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피자에서 무슨 일이…

본사 흠집내기? 가맹점 쥐어짜기?

[일요시사 사회2팀] 유시혁 기자 = 미스터피자가맹점협의회가 매달 본사에 지급하는 광고비의 사용 내역서를 공개해 달라고 요구했다가 대표 가맹점 한 곳이 본사로부터 일방적 계약해지를 당했다. 공정거래원에 제출한 분쟁 조정의 결정이 나기도 전에 계약해지 통보를 받아 본사의 갑질 횡포라는 지적이다.

미스터피자가맹점협의회(이하 미피가협) 이모 회장이 미스터피자본사(이하 미피본사)로부터 지난 1일 계약 해지를 당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2월부터 미피본사에 광고비 사용 세부 내역 공개를 계속 요청했으나, 미피본사가 이를 거절하자 공정거래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일방적 계약해지
갑질 횡포 논란

공정거래원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미피본사가 광고비 사용 내역서를 공개하지 않자 이 회장은 미피가협을 대표해 인터넷 언론사에 미피본사와의 분쟁 사실을 알렸으며,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이에 미피본사는 공정거래원의 결과가 나오기도 전인 지난달 14일 이 회장에게 ‘가맹본부의 명예를 훼손했기에 3월부터 계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했다.

미피본사가 이 회장의 가맹점 영업 정지의 근거로 제시한 건 미스터피자 가족점계약서다. 실제로 미스터피자 가족점계약서 제2장(조건) 24조(계약의 해지) 4항에는 ‘사실 또는 허위의 사실을 공연히 유포함으로써 가맹본부의 명성이나 신용을 뚜렷이 훼손’이라고 언급돼 있었다.

미피가협 소속 가맹점주 100여명은 지난 4일 미스터피자 본사 앞에서 ‘미스터피자 갑질 규탄 집회’를 열고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매출의 4%를 떼어가는 본사 광고비 내역 공개 ▲현행 피자 할인행사 가맹점 부담에서 본사와 분담 ▲미피가협 이 회장 계약해지 취소 등을 규탄했다.  


이 회장은 “미스터피자는 전국 프랜차이즈 체인점으로 광고가 매출과 직결된다”며 “최근 3년간 미스터피자 광고가 현저하게 줄었으며 매출도 3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미피가협 회장이 운영하는 매장을 영업 정지한다고 해서 가맹점주들의 불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데 미피본사의 위협적인 자세로 국민의 논란만 불러일으킨 것 같다”고 지적했다.  

미피가협은 지난해 5월 개최된 미스터피자발전협의회 모임 이후 단 한 번도 광고비 사용 내역서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미피본사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는 등 침묵을 일관해 왔다.  

한 가맹점주는 “미스터피자의 모기업인 MPK그룹은 코스닥 상장사이기에 광고 사용 세부 내역 공개를 요구하면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며 “이 회장은 미피가협의 회장으로서 전국 가맹점주를 대표해 한 행동일 뿐 독단적인 행태로 보고 이 회장의 가맹점만을 영업 정지 시킨 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가맹점주는 “미피가협이 지난해부터 광고비 사용 내역서 공개 요구와 함께 TV광고를 늘려 달라고 여러 차례 문의했다”며 “미피가협의 요구에 미피본사가 신제품 출시에 맞춰 TV광고를 내보냈으나 비교적 광고단가가 낮은 밤 10시 이후에 광고를 편성하고 광고횟수도 줄였다”며 미피본사의 해명을 요구했다.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미피본사의 홍보팀에 전화인터뷰를 요청하자 미피본사의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관계자는 “공중파방송의 광고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광고계의 흐름에 발맞춰 TV광고 노출을 줄이고 다른 매체를 통한 광고 비중을 높였을 뿐”이라며 “미피가협의 요구에 단 한 번도 광고비 내역을 공개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미피가협 회원 100여명의 주장과는 다른 입장이다. 미피본사는 광고와 관련된 사안은 광고대행사에 일임해 자세한 정보를 모른다고 했으며, 외부 공개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미스터피자의 전국 체인점은 435개점으로 직영점 14개, 가맹점 421개이다. 미피본사는 전국 가맹점주로부터 순매출의 4%에 해당하는 광고비를 받고 있으며 그 금액이 연간 140억원으로 추산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가맹거래사의 상품광고비 분담을 50대 50, 광고 분류가 애매할 경우는 75대 25로 권장하고 있다. <일요시사>에서는 미피본사에 광고비 분담률 자료를 의뢰했으나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스터피자의 광고비 명목으로 거둬들이는 금액의 규모로 미뤄 짐작해보면 광고비 전액을 가맹점에 전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가맹거래사의 광고비를 분석한 결과 탐앤탐스, 롯데리아, 엔젤리너스 등은 상품광고비 전액을 본사가 부담하고 있었으며, CJ푸드빌 투썸플레이스, 이디야커피 등은 본사와 가맹점의 비율이 50대 50으로 조사됐다.  


미스터피자 광고모델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최근 미스터피자는 신제품 출시와 함께 아역배우 출신 김유정을 TV광고 모델로 내세웠다. 지난해까지 미스터피자 광고 모델은 손연재, 2PM, 한효주, 문근영, 유승호, 박해일, 송강호 등 이른바 검증된 스타를 내세워 왔다. 확연히 비교되는 모습이다. 

