교회당에서 내려오면 분재원과 실내 정원이다. 분재원 뒤쪽에 둘레길이 있는데, 길이 다소 험하니 생략해도 괜찮다. 카페 뒤편에 수련이 가득한 연못이 있다. 오전에 피운 꽃은 오후가 되자 안 보인다. 꽃을 오므리고 잠들었다. 물 수(水)가 아니라 잠잘 수(睡)를 쓰는 수련은 가을까지 꽃이 피고 지며, 뿌리가 물을 정화한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학습원 구경을 마무리한다.

군북면에 들어앉은 청풍정은 옥천의 숨은 명소다. 아담한 정자에 오르면 대청호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청풍정에는 갑신정변을 주도한 김옥균과 기생 명월의 러브 스토리가 내려온다. 정변에 실패한 김옥균은 명월과 함께 청풍정에 은거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명월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유서에는 ‘함께 지내 좋았지만, 선생 앞길을 막는 것 같아 떠난다’는 구절이 있었다고. 정인을 두고 떠난 명월의 마음이 애달프다.

옥천이 자랑하는 장령산자연휴양림 야영장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금천계곡의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꿀잠을 잤다. 휴양림은 계곡 주변으로 숙소와 야영장이 자리해 쾌적하다. 최고 명소는 치유의숲에 마련한 산책로다. 장령길, 소원길 등 산책로가 깊은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이원양조장

이른 아침에 맑은 공기를 마시며 1시간쯤 걸으니 몸속 노폐물이 사라진 느낌이다. 몸이 가볍고 얼굴에 생기가 돈다.

이원면에는 오래된 이원양조장이 있다. 4대에 걸쳐 내려오는 양조장으로 유구한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원양조장 강현준 대표는 옥천 출신 정지용 시인의 대표작 ‘향수’에서 이름을 따 우리 밀로 향수 막걸리를 만든다. 감미료를 넣지 않고 빚은 알코올 함량 9% 향수 막걸리는 구수하면서도 묵직한 맛이 일품이다. 양조장을 견학하고 막걸리를 몇 병 구입해 옥천 여행을 마친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수생식물학습원→청풍정→이원양조장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수생식물학습원→부소담악→장령산자연휴양림
-둘째 날: 정지용문학관→청풍정→이원양조장

관련 웹 사이트 주소
-옥천군 문화관광 http://tour.oc.go.kr
-수생식물학습원 www.waterplant.or.kr
-장령산자연휴양림 www.foresttrip.go.kr
-이원양조장 www.iwonwine.com


문의 전화 
-옥천군청 문화관광과 043)730-3412
-수생식물학습원 043)733-90 20
-장령산자연휴양림 043)733-9615
-이원양조장 043) 732-2177

대중교통
[기차] 서울역-대전역, KTX 수시(05:05~23:30) 운행, 약 1시간 소요. 대전역에서 대전역·중앙시장 정류장까지 도보 약 480m 이동, 62번 버스 이용, 방아실 정류장 하차, 수생식물학습원까지 도보 약 30분. 서울역-옥천역, 무궁화호 하루 8회(05:56~17:31) 운행, 약 2시간15분 소요. 옥천역에서 옥천버스앞 정류장까지 도보 약 160m 이동, 607번 버스 이용, 세천삼거리 정류장 하차, 세천공원삼거리 정류장까지 도보 약 310m 이동, 62번 버스 환승, 방아실 정류장 하차, 수생식물학습원까지 도보 약 30분.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금남교통 042)582-3527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 대전 IC→길치근린공원삼거리→옥천·세천 방면→방아실 방면→수생식물학습원

숙박 정보 
-방아실림: 군북면 방아실길, 010-8447-5633, www.instagram.com/bangasil_lim
-대청호텔: 옥천읍 중앙로5길, 043)938-9800
-호텔리베라: 옥천읍 성왕로, 043)731-8712
-장령산자연휴양림: 군서면 장령산로, 043)733-9615, www.foresttrip.go.kr

식당 정보
-방아실백악관(누룽지삼계탕): 군북면 방아실길, 043)733-3398
-방아실돼지집(생고기): 군북면 방아실길, 043)732-5653
-신선식당(붕어찜·민물새우탕): 군북면 방아실길, 043)732-5630
-맛있는복골올갱이(올갱이국밥·올갱이부추전): 옥천읍 성왕로, 043)731-1085

주변 볼거리
육영수 생가, 장계관광지, 용암사, 둔주봉 등



<webmast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