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메르스, 왜 심각한가 ⑦경제가 위험하다

의심 많은 왕서방 “한쿡 안 간다해∼”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메르스 3차 감염이 현실화되면서 국내 경제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엔화 약세로 수출이 5개월 연속 감소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미약하게나마 회복세를 보이던 내수마저 메르스로 인해 위축되는 모습이다. 정부가 이달 말 발표할 예정이던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역시 메르스 사태의 진행 여부에 따라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메르스의 늪에 빠진 한국경제,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까.

 
전염병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회복조짐을 보이던 우리나라 경제 각 분야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68년 창궐한 홍콩독감과 2000년대 초반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세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다양한 지표로 확인된 사실이다.

2003년 악몽
사스 때처럼?
 
그러나 한국 입장에서는 2009년 국내에서 맹위를 떨친 신종플루(H1N1)가 이번 상황과 비교해볼 만한 사례로 꼽힌다. 경제지표에는 다양한 변수가 반영되기 때문에 그 영향을 계량화하는 것은 어렵지만 신종플루 당시의 지표 변화는 전염병 확산에 따른 여파를 가늠케 하기에 충분하다. 2009년 5월2일 국내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신종플루는 그해 가을에 심하게 번졌다. 국가전염병 위기단계(주의-경계-심각)가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격상된 것도 그 해 11월3일이었다. 따라서 2009년 4분기는 신종플루의 가장 직접적인 영향권에 든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정부와 연구기관들은 빠른 확산을 전제로 연간 성장률을 0.1∼0.3%포인트 떨어뜨리는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실제로 2009년 4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4% 증가하는 데 그쳤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4분기에 전기보다 3.3% 줄었다가 2009년 1∼3분기 0.1%, 1.5%, 2.8%로 증가폭을 늘려가다가 주저앉은 셈이다. 신종플루가 잦아든 이듬해 1분기에는 2.2% 성장하며 회복했다. 
 

신종플루의 영향이 컸던 부문은 서비스업이다. 돌림병이 창궐하면 기본적으로 소비주체의 하나인 개인의 활동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내국인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가기를 꺼리고 외국인 입국자도 감소하기 마련이다. 서비스업 생산 증가율은 전기 대비로 2009년 3분기 1.4%에서 4분기 1.0%로 둔화한다.
 
이런 지표 악화가 온전히 신종플루 때문은 아니지만 통계청의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업종별 영향을 가늠할 수 있다. 운송업, 여행업, 숙박음식업 등 대외·여가 활동과 관련된 업종은 신종플루가 확산하던 10~11월의 지표가 추락했다가 대체로 12월부터 나아지는 양상이 두드러졌다. 도시철도와 시내·시외버스 등 육상여객운송업 생산지표는 2009년 9월부터 12월까지 전년 동월 대비로 -4.2%, -6.3%, -4.4% -3.4%씩 위축되는 흐름을 보였다. 숙박음식점업 생산은 같은 시기에 -0.1%, -2.7%, -1.8%, 3.6%로 움직였다.
 
이 가운데 주점업은 -7.7%, -15.7%, -9.6%, 2.0%로 나타나 타격이 컸었음을 알 수 있다. 저녁 술자리를 자제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또 여가생활 위축으로 휴양콘도운영업은 -1.6%, -8.2%, -10.4%, -12.5%로 눈에 띄게 침체했다. 여행업에 대한 악영향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 여행사업은 그 해 9월부터 4개월간 각각 -34.2%, -34.1%, -19.2%, -0.5%으로 극심한 부진을 겪었다.
 
경기장과 골프장 등 스포츠서비스업 역시 10.4%, -2.8%, -1.9%, -5.1%로 침체양상을 보였다. 유원지·테마파크운영업은 각각 -24.5%, -28.0%, -47.5%, 14.3%를 기록해 10~11월에 침체의 골이 가장 깊었다. 반면에 병원의 생산지표는 14.1%, 14.7%, 16.0%, 20.4%로 늘어 커진 의료수요를 반영했다.

