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허남식 후보가 부산시장에 당선됐다. 민주당 김정길 후보와의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부산광역시장으로는 최초로 3선 고지를 점령한 것. 이로써 허 당선자가 재임기간 동안 추진해온 모든 사업이 연속성을 가지게 됐다. 이와 함께 일류 부산을 만들겠다는 그의 각오가 시가 처한 여러 현안들에 어떤 해법을 가져다줄 지 시민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부산 공직 30년, 시장에 이른 ‘부산 전문가’ 부산광역시장으로서 최초로 3선 고지 점령 허남식 당선자는 경남 의령군 용덕면 깊은 산골에 자리한 벽촌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던 그는 끼니를 거르는가 하면 겨우 고구마로 때우기 일쑤였다. 당시 허 당선자의 아버지는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 집도 없이 분가해야 했다.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먹고 살 길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 바람에 어린 시절 그의 가족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고난의 세월을 이겨내야 했다. 그의 어머니는 일제시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당시 ‘신교육’을 받은 ‘깬 여성’이었다. 허 당선자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도 &lsquo
인천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송영길 후보가 당선됐다. 송 당선자는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52.5%를 득표하면서 44.5% 획득에 그친 한나라당 안상수 후보를 8% 차로 따돌리고 당선을 확정지었다. 따라서 그는 향후 4년 간 인천시정을 이끌게 됐다. 송 후보의 인천시장 당선은 민주당 출신 최초의 인천시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인천은 그간 서울과 경기도에 비해 보수적 성향을 띠었기에 전통적 야당세력인 민주당이 발 붙이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를 너머 인천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송 당선자. 그는 누구이며 어떻게 인천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을지 조근조근 살펴봤다. 노동운동 전개…‘내 가족’이란 생각으로 투쟁 서른 살 나이에 사법시험 도전, 2년 만에 합격 송영길 인천시장 당선자는 어린시절 늘 배가 고팠다. 부면장이었던 아버지였지만 6남매를 키우기에는 힘이 부쳤기 때문이다. 그의 소원은 120원짜리 메밀 자장면을 먹어보는 것이었다.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그는 ‘절약정신’을 발휘했다. 학용품값을 아껴서 자장면을 사먹기로 결심한 것. 아끼고 아낀 끝에 결국 자장면을 사먹었을 때는 세상을
김문수 경기지사는 6·2 지방선거에서 가장 많은 ‘실속’을 챙겼다. 그는 힘든 싸움이 예상되던 범야권 단일후보 유시민 후보를 19만 1600표(4.4%포인트)차로 여유있게 누르고 재선에 성공하면서 한나라당의 구겨진 자존심을 빳빳이 세웠다. 초접전 끝에 민주당 한명숙 후보를 힘겹게 이긴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와 나란히 비교되면서 김 당선자의 존재감은 더욱 빛났다. 그가 재선을 할 수 있던 것은 재임시절 경기도민에게 줬던 신뢰가 밑바탕 됐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다시 한 번 경기도의 미래를 짊어진 김 지사. 그의 지나온 삶을 되짚어보고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해 봤다. 문중의 별에서 운동권 수배자로…25년 만에 졸업장 취득 대한민국 복지 패러다임 바꾼 ‘위기가정 무한돌봄 사업’ 김문수 경기지사는 한국전쟁 이듬해인 1951년, 경북 영천시 임고면 황강리에서 태어났다. 김 지사의 표현에 따르면 ‘빚 바랜 양반동네’로 유교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곳이다. 마을의 유일한 교육기관도 서당이었다. 그 역시 초등학교 내내 서당에 다니며 ‘사서삼경’ ‘명심보감&rs
