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뒤죽박죽' 현주소

호랑이 없으니 여우끼리 ‘이전투구’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2011년 저축은행 사태는 사실상 종료됐다. 그동안 살아남은 은행들은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이후 저축은행 판은 크게 바뀌었다. 과거 금융권에서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은 현실이 됐다. 대부업체들이 저축은행을 인수해 ‘은행’ 간판을 달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SBI, OK, 웰컴, HK저축은행 등이 찢어져 있던 계열사를 끌어 모아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저축은행들은 효율성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업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2011 사태가 대형 저축은행의 고위험 영업에 집중했던 데서 생겨난 만큼 소비자의 신뢰부터 얻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저축은행들이 줄지어 덩치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SBI, OK, 웰컴, HK 등 저축은행이 잇따라 합병작업을 끝냈다. 계열 저축은행 합병을 통해 경영자원 효율화와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저축은행 대형화 바람은 2011년 사태를 재현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몸집 불리다
영업정지 사태

저축은행이 서민금융기관으로 역사를 시작한 지 40년이 지났다. 눈부신 성장을 이뤘던 때도 있었지만 그 성장만 믿고 많은 저축은행이 돈을 써댔다. 결국 2011년 영업정지 사태를 맞았다. 저축은행은 도미노처럼 줄줄이 무너졌다.

저축은행의 역사는 1972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정부는 자금난을 겪던 기업들이 사채에 의존하다 줄줄이 파산하자 지금 저축은행의 전신인 상호신용금고 제도를 도입했다. 총 대출금의 50% 이상을 해당 영업구역내의 개인과 중소기업에 대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 것도 지역과 서민금융의 원칙에 충실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저축은행의 자산규모는 급격히 증가했다. 1980년 8800억원대의 수신(예적금)과 여신(대출) 규모는 2010년 142조원까지 치솟았다.

가파른 성장세를 타고 저축은행은 IMF 외환위기 이후에도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특히 저축은행 대주주들은 고객의 돈을 ‘쌈짓돈’처럼 써대기 시작했다. 서민 금융회사로 설립된 저축은행이 대주주의 사금고로 전락했던 것이다.


결국 저축은행은 2011년 영업정지 사태를 맞이했다. 2011년 이후 1년 동안 대형 저축은행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업계 1위를 차지했던 솔로몬 저축은행은 영업정지 처분을 받아 문을 닫았다. 솔로몬 저축은행을 비롯해 자산순위 탑5 안에 들었던 토마토, 제일, 부산, 부산2저축은행도 모두 문을 닫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갔다. 예금자 보호 5000만원을 돌려주기 위해 예금보험공사에서 마련한 15조원은 저축은행 사태를 수습하느라 바닥이 났다. 2011년 잇따른 구조조정으로 저축은행 20여 곳은 문을 닫았다. 한때 200곳이 넘었던 저축은행 수는 현재 70여개로 줄어들었다.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업계 판 요동
대부업체 줄줄이 ‘은행’ 간판 영업

이후 저축은행의 판도는 크게 바뀌었다. SBI저축은행(옛 현대스위스저축은행)과 HK저축은행이 업계 1, 2위로 우뚝 올라섰다. 그러나 상황은 악화됐다. 살아남은 저축은행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과거 경쟁상대로 보지도 않았던 대부업체는 거꾸로 국내 저축은행을 인수했다. 대부업체 러시앤캐시와 웰컴론은 가교저축은행인 예나래ㆍ예주저축은행과 예신저축은행을 인수해 저축은행으로 거듭났다. 특히 러시앤캐시가 운영하는 OK저축은행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저축은행 시장 에서 SBI저축은행을 위협할 정도로 바짝 다가가고 있다.

저축은행들은 자산 매각이나 증자 등을 통한 자금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신규 수익원이 마땅치 않은 데다 부실사태가 지속됐다. 소비자 신뢰도는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최근에는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저축은행 부실이 늘어나면서 자산 건전성이 악화됐다. 이에 따라 서민들의 목돈 마련 수단으로 각광받던 저축은행 예금도 바닥을 기고 있다.

