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르포> 설 앞두고 집창촌 메카 ‘용주골’ 가 보니…

  • 최용환 cyh@ilyosisa.co.kr
  • 등록 2014.01.27 11:4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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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손님들’ 받느라 명절이 더 바빠요”

[일요시사=사회팀] 파주 용주골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성매매 집결지다. 군대 갔다온 남성들이라면 용주골을 모를 리 없다. 그만큼 잘 알려진 홍등가다. 이곳은 과거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사그라드는 듯 보였지만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눈 내리는 날, <일요시사>가 용주골을 찾아갔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경기북부의 대표적 성매매 집결지인 용주골. 알게 모르게 많은 남성들이 이곳을 찾는다. 아마 용주골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르면 간첩일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이름난 성매매의 메카다. 사실 용주골의 ‘리즈 시절’은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주골을 찾은 이유는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하향세의 모습 속 용주골의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꺼지지 않는
붉은 조명…

지난 20일, 눈보라를 헤치고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연풍리에 위치한 집장촌 ‘용주골’을 찾았다. 연풍삼거리에서 서울방향 연풍교를 건너 오른편을 바라보니 용주골 홍등가를 마주할 수 있었다. 초행길이었지만 어렵지 않게 용주골을 찾았다. 날씨 탓인지 용주골에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움추린 몸을 펴고 홍등가로 향했다.

주변 골목에 들어서자 ‘청소년 동행금지구역’이라는 간판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차량통행’이라는 노란 표지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표지판에는 화살표와 함께 ‘주차도 해드립니다’라는 친절한 문구도 안내되어 있었다. 표지판을 따라 걸어가 보니 골목길 좌우는 온통 쇼윈도로 도배된 상태였다. 그런데 문을 닫은 곳도 꽤 있었다. 천천히 둘러보니 4분의 1정도의 쇼윈도가 폐허로 변해 있었다.

기자는 폐허가 된 쇼윈도를 뒤로하고 불이 켜진 쇼윈도를 찾기 위해 열심히 걸었다. 이른 오후였기 때문이었을까. 불 꺼진 쇼윈도만 덩그러니 있었다. 어두운 쇼윈도 내부를 바라보니 TV, 의자, 난로, 담요, 세면도구, 커피 등 웬만한 건 다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쇼윈도 앞에는 연탄재를 담은 커다란 봉지가 있었다. 용주골은 여전히 연탄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주변을 둘러보던 찰나, 한 트럭을 발견했다. 이 트럭에는 연탄이 가득 실려 있었다. 그리고 한 남성이 새 연탄을 트럭에서 쇼윈도로 계속 옮기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 호기심 가득한 말투로 ‘요즘 용주골은 어떻냐’고 물었다. 그는 퉁명한 말투로 “확실히 예전 같지는 않다. 그래도 꾸준히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건물은 2층에서 3층으로 볼품없는 외관이었다. 원룸빌딩 같은 건물이 마치 소규모 연립주택처럼 들어서 있었다. 주택가를 연상시키는 그곳은 똑같은 모양과 똑같은 페인트를 바르고 서 있다. 1층 쇼윈도 통유리문만 없다면 성매매 업소란 걸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

예전 같지 않지만…24시간 돌아가는 홍등가
연휴도 풀 영업 “성매매 여성들 전원 투입”

쇼윈도 조명 위에 있는 빨간 천막은 다소 촌스러웠다. 이렇게 건물을 유심히 살피다 보니 어느새 큰 길에 들어서게 됐다. 그리고 붉게 켜진 조명 여러 개를 발견했다. 그 앞에는 차량 몇 대가 주차돼 있었다. 여기서 재밌는 점을 발견했다. 이 차량들은 눈이 쌓이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고 들어간 지 얼마 안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아하니 1층에서 고객을 유혹하고 2층에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계단 밑 낡은 갈색 작업화와 흰색 킬힐이 그 증거였다. 그리고 신발의 주인을 확인하기 위해 무작정 기다렸다. 15분 정도 지났을까. 좁은 계단 사이로 한 남성과 여성이 손을 잡고 내려왔다. 빨간색 원피스로 섹시한 몸매를 드러낸 여성은 남성의 등을 쓰다듬으며 나가는 길을 배웅했다.