막바지까지 승패를 알 수 없는 ‘초박빙’의 승부였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한명숙 후보를 여유롭게 앞선 것으로 평가받던 오세훈 당선자는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위기감에 휩싸였다. 2일 오후 6시에 발표된 방송 3사의 출구조사에서 오세훈 당선자와 한명숙 후보의 격차는 불과 0.2%포인트였다. 그러나 개표 초반 오세훈 당선자가 한명숙 후보를 앞서며 안정을 되찾았다. 오세훈 당선자는 2일 오후 9시까지 한명숙 후보를 큰 차이로 앞섰다. 하지만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한명숙 후보는 개표율 1.5%를 넘어서면서 오세훈 당선자를 처음으로 역전했다. 이후에는 한명숙 후보의 페이스였다. 한명숙 후보는 오세훈 당선자에 줄곧 우세를 보이며 ‘사상 첫 여성 서울시장’ 탄생을 예상케 했다. 한명숙 후보의 지지자들은 서울광장으로 집결해 일찌감치 승리를 예상하기도 했다. 실제로 개표율 70%까지 한명숙 후보는 오세훈 당선자를 앞섰다. 그러나 3일 오전 4시가 다가오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오세훈 당선자와 한명숙 후보의 표 차이가 점차 줄어든 것. 급기야 오세훈 당선자는 개표율 74.2%에 이르렀을 때 재역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했다. 오세훈 당선자는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을 거쳐 2006년 7월 서울시장에 취임, 지난 4년간 서울시를 이끌었다. 민선 자치단체장시대가 부활한 1995년 이후 처음으로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함에 따라 최장수 시장으로 기록될 오 당선자는 유력한 차기 또는 차차기 대권주자로 올라섰다. 개표 막판까지 한명숙 후보와 대접전 ‘뒷심 발휘’ ‘준비된 후보’ 이미지가 대세론 굳히는 데 한몫 지난해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려왔지만 올해 초만 해도 오 당선자의 경쟁력을 두고 여권 내에서조차 반신반의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가 재임 시절 의욕있게 추진한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이 당 안팎으로 거셌다. 지난 총선에서 불거진 ‘뉴타운’ 논란을 두고 여전히 껄끄러운 시선을 거두지 않는 당내 의원도 적잖았다. 당 경선 주자로 나선 나경원, 원희룡 의원에게 청와대의 의중이 실렸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경선 중간에는 제3후보론이 끊이지 않았다. 경선 막판 원 의원이 사퇴하고 나 의원과 단일화를 이뤘을 때는
개개인 뿐 아니라 팀 전체 관리가 필수 12년전인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 황선홍이 그라운드에 뒹굴었다. 월드컵 개막을 한달여 앞두고 벌어진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무릎을 다친 것. 부상과 함께 그의 월드컵 꿈도 날아갔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선 이동국이 비운에 울었다. 당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던 그는 월드컵을 불과 60여일 앞두고 K-리그 경기 도중 불의의 부상을 입었다. “10%의 가능성만 있어도 재활하겠다”며 의지를 보이던 그는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오른 무릎 전방십자인대 수술로 날개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4년이 흘렀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이 목전이다. ‘비운의 월드컵 드라마’가 재현됐다. 설기현이 왼무릎 연골 파열로 수술을 받아야할 처지에 이른 것. 그는 월드컵 출전을 위해 K-리그로 유턴할 정도로 의지가 대단했다. 하지만 남아공월드컵 출전 꿈은 사실상 무산됐다. 수술을 하지 않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수술을 피한다고 해도 재활 치료를 거쳐 컨디션을 끌어올리려면 상당 기간이 소요된다. 이와 같은 선수들의 부상은 단지 1명의
‘축구 경기가 시작되면 감독이 할 일은 없다’는 속설은 이미 옛말이다. 경기 중 감독의 판단 하나에 승패가 좌우될 만큼 감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가 온 것. 8번째 월드컵을 앞둔 한국팀의 키를 잡은 것은 허정무 감독. 그에게 축구는 투쟁이자 삶 그 자체였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볼을 차던 그가 지금 남아공월드컵에서 즐겁고 유쾌한 축구를 하겠다며 나섰다. 20년이 넘는 축구지도자 인생에서 터득한 ‘여유의 리더십’이다. <일요시사>는 남아공월드컵으로의 출항을 앞두고 있는 허정무 감독의 ‘축구외길인생’을 돌아봤다. 모든 포지션 소화, 원조 멀티 플레이어 악착같은 플레이로 ‘진돗개’ 별명 얻어 1955년 1월13일 허정무 감독은 전남 진도군 의신면 초사리에서 의동초교 교장선생님댁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삼촌뻘이었던 축구 국가대표 허윤정의 권유로 목포중을 졸업한 뒤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가진 것이라곤 트레이닝복 한 벌과 운동화·이불 한 채가 전부였다. 눈 내리던 1967년 1월17일. 153㎝ 단신의 진도 촌