불안한 관광객
잇단 예약취소
 
수출 부진이 지속되고 내수 회복세가 확고하지 않은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서 메르스 사태가 악화되면 이달 하순 발표될 예정인 올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대응방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주형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3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중장기 경제발전전략’ 세미나에서 “메르스가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관계 부처와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 차관은 “일단 메르스가 확산되지 않도록 관련 부처와 기관이 합동으로 대응하고 있다”면서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현재 경기는 불안한 상황이다. 전체 산업생산은 2개월째 감소세다. 수출은 금액 기준으로 5개월 연속 마이너스이고 물량까지 줄어들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개월째 0%대다. 담뱃값 인상을 제외하면 4개월째 마이너스인 셈이다. 때문에 디플레이션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안 그래도 힘든데…대형 악재 돌출
등 돌리는 중국인 관광업계 직격탄
 
소매판매 등 내수는 개선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메르스 사태가 앞으로 더욱 악화될 경우 회복세가 꺾일 수 있다. 실제로 내수 회복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줬던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국 방문 계획을 잇따라 취소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기피하게 되면 유통업종이 타격을 받게 되고 이는 전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경제연구소들에 따르면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등 전염병이 생겼을 당시 관련국의 경제성장률이 급락했다. 사스 발병지였던 홍콩의 성장률은 2003년 1분기에 4.1%였지만 2분기에 -0.9% 였다. 중국은 같은 기간에 10.8%에서 7.9%로 성장률이 급락했다. 신종플루 발생 당시인 2009년 3분기 한국의 여행업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24.9% 감소했다. 
 
경제 부처들은 현재 메르스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 경제 부처의 한 관계자는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면서 “별도의 대책을 내놓은 상황은 아직 아니다”라고 말했다.
 
메르스가 확산해 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면 정부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정부가 이달 말께 발표할 예정인 올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의 무게 중심이 경기부양에 실릴 가능성이 커진다. 정부는 올 상반기 끝까지 경기상황을 지켜보고 나서 거기에 맞는 방안을 찾겠다며 부양 가능성을 열어 놓고는 있다. 메르스 사태가 조기에 진정되지 않으면 여행·관광, 유통 등 피해 업종에 대한 지원책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추경 편성 요구가 더 강해질 수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4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 간담회에서 성장세 회복을 위한 재정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추경 논의가 가열됐다. 정부는 이에 대해 상반기 경기 흐름을 지켜본 뒤 추경 편성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현행 국가재정법(89조)은 추경 편성 요건에 대해 ▲전쟁이나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기 침체, 대량 실업, 남북 관계의 변화, 경제 협력과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해야 하는 지출이 발생하거나 증가하는 경우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성장률 직격탄
내수·수출 타격
 

이런 점 때문에 올해 예상되는 3%대 성장을 경기침체로 볼 수 있는지, 재정건전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빚으로 빚을 막는 추경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등장한 메르스 사태로 인해 정부가 추경 카드를 꺼낼 공산도 덩달아 커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이미 올해 성장률을 3.8%에서 3.3%로 낮출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메르스가 지금보다 더 빠르게 확산되면 올해 성장률은 2% 후반으로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유통업계는 피해가 구체화되고 있어 긴장상태가 남다르다. 한 백화점은 메르스 발생 이후 주말 매출이 전년 대비 1% 증가하는 데 그쳤다. 5월 월간 매출 증가율(6%)에 한참 밑돌자 대책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수출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메르스에 대한 경제적 영향을 수치화하기 어렵다면서도 선제적인 조기대응에 실패할 경우 경제 전방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고 입을 모은다. 메르스 환자의 출국과 재출국, 그리고 의심자의 격리 거부 등이 외국 언론에 소개되면서 자칫 한국이 보건 후진국으로 낙인찍힐 우려도 일고 있다. 국내에서 첫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이후 대만 관광객 약 1300명이 한국 여행을 취소했다.
 
중국인 관광객은 말할 것도 없다. 여행업계에서는 중국인 관광객 예약 취소사례가 상당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는 7∼8월 출발할 해외 여행상품을 예약했던 내국인도 메르스 확산 때문에 여행을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준비에도 비상이 걸렸다. 국내 메르스 감염 환자가 계속 늘고 있는 데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8개국에서 400여명의 선수단이 대회에 참여할 예정이어서 광주U대회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 감소가 예상된다. 약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휴가철도 문제다. 휴가철은 관광업계의 대목이다. 휴가철이 활발하게 돌아가면 경제 전반에 큰 활력소가 된다. 만약 메르스가 계속 확산된다면 올 여름 휴가철은 그야말로 최악의 불황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실제로 ‘역대 최장 장마’로 기록됐던 지난 2012년 여름, 국내 경제는 불황을 면치 못했다.
 
