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광역자치단체장 탐구①재선 성공 차기 발판 마련 김문수 경기도지사

“경기도민 사랑 받는 내 이름은 ‘김결식’”

김문수 경기지사는 6·2 지방선거에서 가장 많은 ‘실속’을 챙겼다. 그는 힘든 싸움이 예상되던 범야권 단일후보 유시민 후보를 19만 1600표(4.4%포인트)차로 여유있게 누르고 재선에 성공하면서 한나라당의 구겨진 자존심을 빳빳이 세웠다. 초접전 끝에 민주당 한명숙 후보를 힘겹게 이긴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와 나란히 비교되면서 김 당선자의 존재감은 더욱 빛났다. 그가 재선을 할 수 있던 것은 재임시절 경기도민에게 줬던 신뢰가 밑바탕 됐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다시 한 번 경기도의 미래를 짊어진 김 지사. 그의 지나온 삶을 되짚어보고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해 봤다.

문중의 별에서 운동권 수배자로…25년 만에 졸업장 취득
대한민국 복지 패러다임 바꾼 ‘위기가정 무한돌봄 사업’


김문수 경기지사는 한국전쟁 이듬해인 1951년, 경북 영천시 임고면 황강리에서 태어났다. 김 지사의 표현에 따르면 ‘빚 바랜 양반동네’로 유교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곳이다. 마을의 유일한 교육기관도 서당이었다. 그 역시 초등학교 내내 서당에 다니며 ‘사서삼경’ ‘명심보감’을 배웠다.

그의 유년시절은 썩 풍요롭지 않았다. 공무원이었던 부친이 친척의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어린 4남 3녀를 판잣집으로 나앉게 하는 비운을 맞았기 때문이다.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는 판잣집에서 호롱불을 밝혀 놓고 공부할 정도로 그의 배움에 대한 열의는 대단했다고 한다.

부동의  1등
‘문중의 별’

영천군 부동의 1등이었던 재능을 아까워한 선생님의 격려로 경북중학교에 입학한 김 경기지사. 이때부터 경북고등학교에서 서울대학교로 이어진 김 지사의 길고 가난한 ‘유학’생활이 시작된다.

경북고등학교 시절 김 지사가 활동한 주 무대는 수양동우회. 도산 안창호의 유지를 받들어 이광수가 만든 유서 깊은 조직이었다. 대구지역 연대 서클이었던 수양동우회에서 사회의식을 키웠던 그는 고 3때 소위 3선 개헌 반대를 주도했다. 경찰 조사를 받던 그는 지지 않고 3선 개헌 반대의 정당성을 주장하다 결국 무기정학 처분을 받기도 했다. 다행히 대학입시를 몇 개월 남겨놓고 정학이 풀려 서울대 경영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러분에게 역사적인 막중한 책임이 있다. 이 나라를 위해 함께 나서자!”는 한 선배의 동아리 모집 연설을 들은 그의 심장은 뛰었다. 그길로 사회과학동아리인 ‘후진국사회연구회’에 가입했다. 운동권 인생의 시발점이었다. 이후 ‘행동하는 운동권’으로 변신한 그는 대학교 2학년 때인 71년 10·15 부정부패척결 전국학생시위로 제적당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복학 조치가 내려졌지만 학교에 다닐 마음이 사라진 그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지방학교를 조직화해 유신반대를 외쳤고,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됐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구속, 고문을 받고 2년 6개월간 복역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고초를 겪은 끝에 입학 25년 만에 졸업장을 품에 안게 된다.

노동운동과의 인연은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주선으로 구로공단에 취직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김 지사가 맹활약하면서 그가 몸담았던 한일공업노조는 한국의 대표적인 노조로 명성을 날렸다. 이 가운데 그는 출근길에 사복형사 두 명에게 붙잡혀 악명 높았던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영장도 없고 구속만료도 없었다. 민주화 분위기 탓으로 다행히 다시 회사로 돌아온 그는 일주일간의 파업을 전개한 끝에 임금 30% 인상을 쟁취하며 완벽한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노동운동가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80년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김 지사는 소위 정화대상자가 돼 삼청교육대로 가야하는 수배자가 된다. 갈 곳 없는 그가 몸을 숨긴 곳은 세진전자 노조지부장을 지냈던 지금의 부인 설난영 여사의 자취방이었다.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청춘남녀는 한결 가까워졌고 “만인을 위해 살겠다고 하는 사람인데 한 여자를 못 살리겠느냐”는 그의 적극적인 설득 끝에 설 여사에게 결혼승낙을 얻어냈다.

