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명장 편파 선정 논란

한쪽으로 쏠렸다 ‘공정한 거 맞아?’

[일요시사 사회2팀] 유시혁 기자 = 대한민국 명장 도입 30주년을 맞아 <일요시사>에서는 그동안 선정된 587명의 대한민국명장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편파 선정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선정자의 절반 정도는 영남지역 거주자로 나타났으며, 기계 및 공예 분야의 직종에 치중 선정된 점도 포착됐다.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3명의 중복 선정도 문제로 지적된다.


각 기술 분야에서 최고의 기능인에게만 부여되는 대한민국명장은 산업현장에서 명예훈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1986년 용접공 박동수씨가 제1호 대한민국명장으로 선정된 이래 지난해까지 587명의 대한민국명장이 탄생했다. 기계ㆍ전기ㆍ전자ㆍ통신 등 22개 분야 96개 직종 가운데 산업현장 15년 이상 근로자에 한해 신청자격이 주어지며, 서류심사 및 현장심사, 면접 과정을 거쳐 매년 35명 내외로 선정자가 배출된다.

기술인 최고 권위
연 35명 내외 배출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공동 주최하고 있는 대한민국명장은 국민들에게 숙련기술인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능력 위주의 사회를 정착시키는데 기여해왔다. 대한민국명장 선정자에게는 일시장려금 2000만원과 기능경기대회 전문위원 자격을 부여하며, 이듬해부터 계속장려금 215만∼450만원을 연차 배당 지급한다. 또한 근로대학 교원 임용 자격과 산학겸임교사 자격도 부여한다.

대한민국명장 선정 30주년을 맞은 가운데 <일요시사>가 그동안 선정된 587명의 명단을 검토한 결과 영남지역 거주자만 273명(46.9%)으로 나타났다. 반면 제주(3명, 0.5%), 강원 (11명, 1.9%), 충청(34명, 5.8%), 호남(39명, 6.7%)의 합산 선정자는 87명(14.9%)에 불과했다. 인천ㆍ경기 지역에서는 104명(17.9%), 서울에서는 118명(20.3%)의 선정자가 배출됐다. 선정자 10명 가운데 5명꼴로 영남지역 거주자에게 대한민국명장 타이틀을 안겨준 것이다. 이는 선정자 명단에서 5명의 거주 지역이 누락돼 282명을 기준으로 계산한 수치다.

통계청의 2010년 인구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총인구 4799만761명 대비 인천ㆍ경기가 28.8%(1382만8088명)으로 가장 높았으며, 영남이 26.2%(1259만1579명)를 차지해 두 번째로 인구가 많았다. 서울(943만1482명, 20.1%), 충청(498만6615명, 10.4%), 호남(496만936명, 10.3%), 강원(146만3650명, 3%), 제주(52만8411명, 1.1%)가 뒤를 이었다. 이는 총인구 지역 대비 대한민국명장 선정자 거주 지역 분포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용노동부 직업능력평가과 관계자는 “대한민국명장은 산업 현장 기능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산업공단이 몰려있는 영남지역 거주자가 다수 선정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기술력 및 능력에 중점을 두고 평가하므로 지역 안배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대한민국명장 선정대상 22개 분야를 살펴보면 영남지역의 전략산업인 전자ㆍ섬유ㆍ자동차ㆍ조선뿐만 아니라 호남지역의 자동차ㆍ농업과 더불어 충청지역의 전기ㆍ정보통신ㆍ물류 등 기술 분야 전문직 대다수가 포함돼 있다. 영남지역 선정자가 46.9%를 차지한 점은 지나친 편파 선정이라는 지적이다.


선정된 587명 보니 ‘세 가지 의문점’
지역 편중…절반이 영남지역 거주자

호남지역의 전략산업인 농업 분야의 대한민국명장 선정자를 살펴보면 10명의 선정자 가운데 경기 지역 1명을 제외한 9명이 모두 영남지역 거주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직종 가운데 가장 많은 선정자가 배출된 용접공의 경우 24명 중 16명(66.7%)이 영남지역 거주자였다. 5명 이상 선정 직종 중 제관ㆍ전자기기ㆍ선체건조ㆍ선박기관정비ㆍ생산기계ㆍ농업기계ㆍ농기계정비 직종에서는 영남 지역 거주자가 100%의 점유율을 보였다. 또한 한복 직종에서도 10명 중 7명이 영남 지역 거주자였으며, 경기도에 다수의 도자기공예가가 거주함에도 불구하고 도자기공예 대한민국명장의 절반이 영남 지역 거주자였다. 도자기공예 경기지역 거주자는 4명에 불과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매년 대한민국명장의 선정 계획을 발표하면서 직종별 선정자를 1명으로 제한할 방침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1991년과 1992년에서 동종 직종에서 3명의 대한민국명장을 배출해 문제로 지적된다. 해당 직종은 1991년 도자기공예ㆍ목공예ㆍ방적ㆍ양복ㆍ주물, 1992년 보일러ㆍ양복이다.

절반은 영남 거주
충청·호남 저조

대한민국명장 심사위원 위촉 기간은 3년, 지난 2011년부터 2014년까지의 선정자 91명을 분석한 결과 금형ㆍ요리ㆍ이용ㆍ제과제빵ㆍ컴퓨터응용가공 직종에서 3명 이상의 선정자가 배출되기도 했다. 연도별로는 직종별 한 명씩 선정했으나, 전체 96개 직종 가운데 32개 직종에서 3년간 배출자가 전무했다. 이용 직종의 경우 4년 연속 1명씩, 요리·금형·제과제빵·컴퓨터응용가공 직종은 3년 연속 1명씩 선정자가 나왔다. 

