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세계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 산악인 오은선

히말라야 품은 ‘철의 여인’ 맘껏 웃을 수 없다


여성의 몸으로 험준한 히말라야 산 봉우리를 14번이나 정복한 산악인 오은선 대장의 인생스토리가 화제다. 산을 접한 후 ‘최초’라는 타이틀을 이미 여러 차례 만들어낸 그였지만 ‘세계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 도전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타이틀을 얻기 위해 달리는 동안 소중한 동료를 잃기도 하고 수많은 비난에 휩싸이기도 했다. 등정 중 목숨을 잃을 뻔했던 순간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마지막 봉우리인 안나푸르나 정상을 밟는데 성공했다. ‘철의 여인’ 오은선 대장의 지난 13년 히말라야 정복기를 살펴본다. 


걸어온 길·넘어온 산·뛰어 넘어야 할 벽 높다
기록 보유 20인 중 한국인 네 명 국가 위상 업  


여성 전문산악인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이 지난달 27일 오후 6시15분(한국시간) 세계에서 10번째로 높은 해발 8091m의 안나푸르나 정상에 올랐다. 영하 30도의 기온 속에 초속 12m의 강풍과 맞서며 등반한지 13시간 만에 이룬 성과였다. 정상에 승리의 깃발을 꽂은 오 대장은 이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오 대장이 걸어온 길
산과 사랑에 빠진 25년

이 날 오 대장은 여성 산악인으로서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주인공이 됐다.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도전한 지 13년 만에 이뤄낸 쾌거다. 오 대장의 기록은 세계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을 빼놓더라도 충분히 거창하다. 실제 이제껏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 성공한 산악인은 전 세계 남녀를 통틀어 20명에 불과하다.

그 중 한국인은 네 명으로 앞서 2000년 7월 엄홍길 대장, 2001년 박영석, 2003년 한왕용 대장이 14좌 탈환에 성공한 바 있다. 이들 중 국내 산악인으로는 네 번째로 이름을 올린 오 대장은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여성 산악인으로서 ‘최초’라는 영광을 안게 된 것이다. 오 대장의 완등 소식을 들은 이명박 대통령은 축전을 보내 그를 격려했다.

이 대통령은 “오은선 대장의 완등은 도전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준 인간 승리의 과정이었다”며 “정말 장하고 자랑스럽다”고 축하했다. 이 대통령의 말처럼 끈질긴 도전 정신으로 ‘인간 승리’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 오은선 대장. 그가 이처럼 산에 미쳐 살게 된 것은 25년 전 부터다. 오 대장은 1985년 수원대학교 산악부 동아리에 입회하면서 처음으로 산악인의 길을 걷게 됐다. 대학교 2학년 시절 인수봉 정상을 밟은 오 대장은 이후 주말마다 산을 찾았다.

직장 생활 중에도 산을 즐기던 오 대장이 히말라야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3년이다. 당시 대한산악연맹이 낸 에베레스트 여성원정대 모집 공고를 본 오 대장은 근무 중이던 서울시 교육청에 사표를 내고 원정대에 합류했다. 하지만 히말라야가 처음부터 그를 반겨준 것은 아니었다. 오 대장은 당시 히말라야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8848m)의 정상을 밟아보지 못했다.

등반대장의 하산 명령에 아쉽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던 것. 당시의 아쉬움과 함께 이후 고산 등반의 매력에 빠져든 오 대장은 본격적으로 히말라야 정복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정 등반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었다. 오 대장은 스파게티 음식점을 운영하거나 컴퓨터 학원 강사, 학습지 교사 등으로 일하며 원정 비용을 마련했다.

오 대장이 다시 히말라야를 찾은 것은 그로부터 4년 뒤였다. 1997년 7월 오 대장은 가셰르브룸Ⅱ(8035m)를 무산소로 등정하는데 성공했다. 히말라야 8000m 이상 고봉 등정자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순간이었다. 오 대장은 한 인터뷰를 통해 “그때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고산 등반을 안 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오 대장이 넘어온 산
히말라야가 허락한 14좌

하지만 오 대장의 도전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2004년 5월 그는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11년 전 곁을 내어주지 않았던 에베레스트가 오 대장에게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단독 등정에 성공하는 영광을 안겨준 것이다. 하지만 손쉽게 얻은 영광은 아니었다. 산소가 떨어져 정신력으로 버티며 하산하다 캠프 텐트를 불과 10m 가량 남겨두고 쓰러졌던 것. 다행히 일본 원정대가 오 대장을 발견, 텐트로 데려가 보살펴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한 상황은 2006년 시샤팡마(8027m) 등정 길에도 이어졌다. 등정 당시 난데없이 굴러온 얼음 덩어리에 맞아 갈비뼈가 부러지고 눈사태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겨야 했다. 2007년 5월 초오유(8201m) 등정에 성공한 그는 두 달 뒤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K2(8611m)에 올랐다. 이후 자신감을 얻은 오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완등 플랜을 위해 본격적으로 속도를 냈다. 오 대장이 ‘철의 여인’이라는 닉네임을 얻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2008년부터는 한 해 무려 4개의 봉우리를 올랐다. 2008년 5월엔 마칼루(8463m), 로체(8516m), 7월엔 브로드피크(8047m), 10월엔 마나슬루(8163m)를 등정했다. 2009년에도 5월6일 칸첸중가(8586m), 5월21일 다울라기리Ⅰ(8167m), 7월10일 낭가파르밧(8125m), 8월3일 가셔브롬Ⅰ(8068m)를 잇따라 등정하는데 성공했다.

