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덮친 공포의 메르스 '오해와 진실'

한국인에 강한 바이러스 '한반도 상륙'

[일요시사 사회2팀] 유시혁 기자 =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국내 중동호흡기증후군(이하 메르스) 확진 환자는 현재(6월1일)까지 18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모두 국가 지정 격리병상에서 치료 중이지만, 매일 추가 환자가 발병되고 있어 보건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중동국가 다음으로 우리나라가 최다 발병 국가로 지목돼 국민들의 메르스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메르스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알아봤다.

중동호흡기증후군의 국제 통상 병명은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Mers: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Corna Virus)다. 병명에 중동이 붙은 이유는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지역 아라비아반도를 중심으로 감염환자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표면 모양이 태양의 코로나와 비슷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름 뒤에 붙었으며, 이 바이러스는 과거 낙타, 닭, 개, 돼지 등 포유류에서만 주로 발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만?

메르스는 고열, 기침, 호흡곤란 등 심한 호흡기 증상과 설사, 구토 등 소화기 증상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사스 증상과 유사, ‘중동의 사스’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급성 심근경색을 동반하는 등 사스 치사율의 6배에 달하며 치명률은 29%인 것으로 조사됐다. 유럽질병통제센터에 따르면 현재(5월21일 기준)까지 메르스 환자는 전 세계 24개국 1154명으로 471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환자의 97.6%(1126명)는 중동지역 거주자로 나타났다. 중동지역에서 추가 환자가 계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미국 등에서도 유입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잠복기를 거친 후 두통, 오한, 인후통, 콧물, 근육통을 비롯한 식욕부진, 오심, 구토, 복통, 설사 증상이 나타나는 게 일반적이다. 만성질환 및 면역기능 저하 환자에게서는 폐혈성 쇼크, 호흡부전, 다발성 장기 부전 등 폐렴과 급성 신부전의 합병증이 동반한다. 폐렴이나 무증상을 나타내거나 급성상기도질환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38℃ 발열증상을 나타내거나 37.5∼37.9℃의 발열 증상 및 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역학조사관에 인계된다.

대다수의 감염자가 중동지역 거주자로 조사되고 있다. 또한 해외여행이나 해외근무 등으로 중동지역에 체류한 적이 있는 중동지역 이외 국가 감염자 사례가 다수 접수됐다. 낙타 및 박쥐가 감염의 매개체로 추정된다는 연구도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특히 낙타시장, 낙타농장, 낙타 체험프로그램 참여 등 낙타와의 접촉 사례가 다수 접수됐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명확한 감염경로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열나면 감염? 낙타 때문에?

메르스의 잠복기는 2∼14일(평균 5일)로, 잠복기를 거친 후 증상 및 바이러스가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잠복기 동안에는 바이러스가 전파될 확률이 낮으며, 감염자와 밀접접촉이 있는 경우에 한해 추가 감염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감염자가 검사받은 의료기관에서의 추가 발생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보건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2m 이내의 신체적 접촉 또는 침에 의한 전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공기 중 바이러스 감염은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6월1일 기준)까지 우리나라의 메르스 감염자는 18명이다. 첫 번째 발병환자 A(68)씨는 지난달 20일 메르스 확진을 받았으며 이후 9명의 추가 감염자가 발생했다. 두 번째 감염자는 A씨의 아내이며, 3번째, 4번째, 6번째, 8번째 환자는 A씨와 같은 병실 또는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로 밝혀졌다. 또한 5번째, 7번째, 9번째 감염자는 A씨를 진료 및 치료한 의사와 간호사다.

3번째 감염자의 아들이자 4번째 감염자의 남동생인 감염 의심자(44)는 지난달 26일 중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밝혀졌다. 감염 의심자의 출국 소식을 지난달 27일 접한 질병관리본부는 IHR 규정에 따라 WPRO와 중국 보건당국에 사실을 알려 진단검사와 치료를 받도록 조치했으며, 28일부터 중국 광둥성 소재의 한 병원에서 격리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달 29일, 10번째 메르스 감염자로 확진됐다.

질병관리본부는 감염자의 부인과 의료진 10명을 자가격리하고 중국 출국 당시 같은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 및 직장 동료를 대상으로 격리 조치 여부를 조사 중이다. 알제리에서 4개월간 거주한 후 지난달 23일 입국한 정읍의 한 여성(25)이 감염 의심자로 지목됐으나, 바이러스검사에서 음성으로 판정돼 메르스 감염자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사스보다 강하다” 전 세계 긴장
중동국 다음으로 최다 발병 국가

메르스 감염자 및 사망자 현황을 살펴보면 우리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감염자 1002명, 사망자 434명), 아랍에미리트(감염자 76명, 사망자 10명), 요르단(감염자 19명, 사망자 6명), 카타르(감염자 12명, 사망자 4명) 등 중동 4개국에 이어 전 세계 5번째로 높은 감염률을 보였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지난달 21일까지 접수된 유럽질병통제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중동지역 10개국(감염자 1126명, 사망자 515명), 유럽 8개국(감염자 15명, 사망자 7명), 아시아 2개국(감염자 3명, 사망자 1명), 아프리카 2개국(감염자 5명, 사망자 2명), 아메리카(감염자 2명)순으로 조사됐다.