남성의 모습을 보니 외국인 노동자였다. 그에게 다가가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여기 얼마예요?” 그는 파주 인근에서 3D업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맞았다. 그는 능숙한 한국말로 “술값이 들지 않아 자주 온다”며 “우리 같은 외국인들에겐 이만한 곳이 없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인근 공장 외국인 노동자들은 용주골을 자주 찾는다. 오로지 섹스만 파는 게 이곳의 장점이라고. 그리고 그녀는 “여기는 술 먹고 쇼하면서 지저분하게 노는 데가 아니고 깨끗하게 섹스만 하는 곳”이라며 “미성년자도 없고 임금착취도 없다”고 덧붙였다. 술 없이 깔끔하게 섹스만 하기 때문에 돈이 적게 들어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용주골의 단골손님으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그래서일까. 용주골 여성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친절하다고 전해진다. 왜냐하면 가장 큰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고객의 발이 끊길 수도 있기에, 서비스에 적극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어쩌면 지금의 용주골은 ‘현대판 기지촌’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수요가 내국인 남성들을 압도한다고.
기자는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차량들이 주차돼 있는 홍등가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멀리서 유혹의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여기서 놀다가요. 잘 해줄게.”

무시하고 지나치자 나와서 붙잡았다.

“에이∼오빠 어디가∼여기 다 비슷하니까 그냥 여기서 놀아.”

그래서 물었다.

“얼만데?”

“30분에 10만원. 처음 왔어? 여기 다 똑같아. 일단 들어와서 커피한잔 해.”

딱 달라붙는 트레이닝복과 풍만한 가슴은 남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용주골 아가씨들의 나이대는 보통 20대 중반으로 전해진다. 30분에 10만원, 1시간에 18만원. 웬만한 서비스는 다 가능했다. 그리고 낮에는 한 여성만 쇼윈도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당직근무’를 서는 것처럼 보였다. 본격적인 영업은 밤 9시부터 시작된다.

설 연휴는? ‘피크’
아가씨 전원투입

1층 쇼윈도를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가정집 같은 구조의 작은 방들이 있다. 3∼4평 크기인 방에는 침대와 TV, 작은 옷장 그리고 샤워 꼭지만 있는 욕실이 있다. 아가씨들의 개인 방이자 영업장이다. 아가씨들은 쇼윈도에 나와 있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엔 주로 이 방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단골’미군→외국인 노동자
‘현대판 기지촌’명맥 이어가

그렇다고 방에만 있는 건 아니다. 용주골은 다른 집장촌과 달리 자유로운 편이다. 근처 상점에 나가 쇼핑도 하고 PC방도 드나든다. 이들에게 매매춘은 단지 직업일 뿐 20대 여성들이 즐기는 문화를 그대로 누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용주골 아가씨들에게 명절은 없다. 이번 설연휴는 그녀들에게 ‘피크’이기 때문. 성매매 성수기라 총원 근무한다. 의아하겠지만 명절에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있어 설 연휴는 명절이 아닌 그저 ‘빨간 날’에 불과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래서 명절만큼은 모든 여성들이 ‘전원투입’된다. 설날이라고 해서 돈을 더 받지는 않는다. 기존에 받던 금액 그대로 고객들을 상대한다.

적어도 용주골은 치사한 짓은 하지 않는다. 정직하게(?) 돈을 벌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당당하다. 쇼윈도 앞에 걸린 ‘6.29 성노동자의 날 8주년 기념’ 현수막이 이를 말해준다. 여성으로서 관리도 나름 철저해 보인다. ‘여성전용 피부관리실’ 등과 같은 현수막이 걸려 있는 이유다.

파주읍 연풍리 300번지 일대는 하루 24시간 내내 청소년의 출입이 금지돼 있는 곳이다. 매매춘 지역으로 소문난 용주골의 원래 이름은 ‘용지골’이었다. 파주공고 옆에 있는 연못에서 용이 승천했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정확한 옛이름은 ‘대추벌’이다. 1960년대 초반까지 이곳엔 대추나무숲이 울창했고, 마을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대추 수확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기도 했다고.

연풍리에 용주골 매매춘 지대가 형성된 것은 6·25전쟁 직후인 1953년부터다. 주한미군 2사가 파주읍에 자리잡고 1개 사단병력의 미군들이 이곳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미군들을 대상으로 한 상점과 클럽들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당시 미군들을 상대로 한 기지촌이 형성됐다.

대추벌에 모여든 수천명의 매춘 여성들은 미군들과 살을 섞어가며 외화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미군이 점차 파주를 떠나면서 기지촌은 쇠락했다. 매춘의 현장은 치킨집이나 호프집 등으로 바뀌었다. 미군의 자리에 한국군이 주둔하면서부터, 용주골은 한국군 대상 매매춘 지역이 됐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수도권의 신흥 윤락 명소로 등극했다.

