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 자살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넷

벼랑 끝 내몰고 비밀은 감췄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지난달 18일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직원 임모 과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해킹 파문의 중심에 있던 그는 3장의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임 과장의 죽음으로부터 1달이 지났지만 풀리지 않는 의혹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는 왜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일까. 또 국정원은 무엇이 두려워 임 과장의 사망 경위를 숨기고 있는 것일까. 현재까지 드러난 4가지 핵심 의혹을 중심으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임 과장의 유골이 안치된 곳은 경기도 용인시 '평온의 숲'이다. 평온의 숲에서 자동차로 15분 남짓한 거리에는 임 과장이 숨진 고라지골이 있다. 앞서 소방당국이 밝힌 임 과장의 정확한 사망 장소는 화산리 산77번지다. 마을 주민들은 화산리 산77번지 일대를 일컬어 고라지골이라고 부른다.

임 과장은 지난 7월18일(토요일) 오전 6시30분께 빨간색 마티즈 차량을 끌고 고라지골에 도착했다. 임 과장은 이날 오후 12시2분 소방대원들에 의해 시신으로 발견됐다. 소방당국은 자체 작성한 보고서에서 "당시 망자가 전신 사후강직 상태에 있었다"고 적었다. 기후 등 여러 변수가 있지만 '전신 사후강직'이 이뤄진 점에 비춰 임 과장은 늦어도 오전 10시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은 "사후강직은 사망 후 5시간 내지는 6시간 내 일어난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미스터리 1]
왜 119로 신고했나

용인 지역 CCTV 등으로 확인된 임 과장의 사망 전 행적은 이렇다. 사건 당일 오전 4시52분 임 과장은 자택에서 나와 마티즈 차량에 탑승했다. 오전 5시48분까지 마트 세 곳에 들러 소주와 빈 호일도시락, 숯, 번개탄 등을 구입했다. 오전 4시52분∼5시48분 동안 임 과장은 자택 인근의 낚시터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티즈 차량이 대로변 CCTV에 마지막으로 촬영된 시각은 오전 6시22분이다.

임 과장은 이날 새벽 집을 나서면서 부인에게 "출근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부인 A씨는 "출근한 남편을 찾아달라"라며 5시간 만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은 지난달 "임 과장의 부인이 오전 8시부터 모두 10여차례에 걸쳐 임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아 119에 실종신고를 했다"라고 주장했다. 경찰 주장에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의도적으로 빠져 있다. 바로 국정원의 개입이다.


<노컷뉴스>는 지난 7일 야권 관계자의 전언을 인용해 "국정원이 사건 당일 오전 9시께 A씨에게 전화를 걸어 '남편이 출근하지 않았으니 119에 신고하라'고 지시했다"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은 임 과장의 실종 사실을 정부기관 가운데 가장 먼저 인지하고 있었다.

세부적으로 국정원 3차장은 사건 당일 오전 8시40분쯤 국장급 간부로부터 임 과장의 결근 사실을 보고 받았다. 3차장은 즉각 위치추적장치(MDM)를 작동하라고 지시했다. 또 임 과장의 휴대전화가 '용인 소재 저수지 근처'에서 발견됐다는 보고를 받고 '용인의 옆부서 직원'을 현장에 보내라고 지시했다. 실제 국정원 직원은 소방당국과 거의 비슷한 시각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우에 따라선 119대원보다 먼저 도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임 과장 사망 한 달째 여전한 의혹
사건 현장 마티즈 최초 확인 가능성

A씨는 국정원과 약속한 대로 119에 신고했다. 통화시간은 오전 10시4분∼7분 사이다. A씨는 119의 권유를 받고, 파출소를 직접 방문해 신고 절차를 밟았다. 위치추적에 동의했다가 오전 10시32분 돌연 경찰 쪽 신고를 취소했다. 이후 경찰과 연락해 신고가 취소됐는지를 확인했다. 이때가 오전 11시38분이다.

반면 신고를 접수한 관할 소방서는 오전 10시25분 출동 준비를 마쳤다. 소방당국은 임 과장의 휴대전화 GPS 위치추적을 통해 '화산리 34번지'라는 데이터를 확보했다. 출동한 대원들은 오전 10시32분 상황실과의 무전 교신에서 “화산리 34번지로 출동하라”라는 통보를 받았다. 화산리 34번지는 임 과장이 숨진 화산리 산77번지와 도로상으로 130여m가 떨어진 곳이다. 119대원들은 오전 10시40분쯤 화산리 34번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대원들은 산중턱에서 머뭇댔다. 상황실에서는 "인근 저수지를 수색하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앞서 A씨는 10시30분∼40분 사이 소방당국과의 통화에서 "남편이 화산리 인근 저수지에서 낚시를 자주하니 (그곳을) 찾아달라"라고 말했다. 대원들은 현장에서 약 2km가량 떨어진 요덕저수지와 맹골낚시터(화산저수지)를 차례로 수색했다.

