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뒤흔드는 '친노 프레임' 실체 해부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4.02.10 11: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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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우린 친노 아니랑께요!"

[일요시사=정치팀] 민주당이 친노(친노무현) 프레임에 갇혀 허우적거리고 있다. 당내 의견 대립은 곧장 계파싸움으로 해석되며 당 지지율을 갉아먹었다. 당내 일부 인사의 일탈도 모두 친노에게 책임이 전가되고 있다. 애매한 친노의 경계 탓이다. 친노 프레임에 실체는 있는 것일까? <일요시사>가 민주당을 뒤흔드는 친노 프레임의 실체를 해부해봤다.




친노(친노무현)는 민주당 내 최대 계파로 분류된다. 민주당 127명의 의원 가운데 범친노로 분류되는 의원만 70여명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대선패배 이후 친노는 한때 폐족 위기까지 몰렸었지만 지난해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 친노는 연일 각종 언론의 메인을 장식하며 이슈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친노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 고운 것만은 아니다. 상당수 언론은 친노를 민주당 지도부를 흔드는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당내 잡음은 곧잘 당내 주도권을 잡기 위한 친노와 비노 진영 간의 계파싸움으로 해석됐다.


친노 부활
곱지 않은 평가


이는 언론을 통해 '민생을 외면하고 계파싸움에만 열중하는 민주당'이라는 프레임으로 확대 재생산되며 민주당의 지지율을 갉아먹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됐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신년기자회견에서 "내부에 잔존하는 분파주의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이유다.

그러나 친노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억울함을 토로한다. 친노계 모 의원실의 관계자는 "당내에서 의원들 간 이견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친노 프레임에 엮이면서 당연한 의견대립조차 계파싸움으로 해석되고 있다. 최선의 선택을 위한 '의견대립'과 계파 이익만을 위한 '계파싸움'은 확연한 차이가 있고 어감부터 다르다"며 "친노 프레임에 엮이면서 우리는 의견교환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됐다"고 하소연 했다.



민주당, 친노 프레임 발목 잡혀 '허우적'
이미지 나빠진 친노, 친노 분류에 '불쾌'


그는 또 "한때는 친노라는 배지가 정치활동에 도움이 됐지만 언론들이 하도 '친노가 자기정치를 한다' '당 지도부 발목을 잡는다'고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내니 이제는 오히려 족쇄로 작용하고 있는 느낌도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특히 친노의 수장으로 지목받고 있는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친노 프레임에 갇혀 옴짝달싹 못할 정도다. 문 의원이 공식행보를 할 때마다 언론들은 친노의 부활 또는 본격적인 세 결집이라며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간 문 의원의 행보는 국회의원으로서 특별할 것도 없는 것들이었다.

문 의원이 지난해 12월 개최한 대선회고록 북 콘서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출판기념회는 상당수 의원들이 보편적으로 하는 일인데 문 의원의 북 콘서트에 대해 당시 언론들은 친노의 세 결집이라고 대서특필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친노 세 결집?
평범한 활동?


문 의원은 지난달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의 단독회동에서 이같은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문 의원은 이날 "계파해체 선언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실제로 계파라고 할 만한 모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곤혹스럽다"며 친노 프레임에 대한 억울함을 털어놨다. 문 의원은 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친노의 존재를 '새누리당이나 언론이 만든 프레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실 민주당 대다수 의원들의 공식적인 입장은 "민주당 내에는 친노도 없고 비노도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신을 친노라고 당당히 밝히는 의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자신이 스스로를 친노로 규정할 이유와 필요성도 없는데다 스스로 친노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나서는 것은 자칫 당내 계파싸움을 부추기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




또 친노라는 사실이 부각될 경우 해당 의원의 모든 행보가 계파싸움 성격으로 비춰질 우려도 있다. 게다가 친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이어지면서 일부 친노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언론사들이 자신을 친노로 분류하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친노의 분류는 매우 모호하다. 그야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이다. 친노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도대체 친노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그저 언론의 입맛에 맞게 재단되는 것이 아닌가"라며 모 의원을 예로 들기도 했다. 그는 모 의원의 이력을 설명하며 "도대체 이 인사를 왜 친노로 분류하느냐?"며 기자에게 되묻기도 했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일부 언론에서는 모 인사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에서 어떤 직책을 맡았다는 이유로 친노 인사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민주당 내에서 친노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나? 손학규, 정동영 고문도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고문을 맡았다. 그들도 친노로 분류할 것인가?"라며 억울한 심정을 내비쳤다.

