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자승 스님 VS 김희옥 파워게임 내막

대학교-대기업 수상한 커넥션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스님(이하 경어 생략)이 검찰에 고발됐다. 종립학교인 동국대학교(이하 동국대) 총장 선거 과정에 개입해 특정 후보를 사퇴하도록 했다는 혐의다. 자승 원장이 사퇴를 종용한 후보는 연임을 노렸던 김희옥 동국대 총장으로 확인됐다. 이들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감춰진 '파워게임'의 전모를 단독 공개한다.

헌법재판관 출신인 김희옥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은 2011년부터 동국대 총장을 맡고 있다. 박근혜정부 출범 후에는 국무총리 후보자로 거론됐다. 정홍원 국무총리의 유임으로 영전은 무산됐지만 지난해 2월 꿰찬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장관급) 자리는 굳건하다.

고소·고발 확전

그런 그가 선거 개입 시비에 휘말렸다. 지난달 24일 동국대학교총동창회(이하 동창회)는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등 조계종 간부 5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고 알렸다. 이들은 고소장을 통해 "자승 원장 등이 '종단에서 바라는 스님(보광스님 당시 후보)이 총장이 돼야 한다'며 김 위원장의 후보직 사퇴를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고소장에 적시된 혐의는 강요에 의한 권리행사방해죄(강요죄)와 사립학교법 위반이었다.

대다수 언론은 '27대 총동창회'의 명의를 빌려 동창회의 주장을 받아 적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동창회는 해가 바뀌도록 둘로 나뉘어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 중 어느 세력이 자승 원장을 고소한 것인지 명확치 않았다. 취재 결과 고소사실을 알린 세력은 이른바 '학교파'로 알려진 송석환(동진기업 대표·이하 송석환) 쪽 동창회로 확인됐다.

지난해 11월1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는 송석환에 대한 동창회장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세력은 '반(反)학교파'로 알려진 박종윤(세창 대표·이하 박종윤) 쪽 동창회였다. 송석환과 박종윤은 지난해 3월25일 같은 날 다른 장소에서 자신이 '진짜 동창회장'이라고 주장했다. 소송도 제기했다. 관련한 내막은 같은 달 24일 '동국대 총동창회 내홍 내막'이란 기사에서 전한 바 있다.


결국 법원은 동창회 회칙을 문제 삼아 송석환과 박종윤 모두 적법한 동창회장이 아니라고 결론 냈다. 회칙에는 '6억원을 기부해야만 동창회장이 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다. 이는 대통령 선거 기탁금(3억원)보다 많은 액수다. 재판부는 "회원들의 피선거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한 조항"이라고 판시했다.

동창회장은 동국대 총장추천위원회의 일원(이사)으로 총장 선출에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이연택 전 대한체육회장(25·26대 동창회장)은 후임이 정해지지 않아 현재까지 동국대 이사를 맡고 있다. 그런데 법원은 '회칙'을 근거로 전임인 이 전 회장의 당선 역시 무효라고 판단했다. 법원 판결에 따라 동창회장은 23대 회장 원모씨에게 귀속됐다.

 

동대 총장선거 개입 의혹 두고 공방전
KCC에 수백억 대형공사 밀어주기 도마

판결 이후 송석환 측은 '반학교파'인 이 전 회장의 이사직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동국대 경영진도 오래 전부터 '말이 통하는' 송석환 쪽을 감쌌다고 한다. 지난해 10월14일 동국대는 학교 공식후원행사를 열면서 박종윤을 배제했다.

서울 앰배서더 호텔에서 열린 '동문의 밤'에는 자승 원장을 비롯해 김 위원장, 학교 이사장인 정련스님(이하 경어 생략) 등 불교계 대표 500여명이 초청됐다. 초청자 가운데는 송석환도 있었다. 송석환은 단상에 올라 동창회장 자격으로 축사했다. 이때만 해도 자승 원장은 김 위원장과 서로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2달 뒤인 12월11일 자승 원장 등 조계종 간부 5명은 김 위원장과 정련 이사장을 서울 코리아나 호텔 일식당으로 불러냈다. 이 자리에서 조계종 간부들은 "종단의 뜻"이라며 김 위원장의 후보직 사퇴를 권유했다. 정련 이사장은 16일 열린 이사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폭로했다.

