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지방자치단체장 탐구②송영길 인천시장 당선자

옳은 건 끝까지 밀고나가는 나는야 ‘황소’

인천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송영길 후보가 당선됐다. 송 당선자는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52.5%를 득표하면서 44.5% 획득에 그친 한나라당 안상수 후보를 8% 차로 따돌리고 당선을 확정지었다. 따라서 그는 향후 4년 간 인천시정을 이끌게 됐다. 송 후보의 인천시장 당선은 민주당 출신 최초의 인천시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인천은 그간 서울과 경기도에 비해 보수적 성향을 띠었기에 전통적 야당세력인 민주당이 발 붙이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를 너머 인천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송 당선자. 그는 누구이며 어떻게 인천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을지 조근조근 살펴봤다.

노동운동 전개…‘내 가족’이란 생각으로 투쟁
서른 살 나이에 사법시험 도전, 2년 만에 합격


송영길 인천시장 당선자는 어린시절 늘 배가 고팠다. 부면장이었던 아버지였지만 6남매를 키우기에는 힘이 부쳤기 때문이다. 그의 소원은 120원짜리 메밀 자장면을 먹어보는 것이었다.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그는 ‘절약정신’을 발휘했다. 학용품값을 아껴서 자장면을 사먹기로 결심한 것. 아끼고 아낀 끝에 결국 자장면을 사먹었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둘째형에게 들키면서 송 당선자는 호되게 혼이 났다.

“자장면을 먹었다”는 이유로 혼이 났던 송 당선자. 그러나 형제애는 굳건했다. 국회의원이 될 수 있도록 멘토 역할을 한 것도 형들이었다. 공부하는 형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는 것.

고교생 때 사회비판 시각
박석무 선생 영향 컸다

그럼에도 ‘개구쟁이’ 기질은 버릴 수가 없었다. 남몰래 영화를 보러가다 선생님에게 들켜 화장실 청소를 하기 일쑤였다.
송 당선자가 사회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박석무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4·19 학생운동에 참여한 전력이 있는 박 선생은 김남주 시인의 선배로 정의감이 남달랐다. 특히 ‘책벌레’였던 그의 영향으로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할 수 있었다. ‘자랏골의 비가’ ‘아, 청춘의 도시 광주여’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다 보니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이 벌어질 때면 ‘버럭 송영길’이 되곤 했다. 유신 말기 교련복과 M-16 총을 들고 거리행진을 할 때였다. 박 선생은 이 같은 현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고 송 당선자 역시 동감했다. 학생들을 데리고 군사훈련을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이 때문에 그는 반발심이 발동했다. 하루는 교련시간에 차렷 자세 등을 취할 때 불량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허벅지를 걷어찼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교련선생님이 서 있었다. 그는 그길로 운동장에 M-16 총을 던져버리고 집으로 향했다.

“전두환 정권을 무너뜨리겠다”는 일념 하에 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다른 학교 학생들과 사귀며 사고의 폭을 넓혀갔다. 그리고 수도권 빈민 운동을 했던 손학규 전 대표 등과도 교류가 있었다. 기독교청년회가 주 활동무대였던 그는 사랑방교회를 열어 민중 목회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런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 시절 ‘남다른 조직가’로 성장했던 그는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노동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 중 하나가 택시운전사다. 열악한 노동 조건 때문에 분신자살한 이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가족’이라는 생각을 갖고 열성적으로 투쟁했다.
아픈 추억도 있지만 송 당선자는 택시 운전하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일까. 송 당선자는 “택시를 탈 때마다 친정에 온 것 같다”며 “시간이 날 때마다 택시를 자주 이용한다”고 말한다.

그런 그의 인생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1986년 전두환 암살음모 혐의사건으로 안기부에 끌려갔던 것.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그는 아내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송 당선자에 따르면 아내의 미모가 너무 뛰어나 추파를 던진 이들이 많았다고.

그가 지금의 아내와 만난 것은 대학교 초년병 시절, 교회에서였다. 서로 얼굴만 익힌 정도라 연인으로 발전하는 데까지 2년이 걸렸다. 신촌 로터리에서 가두행진을 할 당시 송 당선자가 경찰에 밀려 도로에 넘어져 있는 아내를 구해준 것이 계기가 됐다.

이로 인해 서로에게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인천 시계공장에 다녔어요. 잔업이 끝나면 전철을 타고 구로역까지 가서 막차가 끊기기 전까지 역 앞 포장마차에서 어묵 등을 먹는 것이 데이트의 전부였죠”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네거티브 선거운동에
포지티브로 일관해

송 당선자는 인천 대우자동차 공장 건설현장 배관용접공과 택시기사 등 현장 노동자와 노동운동가로서 7년을 살았다. 이후 서른 살의 나이에 사법시험에 도전해 불과 2년 만에 합격했다. 이때부터는 노동인권변호사로 변신, 노동현장을 지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 등에 몸 담았다.

정치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것은 1999년. 새정치국민회의 인천 계양·강화갑 지구당위원장으로 재보궐 선거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2000년 16대 총선에 다시 도전, 금배지를 거머쥐었다. 17대, 18대 총선에서도 내리 승리를 거두며 민주당의 3선 중진 의원이자 최고위원으로 우뚝 섰다.

