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세월호 직격탄’ 안산 고잔동 가보니…

슬픔에 젖어…뛰는 사람이 없었다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단원고가 위치한 고잔동 전체는 침통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동네 전체가 슬픔에 잠겨 인적도 뜸했다. 물론 단원고 주변은 예외였다. 학교 정문 앞에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희망과 기적을 갈망하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세월호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쪽지도 붙어있었다. 시민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타 지역 주민들도 줄지어 단원고를 찾았다. 강북에 거주하는 A씨는 어린 아들과 딸을 데리고 단원고 추모게시판 앞에 섰다.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마치고 국화꽃으로 애도를 표했다.

어린 자녀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 평일에 시간을 내 단원고를 찾은 A씨는 “가슴이 너무 아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결코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후에도 국화꽃은 계속 쌓여갔다.

“왜 또 왔대”
“저거 왜 해 짜증나”

취재진들이 단원고 주변을 감싼 가운데 단원중 학생들이 나타났다. 하교하던 학생들이 취재진을 바라보며 중얼중얼 거렸다. 분명 부정적인 톤이었다. 몇몇 학생들은 “왜 또 왔대” “저거 왜 해 짜증나” 등 다소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랬다. 주변 상권은 너무나 조용했다. 문방구도 텅 비어있었다.

단원고 앞 작은 공원인 원고잔공원에는 지역 주민들로 가득했다. 지역 주민 B씨는 “평소 공원을 산책하면서 단원고 학생들을 자주 봤었는데 이런 일이 생겨 가슴이 답답하다”며 “이제는 교복입은 학생만 봐도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슬픈 현실 속에서 희망과 기적을 바라는 염원과 응원의 목소리는 단원고 맞은편 빌라부터 고잔역, 중앙역까지 펼쳐져 있었다. 인근 명성교회 앞 ‘일어나기를…요나처럼 살아오기를…’ 등 다양한 현수막 수십여 개가 빼곡히 걸려있었다.

조용히 숨죽인 동네…사고 후폭풍 여전
단원고 2학년 325명 중 38명 저소득층

그런데 한 가지 눈에 걸리는 게 있었다. 단원고 정문 앞에 주차된 차량이 문제였다. 흰 트럭 뒷면에는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우스꽝스러운 사진과 함께 ‘WANTED KIM JONGUN’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외부세력은 안산단원고에 얼씬하지 마라∼!’ ‘제2의 광주폭동 꿈꾸나?’ 등의 자극적인 문구가 커다랗게 붙어있었다.

출처가 어딘가 보니, 밑에 노란 글씨로 친절하게 적혀있었다. ‘안산의제21, 안산통일포럼, 환경운동연합, YMCA, 경실련’. 부적절해 보였다. 몇몇 학생들은 이 차량을 보고 비웃으며 지나갔다.


단원고 앞을 지나니 안산 올림픽 기념관이 눈에 들어왔다. 임시 합동분향소 주변에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구호물자도 활발하게 지원되고 있었다.

타인을 위한 도움의 손길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장례식장 역시 사람들로 붐볐다. 특히 정장차림의 앳되 보이는 청년들이 많았다. 단원고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어설픈 정장 차림으로 장례식장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1층 로비에 있는 한 화환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고2 학생을 둔 엄마가’라고 적혀진 문구 때문이었다. 아마도 모든 어머니의 마음이 이랬을 것이다.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 사고가 더 안타까운 건 단원고 학생들이 거주했던 지역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단원고 주변은 전형적인 ‘서민동네’의 모습이다. 수학여행에 나선 학생 중 85%인 109명이 고잔동에 거주하고 있었다. 2년 전 시행된 고교평준화 정책이 고잔동에 단원고 학생 비율이 높았던 이유다.

단원구, 대표적 서민주거지역
3층짜리 빌라 즐비

안산시는 단원구와 상록구로 나눠 학교를 선택하도록 했는데, 당시 고잔동 학생들 대부분이 집과 가까운 단원고를 택했던 것이다. 특히 이번 참사를 당한 2학년 학생들은 고교평준화 정책이 시행된 후 입학한 최초 학년이었다.

단원고 주변에는 유독 연립 다가구주택이 많다. 아파트는 찾아볼 수 없다. 고잔동은 신도시가 건설될 당시 신축된 연립 다가구주택이 밀집된 대표적 서민주거지역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단원고 주변에는 3층짜리 빌라가 즐비하다. 고잔1동은 9100여 가구, 3만3000여 주민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등 각종 지원을 받는 주민이 35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주민들 대부분이 10∼15평짜리 연립주택에서 맞벌이를 하는 게 일반적이고, 조부모가 손자 손녀를 키우는 것도 흔한 경우다.


오죽하면 우스갯소리로 “안산은 ’안 산다, 안 산다‘ 하면서도 계속 사는 곳”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그리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접했다. 실종자 학생 가족 가운데 경제적 형편이 매우 어려워 다가구주택 반지하에서 지내온 가정이 있다는 것.

슬픈 이야기지만 이번 사고로 이 가정이 보상금을 받아 형편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후문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지역 전체가 비탄에 빠져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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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