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전성기 도전 나선 ‘골프여왕’ 박세리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은 지금!”

골프선수 박세리가 ‘여왕’으로 돌아왔다. 박세리는 LPGA 투어 벨 마이크로 클래식에서 통쾌한 승리를 움켜쥐는 것으로 그간의 부진을 씻어냈다. 그는 지난 1998년 US오픈에서 ‘맨발 투혼’을 시작으로 10여 년간 세계무대를 주름잡았지만 2007년을 끝으로 정상을 밟지 못했다.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성적과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의 추격으로 주변에서는 그의 은퇴가 거론되던 시점이었다. 박세리는 최고의 현역 선수들과 겨룬 경기에서 ‘관록의 승리’로 유쾌한 ‘반전’을 선사함과 동시에 선수 인생에서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마련했다. 특히 이번 우승은 LPGA 무대를 장악한 ‘세리 키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낸 결과여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34개월 만에 우승컵 입 맞춘 원조 ‘골프여왕’
새롭게 쓴 연장불패 신화, 드라마틱한 부활샷


지난 1998년 외환위기로 힘들어 하던 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던 원조 ‘골프여왕’ 박세리가 부활샷을 쏘아 올렸다.
박세리 선수는 지난 17일 미국 앨라배마주 모빌의 매그놀리아 그로브 골프장에서 열린 벨 마이크로 LPGA 클래식에서 브리타니 린시컴, 수잔 페테르센을 꺾고 34개월 만에 우승컵을 움켜쥐었다. ‘가뭄의 단비’ 같은 우승은 드라마틱했다.
 
반전의 묘미 속
골프여왕의 부활

그의 우승은 연장전에서 결정됐다. 3라운드까지 공동 1위를 유지하던 박세리는 4라운드 3번홀에서 공동 3위로 밀려났다. 하지만 악천후로 인해 4라운드가 아예 취소되면서 3라운드까지 공동 선두를 이뤘던 수잔 페테르센, 브리타니 린시컴과 우승자를 가리는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됐다. ‘행운이 여신’이 그를 향해 미소 짓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박세리는 ‘맨발 투혼’으로 더 유명한 지난 1998년 7월 LPGA US오픈에서 20개 홀을 도는 연장전 끝에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이후로도 연장전에서는 승리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빗속에서 치러진 연장전에서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기회를 잡았다.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관록’이 그를 도왔다. 첫 번째 위기는 두 번째 홀에서 찾아왔다. 박세리는 세컨샷을 그린 뒤 벙커에 빠뜨렸지만 벙커샷을 핀 2m에 붙인 뒤 쉽지 않은 파퍼트까지 집어넣었다. 

연장 세 번째 홀에서는 티샷을 페어웨이 벙커에 빠뜨렸다. 하지만 박세리는 오히려 결정타를 날렸다. 두 번째샷을 핀 1.5m에 붙여내며 승기를 잡은 것. 린시컴이 파퍼트로 압박해왔지만 침착한 버디 퍼트를 해낸 박세리의 승리였다. 

이로써 그는 통산 25승, 6번째 연장전 승리를 따냈다. ‘연장불패’ 신화를 이어감과 동시에 투어 역사상 연장전에서 최고 승률을 올리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번 연장 승부에 대해 박세리는 ‘자신감’을 말했다. “연장전을 치른 18번홀은 사흘 동안 매번 다른 느낌이었다. 건조했을 때는 페어웨이부터 그린까지 꽤 가깝게 느껴졌다. 실제 쇼트 아이언을 잡았다. 그러나 바닥이 젖은 오늘은 딴 판이었다. 세컨드 샷 지점에서 세차례 연속 6번 아이언을 잡아야했다. 세번째 벙커에서 세컨드 샷을 할 때도 6번 아이언을 잡았는데 페어웨이에서 칠 때보다 스핀이 잘 걸리고 시야 확보도 용이해 더 좋았다. 자신감이 있었다. 실제로 홀컵에 잘 붙었고, 자신있게 버디로 연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대회 후 연장전 불패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어차피 연장에 가면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라며 “그래서 연장에 가면 더 자신감을 가지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샷도 더 잘 맞는다. 무패 행진에 대한 압박감도 있지만 지금까지도 기록을 의식해서 된 것은 아니다. 가능한 이 기록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답했다.

이번 승리는 그에게 의미가 깊다. ‘맨발 투혼’으로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지난 1998년 US오픈 우승 이후 박세리는 미국 무대를 점령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메이저대회 5승을 포함한 24승, 명예의전당 헌액 등 세계여자골프계를 종횡무진 했다. 하지만 2007년 이후 그의 우승 소식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침체기가 길어지면서 주변에서는 은퇴를 거론하는 이들이 늘어만 갔다. 
 
내리막길은 ‘이제 끝’
껑충껑충 오르막 오른다

하지만 박세리는 이번 대회를 계기로 2007년 7월 LPGA 투어 제이미 파 오웬스 코닝클래식에서 정상에 오른 뒤 2년10개월 만에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으며 ‘인생의 새로운 계기’를 찾았다.  

어렵사리 쏘아올린 부진탈출의 신호탄은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 18일 발표된 세계여자골프랭킹에서는 평균 3.59점을 받아 전주보다 26계단 오른 22위로 껑충 뛰어오른 것.