이처럼 계속되는 불황에 저축은행들은 합병 카드를 꺼내들었다. 최근 저축은행업계에서는 대형화 바람이 불었다. 합병 뿐 아니라 신규 점포 개설 등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있다.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 종료가 선언된 가운데 솔로몬, 토마토저축은행 이후 사라졌던 초대형 저축은행들이 재등장할 조짐이다.


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SBI, OK, 웰컴, HK저축은행 등 저축은행이 잇따라 합병작업을 완료했다. 우선 SBI저축은행은 4개로 나눠진 계열사(SBI, SBI2, SBI3, SBI4)를 전부 합병했다. 통합 SBI저축은행으로 공식 출범했다. 지난1일 SBI저축은행은 법인 통합을 기념하고 새 출발의 각오를 다지기 위한 통합 선포식을 개최했다. 이번 통합으로 SBI저축은행은 업계 자산 1위 저축은행으로 올라섰다. 이달 중 개점 예정인 인천, 광주 지점을 포함하면 전국 20개 영업점을 보유하면서 업계 1위의 우량 저축은행이 된다.
 

자산 규모는 지난 9월말 기준 자산 규모 3조8443억원, BIS비율 11.44%을 기록했다. 2019년 6월말 까지 국제결제은행자기자본비율(BIS) 14.61%, 당기순이익 2328억원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은행은 전망하고 있다. 40~50명 규모의 대졸신입공채와 신입텔러공채’를 통해 핵심인력까지 추가적으로 확보할 계획이다.

같은 날 OK저축은행도 OK2저축은행을 흡수 합병했다. OK저축은행은 이번 합병으로 지난 6월 기준 자산 규모 4862억원, BIS비율 33.67%에 18개 영업점을 보유한 저축은행으로 새로 탄생했다. OK저축은행은 이번 합병으로 자산이 연내 1조원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목표를 달성한다면 러시앤캐시는 저축은행 진출 반년 만에 총 자산이 두 배로 뛰는 셈이다. 최근까지 OK저축은행은 월 평균 800억∼1000억원의 대출을 취급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1조 클럽’에 드는 것도 시간문제다.

다시 몸집 키우기
2011 사태 재현?

웰컴저축은행은 지난달 29일 금융위원회 인가를 받아 서일저축은행의 합병을 마무리했다. ‘웰컴저축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해 영업을 시작했다. 이번 합병으로 웰컴저축은행은 서울과 경기, 부산, 경남 지역의 기존 영업구역과 대전(둔산지점), 충청(서산지점) 지역 영업 구역을 추가해 총 14개의 영업점을 운영하고 있다.

HK저축은행도 지난달 자회사인 부산HK저축은행과의 합병을 마무리하고 통합HK저축은행을 출범시켰다. 앞서 한국투자저축은행은 지난9월 예성저축은행과 합병했다. 이후 경기·인천·호남·제주지역 등 기존 영업망에 서울지점을 추가로 확보해 총 12개의 점포를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저축은행들이 적극적으로 합병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금융당국이 규제를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당국은 2011년 이후 본격 추진했던 부실저축은행의 구조조정을 완료했다. 허가가 아닌 신고만으로 지점설치가 가능하도록 했다. 영업구역 외에도 저축은행 지점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규제를 완화했다. 저축은행 점포 신설이 한결 자유로워진 셈이다.

그동안 부실화를 막기 위해 지점이나 출장소, 여신전문출장소 등을 설치할 때 일정액을 증자해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지점 설치 시에도 증자의무를 배제하고 저축은행중앙회 승인으로 점포를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된다. 국내 저축은행들이 지역 밀착형 서민금융기관으로서 도약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취지에서다. 지난해 사업연도가 마무리되면서 금융당국이 저축은행 부실사태는 끝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당국이 너무 쉽게 저축은행 합병 허가를 내준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저축은행 대형화로 제2의 저축은행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저축은행에 감독과 지도를 더욱 엄격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들의 금리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는 취지는 무색해진 모습이다. 저축은행들이 이렇다 할 구체적 계획 보다는 몸집을 키우기 위해 통합부터 강행했다는 시각이다.
 

