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고 코 베는 저축보험의 함정

쉽지 않은 목돈만들기 '어디에 묻지?'

[일요시사 사회2팀] 유시혁 기자 = 1%대 초저금리시대다.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 전망이 쏟아지는 가운데, 저축금리 인하로 소비심리가 증폭할 것이라는 부작용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저금리에 이자로 인한 목돈 부풀리기가 실질적으로 어려워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장기 목돈 마련을 위한 저축보험의 원금 도달 기간을 살펴봤다.

한국은행이 지난 3월12일 금융통화위원회에 기준금리를 1.75%로 결정, 은행의 예금 금리도 1%대에 첫 진입했다. 실제로 전국 18개 은행사가 지난달 13일부터 28일까지 전국은행연합회에 공개한 은행 금리 현황을 살펴보면 1년 정기 예금의 평균 금리는 1.8%인 것으로 조사됐다.

1%대 저축이자
소비심리 증폭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은행의 예·적금 금리가 1%로 하락 행진을 지속하는 가운데, 적금의 가입 문의가 줄어들었다는 지적이다. 은행의 연복리 운용 상품의 부족과 이자소득세 15.4% 감면 등으로 목돈 마련의 의미가 상실했다는 설명이다.

전국은행연합회의 목돈마련을 위한 1년 만기 상품의 은행금리를 비교해보면 수협의 파트너가계적금, 더플러스정액적금, SH월복리자유적금 상품이 2.3%로 가장 높은 반면, 한국씨티은행의 라이프플랜저축, 로얄고소득부금 상품은 1.3%로 가장 낮은 금리를 보이고 있다.(4월29일 현재)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을 찾은 김진하(31·공무원)씨는 “급여통장에 여유자금을 그대로 두면 이자도 적고 소비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적금통장을 개설하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며 “1년 만기 적금을 만들려했더니 적금 만기 수령액이 원금이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덧붙여 “주식이나 펀드 등은 자산 운용에 위험을 감수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정적인 은행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이처럼 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면 목돈 불리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업계관계자에 따르면 은행의 1%대 금리로 인해 시중은행의 방카슈랑스(은행에서 판매하는 보험상품)나 보험설계사를 통한 저축성보험 상품에 가입하는 고객들이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지난 3월 방카슈랑스의 판매 실적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양상이다. 신한은행은 2014년 12월 대비 113.7% 상승한 1692억원의 실적을 나타냈으며, 우리은행과 농협도 각각 82.3%, 49.3% 상승했다.

FM에셋 장남권 보험설계사는 “저축성 상품 가입 고객들이 중도에 해지하는 경우가 많다”며 “저축성 상품이긴 하나, 보험 상품이다 보니 사업비 등을 제하면 원금 도달까지 5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금 도달 이후에는 시중 은행보다 1%대 높은 금리가 월 복리로 운용돼 목돈 도달 기간이 그만큼 짧아진다는 점을 인지해주길 바라며 반드시 장기 목돈 마련 상품임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의 상품 비교 공시 자료를 월 납입금액 20만원, 10년 납입 기준으로 전국 22개 보험사의 해지환급금을 조사해본 결과 저축성 보험(연금 및 변액 상품 제외)의 원금도달 기간은 평균 5∼7년인 것으로 조사됐다.

단기자금 은행·장기자금 보험 ‘이젠 옛말’
초저금리시대 목돈마련 저축하려면 어디로?

해지환급금의 원금 도달 기간이 5년인 상품은 삼성생명의 인터넷저축보험(100.7%, 1208만3000원)과 하나생명 The새로운리치저축보험 수익형 상품(100.2%, 1202만6000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수익형, 단기수익형, 생활자금형으로 선택 가입이 가능한 KDB생명보험의 알뜰플러스저축보험도 5년 차에 원금에 도달한다. 공시이율 3.5% 적용 시 만 5년에 발생되는 납입금  1200만원 대비 99.8%(1197만7000원)의 해지환급금이 쌓인다. 교보생명의 빅플러스저축보험 적립형 상품도 공시이율 3.21%(4월) 적용 시 만 5년 해지환급금이 1188만2000원(99%), 농협생명보험의 행복모아NH저축보험 상품도 공시이율 3.25%(4월) 적용 시 해지환급금 1195만6000원(99.6%)이 적립된다.