고소인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자승 원장이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언론보도엔 중요한 내용이 빠져 있다. 자승 원장은 어떤 계기로 선거 개입이란 강수를 꺼내든 것일까. 지난달 14일 동국대 교수협의회가 발표한 성명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이 일부 인용한 '27대 총동창회 긴급통신' 원문에는 김 위원장이 연루된 갖가지 비리 의혹과 도덕성 문제가 적혀 있었다. 이는 기자가 지난해 3월 '반학교파'로부터 건네 들은 내용과 일치했다.


외부로 알려진 것은 김 위원장의 아들 김모씨의 법대교수 채용 특혜 의혹이다. 앞서 <노컷뉴스> 등이 보도했다. 지난달 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는 "김씨의 임용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임용에 절차상 위법이 있었다고 본 것이다. 함께 제기됐던 김 위원장의 인사 청탁 여부는 드러나지 않았다.

채용 특혜가 도덕성의 문제라면 진짜 의혹은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의 '수상한 커넥션'에 있다. 긴급통신 및 동국대 사정에 정통한 복수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김 위원장은 수백억원 규모의 대형공사를 수의계약 형태로 KCC에 몰아줬다. 정 회장은 오랫동안 동창회의 고문을 역임했고 '학교파'의 '좌장'을 맡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과는 법대 선후배 사이다.

KCC 반기보고서(2014년6월)에 따르면 2013년 3월∼2014년 3월까지 KCC가 동국대에서 따낸 공사는 모두 3개다. 기본도급액은 375억원 규모다. 이중 일산바이오관 공사는 273억원에 도급계약(공시는 290억원)을 맺었다가 2차례에 걸쳐 28억원의 공사비가 증액된 것으로 알려졌다.

동국대 홈페이지에는 각종 입찰 공고가 기록돼있다. 하지만 위 3개 공사에 대한 입찰 공고는 확인할 수 없었다. 관련한 예산심의 과정에서 일부 이사는 "수의계약은 감사원 감사대상"이라고 우려했다고 전해진다.
교육부 측은 “'사학기관재무회계규칙 제35조'에 따라 학교법인이 발주한 공사라도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을 준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풀어서 말하면 2억원 이상의 공사는 천재지변 등의 이유가 없는 한 '경쟁입찰'을 통해 업체를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국대는 경쟁입찰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KCC와 자신들만 아는 '협약'을 맺었다. 실제로 KCC는 '동국대 일산바이오관 신축공사 수주'를 2013년 2월27일 공시했다. 한 달 뒤 동국대는 "정 회장이 모교에 100억원을 쾌척했다"고 대리 홍보했다.

1년 뒤엔 KCC가 동국대 기숙사 신축공사를 같은 금액인 100억여원에 수주했다. 동국대는 KCC가 시공한 건물에 '상영바이오관'이란 이름을 헌정했다. 지난해 11월 열린 상영바이오관 준공식에는 김 위원장과 정 회장, 송석환이 나란히 자리했다. '학교파'인 두 회장은 김 위원장을 지지하며, 자승 원장의 선거 개입을 규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힘겨루기 점입가경

이 무렵 경찰은 김 위원장이 연루된 '1+3 국제전형'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긴급통신에서 김 위원장과 관련한 여러 의혹이 불거진 직후다. 때문에 일각에선 자승 원장이 김 위원장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고 '내부 단속'을 했다는 말이 나온다. 기자는 조계종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접촉했으나 "동국대에 물어보시라"는 말만 들었다.

동국대 측은 총장 선출을 보류하고 종단의 관련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권해석을 맡겨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수의계약에 대해선 변호사 자문을 거친 결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교계의 큰 어른인 자승 원장과 김 위원장 가운데 한 사람은 '공적인 책임'이 불가피해 보인다.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