특히 대부업 계열 저축은행들은 서민금융을 취급하는 ‘은행’이름만 달았지 대출금리는 여전히 살인적이다. 대부업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고리대금업자라는 비판여론이 거세다.

금융감독원이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부업 계열 저축은행 대출의 90% 정도가 연 25%가 넘는 고금리인 것으로 나타났다. 9월 말 기준 OK, OK2, 웰컴, 웰컴서일, 친애 등 대부업 계열 저축은행 5곳의 전체 대출 2만7424건 중 89%(2만4460건)가 연 25∼35%의 고금리 대출인 것으로 집계됐다. 연 10∼15%대 대출은 전체의 7%(1882건)였고 10% 미만 저금리 대출은 3%(769건)에 불과했다.

계열사 끌어 모아 몸집 불리기
이러다 또 큰일?…위기 가능성↑


저축은행별로는 국내 대부업계 1위 ‘러시앤캐시’ 계열의 OK저축은행이 전체 대출의 91%(1만2114건)를 연리 25∼30%에 빌려줬다. 웰컴크레디라인이 인수한 웰컴저축은행은 96%(8612건)가 연 25∼30%대 대출이었다. 일본계 금융그룹 J트러스트 계열의 친애저축은행은 연 30% 이상 대출이 620건이나 됐다. 대부업체가 저축은행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연 10∼20%대의 중금리 신용대출 상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5개 저축은행의 수신 규모는 대부업체 인수 이전 2조4763억 원에서 9월 현재 2조723억 원으로 약 16% 감소했다. 전체 대출 규모도 같은 기간 1조9536억 원에서 1조4657억 원으로 약 25% 감소했다. 이 중 기업대출이 1조5829억 원에서 4689억 원으로 70% 급감한 반면 개인 신용대출은 2655억 원에서 8482억 원으로 219%나 급증했다.

김 의원은 “대부업계 저축은행이 수신과 여신은 줄이면서 고금리 신용대출을 늘리고 있다”며 “대부업체에 저축은행 인수를 허용해 서민대출 금융회사로 키우겠다고 한 금융당국의 취지가 무색하다”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에금보험공사의 저축은행 자금지원은 27조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예금보험공사가 저축은행에 총 29조2000억원을 지원하고 이 중 3조7000억원만 회수했다고 밝혔다. 특히 부실우려인정기준에 해당하는 3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본 저축은행은 20개나 됐다. 예금보험공사의 단독조사 횟수만 30회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 의원은 “부실우려인정기준에 해당하는 3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본 저축은행이 20곳”이라며 “예보의 단독조사가 30회에 달해 저축은행 사태가 재연되지 않을 것이라는 금융당국의 발표는 낙관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은행업계 및 전문가들도 대책 없이 합병을 통해 매출을 늘리려는 목표는 위험하다고 보고 있다. 전직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해마다 저축은행에서 온갖 유형의 비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며 “내부통제는 엉망인데 소비자의 신뢰부터 쌓아야 할 저축은행들이 구체적인 계획조차 없이 덩치만 키우려는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저축은행들은 1조 클럽을 운운하기 보다는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마치 2011년 사태가 터지기 직전의 상황을 보는 것 같다”고 경고했다.

저축은행 탈 쓰고
살인적인 고금리


저축은행들은 몸집 불리기가 아닌 효율성을 위한 합병이라고 입을 모았다. 저축은행 한 관계자는 “계열사별로 사외이사, 준법감시인 등을 둬야하고 전산시스템 관리 등에 대한 중복비용이 들기 때문에 통합한 것”이라며 “합병은 경영효율성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1년은 저축은행 사태로 큰 홍역을 치렀다. 당시 저축은행이 줄줄이 무너진 것은 대규모 자산을 운용할 만한 인적 자원이나 위험을 관리할 만한 조직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금융사는 신뢰산업이다. 소비자의 신뢰조차 얻지 못한 채 ‘1조 클럽’에 들기 위해 몸집 불리기에만 급급하다면 2011년 저축은행 사태는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금융권에 일본자본 얼마나?