저축성보험 가입
고객 급증 추세
 
BNP파리바카디프생명보험의 적립형 저축보험인 그랑프리저축보험Ⅱ의 현재(3월) 공시이율은 3.62%, 최저보증이율은 5년 이내 2%, 5년 초과 1.5%다. 이 상품은 5년 만에 원금에 도달, 해지환급금이 1217만8000원이 된다. 해지하지 않고 상품을 유지할 시 7년 차에 1778만7000원, 10년 차에 2705만원의 적립금이 발생한다. 연금 전환 특약 가입 시 5년 이상 유효 계약에 한해 연금으로 전환이 가능하며 확정연금형, 종신연금형, 상속연금형으로 연금지급기간을 설정할 수 있다.
 

KB생명의 KB파워플러스저축보험도 만 5년에 해지환급금이 납입금액보다 4만7000원 높게 쌓인다. 이 상품은 고액계약 우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월납 25만∼30만원 가입 시 기본보험료 초과분의 1.5%, 30만∼50만원 가입 시 기본보험료의 0.3%+초과분 1%의 우대율을 적용한다. 월 납입금액이 50만∼100만원이면 기본보험료의 0.7%+초과분 1.1%, 100만원 이상이면 기본보험료의 1.25%, 납입회차가 49회 이상인 계약에 대해서는 기본보험료의 0.7%의 우대율을 제공한다.


반면 원금 도달 기간이 7년인 상품은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농협생명보험의 행복키움NH저축보험은 만 7년에 납입금 1680만원, 해지환급금 1700만7000원이 발생한다. 동양생명의 수호천사라이프플랜재테크보험(101.5%, 1706만원)과 미래에셋 파워Rich저축보험 적립형 상품(102.4%, 1721만3000원), 삼성생명의 스마트저축보험(100.7%, 1691만8000원), 신한생명 신한Big플러스저축보험Ⅳ(100.9%, 1696만2000원), 현대라이프 저축보험(100.7%, 1692만1000원)도 모두 7년 이상 계약을 유지해야 원금 1680만원을 잃지 않는다.

에이스생명의 점점플러스저축보험의 현재(4월) 공시이율은 3.7%이며, 최저보증이율은 2%다. 5년간 매월 20만원씩 적립하면 총 적립금액은 1200만원이 되는데, 2년이 지난 후인 7년이 되어서야 1207만2000원의 해지환급금이 발생한다.

월 기본보험료의 1000%와 사망시점의 책임준비금을 기본 보장해주는 KB생명의 KBwise목돈만들기저축보험도 공시이율 3.5% 적용 시 만 7년에 해지환급금 1739만1000원이 발생한다. 이 상품의 최저보증 이율은 5년 이내 2.5%, 10년 미만 2.0%, 10년 초과 1.5%다.

DGB생명의 희망파트너든든저축보험무배당 상품을 월 납입 30만원으로 가입하면 7년이 돼야 납입금액보다 1만1000원(2521만1000원, 100.04%)을 더 받을 수 있다. 이는 4월 공시이율 3.35%를 적용한 수치다.
삼성생명 2030저축보험과 신한생명의 VIP웰스플러스저축보험 상품은 10년 동안 계약을 유지해야 해지환급금이 납입금액을 넘어선다. 2030저축보험의 만 10년 해지환급금은 2567만5000원(107%), VIP웰스플러스저축보험은 2483만2000원(103.4%)에 도달한다.

손해보험회사의 저축형 상품도 원금 도달까지 5년 미만인 상품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손해보험협회 상품 비교 공시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전 손해보험회사 가운데 원금도달이 가장 짧은 상품은 삼성화재의 저축보험수퍼세이브 상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입 5년 만에 1130만원(납입금액 1200만원), 7년 만에 1704만원(납입금액 1680만원)의 해지환급금이 발생해 원금 도달은 대략 6년쯤으로 추정된다. 이 상품의 기본보장은 상해사망 및 고도후유장해 시 1000만원, 일반후유장해(후유장해 80% 미만) 시 800만원이다.