올 성장률 3.8%→3.3% 예상

더 확산되면 2%대로 추락?
 
외국인 환자, 특히 중동 환자로 특수를 누렸던 병원업계도 울상이다. 메르스가 유입된 이후 중동발 환자가 뚝 끊긴 데 이어 국내 보건당국 방역체제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환자 예약 문의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공연계도 지난해 세월호 사건 이후 각종 공연이 취소됐던 상황이 재발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주식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2일 하나투어는 전날보다 8.87% 급락한 11만3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모두투어는 8.51% 떨어진 3만650원에 거래를 마쳤다. 화장품 제조사 등 중국인 관광객 수혜주들의 피해도 예견되고 있다. 한국화장품과 코리아나는 가격제한폭까지 급락했고 에이블씨엔씨 한국콜마 코스맥스도 각각 7% 안팎 떨어졌다. ‘대장주’ 아모레퍼시픽마저 -4.52% 휘쳥였다.
 
메르스를 조기에 잡지 못할 경우, 지난 1년 동안 경제를 살린다며 발표한 서비스업 활성화 방안, 관광산업 활성화 방안 등 각종 개수 진작 대책들이 무의미해질 수 있다. 지난 2003년 사스 사태 때는 고건 국무총리가 전체 컨트롤 타워를 맡아 국내에서는 사망자가 단 한 명도 없이 전염병을 막아냈다. 국제사회는 한국을 사스 예방 모범국이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다르다. 국무총리가 공석인 상태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OECD 각료이사회 참석차 프랑스 파리로 출국했다가 최근에 입국했다.

총체적 난국
경제팀 대책은?
 
중차대한 시기에 적절하지 못한 출장이었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메르스 종합대응 컨트롤 타워를 지난 3일 구축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의 투명한 공개”라며 “가능한 한 공개할 수 있는 정보는 즉시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언행일치를 당부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오도 가도 못하는’ 중동 진출 기업들 비상
 
수주텃밭인 중동에 진출한 국내 건설업체들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 방지를 위한 비상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중동에 파견된 직원들은 메르스 바이러스에 노출되기 쉬운데다 휴가나 업무차 국내로 입국하는 경우도 잦아 자칫 감염 사태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3일 현대건설에 따르면 중동에서 한국으로 복귀한 근로자는 5일 이내에 체온측정과 문진을 받도록 강제하고 있다. 메르스 감염 여부를 가려내기 위한 조치로 현장에서 의심환자가 발생할 경우에는 본사에 즉시 보고해야 한다는 대응지침도 내려 보냈다. 현대건설은 중동에 가장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건설업체로 사우디에서만 17개 공사를 진행 중이다. 카타르와 쿠웨이트, 이라크, UAE 등 5개 국가에서는 32개 현장을 보유하고 있다.
 
대림산업과, 대우건설, GS건설, 삼성물산도 메르스와 관련된 매뉴얼을 마련해 감염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중동 건설공사 현장에서 근로자 체온을 매일 측정하는 방식으로 감염 여부를 가려내고 있다. GS건설은 안전보건팀을 통해 중동에 근무하는 직원의 건강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중동 현지에 지정 의료기관을 확보하고 있는 대우건설은 감염 예방 지침을 보다 강화했다. 2013년부터 메르스 감염 예방 지침에 대한 교육을 진행한 대우건설은 최근 모든 해외 현장에 해당 지침을 전달했다. 대림산업은 중동 근로자들이 낙타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중동 낙타는 현지인들에게 메르스 바이러스를 옮기는 매개원으로 알려졌다.
 
저유가 기조 장기화에 메르스 악재까지 겹치자 중동 수주환경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달 기준 국내 건설업체들이 거둔 중동 수주액은 68억23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유가하락에 따른 재정수지 악화로 중동 국가들이 발주물량을 줄인 영향이다. 업계는 이 같은 상황에서 현지 직원들이 메르스에 감염될 경우 기존 사업차질은 물론 중동 리스크에 따른 수주환경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광>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