‘맏언니’ 박세리 우승에 ‘세리 키즈’ 환호성 박세리 이후 무서운 성장세, LPGA 여전사 긴 슬럼프를 딛고 일어선 박세리 선수의 우승엔 ‘세리키즈’들이 함께 했다. 이들은 박세리의 우승이 확정되자 샴페인 세례를 퍼부으며 그와 함께 환호했다. ‘세리키즈’들은 지난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의 승리를 보고 골프를 시작한 이들이다. 당시 박세리는 공이 연못에 빠지자 양말을 벗고 맨발로 연못에 들어가 샷을 날렸고 치열했던 연장전 끝에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그의 ‘맨발 투혼’은 외환위기로 시름에 잠겼던 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줬다. 박세리의 등장 이후 10년, 적지 않은 ‘세리키즈’들이 LPGA를 주름잡고 있다. 박세리가 부활을 알린 지난 17일 벨 마이크로 LPGA 클래식에서도 이지영(25)과 최나연(23·SK텔레콤)이 공동 4위, 김송희(22·하이트)가 8위, 유선영(24)이 공동 10위에 올랐다. ‘톱 10’에 들지는 못했지만 신지애는 박세리의 우승을 누구보
골프선수 박세리가 ‘여왕’으로 돌아왔다. 박세리는 LPGA 투어 벨 마이크로 클래식에서 통쾌한 승리를 움켜쥐는 것으로 그간의 부진을 씻어냈다. 그는 지난 1998년 US오픈에서 ‘맨발 투혼’을 시작으로 10여 년간 세계무대를 주름잡았지만 2007년을 끝으로 정상을 밟지 못했다.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성적과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의 추격으로 주변에서는 그의 은퇴가 거론되던 시점이었다. 박세리는 최고의 현역 선수들과 겨룬 경기에서 ‘관록의 승리’로 유쾌한 ‘반전’을 선사함과 동시에 선수 인생에서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마련했다. 특히 이번 우승은 LPGA 무대를 장악한 ‘세리 키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낸 결과여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34개월 만에 우승컵 입 맞춘 원조 ‘골프여왕’ 새롭게 쓴 연장불패 신화, 드라마틱한 부활샷 지난 1998년 외환위기로 힘들어 하던 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던 원조 ‘골프여왕’ 박세리가 부활샷을 쏘아 올렸다. 박세리 선수는 지난 17일 미국 앨라배마주 모빌의 매그놀리아 그로브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 등 지도부 6명이 지난 6일 타임오프 한도 의결 철회와 국회 재논의를 요구하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장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한국노총은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타임오프 한도 논의에 성실하게 임했지만, 정부는 우리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렸다. 우리는 절박한 심정으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장 위원장은 이어 “지난 1일 새벽 법정 논의시한을 넘겨 날치기 통과된 근면위의 의결 내용은 원천무효”라며 “타임오프 한도는 개정 노조법의 취지와 노동조합의 의견을 반영해 새롭게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결정이 아무런 조정 없이 강행된다면 대대적인 정부 여당 심판 투쟁에 들어갈 것”이라며 “정부와의 정책연대 파기는 물론, 일체의 노정 활동을 중단하고 100만 한국노총 조합원과 함께 정부 여당 심판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노총은 이날 오후 서울행정법원에 근면위 결의 및 고시 집행정지 신청과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냈다. 한국노총은 소장을 통해 ▲근면위