회사·상품별로 
비교하고 선택

메리츠화재의 모아Rich저축보험 상품은 원금 도달까지 7년이 소요된다. 만 7년 해지환금급은 납입금액 1680만원보다 15만원 높은 100.9% 수준으로 나타났다. 최저보증이율 적용 시에는 만 10년에 102.2% 수준인 2453만2000원대의 해지환급금이 발생한다. 이 상품은 기본계약 교통상해 후유장해 보장을 포함하고 있어 가입기간 중 80% 이상 상해 시 1000만원, 80% 미만 상해 시 1000만원×지급률을 보장해준다.

롯데손해보험의 행복더하기저축보험 상품도 만 7년에 101.9% 수준인 1713만원의 해지환급금이 쌓이며 현대해상의 리치웨이플러스저축보험은 납입금액 보다 24만원 높은 1704만원(101.4%)의 해지환급금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LIG손해보험이 지난 1월 출시한 LIG빅플러스저축보험과 LIG플러스저축보험의 만 7년 해지환급금은 각각 1696만원(100.9%), 1687만6000원(100.4%)으로 조사됐다.

일반상해 1억원의 기본보장을 포함한 동부화재와 농협손해보험의 저축성 상품도 원금 도달까지 7년이 걸린다. 만 7년 해지환급금은 웰스플러스저축보험이 1687만6000원(100.4%), 헤아림NH화재저축보험이 1717만원(101.2%)이다. 교통상해 3000만원의 기본보장을 포함한 MG손해보험의 MG상상플러스저축보험도 만 7년에 원금의 101.7%에 도달, 해지환급금 1708만원이 쌓인다. 흥국화재의 행복자산만들기저축보험의 7년 해지환급금도 1707만원(101.6%)로 나타났다.

손해보험회사의 원금도달 기간이 10년 이상인 상품은 흥국화재의 행복자산플러스저축보험이다. 이때 해지환급금은 2526만원(105.2%)이다.

손해·생명보험사들 상품
대부분 원금도달까지 7년

한편 지난 1월1일 인터넷생명보험사인 교보라이프플래닛이 창립 1주년 기념으로 내놓은 꿈꾸는e저축보험 상품은 가입 시점과 동시에 원금을 전액 보장해주고 있어 화제다. 실제로 이 상품의 1개월 해지환급금은 100.26%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공시이율 3.6% 적용).


표준이율 3.25% 적용 시 100.23%, 최저보증이율 2.5% 적용 시 100.17%로, 어떤 경우라도 가입 한 달 만에 해지해도 원금은 보상받을 수 있다. 타사 운영 저축보험의 3개월 미만 해지 시 원금의 상당액을 상실하는 경우와는 상반된 내용이다. 특히 월 납입금액 20만원으로 상품 가입을 하면 만 1년 242만3000원(100.96%), 만 5년 1256만원(104.67%), 만 10년 2736만3000원(114.01%)의 해지환급금이 적립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보라이프플래닛 박지은 마케팅팀 홍보담당자는 “보험설계사를 운용하지 않는 인터넷보험사다 보니 타 보험사에 비해 사업비가 적게 발생, 고객의 납입금액이 아닌 발생 이자에서 수수료(판매보수, 유지보수, 계약관리비용, 위험보험료)를 차감한다”며 “원금에서 단 1%의 사업비도 차감하지 않기 때문에 원금이 손실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7년이내 해지시
원금보다 못받아

이어 “업계 최초로 고객 지향적 상품을 출시한 만큼 20∼40대의 인터넷 가입이 급증하고 있다”며 “은행의 예·적금과 비교해 봐도 단연 우수한 상품이며 배타적 사용권도 획득했다”고 덧붙였다. 이 상품은 3개월 단위 변동금리로 매일 복리 운용되며, 10년 이상 계약 유지 시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 단 타보험사 상품이 운용하는 중도인출이나 추가납입 제도는 운용하지 않는다.

 

<evernur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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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