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직장’ LH 성추문 백태

몹쓸짓은 고위간부…합의금은 임직원들이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높은 연봉과 안정된 근무 여건을 갖춘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청년 구직자들 사이에서 꿈의 직장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 같은 특징은 단면에 불과하다. LH 내부에서 불거진 각종 잡음은 도덕성에 대한 의구심을 들게 한다. 어느새 성추행·성추문 1등 공기업이라는 부끄러운 낙인마저 찍혔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토지개발, 도시개발, 주택공급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대표적인 공기업이다. 171조7820억원에 이르는 자산총액은 전체 공기업 가운데 한국전력 다음이고 심지어 재계순위 3위인 SK그룹마저 앞선다. 한마디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솜방망이 처벌

그러나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외형과 달리 LH는 내부에서 각종 잡음을 끊임없이 양산하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공기업 부실 종합 선물세트’나 다름없는 LH의 모습이 여과 없이 노출됐다. 엄청난 금융부채, 사업자 선정 비리 등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더 심각한 건 성추행·성희롱이었다. LH의 도덕성을 가늠하기 충분했던 이 사안에 대해 여야 할 것 없이 쓴소리를 내뱉은 건 당연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국감 당시 국토교통위원회 산하 공기업 임직원들에 의한 성추행 사건이 LH에서 3건 발생해 한국공항공사와 함께 공동 1위였다고 꼬집었다. 또한 LH는 같은 기간 동안 성희롱 사건도 3번이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합치면 국토부 산하 공기업 중에서 성범죄 발생빈도는 단연 최고 수준이다.

하 의원은 “LH 고위 임원들의 성추행·성희롱은 내부 구성원뿐만 아니라 외부인을 대상으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신체를 접촉하는 등 심각한 도덕불감증을 보인 경우도 있었다”며 “임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 예방교육이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하고 형식적으로만 진행됐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질타했다. 성범죄가 자행된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더 가관이다. 조직적으로 은폐 혹은 잡음을 무마하려는 움직임마저 포착됐다.


김상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재영 LH 사장을 앞에 두고 고위 간부의 여직원 성희롱 사건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김 의원에 따르면 LH의 한 1급 고위 간부는 지난해 파견직 여직원을 성희롱한 혐의로 지난 7월 성희롱 고충심의위원회에서 해임 결정이 내려졌으나 약 3주 뒤 열린 LH 중앙인사위원회에서 정직 3개월로 처벌이 경감됐다. 인사위가 열리기까지 3주 사이에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4000만원의 합의금을 주기로 하고 성희롱과 관련한 민·형사상 소송도 취하됐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LH 직원 3000명이 감경 처벌에 대한 부당함을 들어 탄원서를 제출했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이재영 사장의 요청으로 재심의가 이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위는 인사 규정에 없는 ‘정직 5개월’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 LH의 인사규정에 따르면 정직은 1∼3개월 이내에서 내려야 하며 그 이상의 중징계는 해임 또는 파면을 해야 한다.

이를 두고 김 의원은 “성희롱 사건을 처리하면서 고충위원회가 요구한 징계안이 인사위에서 경감된 적이 없었는데 예외적인 경감이 내려진 것”이라며 “당사자간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인사위 개최를 미루고 기다려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성희롱·성추행 1위 공기업 불명예
심각한 기강해이 “내부 통제불능?”

게다가 LH 내부에서는 문제가 불거진 고위 간부를 돕고자 합의금 4000만원에 대한 모금운동까지 벌였던 정황이 드러났다. 그 사이 인사위 위원장과 성희롱 가해자 모두 LH 사내 감사실 출신 고위직 모임인 ‘감일회’회원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은 더욱 확대됐다. LH의 봐주기 문화가 극에 달했다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의원은 “최근 한 주거급여 조사원은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민원 신고만으로 해고 처분이 내려졌다”며 “LH 인사위는 내부 고위직들로만 구성돼 있어 처벌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이중잣대를 들이댔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 같은 지적사항이 매년 되풀이 된다는 점이다. 지난해 국감에서도 LH는 비슷한 지적을 받았고 유사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4월에는 강원지역본부 A직원이 기업인 교육에서 여성 강사의 엉덩이를 때리는 추태를 부렸지만 A직원은 감봉 조치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데 그쳤다. 지난해 5월에는 LH 토지주택연구원 사원이 학술대회에 참가해 다른 기관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등 성추행·성희롱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LH의 성추행·성희롱 예방 대책은 아직까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LH는 매년 3∼4회에 걸쳐 성추행·성희롱 예방을 위한 집합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와 별개로 1시간에 걸친 사이버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다만 이 사항은 임원의 여직원 성추행에 대한 정직 5개월 징계처분이 내려지기 전부터 해왔던 사항이다. 

이렇게 되자 ‘제 식구 감싸기’ 차단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즉, 부정부패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상호견제 시스템이나 외부기관 감사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1∼2012년 공직유관단체로 신규 지정된 145개 기관 가운데 63곳(43.4%)의 인사위원회는 내부위원만으로 구성돼 있다. 이 경우 외부위원을 기관장이 추천하도록 돼 있어 독립성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도 넘은 봐주기

LH 노조 관계자는 “성희롱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에도 추가 성범죄 예방을 위한 조치는 여전히 미흡하다”며 “동일한 잡음이 불거지기 전에 징계수위를 조절하는 등 강화된 조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성희롱 부실교육 실태

고용노동부가 전국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맡은 93개 지정 교육기관을 일제 점검한 결과 25곳이 부실운영으로 적발됐다. 지난 9월1일부터 10월8일까지 이뤄진 점검을 토대로 고용부는 운영이 부실한 17곳의 지정을 취소하고 8곳에는 시정지시 및 행정지도를 했다.

지정 취소된 17개 교육기관은 대부분 법정 자격이 있는 강사를 확보하지 않았고 최근 2년간 교육 실적도 전혀 없었다. 법정 자격을 갖춘 강사는 고용부 장관이 직접 실시하는 강사 양성교육 또는 고용부 장관이 승인하거나 비용을 지원하는 양성교육을 수료한 강사를 말한다.

법정 교육시간(1시간 이상) 미준수, 법정 교육내용 누락 등의 문제가 있는 8개 기관에 대해서는 무상으로 재교육하도록 시정지시를 내렸다. 관련법상 ▲직장 내 성희롱에 관한 법령 ▲성희롱 발생 시 처리 절차와 조치 기준 ▲피해 근로자의 고충 상담 및 구제 절차 등의 내용은 예방교육에 포함돼야 한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지정 교육기관에 의한 성희롱 예방교육은 총 833개소, 7만4623명에 대해 이뤄졌다. 그 중 각 지역 여성노동자회 등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고용평등상담실 13곳이 총 475개소 2만4428명을 교육하는 등 실적이 우수했다. 아울러 고용부는 연말까지 미지정 교육기관이 민간기업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담당하는 실태를 추가 조사해 지도·단속할 방침이다.


성희롱 예방교육을 빙자해 금융상품 등을 판매하는 교육기관 등도 추가로 적발할 예정이다. 예방교육 시간에 각종 상품을 판매하는 행위는 방문판매법,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법, 상표법 등에 의해 처벌·제재를 받을 수 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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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