[미스터리 2]
왜 수색 방해했나


요덕저수지와 화산저수지는 사건 현장으로부터 약 5분 거리(차량 기준)에 있는 낚시터다. 요덕저수지와 화산저수지, 화산리 34번지로 갈리는 삼거리에는 버스정류장이 있다. 버스정류장 삼거리는 지도상 각 거점 수색이 용이한 요충지로 확인된다. 119대원들은 이 삼거리에서 어느 쪽을 수색할 것인지 대책을 의논했다. 이때 임 과장의 '동료'인 국정원 직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정원 직원은 현장 대원들과 당일 오전 11시11분께 정차된 구급차량 앞에서 3∼4분간 대화를 나눴다. 누가 먼저 대화를 요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는 대화가 이뤄진 경위에 대해 국정원 측에 답변을 요구한 상황이다.

단 당시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통화 녹취록이 존재한다. 녹취록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은 '동료 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왔다'라며 현장대원과 접촉했다. 이어 '낚시'와 관련한 특정 정보를 대원들에게 흘렸다. 이들은 11시15분께 삼거리에서 헤어졌다. 대원들이 향한 곳은 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맹골낚시터였다.

같은 시각 국정원 직원은 따로 활동했다. 그의 행적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있다. 일각에선 국정원 직원이 소방대원들로 몰래 임 과장을 찾으려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당시 대원들은 차량이 발견되기 전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국정원 직원과 통화했다. 지난 10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조송래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장은 "수색을 하다보면 동료나 가족과 함께 요구조자를 찾을 일이 생긴다"라며 "(그가) 국정원 직원인지 몰랐다"라고 해명했다.

또 한편에선 이미 현장을 장악한 국정원 직원이 다른 직원을 도피시키기 위해 시간을 번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출동한 대원은 오전 11시35분께 상황실로부터 "관계자한테 물어보세요" "'위치추적 관계자'가 같이 없어요?"라는 질문을 연달아 받았다. '위치추적 관계자'는 흔히 쓰이는 표현이 아니다.

그러자 무전을 받은 현장대원은 "없어. 그 사람들, 차 가지고 가서 그 사람도 나름대로 찾아준다고"라고 답했다. 여기서 '그 사람들'은 국정원 직원들의 조직적인 수색 가능성을 암시한다.

[미스터리 3]
왜 수사하지 않았나

부인 A씨는 오전 11시15분 119에 2차 위치추적을 요청했다. A씨가 위치추적을 재요청한 시점은 국정원 직원이 소방대원들과 헤어진 시점과 맞물린다. 오전 11시28분 소방당국은 위치추적을 통해 임 과장의 휴대전화가 화산리 산77번지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보다 2분 빠른 11시26분에는 소방대원들이 사고를 의심하고 112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런데 앞서 밝혔듯 A씨는 경찰이 출동 준비를 하자 신고를 취소해 달라고 재촉했다. 오전 11시51분에는 앞선 결정을 번복하고 다시 위치추적을 요구했다. 이 시각 소방대원들은 상황실의 전화를 받고 도라지골에 진입한 상태였다. 상황실은 화산리 산77번지 뒤편인 시궁산 정상을 수색하라고 했다가 '관계자(국정원 직원)와 연락해 도라지골로 가라'며 수색 위치를 조정했다.

당일 오전 11시42분께 맹골낚시터에서 출발한 펌프차는 삼거리를 거쳐 화산리 34번지 쪽으로 향했다. 오전 11시49분에는 구급차량이 같은 장소를 통과했다. 소방대원들은 화산리 34번지에서 U자로 구부러진 길을 지나 화산리 산77번지에 도달했다. 그곳에서 마티즈 차량을 발견하고 국정원 직원에게 가장 먼저 연락을 취했다. 확인된 통화 시간은 오전 11시54분~55분 사이다.