일본자금이 국내 서민금융시장을 급속도로 장악해가고 있다. 일본계 금융사는 대부업체와 저축은행에 이어 이번엔 캐피털사까지 손에 쥐게 됐다.

J트러스트가 국내 캐피탈업계 2위사인 아주캐피탈의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J트러스트는 일본에서 대부업으로 성장한 금융그룹이다. J트러스트는 2011년부터 지난 3월까지 네오라인크레디트, KJI대부, 하이캐피탈대부 등 국내 대부업체 3곳을 사들였다. 2012년에는 친애저축은행(옛 미래저축은행)을 인수해 본격적으로 저축은행 시장에도 진출했다. 지난 6월에는 SC저축은행과 SC캐피탈의 지분 100%를 인수키로 했다. 현재 금융당국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계 금융사 J트러스트는 아주캐피탈이 지분 100%를 보유한 아주저축은행에 대해서도 인수 의향을 밝혔다. 서민금융시장의 상당부분이 일본계의 손으로 넘어가는 모습이다.

지난해 말 기준 일본계 대부업체 대부액은 4조9700억원(56.2%)가량으로 내국계 3조5600억원(40.2%)을 넘어섰다. 특히 대부업계 1, 2위는 모두 일본계로 압도적인 규모를 갖추고 있다. 1위인 아프로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쉬)는 대부액이 2조1700억원으로 3위인 내국 대부업체인 웰컴크레디라인대부(5000억원)의 4배가 넘는 수치다. 2위 산와대부도 일본계로 대부액은 1조2700억원 규모다.

지난해 기준 일본계 저축은행은 6개사로 늘어났다. 시장점유율은 14.5% 수준이다. 특히 가계신용대출은 25.9%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1위 저축은행인 SBI저축은행(자산 3조8443억원)도 일본계다.