송대섭 고려대학교 약학대학 교수와 바이오기업 바이오노트가 15분 만에 메르스 감염 여부를 진단할 수 있는 진단키트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진단키트는 농림축산검역본부의 허가를 받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에 정식 수출됐다. 하지만 현재까지 동물의 감염 여부 확인에 쓰이고 있어 임상 실험을 통한 식품의약안전처 허가가 가능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유럽질병통제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메르스 감염자 1625명 가운데 471명이 사망해 메르스의 치사율은 29%인 것으로 나타났다. 메르스 공포의 확산에 따라 전 세계 각국에서는 메르스 의심환자에 대한 조기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으나, 메르스 감염 요인 및 항바이러스제 개발에 난항을 겪고 있어 치사율은 40%를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지난달 20일, 메르스 감염자와 밀접접촉한 것으로 의심되는 가족 및 의료진 64명을 즉각 격리 조치해 추가 감염자 발생을 예방하고 있다.

자가 진단은? 무조건 죽는다?

또한 중동지역을 방문했거나 낙타와의 접촉이 있으면서 귀국 후 14일 이내 발열, 기침 및 호흡곤란 등 호흡기 이상 증세가 있는 자에 대한 신고를 당부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전국 17개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이 즉시 가동될 수 있도록 준비를 지시했으며 지방자치단체와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를 통한 메르스 의심환자의 내원에 대비한 행동요령을 배포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감염자의 경우 첫 번째 감염자에 의한 전염으로 밝혀져 격리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면 추가 감염자 발생이 희박할 것으로 전문가의 의견도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조사에 따르면 메르스 감염자 및 사망자의 평균 연령은 48.5세이며, 남여 성비는 1.7대 1이다. 특히 전 세계 메르스 감염자 및 사망자가 주로 50∼70대 남성들에게서 다수 발생돼 주의가 요망된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당뇨, 만성폐질환, 암, 신부전 등의 기저질환 환자에게서 메르스 감염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예방 백신이 개발되지 않아 질병관리본부는 일반적인 감염병 예방 수칙을 준수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일반적인 예방 수칙 사항으로는 ▲비누 및 알콜 손 세정제를 통한 손 씻기 ▲기침 및 재채기 시 휴지로 입과 코를 가리고, 휴지는 휴지통에 버리기 ▲씻지 않은 손으로 눈, 코, 입 만지지 않기 ▲발열 및 호흡기 증상이 있는 사람과 접촉 피하기 ▲호흡기 증상 및 소화기 증상이 있을 시 의료기관 방문하기 등이다.

보건당국 비상…부실대응 도마
인터넷·SNS 미확인 괴담 확산

중동지역 여행 시 예방 수칙은 ▲일반적인 예방 수칙 사항 지키기 ▲여행 중 농장 및 동물과의 접촉 피하기 ▲익히지 않은 낙타고기, 낙타유 섭취하지 않기 ▲사람이 붐비는 지역 방문 자제(부득이한 경우 마스크 착용)이며, 의료인 예방 수칙은 ▲환자 진료 전·후 손 씻기 및 손 소독 시행 ▲감염자 진료 시 개인보호장비 착용 ▲체온계, 청진기 등 진료도구 소독 ▲감염관리수칙에 따른 폐기물 처리 ▲환자 입원 치료는 음압격리병상 시설 기관 수행 등이다.

메르스 잠복기에는 바이러스가 체내에서 배출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따라서 감염 의심자와 밀접접촉을 했더라도 잠복기 중 접촉했다면 진단 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증상이 발생한 감염자와 접촉한 경우에는 최종 접촉일로부터 14일간 자가 격리 및 모니터링을 실시한 후 증상 발생 시 진단검사(유전자검사)가 이뤄진다.

세계보건기구의 권고 사항에 따라 감염자 및 감염 의심자와의 밀접접촉 해당자는 2차례에 걸쳐 채혈검사가 이뤄진다. 2차 채혈 검사가 이뤄진 후 항체검사를 하도록 세계보건기구는 권고하고 있다. 자가 격리자의 경우 보건소 직원에 의해 1일 2회 증상 여부 및 체온 확인이 이뤄지며, 감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는 질병관리본부의 격리 조치가 이뤄진다.

의심자 접촉해도? 병원도 위험하다?

세계보건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메르스의 감염은 감염자와 밀접접촉이 있는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감염자가 다녀간 의료기관에 방문한 것만으로는 전염될 가능성은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메르스 감염자 현황을 살펴보면 최초 감염자 및 추가 감염자와 밀접접촉한 자에 한해 전염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보건당국은 감염자와 밀접접촉한 것으로 추정되는 120명을 격리 관찰 중이다.

 

<evernur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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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