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소설가 황인경의 신작 <K> 출간 기념 북콘서트 현장을 찾았다. 보통의 문학 행사를 떠올리고 들어갔지만, 첫 장면부터 결이 달랐다. 문학이 아니라 정책에 가까웠고, 행사라기보다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모인 사람들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이 자리에는 책 한 권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올라와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참석자 구성이었다. 정세균·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오명 전 부총리, 김성진·유영숙 전 장관, 양향자 국민의힘 최고위원, 헝가리 대사 부부와 리투아니아 대리대사, 그리고 국내외 대학총장 등 각계 핵심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여기에 장인순 전 원자력연구소장, 황주호 전 한수원 사장, 김덕지 전 한국원자력연료 사장, 신장균 아이삭연구소 소장 등 산업의 중심 인물들까지 더해졌다.
미국 현지에서 영상 축사를 보낸 김국헌 전 MMIS 개발사업단장까지 포함하면, 이 자리는 단순한 북콘서트를 넘어 국가 네트워크가 입체적으로 결집된 장면이었다. 문학이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실질은 국가 전략의 집합이었다.
이날의 중심에는 <K>라는 작품이 있었다. 이 소설은 2001년부터 약 10년에 걸쳐 진행된 대한민국 MMIS(디지털 원전 계측·제어시스템) 독자 개발 프로젝트를 작가가 5년에 걸쳐 서사로 재구성한 산업 소설이다.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프랑스 아레바가 장악하던 원전 핵심 기술을 한국이 자체 역량으로 돌파하고, 신한울 1·2호기에 국산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탑재하기까지의 과정을 인간의 성장 서사로 풀어냈다.
기술은 숫자로 남지만, 선택은 이야기로 남는다. <K>는 그 지점을 정확히 겨냥한다. 이 작품은 기술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기술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구조를 설명하는 서사다.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장면은 ‘현장 증언’이었다. 우리나라 원자력의 기틀을 만든 장인순 박사가 직접 원자력 도입의 배경과 미래를 설명했다. 과거를 만든 사람이 현재를 해석하고, 그 해석이 미래를 설계하는 장면이었다. 이 순간, 문학은 기록이 아니라 전략으로 전환됐다.
정세균·정운찬 전 총리와 오명 전 부총리, 그리고 산업을 이끌어온 인사들의 축사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그들의 메시지는 과거를 기념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북콘서트는 발표회로 확장됐고, 발표회는 자연스럽게 국가 전략 회의로 이어졌다.
이 장면을 보며 필자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AI 시대는 곧 에너지의 시대다. 데이터와 연산이 폭발하는 시대에서 전력은 인프라가 아니라 경쟁력 자체다. 그런 의미에서 원자력은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다. 이들이 축적해 온 기술이 있었기에 우리는 AI 시대의 출발선에 설 수 있다.
세계는 다시 원자력으로 돌아가고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목표 아래 안정적인 기저 전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은 제한적이다. 태양광과 풍력은 필수지만 간헐성이라는 한계를 갖는다. 결국 전력망을 지탱하는 축은 원자력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국은 이미 기술과 경험을 동시에 확보한 몇 안 되는 국가다.
현 정부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에너지 정책의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탈원전과 친원전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현실적인 에너지 믹스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이다. 특히 소형모듈원자로(SMR)는 전력 생산을 넘어 수출 산업으로 확장될 수 있는 전략 자산이다.
이 자리에서 필자가 확인한 또 하나의 가능성은 ‘K-북’이었다. 한류는 K-팝과 K-드라마로 확장돼 왔다. 이제는 그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감성을 넘어 구조를 전달하는 콘텐츠, 산업과 기술을 담는 서사가 필요하다. <K>는 그 시작점이다.
양향자 최고위원이 던진 “반도체를 다룬 대작이 필요하다”는 제안은 단순한 덕담이 아니다. 콘텐츠 전략에 대한 방향 제시다. 황인경 작가가 말한 “기술은 사람의 이야기이며 미래는 협력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문장 역시 같은 맥락이다. K-북은 이제 감정을 넘어서 구조를 설명해야 한다.
이 장면은 분명한 전환점이다. K-팝이 감정을, K-드라마가 이야기를 전했다면, K-북은 국가의 구조를 전달해야 한다. 산업, 기술, 선택, 실패, 그리고 축적된 시간까지 담아낼 때 비로소 한국은 소비되는 나라에서 이해되는 나라로 이동한다. <K>는 그 가능성을 처음으로 입증한 사례다.
이날 북콘서트는 문학으로 시작했지만 전략으로 끝났다. 그것은 한 작가의 신작 발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원자력, AI, 그리고 K-북이 하나로 연결된 순간이었다.
필자는 이날 K-북콘서트를 황인경 작가의 노벨문학상을 향한 출발로 보면서도, 동시에 대한민국의 노벨과학상을 향한 비전의 시작으로도 봤다. 문학과 과학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순간, 국가는 새로운 단계로 올라선다.
우리는 무엇으로 대한민국을 설명할 것인가. 감성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술만으로도 부족하다. 두 가지가 결합된 서사, 그것이 필요하다.
<K>는 이미 그 답을 현실로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