대부업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잠식한 일본계 자본이 저축은행, 캐피탈업 등으로 세력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따라 시장 잠식과 국부 유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본계 자본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면 서민대출 금리상승이나 국부 유출 등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며 “자칫 국내 서민금융이 일본자본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금융당국 역시 근본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저축은행을 적극 인수할 주체가 국내에서 나타나지 않아 일본계에 대한 차별적 규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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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정-조국 딸 스캔들 오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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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심우정 검찰총장이 ‘딸 특혜 채용 논란’에 휩싸였다. 자격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외교부에 최종 합격했다. 외교부가 오직 심 총장의 딸을 위해 전형까지 엎었다는 게 골자다. 외교부는 특혜가 아니라던 입장을 뒤집고, 심 총장 지녀 채용을 보류했다. 정치권에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사안처럼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필요하다며 맹공을 펼치고 나섰다. 심우정 검찰총장의 딸 심모씨는 ‘아빠 찬스’로 취업에 성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국립외교원 기간제 연구원과 외교부 공무직 연구원에 합격할 수 없었다. 지원 자격 자체가 미달 수준이었다. 일각에서는 입시 비리 혐의를 받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의 사안보다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수사기관이 심씨를 즉각 수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아빠 찬스? 수상한 합격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지난달 2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안 질의서 심씨의 특혜 채용 의혹을 제기했다. 이 문제는 지난해 9월 심 총장의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서 언급됐었다. 당시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은 심 총장의 장녀가 11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국립외교원 연구원으로 채용됐는데, 심 후보자가 이와 관련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당시 “후보자 장녀가 최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석사 과정을 이수했다”며 “후보자 자녀는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국립외교원 연구원으로 채용됐다. (장녀가)서울대 국제대학원 1학년 때 박철희 교수에게 수업을 받았다”며 “박 교수는 현직 주일대사고, 후보자 본인 장녀가 입사할 당시 국립외교원장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철희 국립외교원장은 나카소네 야스히로상 수상자”라며 “제1회(수상자) 박철희 주일대사고, 윤석열정부서 ‘중요한 건 일본 마음’이라고 말한 김태효 차장이 제5회 장려상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심 총장이 “문제가 없다”고 답변하자, 박 의원은 “그러면 채용 서류를 내라.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전부터 채용서류 전체를 내라고 하는 것”이라며 “의원실서 계속 요구하지만 후보자 동의가 없어서 (외교원이) 내질 않고 있다”고 따져 물었다. 외교부의 지난 1월 1차 공무직 연구원 채용 공고에는 ‘경제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가 응시 자격이었다. 그런데 한 달 뒤인 2차 공고는 갑자기 심씨가 전공한 ‘국제정치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로 변경됐다. 외교부는 응시 가능 대상을 확대하려는 목적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변경 전에 응시했던 이들은 2차 공고 때는 응시조차 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의 공정채용 가이드라인 등에 따르면, 채용공고를 변경할 때는 채용 관련 심의기구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외교부는 인사기획관실과 서면 협의만 거쳤다. 심의기구를 통한 공정성을 확보하지 않은 채 채용 공고를 변경한 셈이다. 채용 경력을 두고도 외교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해 심씨에게 특혜를 줬다는 지적도 거세다. 채용 공고에는 해당 분야 실무 경력 2년 이상이 응시 자격이었다. 그러나 심씨의 경력은 국립외교원 연구원 8개월,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보조원 22개월, UN 경제사회국 인턴 6개월로 실제 경력은 8개월에 불과했다. 경력 1년도 안 되는데 스펙 과대 포장해 지원 외교부 전형까지 뒤집어…기존 면접자는 탈락 외교부는 학창 시절의 경험도 경력으로 인정한다고 해명했지만, 외교부 산하 기관서 2022년과 2023년에 낸 채용공고엔 인턴이나, 교육생, 학위 취득에 소요되는 행정조교 등은 경력서 제외한다고 적시돼있다. 심씨는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산하 EU센터서 연구보조원으로 근무했다고 실무 경력에 적었다. 하지만 서울대 국제학연구소가 발간한 2023년 연례보고서에는 심씨가 연구 보조원이 아닌 EU센터 ‘석사 연구생’으로 적혀 있다. 민주당은 지난 2일 심씨의 외교부 특혜 채용 의혹 관련 진상조사단을 출범했다. 