3월1일자로 영업정지를 당한 이 회장은 “돈줄이 끊긴 상황이라 미피가협 회원들의 후원으로 가족의 생계와 직원의 월급, 밀린 가게 월세 등을 내고 있다”며 “본사에서는 문서나 전화로 해지 통보하면 그만이지만 가맹점주 같은 경우에는 한 가정의 생계가 달린 문제다”고 토로했다. 덧붙여 “미피가협의 대표로서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이며 이번 문제가 한 가맹점의 희생으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며 “원만한 합의로 다시 가맹점을 재개하길 바랄 뿐이다”고 강조했다.  

잊을 만하면…갑을 논란 잇달아 터져
광고비 분담·할인행사 등 두고 갈등

이 회장은 지난 11일 법원에 미스터피자 가맹점 계약 무효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에 미피본사 측은 이 회장의 명예훼손죄 고발 여부를 고려 중이다. 

미스터피자 분쟁 논의를 접한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는 미스터피자의 가족점계약서가 갑의 위치를 남용한 불공정 거래 계약서의 대표 사례라고 꼬집었다. 가장 큰 문제로 제기된 사안은 이번 영업정지의 사유인 ‘사실 또는 허위의 사실을 공연히 유포함으로써 가맹본부의 명성이나 신용을 뚜렷이 훼손’ 조항이다.

이 조항대로라면 허위사실뿐만 아니라 사실을 유포하더라도 미피본사의 이익에 반하면 계약해지 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정한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시행령’의 제15조(가맹계약의 해지사유) 4항에는 ‘가맹점사업자가 공연히 허위사실을 유포함으로써 가맹본부의 명성이나 신용을 뚜렷이 훼손하거나 가맹본부의 영업비밀 또는 중요정보를 유출하여 가맹사업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할 경우’라 명시돼 있다. 미스터피자는 계약서에 ‘사실 또는’이라는 문구를 추가해 계약 해지 사유를 확대시켰다.  

이에 대해 미피본사 관계자는 엇갈린 답변을 했다. 한 관계자는 “미스터피자의 이미지에 손상을 입힌 사실적인 내용의 한정된 표현일 뿐”이라고 밝혔으며 다른 한 관계자는 “왜 이런 조항이 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법무팀을 통해 계약서를 다시 조사하고 있다. 이 회장은 사실 유포를 한 게 아니라 허위사실을 유포했기 때문에 계약을 해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각종 할인행사
본사분담 없어

미피본사가 이 회장이 운영하는 가맹점에 대한 계약 해지를 두고 가맹거래사와 변호사도 엇갈린 입장이다. 한 가맹거래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이 나기 전에 영업 정지 명령을 내린 것은 문제다”며 “가맹점의 계약 해지는 본사의 계약서 조항이 아닌 가맹사업법에 명시한 대로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이 회장의 사유는 계약 해지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 변호사는 “이 회장이 가맹점주의 대표 입장에서 나섰더라도 법률에서는 개인의 행위로 간주한다”며 “언론에 제보함으로써 미스터피자가 이슈로 떠올라 명예훼손을 입힌 건 사실이라 영업 정지 해지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미스터피자의 통신사·카드사·포인트·내부행사 할인율을 통해서도 미스터피자의 갑질 횡포가 여실히 드러났다. 가맹점과 미피본사 그리고 해당 업체의 분담률이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스터피자의 할인율을 살펴보면 모든 할인에 대해 가맹점주와 해당 업체만 분담하고 있다.

미피본사의 분담은 어느 항목에도 없었다. 특히 해당 업체보다 가맹점주의 할인 분담률이 높게 편중돼 있다. 미스터피자가 진행하는 내부행사(방문포장, 온라인할인, E쿠폰, 모바일쿠폰 등) 할인율은 15∼40%의 할인율을 적용하고 있으며 가맹점주에게 모든 부담을 떠넘겼다.

통신3사의 멤버십 제휴 할인을 살펴보면 15% 할인의 경우 가맹점주가 할인액의 전부를 분담한다. SKT의 20% 할인은 가맹점주가 17.5%, 통신사가 2.5%, LGU+는 15%, 20% 할인율 모두 가맹점주에게 분담한다. 삼성카드 페이백·현대M카드·하나SK 등의 카드사 할인은 대부분 가맹점주와 해당 카드사가 절반씩 분담한다. 국내 피자업계 1위인 미스터피자와는 달리 세계 최대 피자배달 전문 기업 도**피자에 문의해본 결과 본사의 분담이 전무한 할인율 적용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스터피자를 즐겨 먹는다는 김하은(28)씨는 “통신사 할인으로 저렴한 가격에 피자를 먹을 수 있어 매달 두 번 이상 미스터피자를 찾는다”며 “계산을 할 때 직원의 친절한 태도에 가맹점이 할인의 상당 부분을 분담하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전했다.  

미스터피자는 지난해 창립 24주년 기념 런치뷔페 행사를 마련해 지난해 10월6일부터 11월28일까지 진행했다. 9900원에 피자 3종과 샐러드바, 음료를 제공하는 이 행사에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자 손해가 크다는 가맹점주의 반발이 거세졌다. 미피본사는 뒤늦게 치즈, 콜라시럽 등 40여만원 상당의 식자재를 지원해 준 것으로 밝혀졌다. 손해가 크다고 판단된 일부 매장에서는 이 행사를 진행조차 하지 않았다.

한 가맹점주는 “런치뷔페 행사 자체가 워낙 저렴해 수많은 손님이 몰려들어 매출은 급증했으나 실매출은 오히려 떨어졌다”며 “매출이 안 좋을 때는 행사를 중단하겠다고 미피본사가 애초에 약속했으나 행사 기간에 맞춰 종료됐다”고 불만을 토했다. 덧붙여 “당시 미피본사는 미피가협과 구두로 차액만큼의 보상을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아직까지 그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evernur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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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