인근에 있던 국정원 직원은 오전 11시54분께 삼거리에서 화산리 34번지 쪽으로 페달을 밟았다. 같은 날 오후 12시2분께 현장을 접수한 국정원 직원은 임 과장의 시신을 먼저 체크했다. 이때부터 소방대원들은 상황실과의 무전 연락을 중단했다.

산중턱에 있던 5명의 대원은 오전 12시12분 구급차량으로 내려와 약 4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 국정원 직원의 모습은 구급차량 블랙박스에 포착되지 않았다. 국정원 직원은 현장에 홀로 남아 있었고, 누구의 방해도 없이 시신에 손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국정원 측은 현장 오염과 관련한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119대원들은 국정원 직원과 만난 다음에야 경찰에 사건 소식을 알렸다. 경찰이 사건을 인계받은 시각은 7월18일 오후 12시50분이다. 소방당국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차량보조석과 뒷좌석에선 번개탄이 꺼진 채 발견됐다.

지난해 3월 '간첩 증거 조작' 사건에 연루된 권모 과장은 차량 문을 잠그고 같은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그런데 마티즈 차량의 문은 권 과장의 산타페와 달리 잠겨 있지 않았다. 충분히 의심 가는 부분이지만 경찰은 문의 개폐와 관련한 의혹을 수사하지 않았다.

경찰·소방서 입막고 증거인멸 의혹
'그날' 감찰실서 무슨 대화 오갔나?

또 경찰은 임 과장의 사망 장소를 '마티즈 뒷좌석'이라고 기재했다가 국회 보고 과정에선 앞좌석으로 정정했다. 경찰은 출동 대원들의 단순 실수라고 떠넘겼지만 소방당국조차 시신의 위치를 별도 기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차량에서 발견된 17개의 쪽지문에 대해서도 "누구 것인지 판정할 수 없었다"라고 답했다.

경찰 신고 과정에서 이상 징후를 보인 A씨의 통화기록은 조사 대상에서 배제됐다. 경찰은 "단순 자살 사건이고, 유족 측이 수사를 요구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임 과장의 '동료'인 국정원 직원의 행적은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임 과장이 쓰고 나간 것으로 전해진 뿔테 안경은 유실됐다. 안경의 행방은 지금껏 오리무중이다. '임 과장의 매부'를 자처한 사람은 증거인 마티즈 차량을 7월19일 폐차했다. 폐차를 대행한 업체는 국정원의 오랜 협력사로 알려졌다.


[미스터리 4]
왜 그는 자살했나

출동으로부터 1시간10여분 만에 소방당국은 실종자를 찾았다. 일반 실종사건과 비교하면 신속한 사건 처리다. 하지만 소방당국은 국정원과 공모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장에 있던 구급차량 블랙박스는 오후 12시30분부터 촬영이 중지됐다. 전원이 꺼졌기 때문이다. 블랙박스가 다시 켜진 시각은 오후 12시58분이다. 28분 동안 국정원이 어떤 일을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구급차량은 블랙박스가 켜짐과 동시에 사건 현장을 이탈했다.

A씨는 오후 12시30분이 돼서야 소방관으로부터 마티즈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고 신고자임에도 국정원은 물론 경찰보다 늦은 시각에 결과를 통보받은 것이다. 임 과장은 생전 A씨를 향한 애정이 각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임 과장은 아내, 두 딸과 함께 신앙생활에 애착을 드러냈다고 한다.

임 과장의 자살 당시  주위 사람들은 집사인 임 과장이 교리를 어기면서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을 궁금해 했다. 현재 설득력 있는 원인으로는 내부 감찰이 꼽히고 있다. 그러나 감찰 당시 국정원과 임 과장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갔는지 또 어떤 '지시'가 있었는지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공무원에게 가장 가혹한 처벌은 파면 등을 이유로 '연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국정원은 강압적인 감찰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지난 3일 <한겨레21>은 '정말 다 짊어지려 그 길을 선택했을까?'라는 기사에서 "임 과장이 올 7월 초 한 목사로부터 마티즈 차량을 구입했다"라는 소식을 전했다. 이때만 해도 마티즈 차량은 '죽음의 도구'가 아니었다. 대전에 살던 임 과장은 출퇴근용으로 구입한 차량을 몰고 가족 모임에도 참석했다. 그러나 7월13일 국정원 해킹 파문이 일면서 한 가장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의 죽음 전 마지막 5일. 임 과장은 자신의 상관들에게 '우려하실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동료들께 죄송할 따름입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가족들에겐 "사랑해"라고 인사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야 할 만큼 '우려스런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영면을 취하고 있는 고인은 이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