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지금…차남 전성시대 막후

왕관 뺏긴 형님들…조용히 야인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장자승계 원칙이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장남들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차남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모습이 관측된다. 그룹 내 실세로 부상한 차남, 3남들 때문에 뒤로 밀려난 장남들의 비운의 그림자를 짚어봤다.

 
삼성, 현대차, LG, 롯데 등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의 평균 연령이 70세를 넘어서면서 각 기업의 상속과 경영권 승계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 경영권 승계에서 장남이 우위를 점한다. 이를 장자승계원칙이라 일컫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구광모 LG상무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장남이 아님에도 경영 수완을 발휘해 경영 전면에 나서는 차남, 3남 회장들이 적지 않아 눈길을 끈다.

점차 무너지는
장자승계 원칙
 
글로벌 기업인 삼성도 장자승계원칙을 깬 기업 중 하나다. 현재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도 형을 제치고 그룹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삼성은 고 이병철 창업주가 경영권을 3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승계하면서 내홍을 겪은 바 있다. 이후 장남 이맹희 회장은 CJ, 차남 고 이창희 회장은 세한미디어, 장녀 이인회 회장은 한솔, 막내딸 이명희 회장은 신세계 등 각자의 길로 갈라섰다. 분할 이후 삼성전자는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12년 큰형 이맹희 회장과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다.
 
본격적인 차남 경영 시대의 막을 올린 이는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이다. 고 서성환 창업주의 차남 서경배 회장은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화학에 입사 후 태평양제약 사장과 태평양 기획조정실 등을 거치면서 부친으로부터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면서 형인 서영배 태평양개발 회장을 제치고 그룹 경영권을 잡았다. 서 회장은 경영권을 물려받은 뒤 새로운 브랜드를 선보이며 회사 실적을 높였다. 아모레퍼시픽의 지난해 매출액은 4조원을 넘어섰다. 중국시장을 개척해 4000억원이던 회사를 10배 이상 키웠다. 반면 장남 서 회장은 건설 계열사 일부만을 물려받았다.
 

하이트진로그룹 박문덕 회장도 비슷한 경우다. 형인 박문효 하이트진로산업 회장이 하이트진로(당시 조선맥주)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며 유력한 후계자로 부상하는 듯했지만 동생인 박 회장이 아버지인 고 박경복 회장의 지분을 물려받으면서 후계구도가 바뀌었다.
 
식품업계에서는 삼립식품 창업주인 고 허창성 회장의 차남 허영인 SPC그룹 회장을 꼽을 수 있다. 장남 허영선씨는 부친으로부터 삼립식품을 물려받았지만 리조트 사업 투자 실패로 1997년 부도를 맞았다. 반면 차남 허영인 회장은 삼립식품의 자회사였던 샤니를 대규모 유통체인 업체 SPC그룹으로 성장시키면서 2002년에는 형의 회사였던 삼립식품까지 인수했다.
 
장자승계 원칙 옛말…능력 위주 선발
금수저 물었어도 능력 없으면 ‘아웃’
 
한라그룹도 차남에게 경영권을 물려줬다. 고 정인영 창업주는 장남 정몽국씨를 1989년 부회장에 임명하며 한라중공업, 한라시멘트, 한라레미콘 등 주요 계열사의 경영을 맡겼다. 하지만 95년 차남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에게 총괄경영권을 쥐어주고 정몽국씨를 미국 지사장으로 내보냈다. 후계 갈등 때문에 한때 정몽국씨가 동생을 상대로 한라시멘트 등 주식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형제간 다툼 양상을 벌였지만, 2009년 정몽국씨가 본인 소유의 한라건설 지분을 처분하면서 일단락됐다.
 
동원그룹은 기업 모체를 차남이 차지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차남 승계와 달라 눈길을 끌었다. 동원그룹은 금융은 장남, 식품은 차남이 가지는 방식으로 후계 작업을 완료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장남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은 일찌감치 금융 사업을 맡아 2003년 동원금융지주 사장으로 부임했다. 이후 그룹에서 분리해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하고 한국금융지주를 맡고 있다. 차남 김남정 부회장은 2004년 부친으로부터 지분 증여를 통해 식품 사업을 물려받았다. 이후 2013년에는 동원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장자승계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조짐이 보이는 기업은 롯데그룹이다. 당초 한국 롯데는 차남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는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이 맡는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신동주 전 부회장의 일본 롯데 퇴출로 신 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가 확정된 분위기다.