지난 2005년 102위까지 곤두박질쳤던 상금 순위도 이번 대회 우승 상금 19만5000달러에 힘입어 시즌 상금 23만7000달러를 기록, 7위로 껑충 뛰었다. 역대 통산 상금에서도 1083만달러로 아니카 소렌스탐, 캐리 웹, 로레나 오초아, 줄리 잉스터에 이어 5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다. 박세리는 우승 소감에서 “지난 몇 년 동안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 잘 하던 시절로 돌아가려고 노력했고, 열심히 훈련하고 경기에 열중했다. 좋은 날이 올 것으로 믿고 기다리고 또 인내했다”며 “그런 시간들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웠다. 요즘은 편안한 마음으로 치다 보니 정말 행복하다”고 밝혔다. 긴 침체기동안 겪었던 적잖은 마음고생을 털어낸 것.  

그는 슬럼프에 대해서도 “다시 우승을 못 할 것이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며 “내게 필요한 것은 역시 인내심이었다. 난 여전히 게임에 애착이 있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훈련하고 과거 잘 하던 때로 돌아가려고 애를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늘 우승은 왜 내가 앞으로도 계속 연습을 하고 노력해야 하는지 보여준 결과”라며 ‘다음’을 위한 노력이 계속될 것임을 내비쳤다.
쉽지 않았던 시간들을 털어낸 만큼 박세리는 우승의 순간을 더욱 값지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대회가 끝난 후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자평하며 “이번 우승으로 골프에 대한 내 믿음과 열정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는 말로 샘솟기 시작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세계여자골프랭킹 껑충, 자신감은 곱절로 껑충
‘세리키즈’ 자극·힘을 주는 든든한 응원군으로


박세리는 “그동안 내 부진을 걱정해 준 사람이 많았는데 내색을 안 했지만 사실 가장 속이 타는 건 나 자신이었다. 그래도 힘든 기간 중 나에 대한 믿음을 한 번도 저버린 적이 없다. 그 결과 긴 터널을 지나 다시 우승컵을 품에 안은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이번 승리는 신지애, 양희영 등 ‘세리키즈’들의 환호성으로 장식됐다. 박세리가 지난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맨발을 연못에 담근 채 샷을 날려 우승을 차지했던 모습을 보고 골프를 시작했던 ‘세리키즈’들이 10년 사이 무섭게 성장해 LPGA 무대를 장악한 것.
그가 벨 마이크로 LPGA 클래식에서 우승한 뒤 가진 공식 인터뷰에서도 ‘세리키즈’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박세리는 “도대체 우리 애가 얼마나 되는거죠”라는 농담으로 질문을 받아들였다. 그는 “처음에는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이제는 맏언니로서 그들이 자랑스럽다”면서 “지금은 오히려 그런 소리를 듣는 게 좋다. 그들이 나로 인해 꿈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세리키즈’들이 그에게 또 다른 동기를 유발하는 존재가 됐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박세리는 “(신)지애와 (최)나연이 등 ‘세리키즈’로 불리는 한국 어린 골퍼들이 자신의 경기가 끝났는데도 모두 남아서 나를 응원했다. 기분이 너무 좋고 뿌듯했다.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내가 헛되지 않은 생활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세리키즈들에게
새로운 ‘길’ 열어줄까

  
그는 “오늘 나를 응원해준 그들이 있어 정말 행복했다”며 ‘세리키즈’들로부터 받은 힘이 적지 않음을 내비쳤다.
한동안 그의 주변을 맴돌던 ‘은퇴’에 대해서도 당당해졌다. 재미교포와의 교제 소식이 전해지면서 결혼과 함께 골프계를 떠나는 것 아니냐는 추측에 시달렸던 것.

박세리는 결혼과 관련, “기분은 아직도 18세 같지만 실제로는 적은 나이가 아니지 않느냐”며 “결혼도 시기가 있는데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결혼을 심각히 고려해야할 나이지만 결혼을 한다고 해도 당장 은퇴할 생각은 없다”고 못박았다. 박세리는 “은퇴라뇨”라고 반문하며 “한국에 수많은 ‘세리키즈’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꼈다. 골프에 더 매진하겠다”고 거듭 은퇴와 거리를 뒀다. 

그는 “함께 경쟁하던 소렌스탐이 은퇴하고 최근에는 오초아도 빠지면서 은퇴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고 토로하면서도 “이번 대회를 통해서 보고 느낀 것들이 나를 다시 골프에 빠져들게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계속되는 그의 도전은 ‘세리키즈’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으로 보인다. 박세리가 이번 우승으로 거둔 타이틀에는 ‘역대 한국 선수 LPGA 투어 최고령 우승’이라는 기록도 있다. 그는 현재 32세로 구옥희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부회장이 지난 1988년 스탠더드 레지스터에서 우승했을 당시 나이인 31세를 1년여 정도 뒤로 미뤘다.

이를 두고 스포츠계에서는 박세리가 자신을 바라보며 골프를 시작한 ‘세리 키즈’들에게 더 오랫동안 LPGA 무대를 주름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박세리도 이를 의식한 듯 자신의 선수 활동을 “후배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기 위한 보험이 되고 싶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박세리 자신에게도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그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보여줬다. 드라이버 거리가 늘고 오락가락하던 퍼트가 좋아진 것. 박세리는 “20대 초반보다 여유가 생겨 멘털은 훨씬 강해졌다”며 “힘과 지혜·경험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그는 또 “골프는 아직도 내게 강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나 자신에게 미련이 남지 않을 때까지 선수 생활을 계속하겠다”면서 “20대 때도 못해본 (골프인생의) 진정한 전성기가 이제 시작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와 함께 그는 ‘승리의 순간’을 뒤로 하고 20일부터 미국 뉴저지주 글래드스톤 해밀턴팜골프장에서 열리는 사이베이스매치플레이챔피언십에 참가, 연승 도전에 나섰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