당내에서 그는 거침없는 소신으로 유명하다. 초선이던 2001년 정풍운동을 주도했고 2003년엔 개혁세력의 일원으로 열린우리당 창당에 앞장섰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찬성과 대북송금 특검 반대 등으로 당내에서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뚝심 있는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일관된 포지티브 선거운동에 대한 유권자들 주목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 등 공약에 탄력 받을 듯


당 안팎을 가리지 않고 화살을 겨누며 쓴소리를 하는 그에겐 “건방지다” “지나친 비판이다”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에 그는 “옳다고 믿는 것은 밀고 나가는 ‘황소’같은 스타일 때문”이라고 반론을 편다.

그는 최근 ‘신(新) 40대 기수론’을 외치며 공개적으로 대권의 꿈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그 징검다리로 서울시장 출마를 계획했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인물난을 겪자 당 최고위원으로서 ‘희생’을 각오하고 인천시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을 바꿨듯 인천을 바꿔 한국의 심장으로 만들겠다”던 그는 결국 인천시장에 당선됐다. 그의 당선은 민주당 출신 최초의 인천시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인천은 그간 서울과 경기도에 비해 보수적 성향을 띠었기에 전통적 야당세력인 민주당이 발 붙이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이 천안함 사건을 선거에서 ‘북풍’으로 이용하면서, 수도권에서 민주당이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천안함이 침몰한 백령도 앞바다를 지역구로 갖고 있는 지리적 요건으로 북풍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인천에서 송 당선자가 이길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당 보다는 송 당선자 개인의 경쟁력을 꼽을 수 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천의 민주당 지지도는 22.2%인데 비해 송 당선자에 대한 적극 투표층의 지지도는 46.8%로 나타났다. 그의 개인 지지도가 당 지지도보다 무려 24.6%포인트나 높았던 것이다. 

또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선거운동에도 불구하고 포지티브 선거운동으로 일관한 것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상대 후보는 선거 내내 정책과 공약의 대결이 아닌 송 당선자에 대한 인신비방과 흑색선전으로 일관하는 네거티브 전략에 의존했다. 하지만 그는 일체 대응을 삼간 채 정책과 비전을 내세운 포지티브 선거운동으로 일관함으로써 ‘당당한 정치인’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얻으며 인천시민들의 선택을 받게 됐다.

앞으로 4년 간 인천시 살림을 꾸려갈 송 당선자의 공약은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 도시 균형발전, 교육지원예산 확충 등 시정 전 분야에 걸쳐 있다. 당초 교육 복지 환경 분야 공약이 주를 이뤘으나, 공약을 다듬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성장 및 개발 부분이 대폭 강화된 것이 특징이다.

송 당선자가 각별히 공을 들인 공약은 교육지원예산 1조원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인천 내 10대 명문고를 선정해 2014년까지 이들 학교에 5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초·중학교 무상급식 실시와 인천장학기금을 매년 500억원씩 증액해 2000억원으로 확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송 당선자는 또 복지 공약으로 노인 일자리 3만 개 창출과 실버아카데미 개설 등을 제시했다. 노인 틀니 비용의 70%를 지원하고 홀몸노인에게 매주 2회 문안 전화를 드린다는 공약도 눈에 띈다.

교육지원 예산 1조
초중교 무상급식 확대

인천지역 8개 도시재생사업지구 중 상당수가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는 것과 관련해 송 당선자는 3조원의 도시재창조기금을 조성하여 현재 추진 중인 재개발 및 도시정비 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함께 송 당선자는 인천 경제자유구역(FEZ)을 세계 3대 FEZ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국내 첨단기업에도 외국인 투자에 준한 세제혜택을 주고, FEZ에 부품소재 항공정비 바이오 등 고부가가치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매니페스토연구회 간사인 이현출 국회입법조사처 정치의회팀장(정치학 박사)은 “성장과 분배를 잘 조화시켰고, 앞으로 20∼30년 뒤 인천의 성장모델을 만들려고 노력한 점이 돋보인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하지만 인천의 전체 예산이 7조원인데 경상비를 빼고 나면 사업비는 극히 제한적이다”라며 “도시재생에 3조원, 교육지원에 1조원 등 공약 관련 예산이 수십 조원에 달해 보다 구체적인 재원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영길 인천시장 프로필

학력
1981년 2월  광주 대동고 졸업
1988년 3월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과 졸업(81학번)
2005년 3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

경력
1984년 연세대 초대 직선 총학생회장 
1985년 인천 대우자동차 르망공장 배관용접공으로 노동자생활 시작
1991년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시지부 초대 사무국장 
1994년 제36회 사법시험 합격
2000년 - 제16대 국회의원
2002 ~ 2008년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 
2004~ 2008년 제17대 국회의원(재선) 
2004 ~2006년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간사
2005 ~ 2007년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2006 ~ 2007년 열린우리당 한미FTA특별위원회 위원장
2007년 - 국회의원연구모임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 포럼’ 공동대표(現)
2008년 - 제18대 국회의원(3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동문회 윤리위원장(現)
통합민주당 인천광역시당 위원장(現)
통합민주당 장외투쟁대책본부장(現)  
 
수상경력
2000년, 2002년, 2006년  국정감사 우수 국회의원 선정  
2003 ~ 2004년  최우수 국회의원 연구단체
2001 ~ 2004년  우수 국회의원 연구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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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