임태희 노동부장관이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를 두고 정면 돌파에 나섰다. 오는 7월 개정 후 14년째 발이 묶였던 노동조합법의 본격 시행을 압두고 강경모드에 돌입한 것이다. 임 장관은 전임자에 대한 유급지원 대상을 대폭 축소한 ‘타임오프’ 한도 조정으로 대기업 노조 옥죄기에 들어갔다. 노동계는 정책연대 파기, 자진사퇴 촉구 등을 내세우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임 장관은 흔들림이 없다. 임 장관이 노동계의 비난과 정치권 곳곳의 중재 요구에도 불구하고 ‘타임오프’ 고시를 강행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조합법 개정 노동계 반발 속 14년간 표류 임 장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논란 정면 돌파 최근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이하 근면위)가 노조전임자에 대한 ‘타임오프’ 한도를 결정하면서 정부와 노동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근면위의 이번 결정으로 노조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된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도마에 오른 노조전임자 문제는 수년째 노사정간에 논란이 된 사안이다. 논란의 핵심은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 문제다. 회사에서 일은 하지 않은 채 노조 활동에만 집중하는 직원에게 기업이
여성의 몸으로 험준한 히말라야 산 봉우리를 14번이나 정복한 산악인 오은선 대장의 인생스토리가 화제다. 산을 접한 후 ‘최초’라는 타이틀을 이미 여러 차례 만들어낸 그였지만 ‘세계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 도전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타이틀을 얻기 위해 달리는 동안 소중한 동료를 잃기도 하고 수많은 비난에 휩싸이기도 했다. 등정 중 목숨을 잃을 뻔했던 순간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마지막 봉우리인 안나푸르나 정상을 밟는데 성공했다. ‘철의 여인’ 오은선 대장의 지난 13년 히말라야 정복기를 살펴본다. 걸어온 길·넘어온 산·뛰어 넘어야 할 벽 높다 기록 보유 20인 중 한국인 네 명 국가 위상 업 여성 전문산악인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이 지난달 27일 오후 6시15분(한국시간) 세계에서 10번째로 높은 해발 8091m의 안나푸르나 정상에 올랐다. 영하 30도의 기온 속에 초속 12m의 강풍과 맞서며 등반한지 13시간 만에 이룬 성과였다. 정상에 승리의 깃발을 꽂은 오 대장은 이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오 대장이 걸어온 길 산과 사랑에 빠진 25년
오은선 대장이 세계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14좌 등정’에 성공하면서 공식 후원업체인 블랙야크가 웃음꽃이 폈다. 국내 토종 등산용품 전문 아웃도어 업체인 블랙야크는 2008년 2월부터 오 대장을 후원하고 있다. 오 대장은 한국 여성 최초로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한 여성 산악인으로 꼽혀 블랙야크의 후원을 받게 됐다. 당시 서울시산악연맹 회장이던 강태선 블랙야크 대표가 스폰서 없이 독자적으로 활동해 오던 오 대장을 눈여겨 본 뒤 지원을 결심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야크는 이후 지난 2년간 오 대장에게 등반 장비 일체와 체재비, 항공료 등 일체를 후원해왔다. 업계에 따르면 히말라야 등정 한 번에 필요한 평균 비용은 1억5000만원~2억원 가량이다. 오 대장은 블랙야크의 이 같은 후원 덕분에 2008년과 2009년 매년 4개의 봉우리를 등정하는 등 14좌 완등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오 대장에 대한 후원으로 덕을 본 것은 블랙야크도 마찬가지다. 업계는 블랙야크가 이번 후원으로 국내 토종 아웃도어 브랜드로서의 위상을 한 단계 높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 블랙야크의 매출은 2008년 1100억원이었던 것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살해’란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 북한에서 남파된 간첩 2명이 구속되면서 ‘이한영 피살사건’이 재조명받고 있다. 1997년 벌어진 이한영 피살 사건의 고 이한영씨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처 성혜림(사망)의 조카로 1982년 한국으로 망명 후 1987년 12월 KBS 국제국 러시아어 방송 PD로 입사했다. 이후 저서 <김정일 로열패밀리>를 출간하고 북한 독재정권의 실상을 세상에 고발하던 중 1997년 2월 15일 밤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한 아파트 앞에서 북한 공작원 2명에 의해 총기로 피격당해 10일 뒤 사망했다. 