대표적인 사례가 민주당 장하나 의원과 양승조 의원 사건이다. 장 의원은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해 대선 불복을 선언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해 문제가 됐고, 양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을 거론하며 박 대통령도 '선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새누리당은 즉각 두 사람의 발언과 관련해 문재인 의원을 배후 조종자로 지목하며 의견 표명을 요구했다. 다소 뜬금없는 주장이었다. 장 의원은 문재인 대선캠프에서 활동하긴 했지만 청년비례대표 경선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한 인사로 친노라고 보기엔 다소 애매하다.

심지어 양 의원은 손학규계로 더 잘 알려진 인사다. 친노의 경계가 애매하다는 점을 악용해 민주당 내 잡음이 일 때 마다 책임을 친노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친노를 집중 공략함으로써 민주당을 자중지란에 빠트리고, 유력한 야권의 차기 대권주자인 문 의원까지도 공략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이를 위해 실체도 없는 친노 프레임으로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이 민주당을 옭아매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친노 프레임의 실체가 없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문(재인) 의원은 친노라는 프레임이 새누리당이나 언론이 만든 프레임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문 의원을 중심으로 친노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당 지도부와 지속적으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 않나? 이것이 모두 우연이란 말인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라며 "민주당 내 친노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인사도 "김한길 대표가 직접 친노를 겨냥해 분파주의 극복을 언급한 것이 아니냐"며 "친노의 실체가 없다면 김 대표는 있지도 않은 허깨비와 싸우고 있는 것인가? 누가 봐도 친노세력이 당 지도부를 흔들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본인들만 아니라고 하니 뻔뻔해 보인다"고 말했다.


친노 실체는?
치열한 공방


실제로 친노와 비노 간 갈등은 지난 총선 당시부터 벌써 2년째 지속되고 있다. 그동안 계파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있었지만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죽하면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이중권력 상태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게다가 친노와 비노 간의 갈등을 언급한 것은 새누리당과 언론뿐만이 아니다. 민주당 스스로도 그동안 수차례 친노와 비노 간 갈등을 언급해왔다. 




지난해 1월 당시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여기 친노 아닌 사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안 팔고 국회의원 된 사람이 있는가"라며 당내 만연한 계파갈등에 대해 일갈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해묵은 계파갈등은 전혀 사그러들지 않았다.


올해 1월에도 김한길 대표는 신년기자회견에서 "내부에 잔존하는 분파주의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민주당내 계파갈등이 심각한 상태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애매한 친노 경계, 나쁜 것은 모두 '친노'
"친노 실체 없다고?" 반론도 만만치 않아


또 지난해 12월 비노계로 분류되는 민주당 조경태 최고위원이 문 의원을 비판하자 친노계로 분류되는 정청래, 최민희, 김경협 의원이 즉각 SNS를 통해 원색적인 비난을 하고 나선 것도 친노의 실체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당시 정 의원은 "당신(조 최고위원을 지칭)은 비겁하고 야비한 정신적 새누리당원", 최 의원은 "이기적인 자기정치, 지역감정에 기댄 볼모정치 역겹다", 김 의원은 "민주당 내 새누리 X맨은 곧 탈당 후 자기 당 찾아갈 것"이라고 조 최고위원을 비난했다.

이에 대해 한 야권인사는 "친노의 실체가 없다면 하필 친노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일사분란하고 일관되게 문 의원을 옹호하며 조 최고위원을 공격하고 나선 것은 단지 우연이란 말인가?"라며 "이들의 행태는 마치 박근혜 대통령의 심기경호를 하고 나서는 친박계 의원들을 연상시킨다"고 꼬집었다.


친노 프레임
실보단 득?



그는 또 "친노 프레임 때문에 본인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하는데 친노 프레임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강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하자 친노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SNS 등으로 이 사실을 적극 퍼 나르며 홍보하기도 했다"며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될 때는 친노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다가 불리하면 친노 프레임은 새누리당과 언론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한 정치전문가는 "민주당 내 친노가 없다? 스스로 친노라고 인정하는 의원들도 다수다. 어느 정도 실체는 있다고 본다"면서 "다만 친노의 활동이 모두 당내 주도권을 잡기 위한 행동이라고 폄하하는 것과 또 민주당 내 문제인사들을 모두 친노와 연결시키려는 새누리당과 언론의 태도는 분명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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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