조사단에는 한 의원을 포함해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김영배·홍기원·이재강 의원,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김기표·박희승 의원,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홍배·이용우 의원, 정무위원회 소속 강준현·이정문 의원,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성회 의원, 교육위원회 소속 고민정·백승아 의원 등 총 12명의 의원이 참여했다. 이들은 심 총장을 포함한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고발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외교부는 지난 1일,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면접까지 통과해 현재 신원 조사 절차만 남겨둔 심씨의 외교부 공무직 연구원 채용은 감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유보됐다. 공익감사는 감사 대상 기관이 자체 감사기구서 직접 처리하기 어려운 경우 등에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조국혁신당 윤재관 대변인은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감사원은 검찰의 2중대 역할을 자처해 왔다.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며 “감사원을 동원해 면죄부를 받으려는 시도는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조사단은 심 총장 자녀 관련 ‘권력형 비리’ 의혹과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규명하고 대응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심 총장 딸의 외교부 특혜 채용 비리 의혹 및 서민금융 대출 논란, 심 총장 아들의 장학금 수령 특혜 의혹 등을 들여다볼 방침이다. 앞서 민주당 외통위원들은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립외교원 연구원 채용 공고상 자격 요건에 ‘해당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 또는 학사학위 소지자 중 2년 이상 관련 분야 근무 경험자’라고 돼있지만 심 총장 딸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특혜 채용 의혹을 주장한 바 있다. 급 바뀐 채용공고 심 총장은 입장문을 내고 “근거 없는 의혹 제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검찰총장의 자녀는 대한민국의 다른 모든 청년들과 같이 본인의 노력으로 채용 절차에 임했다. 국회에 자료 제출을 위한 외교부의 개인정보 제공 요청에도 동의했다”고 반박했다. 한 의원은 최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심씨 특혜 채용에 핵심 역할을 한 인물이 박장호 외교부 외교정보기획국장이라고 주장했다. 한 의원은 “(박장호 외교부 외교정보기획국장은)윤석열정권 출범 직후 2022년 7월 정도에 대통령실 외교비서관실로 들어갔다가 2024년 1월에 외교부로 복귀해 5월 말, 한반도 평화교섭본부를 없애고 새롭게 신설한 외교전략정보본부 외교정보기획국장으로 보직받아 오늘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한 의원에 따르면 2023년 외교부 연구직 채용 1차 공고 당시 직접 면접에 참여한 박 국장은 지원자 A씨를 “한국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탈락시켰다. 하지만 A씨는 한국서 나고 자라 학위까지 받은 인물로 언어능력을 문제 삼을 만한 근거는 부족했다. A씨의 탈락 이후 외교부는 2차 공고를 내며 채용 자격을 경제 관련 석사학위 소지자에서 국제정치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로 변경했다. 이때 국제협력 분야를 전공한 심씨가 합격하게 된 것이다. 한 의원은 박 국장의 대통령실 근무 경험이 심씨의 채용 과정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채용 실무가 인사기획관실이 아닌 외교정보기획국 산하 외교정보1과서 이뤄졌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그는 “아무래도 용산에 파견 나가 있으면 조금 더 넓게 여러 부처와 관련된 사람들을 접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 과정서 어떤 방식이든지 어떤 접점이 이뤄지지 않았겠냐라고 하는 것은 있는데 그 부분은 저희가 조금 더 깊이 파봐야 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공수처 먹잇감 심 총장과 갈등을 빚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심씨의 사건은 좋은 먹잇감이다. 지난 3일 공수처는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이하 사세행)이 심 총장과 조태열 장관을 직권남용, 특정범죄가중법상 뇌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수사3부(부장검사 이대환)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수사3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석방을 지휘해 고발당한 심 총장 사건도 수사 중이다. 사세행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검찰의 수장인 심우정 검찰총장의 딸을 뇌물성 채용한 행위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바란다”고 밝혔다. 공수처가 수사에 착수하면서 감사원이 공익감사 청구를 각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공익감사 청구는 6개월 이내 결과를 내놔야 하되 기한은 자체 판단으로 늘릴 수 있는데, 그전에 감사에 착수할지 여부부터 감사위원회의 판단을 거쳐야 한다. 과거 사례를 보면 감사 청구를 각하하는 이유는 통상 이미 같은 사안에 대한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가 많다. 공수처 수사가 각하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법상 감사원이 거부할 수 없는 국회 요구 감사의 경우에도 수사나 재판을 이유로 ‘사실상 각하’했던 최근 사례도 있다. 감사원은 지난달 25일 국회가 요구한 방송통신위원회 2인 구조 등 감사를 두고, 같은 사안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위법성 여부를 감사원이 결론 내리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매듭지은 보고서를 내놨다. 