이에 대해 1998년 김대중 정부 당시 국정원은 “이씨가 <로열패일리>란 책을 써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며 책임을 회피했었다. 이에 유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2008년 8월 대법원은 이한영씨가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피살된 사건과 관련해 국가가 유족에게 60%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살해하라는 지령을 받고 북한에서 남파된 간첩 2명이 검거됐다. 망명 이후 13년 간 끊임없이 신변위협을 받아왔던 황 전 비서. 하지만 이번 사건은 다르다. 북한이 현역 장교로 짜인 공작 조직을 직접 투입해 살해를 기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위협은 남한 내 고정간첩이나 친북세력에 의한 것으로 추정됐던 것. 이처럼 북한이 극단적인 계획을 시도한 것은 최근 황 전 비서의 행적과 발언이 원인이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살해 위해 북 간첩 남파 드러나 망명 후 수백 차례 테러 위협…공작 조직 투입은 처음 북한의 테러대상 1호 황장엽(87)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암살지령을 받은 간첩이 검거되면서 남북을 오갔던 황 전 비서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1923년 평안남도 강동에서 일본인 회사 사무원이었던 부친 아래 태어난 황 전 비서는 전형적인 엘리트코스를 밟으며 성장했다. 함북 주을의 경성중학을 마치고 1949년 김일성종합대학에 들어가 대학과정을 마쳤다. 그 뒤 모스크바종합대학에서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을 공부했다. 이 과정을 통해 공산주의 이론의 모태가 된 학문
동국제강이 대우건설 인수 계획을 공식적으로 철회했다. 동국제강은 지난 12일 “불확실성이 큰 대우건설 인수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1월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이 “합리적 조건에 제안이 온다면 신중히 검토해 보겠다”며 인수 참여의사를 공식화한지 불과 100일 만에 마음을 접은 것이다. 동국제강은 “최근까지 대우건설 채권단에서 전략적 투자자(SI)로 참여해 달라는 제안이 없었으며, 매각 진행 속도가 지연되고 있어 동국제강은 소액주주 등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더 이상 기다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고 인수 계획 철회 이유를 설명했다. 대신 동국제강은 그동안 축적해 온 역량을 철강부문의 경쟁력 강화에 최우선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동국제강은 이를 통해 지난해까지 1조원 이상의 투자를 완료한 충남 당진 후판 공장의 성장 동력 가동과 오는 4월 말까지 타당성 검토를 완료할 브라질 고로제철소 건설 프로젝트 등의 진행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명숙 뇌물수수’ 의혹이 무죄로 판결나면서 그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표적수사 논란에 휩싸였던 이번 사건은 그 후폭풍이 검찰의 심장부인 김준규 검찰총장에게 직접 향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검찰의 강압수사와 별건수사 사실이 드러나면서 취임 이후 줄곧 ‘신사다운 검찰’로의 변신을 강조해온 김 총장이 각계의 따가운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것. 일각에선 MB정부 들어 검찰의 표적수사 논란이 제기됐던 사건들이 줄줄이 무효 판결로 끝난 점을 지적, 검찰의 무리한 수사 방식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심지어 법원과 여당마저 검찰을 비판하고 나서 김 총장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김준규호의 ‘새로운 수사 패러다임’ 실종 신사다운, 공정·정확한 수사 어디로? 지난해 5월 ‘박연차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서거하면서 검찰은 큰 위기에 봉착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임채진 검찰총장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한 뒤 새로 지명된 천성관 전 서울지검장이 중도에 낙마하면서 검찰 총수의 자리는 한동안 공석으로 남아있어야 했다. 이런 와중에