각 연도별 대한민국명장 선정자 규모에도 편파 심사 의혹이 드러났다. 1986년부터 1990년까지 10명 내외로 선정해 오다가 1991년 대한민국명장을 41명이나 선정했다. 연간 평균 5.4명에서 8배나 늘어난 수치다. 이때도 영남 지역 거주 선정자가 전체의 59%를 차지해 편파 심사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노동부장관은 경남 산청 출신의 최병렬 의원이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직업능력평가과 관계자는 “국내기능경기대회 명장부 경연을 거쳐야만 배출되던 대한민국명장이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서류 및 현장 심사로 변경됨에 따라 확대됐던 것 같다”며 “당시 자료를 다시 한 번 검토해봐야 자세한 정보를 알 것 같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내기능경기대회 청년부와 명장부 경연이 1991년 1월14일 삭제됐다. 하지만 연 평균 대한민국명장 선정자수인 19.6명의 두 배 수준 선정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명확한 답변을 제시하지 못했다.

당국은 명확한
답변 제시 못해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3명이 대한민국명장에 중복 선정된 점도 문제로 드러났다. 1991년 선정된 김정옥(도자기공예)을 비롯한 정수화(칠기공예, 1995년), 원광식(금속공예, 2000년)이 이에 해당된다. 이들은 대한민국명장 선정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됐다. 고용노동부와 문화재청에 문의해본 결과 두 기관에서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중요무형문화재와 대한민국명장에게는 해당 기관으로부터 각각 전수활동비와 계속장려금을 지원받는다. 문화재청가 중요무형문화재 전수활동비 명목으로 정수화 보유자에게는 매달 171만원, 김정옥·원광식 보유자에게는 매달 131만3000원을 지원하고 있었다. 또한 고용노동부의 계속장려금 명목으로 김정옥·정수화 대한민국명장은 선정 이후 계속 종사 20년이 넘어 매년 450만원이 지급되고 있으며, 원광식은 계속 종사 16년차로 315만원을 지원받는다. 이들의 월별 지원금을 계산해보면 정수화 보유자가 208만5000원, 김정옥 보유자가 168만8000원, 원광식 보유자가 157만5500원으로 나타났다.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3인의 대한민국명장 중복 선정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그동안 모르는 사실이었다”며 “산업기술 분야에서 전통기술을 보유한 자에게 주어지는 대한민국명장의 취지대로 중복 선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 담당자는 “이들은 모두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전통예술인으로서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서는 충분한 자격이 있으며 후진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예분야의 예술성을 인정받은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대한민국명장으로서의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반발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특히 이들의 상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우수숙련기술인 종합정보망(pool.hrdkorea.or.kr) 자료에는 직종과 근무처만 공개돼 있을 뿐 입상경력, 자격사항 등의 7개 부문 정보가 모두 누락돼 있었다.

무형문화재 3인 중복선정
특정분야 직종에 치중도

중요무형문화재 3인의 중복 선정과 더불어 직종별 선정자 규모도 문제로 지적된다. 96개 중 직종 가운데 가장 많은 선정자가 배출된 직종은 공예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석공예·목공예·도자기공예 등의 공예가만 총 94명(16%)였다. 공예 분야의 과다 선정자 배출을 두고 대한민국명장의 취지인 산업현장 기술인 선정에 대한 보다 명확한 기준이 세워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2015년도 대한민국명장 선정계획> 자료에 따르면 일반산업 및 서비스 분야와 공예 분야의 심사 기준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산업 및 서비스분야의 채점표는 숙련기술보유정도 30점, 발전기여도 50점, 지위향상기여도 20점, 가산점 +2점으로 구성돼 있었다.
 

반면 공예 분야의 경우 숙련기술보유정도 20점, 발전기여도 45점, 지위향상기여도 20점, 산업화·현대화노력 15점으로 심사 기준이 정해져 있었다. 여기서 산업화·현대화노력 항목에는 ‘수출액, 매출액, 생산·시설장비의 현대화, 고용인원, 그밖의 숙련기술의 응용 등을 통한기술개발 노력 및 상용화 노력’으로 명시돼 있어 관련 상세 내용이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공예뿐만 아니라 다중 선정된 직종으로는 용접(25명)과 양장·양복(22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공예ㆍ용접ㆍ양장ㆍ양복만 전체 선정자의 24%를 차지한 것이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지난 2012년 당초 24개 분야 167직종에서 22개 분야 96개 직종으로 변경했다.


한 제과분야 대한민국명장은 “대한민국 대표 기술인이라는 자부심을 안고 누구보다 열심히 후진 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관련 직종에 계속 장려할 것을 독려하기 위해 지원받는 계속장려금을 제빵사를 꿈꾸는 소외계층 자녀에게 장학금으로 지원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대한민국명장에 대한 다양한 의문점 제기로 인해 명장들의 명예가 실추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공예 직종 16%
다중선정 직종

대한민국명장은 숙련기술장려법 제11조 규정에 따라 산업 현장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을 보유한 기술자로서 숙련기술 발전 및 숙련기술자의 지위 향상에 크게 공헌한 사람을 선정 및 우대해 숙련기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제고 및 산업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취지 아래 도입됐다.

하지만 선정자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점들이 제기되면서 기존 취지를 상실, 명목만 앞세운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심사 기준을 수립하고 권위있는 심사위원을 위촉함으로써 숙련기술인에 대한 지위 향상이 도모되길 기대해 본다.

 

<evernur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