1981년 9월26일. 서울 봉천동 사거리 밑 봉천중앙교회 교육관에서 원피스를 입은 신부와 뿔테 안경을 쓴 깡마른 신랑이 팔짱을 끼고 동시 입장한다. 웨딩드레스도 청첩장도 없는 김 지사와 설 여사의 결혼식이었다.

이날 결혼식장 주변으로 전경버스 다섯 대가 출동했다. 하객보다 경찰이 더 많았던 결혼식. 경찰이 두 사람의 결혼식을 시위를 열기 위한 ‘위장 결혼식’으로 의심했던 것이 그 이유다.

이후 김 지사는 정계에 입문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90년 민중당 창당에 참여, 노동위원장으로 선임되고,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민중당 전국구 후보 3번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94년 민주자유당에 입당 후 96년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부천시 소사구에 출마한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박지원을 누르고 당선되면서 전국적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어진 10년간의 국회의원 생활은 김문수라는 이름 석자를 국민들의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깐깐한 성격, 빈틈없는 논리, 청빈한 생활은 한나라당 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국회의원이 아니었고 ‘가난한 국회의원’은 어딜 내놔도 상대당의 공격에서 자유로웠다.

그는 대통령 친인척 비리를 폭로하는 등 야당 저격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같은 저력으로 16, 17대 총선에서도 부천소사에서 ‘탄핵역풍’까지 뚫고 내리 3선에 성공한 그는 지난 2006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임한다. 그리고 6월1일 밤 그는 당당히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결식아동 항의에
‘김결식’ 별명 얻어

당선 이후 김 지사는 학교 급식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어릴 적 죽도 제대로 못 먹고 자랐던 그에게 학교 급식 문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의 김영삼 대통령에게도 건의하고 당시 신한국당 정책위원회에도 문제를 제기하여 학교 급식법을 세 번이나 고쳐가며 급식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힘썼다. 결식아동 급식 예산비를 삭감하려하자 김 지사가 추경 예산안을 조율 중이던 3당 총무회담을 박차고 들어가 “밥 굶는 아이들에게 왜 밥을 주지 않는가.
아이들이 유권자가 아니라고 이래도 되는 거냐”며 거칠게 항의했던 일은 국회의 전설로 남았다. 그 사건 이후 김 지사는 <김결식 의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 그는 ‘김문수 스타일’로 불리는 ‘현장 중심 활동’으로 유명하다. 하루에도 몇 곳씩 현장을 찾다보니 4년여 동안 관용차로 23만km를 달렸다. 지구 6바퀴를 돈 셈이다.

“정책은 교과서에 없다. 보고서에도 없다. ‘현장’은 살아있는 보고서이며 교과서다”라고 말하는 김 지사의 못 말리는 ‘현장사랑’은 마침내 그를 ‘김지사’에서 ‘김기사’로 변신하게 했다. “골프를 못 치면 정치인이 되기 어렵다”는 충고에도 골프 치는 시간이 아까워 여전히 ‘골프 못 치는 정치인’으로 남은 그가 휴일에 골프채 대신 택시 운전대를 잡은 것이다.

“쇼하지 마라, 얼마나 갈지 두고 보자”는 수군거림을 뒤로 하고 1년 여의 기간 동안 보통 택시 기사와 똑같은 조건에서 택시 영업을 한 김 지사. 하루 12시간씩 핸들을 잡고 총 18번 운행하는 동안 26개 시군을 넘나들며 400여 명의 경기도민을 만났다. “이보다 깊이 도민들과 만나는 방법을 지금까지 나는 찾지 못했다”는 김 지사가 택시 운전석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은 정책 구상의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경기도 전체를 한 시간에…수도권 교통 혁명 GTX 추진
골프채 대신 택시 운전대 잡아…국민과 소통하는 정치


그의 대표적인 정책은 수도권 광역 급행 철도(GTX) 건설 사업이다. 최고 시속 200km 로 지하 40m 이하를 달려 일산에서 강남까지 22분, 강남에서 동탄까지 18분 만에 도착하는 GTX는 경기도 전체를 한 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수도권 교통 혁명으로 평가된다.