국내 상조업체 1위인 보람상조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다. 오너의 비리 혐의가 드러나면서 계약 해지 등 회원들의 이탈이 가시화되고 있는 탓이다. 이 불똥은 상조업계 전체로 튈 조짐마저 보여 가입자 및 업체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런데도 화근의 불씨를 지핀 최철홍 보람상조 회장은 묵묵부답이다. 사건이 불거지기 직전 출국해 감감무소식이다. 정면 돌파냐, 아니면 해외 은둔이냐. ‘죽느냐 사느냐’기로에 선 그는 과연 어떤 복안일까. 1백억 횡령 혐의 오너일가 수사 급물살 전 계열사 압수수색…친형 부회장 구속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난 최철홍 보람상조 회장은 군복무 도중 청천벽력 같은 일을 당했다. 마지막 휴가를 받아 들른 집이 사라진 것이다. 당혹감에 휩싸인 것도 잠시, 수소문 끝에 어렵게 찾은 집은 달동네 단칸방이었다. 가족들은 최 회장의 군 생활을 위해 힘든 가정 형편을 ‘쉬쉬’했다. 제대 다음날 곧바로 시작한 일이 보험판매원이다. ‘성공해야 가족이 산다’는 의지는 높은 성과로 나타났고, 이를 발판삼아 1983년 사업을 시작했다. ‘검은돈’파장 어디까지 업체·가입자 불안 고조 최 회장은 현대실업이란 재고 물품을 처리하는 대행업체를 차려 불과 1년 만에 직원
검찰의 보람상조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대기업이 운영 중인 상조업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보람상조 사태로 기존 중소 상조업체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과 불신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상조업체가 주목받고 있는 것. 특히 오는 9월부터 개정 시행되는 할부거래법(일명 상조법)에 따라 투명하고 튼실한 대기업 계열이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상조법은 상조업체의 설립기준자본금을 3억원 이상으로 정하고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고객 납입금의 50%를 금융기관에 예치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골자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대기업 최초로 장례시장 진출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대우조선해양상조를 계열사로 추가했다. 대우조선해양상조는 “단순 장례서비스에서 벗어나 계약자에게 묘지 분양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실시할 계획”이라며 “기존 상조업체들의 가격 거품을 제거하고 대기업의 공신력과 자금력을 무기로 삼아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사업을 추진하던 임원이 뇌물 혐의로 구속돼 현재 사업이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삼성그룹의 보안전문 계열사인 에스원도 최근 본격적인 상조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에스원은 지난달 사업보고서에 ‘분묘 분
천안함 침몰 현장에서 56명을 구조한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501경비함의 고영재(55)함장이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전했다. 현장에서 나흘간 수색작업을 돕다가 지난달 30일 인천에 귀항한 고 함장은 “1차 구조를 시작한 지 30분 만에 함수 부분에 사람이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가라앉았을 만큼 상황이 긴박했다”고 사고 당시 해상 상황을 설명했다. 먼저 고 함장은 사고 현장에 출동한 과정에 대해 말했다. 고 함장에 따르면 501함은 사고 발생 당시 대청도 근해에서 해상 경비활동 중이었고 오후 9시34분 인천해경으로부터 해군 초계함이 백령도 남서쪽 1.2마일 해상에서 좌초되고 있으니 신속히 이동해 구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함정을 전속력으로 기동시켜 40분 후인 오후 10시15분 사고 발생 지점에 도착, 단정 2대를 파견해 오후 10시30분부터 구조작업을 벌여 오후 11시35분까지 5차례에 걸쳐 천안함 승조원 56명을 구조했다. 사고 해역 도착 당시 상황에 대해 고 함장은 “천안함은 약 3분의 2 정도가 침수돼 함미 부분은 보지 못했다. 90도 가량 우현으로 기울어 있었는데 승조원들은 함수 부분의 포탑, 조타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