형보다 나은
‘아우 회장님’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 1월 일본롯데 계열사 세 곳에 이어 일본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롯데홀딩스에서 해임됐다. 한국롯데 계열사 등기임원에서도 밀려나고 있다. 지난해 말 롯데상사 이사직에서 물러난 신 전 부회장은 지난 2월 롯데건설 주주총회에서 등기임원으로 재선임 되지 않았다. 롯데리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호텔롯데, 부산롯데호텔, 롯데알미늄 등 주요 계열사의 등기임원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불안한 상태다. 롯데알미늄은 2월 주주총회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 재선임 안건을 다루지 않았다. 호텔롯데, 부산롯데호텔 임원직 유지 여부도 안갯속이다. 반면 신동빈 회장은 3월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리면서 그룹 내 장악력을 확장하고 있다. 한국롯데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있는 호텔롯데는 일본롯데 측이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다.
 
신동빈 회장은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경영권 입지를 다지고 있다. 최근 신동빈 회장은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권 입찰과 KT렌탈 인수전에서 과감한 승부수를 띄우기도 했다. 또 존 필립 키 뉴질랜드 총리와 만나 뉴질랜드 수출확대 방안을 논의하는 등 그룹 경영전반에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신동빈 회장의 그룹 내 영향력을 가늠케 할 분수령은 오는 6월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동주 전 부회장의 롯데알미늄 등기이사직이 만료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때 재선임에 실패한다면 차남 후계구도는 더욱 명확해진다.
 
대성산업 역시 후계구도가 장남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영대 대성산업 회장의 장남 김정한 사장이 최근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3남인 김신한 사장에게 경영권이 쥐어지는 모양새다. 김정한 사장은 자신이 대표이사직을 맡아온 임플란트 업체 라파바이오 경영에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한 사장의 이번 사임과 관련해 재계에서는 대성산업이 지난해부터 추진해왔던 재무구조 개선 작업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감에 따라 후계구도를 조기에 굳히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형보다 잘나가는 아우들
차남·3남 경영수업 매진
 
3남 김신한 사장은 2013년 초 김정한 사장보다 먼저 등기임원으로 선임된 후 대성산업의 건설·유통사업부문을 맡아 자산매각과 재무구조 개선작업을 주도해왔다. 김신한 사장은 지난해 11월 대성산업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후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대성산업가스 사장을 맡고 있다. 김신한 사장의 대성산업 지분율은 0.07%로 부친 김영대 회장(0.32%)에 이어 개인 주주 가운데는 두 번째로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대성산업의 지주회사인 대성합동지주 지분은 0.48%를 보유하고 있어 0.39%를 보유하고 있는 김정한 사장보다 높다.
 
김영대 회장의 차남 김인한씨는 기업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미국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성산업의 모태인 대성그룹은 2001년 창업주인 고 김수근 회장이 별세한 후 그룹이 분리돼 장남인 김영대 회장이 대성산업을 기반으로 대성합동지주를 경영하고 있다. 차남 김영민 회장은 서울도시가스를, 3남인 김영훈 회장은 대구도시가스를 기반으로 대성홀딩스를 각각 운영하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아직 후계구도가 정확히 나오지 않고 있지만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장남은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이다. 차남 조현범은 한국타이어 사장이다. 그룹을 지배하는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지분율은 각각 19.32%와 19.31%로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타이어 외에 다른 사업이 없던 한국타이어가 세계 2위 자동차용 에어컨·히터 기업인 한라비스테온공조에 이어 국내 1위 렌터카 회사인 KT렌탈 인수전에 뛰어들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사업 다각화를 위한 인수합병이라고 하지만 장남과 차남 간 후계 구도와 관련이 없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복잡한 지분 관계를 정리하는 수순으로 보고 있다.

다음 후계구도에

쏠리는 세간의 눈
 
효성그룹 장남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차남 조현문 변호사가 떠난 뒤 장남 조현준 사장이 경영권을 물려받는 시나리오에 무게가 실렸지만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다. 3남 조현상 부사장이 끊임없이 지분을 인수하고 있어서다. 현재 장남과 3남이 보유한 효성의 지분은 각각 10.87%와 10.47%로 엇비슷하다.
 
시대가 변하면서 무조건적인 장남 우선주의 보다는 경영 능력을 중심으로 후계자를 세우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현재 재계 3~4세들에게 주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해서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 없단 얘기다. 자칫 방심하다간 동생들에게 왕관을 넘겨줘야할 수도 있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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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