“세계는 이미 메가시티 패권 경쟁 시대에 돌입했다. 대한민국의 심장 수도권을 경쟁력 있는 메가시티로 키워야한다”고 말해 온 김 지사는 외국 자본의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기 위해 경기도가 선결해야 할 과제는 균형발전의 논리로 50여 년간 적용 돼온 ‘수도권 규제 완화’라고 주장해 왔다.

수도권 규제 완화를 위한 그의 끊임없는 설득과 노력은 여의도 면적의 8배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 개발제한 구역 112㎢ 합리적 조정, 상수원 공장입지 제한거리 대폭 축소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그는 <김결식>이라는 별명답게 복지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대표적인 예가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 복지지원정책부문에서 2년 연속 대상을 수상한 ‘위기가정 무한돌봄사업’이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취약계층을 ‘무제한·무기한’으로 지원하는 복지 서비스로 법과 제도가 보호하지 못하는 위기에 처한 가정들을 ‘선지원·후심사’를 원칙으로 지원해준다.

단순한 경제적 지원 뿐 아니라 민간의 풍부한 복지 인프라와 연계한 수혜자 중심의 지속적이고 통합적인 지원을 하는 ‘위기가정 무한돌봄 사업’은 복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 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 17대 총선 공천심사위원장을 거치며 치열한 내부 경쟁을 극복하고 보수진영의 ‘차세대 주자’로 자리 잡은 김 지사는 지금 다시 한 번 경기도의 앞날을 책임지게 됐다.

이에 따라 향후 GTX 사업, 서해안 골드코스트 무한비상, 무한돌봄 사업 등 3대 핵심사업의 추진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GTX사업의 경우 국토해양부에서도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타당성 조사용역에 착수했고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 현대산업개발 등 3개 컨소시엄에서 국토해양부에 민간투자 제안서를 제출했다.

이와 함께 무한돌봄 사업을 크게 확장했다. 2014년까지 총 1977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위기가정은 물론 차상위층까지 자립을 지원할 계획이다.
김 지사는 이를 위해 이미 31개 시·군에 무한돌봄센터를 설치, 찾아가는 복지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경기도 사회복지공제회 확대 지원을 통한 사회복지 종사자의 복지 돌봄을 강화했다. 세부적으로는 가정보육교사 제도 확대 운영, 시간연장 보육시설 확대, 결식아동급식 확대, 중증장애인 연금제도 시행 등의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선지원·후심사’ 원칙
‘무제한·무기한’ 지원

또 유니버설스튜디오 코리아 리조트 조성사업을 중심으로 한 서해안 골드코스트 무한비상 사업도 추진 기반을 확고히 하게 됐다. 현재 송산그린시티 내 동측 부지 132만평에 테마파크, 씨티워크, 워터파크, 콘도미니엄을 건설해 2014년 개장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항공산업 육성, 평택항 개발 및 국제물류기지 건설사업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제 김 지사는 경기도 발전을 위한 움직임에 두 번째 걸음을 뗐다. 앞으로 그의 행보에 경기도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가 함께하기를 바란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프로필

<주요 경력>
·1951년 경북 영천 출생 ·경북 중·고등학교 졸업 ·1970년 서울대 경영학과 입학 후 민주화 운동으로 두 차례 제적과 투옥 후 25년 만에 졸업·도루코 노조위원장, 서노련 등 노동운동 ·1986년 5.3 인천 직선제 개헌 투쟁으로 2년 5개월 복역 ·제15, 16, 17대 국회의원 (경기도 부천 소사) ·한나라당 제1 사무부총장, 기획위원장, 공천심사위원장(17대 총선) ·2006년 민선4기 경기도지사


<수상. 자격증>
·1996년~2005년 10년 중 9년 의정활동 국정 감사 최우수의원 선정 ·1999년 결식아동 돕기 의정활동 공로패 수상  ·2006년 국회 출입기자단 선정 ‘약속 잘 지키는 국회의원 1위’, ‘일 잘하는 국회의원 1위’ ·2007, 2009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민선4기 광역자치단체 공약 이행도 평가 1위 ·2007, 2009년 포브스 경영품질대상 공공혁신 부문, 리더십 부문 대상수상 ·환경관리기사, 열관리 기능사 등 국가 자격증 9개 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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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