오 대장이 뛰어 설 벽
따가운 시선 곳곳에…

빠른 속도로 히말라야 고봉에 올라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선두주자가 됐던 오 대장은 그 해 10월 마지막 고봉인 안나푸르나(8091m)에 올랐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초속 40m의 강풍과 짙은 안개에 폭설까지 이어져 정상을 불과 600여m 남겨두고 돌아서야 했다. 이후 6개월간의 준비 끝에 재도전한 오 대장에게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는 드디어 정상을 허락했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도 4명의 동료를 잃는 아픔 속에서 5번의 도전 끝에 성공했던 안나푸르나를 두 번의 도전 끝에 품안에 넣은 것이다. 하지만 히말라야 14좌 완등 성공으로 화려한 타이틀을 가지게 된 오 대장은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더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그를 둘러싸고 있던 업계 일각의 논란들이 안나푸르나 등정 소식과 함께 다시금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는 탓이다.

오 대장은 2004년 에베레스트 원정 이후 ‘독한 X’라는 비난에 휩싸였던 바 있다. 오 대장이 에베레스트 정상을 향해 올라가던 중 동료 산악인 고 박무택 대장이 로프에 매달려 숨져 있는 것을 보고도 정상에 올랐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오 대장보다 며칠 앞서 정상에 올랐던 박 대장은 동료들과 정상 등정 후 하산하다 해발 8700m 부근에서 설맹(雪盲)이 와 조난, 끝내 목숨을 잃었다.
 
특히 함께 목숨을 잃은 백준호ㆍ박무택ㆍ장민 등 3명의 동료는 사고 당시 서로를 구조하려다 결국 자신의 생명까지 잃게 된 사연이 전해지면서 오 대장을 향한 반감은 더욱 커졌다. 오 대장은 “당시 상황은 모두 끝났었다”며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그의 동료애에 대한 비난은 한동안 계속됐다. 오 대장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해 7월 고 고미영 대장이 낭가파르밧에서 실족해 사망했을 당시에도 불거졌다.

비정한 동료애·죽음 내몬 라이벌 경쟁 ‘꼬리표’
완등 논란 히말라야 칸첸중가 재등정 의지 관심


고 대장은 오 대장의 후배이자 ‘세계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는 최고의 라이벌이었다. 이에 산악계 일각에선 고 대장의 죽음이 무리한 속도 경쟁으로 화를 만든 것이라며 오 대장을 향해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국내 대표 산악인 중 한 명인 허영호씨는 한 라디오방송에서 “등반은 음미하면서 해야 하는데 이것을 스포츠처럼 경쟁적으로 하다 보면 거기에 따른 무리라는 게 있다”며 “8000m 고봉 3~4개를 1년 사이에 두고 등정하려고 하니까 이런 안타까운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실제 고 대장은 숨질 당시 11개 봉우리에 올랐고, 오 대장은 12개 등정에 성공하며 14좌 완등을 두고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들보다 오 대장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지난해 5월 등정한 칸첸중가(8586m)의 미등정 논란이다. 지난해 말 국내 산악계에는 오 대장이 칸첸중가의 꼭대기, 즉 정상을 밟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오 대장이 칸첸중가에서 찍은 사진이 정상의 모습으로 확신하기 어렵고, 등정 시간도 짧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논란은 확산됐다. 오 대장은 눈물의 기자회견까지 하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의문점은 여전히 남았다. 이런 가운데 히말라야 등정 기록을 책임지고 있는 미국 산악인 엘리자베스 홀리(86)가 오 대장의 캉첸중가 등정을 ‘논란인 상태(disputed)’로 변경하면서 미등정 논란은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특히 최근 오 대장의 또 다른 경쟁자인 에두르네 파사반(36·스페인)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항의하고 있어 오 대장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오 대장의 입장에선 만약 캉첸중가 등정이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 사이 경쟁자 파사반이 마지막 14봉 등정에 성공한다면 ‘세계 최초’의 타이틀이 물 건너 갈 수도 있게 된다.

이에 산악계 일각에선 오 대장이 캉첸중가 미등정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조만간 캉첸중가를 재등정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줄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실제 과거 엄홍길 대장은 1993년 오른 시샤팡마 등정을 두고 시비에 휘말리자 2001년 재등정해 논란을 잠재운 바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