정치권에서는 야권을 중심으로 심씨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입시 비리 논란을 일으켰던 조 전 장관 부부가 받았던 수사와 현재 상황을 비교하면 검찰의 이중적 잣대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조 전 장관이 받았던 검찰 수사를 보면 입시 비리 혐의만으로도 압수수색 등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같은 혐의를 받는 심 총장 딸의 경우 멀쩡하게 살고 있다는 걸 국민 눈높이서 봤을 때 형평성 논란이 일 것”이라며 “이건 상식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조민은 집유 “강도 높게 수사해야” 용산 파견 키맨 박장호 국장 뒷배? 여당인 국민의힘도 조용하다. 지난달 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간부 자녀 특혜 채용을 두고 “제2의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사태를 넘어 제2의 조국 사태”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공수처가 심 총장과 심씨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력난이 지속되는 가운데 주요 고발 사건이 이어지면서 수사 지연은 불가피하다. 지난 4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 인사추천위원회는 지난 1월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3명 등 4명의 검사 임명을 대통령실에 제청했지만 두 달이 넘도록 임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 검사는 인사위 추천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해 9월에도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2명 등 3명의 검사를 추천했지만 대통령실은 반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답이 없는 상태다. 윤 전 대통령은 국회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될 때까지 이들을 임명하지 않았고,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한덕수 국무총리는 송창진 수사2부장의 면직을 재가하면서도 신규 검사 임명은 하지 않았다. 한 총리의 뒤를 이은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경찰청 등 부처 인사는 진행하면서도 공수처 검사는 임명하지 않았다. 신규 검사 임명이 늦어지면서 고질적인 공수처 인력난도 지속되고 있다. 공수처 검사 정원은 처장과 차장을 포함해 25명이지만 현재 검사 인원은 휴직자 1명을 포함해 14명에 불과하다. 정원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신규 검사 7명을 임명해도 정원보다 4명이 부족하다. 공수처 내부에서는 과부하 상태라는 우려가 나온다. 12·3 비상계엄 수사와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 비위 의혹 수사 등 기존 수사에 인력이 집중돼있어 타 수사를 들여다볼 여력이 없다는 토로도 상당하다. 수사? 미지수 공수처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고발 사건이 이어지고 있지만 배당받은 사건을 전부 들여다보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통령실이 하루빨리 검사 임명을 해줘야 타 사건도 들여다볼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반박에 반박 나선 외교부 외교부가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입장을 재반박하는 장문의 입장문을 내놨다. 외교부는 “관점에 따라 제도 운영 과정서 미흡했던 부분이 지적될 수는 있겠지만, 이를 특정 인물에 대한 특혜로 연결 짓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외교부는 지난해 ‘석사학위 소지자 또는 학사학위 소지 후 2년 이상 관련 분야 근무자’를 대상으로 채용 공고한 국립외교원 기간제 연구원에 석사 취득 예정 상태였던 심씨가 채용된 것에 대해 심씨만 특별히 배려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학위 취득 예정서를 공식 증명서로 증빙하면 자격요건을 갖춘 것으로 인정했던 사례가 2021~2025년까지 총 8건 더 있었다”고 반박했다. 외교부는 올 초 외교부 정책조사 연구원 채용 과정서 이미 최종 면접까지 마친 응시자가 불합격 처리되고, 심씨를 위한 ‘맞춤형’으로 응시 자격을 바꿔 재공고했다는 의혹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경제 관련 석사학위 소지자’를 대상으로 1차 공고를 냈을 때 응시 인원이 6명에 불과했고, 그 중 유일하게 경제 관련 석사학위를 소지한 응시자 1명에 대해 외부 인사 2명과 내부 인사 1명으로 구성된 면접위원회가 최종 면접을 했으나 채용 부적격 판정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1차 채용 공고문에 ‘응시자 중 적격자가 없을 경우 선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사전에 공지했다”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2차 공고에선 응시 가능 대상을 넓히기 위해 자격 요건을 ‘국제정치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로 변경했고, 그 결과 19명의 지원자가 응시해 심씨를 포함한 5명이 서류 전형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번처럼 1차 공고 후 적격자가 없어 전공·자격증 분야 등 응시 자격 요건을 변경해 재공고한 사례는 타 부처는 물론 외교부 내에서도 과거 전례가 있다면서 “(심씨가)유일하다는 지적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앞서 외교부의 이 같은 설명에 대해 “응모한 사람이 적더라도 (같은) 채용 공고 사이트를 보면 재공고를 해서라도 기한을 연장해 해당 분야 사람을 찾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심씨가 또 다른 응시 요건인 ‘실무 경력 2년 이상’을 충족했는지도 논란이 큰 쟁점이다. 외교부는 심씨의 실무 경력을 국립외교원 경력 8개월,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연구보조원, 유엔 산하 기구 인턴 등을 포함해 총 35개월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외통위원들은 “인턴, 조교 등은 통상 실무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경험과 경력은 엄연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