그러나 2004년 성매매특별법 이후 위기 속에 영업을 계속해 왔으나 경찰의 강력한 단속에 백기를 들고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문을 닫았다. 당시 파주시와 경찰은 기동대 등 15∼18명의 경찰관을 투입해 오후부터 새벽까지 집중 단속을 벌여 성매매 업주와 종업원 6명을 성매매 알선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의 단속이 계속되자 150여명의 성매매 여성이 일하고 있는 용주골 70개 업소는 일제히 문을 닫고 영업을 중단했다. 성매매특별법 제정 때도 아랑곳하지 않고 영업을 계속해온 용주골이 문을 닫았다. 당시 파주 경찰은 “용주골에 불이 꺼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성매매가 근절될 때까지 더욱 강력한 단속을 실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후 용주골의 규모는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그리고 용주골을 젠더파크로 개발해 다양한 성교육장으로 탈바꿈 시키는 등 지역특화상품화해야 한다는 이색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간편한 섹스에…
단골 된 외노자들

한때 용주골은 무려 250여곳 업소에서 1400여명의 성매매 여성들이 일하던 ‘리즈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엔 엄청난 성업을 누리며 대표적인 성매매 집결지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왠지 초라하다. 간신히 명맥만 이어가는 수준이다.

용주골 외에도 집장촌은 곳곳에 숨어 있다. 청량리역 광장을 빠져나와 롯데백화점을 끼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양쪽으로 펼쳐진 쇼윈도를 볼 수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곳은 ‘메카’였다. 바로 ‘청량리588’이다. 단속 탓일까. 홍등을 밝혀놓은 집은 단 한 곳도 없다. 드문드문 보이는 ‘청소년 보호구역’이라는 표지판과 ‘철거’라고 적혀진 업소 출입문만이 남아 있을 뿐.

30분 10만 1시간 18만
발렛파킹 서비스 눈길

그러나 청량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 죽은 척하고 있다. 화류계 한 관계자에 따르면 청량리588은 음성적으로 여전히 성을 주고 판다는 것. 밖에서 봤을 때는 모두 철거되거나 문을 닫은 듯 보이지만 숨겨진 사실이 있었다. 포주들이 근처 포장마차나 불 꺼진 업소에 몰래 대기하고 있다가 손님으로 보이는 남성에게 접근해 아가씨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근처 PC방이나 미용실 등에 대기 중이던 아가씨와 연결시켜줘 함께 모텔이나 여관으로 이동해 성매매를 한다. 경찰이 와도 속수무책이다. 연인이라고 발뺌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거대 집장촌이었던 ‘미아리 텍사스촌’ 자리에는 뉴타운이 들어선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었다.
지난 2009년 1월 ‘도시환경정비사업 신월곡 1구역’으로 지정된 미아리 텍사스 일대는 최고 39층 높이의 주상복합건물 9개동(1192 가구)이 들어설 계획이다. 그런데 이게 벌써 몇 년째다.

성매매업소가 대거 강제철퇴되면 지역 땅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뉴타운 계획은 무기한으로 연기됐고 집장촌 업주들과 종사자들은 살 떨리는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기약 없는 뉴타운 설계에 진저리가 난 주민들. 뉴타운이 지역 토박이를 위한 게 아닌 일부 부유층들을 위해 계획된 것이라는 소문도 떠돌았다.

점점 작아지는
성매매 지도

또한 영등포역 집장촌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004년 실시된 성매매특별법. 성매매를 원천적으로 근절시키겠다는 본래 취지대로 집장촌 업소의 수가 대폭 줄어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 업소는 아직 영업 중이다.

영등포역을 나와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면 어두컴컴한 골목을 마주할 수 있다. 이 길을 걸어가면 양 옆으로 총 18개의 업소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격은 15분에 7만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다. 놀라운 건 쇼윈도 조명이 아주 환하게 켜져 있다는 것. 쇼윈도를 가로질러 가기 민망할 정도로 많은 아가씨들이 남자들을 유혹하는 손길을 뻗는다. 그렇지만 쇼윈도 조명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전망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 성매매 집장촌과 종사자는 2010년 935곳(2282명)에서 2011년 845곳(1867명), 2012년 760곳(1669명)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


최용환 기자 <cyh@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부산 집창촌의 변신

성매매 완월동이 갤러리로?

한때 부산의 대표적인 성매매 집창촌이었던 부산 서구 충무동 2가 완월동 일대가 재생을 거쳐 ‘문화예술마을’로 탈바꿈 된다.

부산시는 집창촌이었던 서구 충무동2가 완월동 재생계획 용역을 부산발전연구원에 의뢰했다. 부산시는 용역 결과를 토대로 올해 중 시범사업을 거쳐 내년부터 본격적인 사업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재생 거쳐 문화예술마을로 탈바꿈

이번에 부산시가 추진하는 완월동의 모델은 일본 요코하마가 250여곳이 밀집한 성매매 집창촌을 갤러리·서점·창작공간으로 바꾼 ‘고가네초’다. 요코하마시가 재개발을 거쳐 임대한 건물 70여곳은 현재 예술가의 아지트나 연구소로 변신했다. 부산시는 성과에 따라 해운대 집창촌으로 사업을 확대 실시할 계획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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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공천 개입 검찰 추가 기소 플랜

윤석열 공천 개입 검찰 추가 기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검찰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씨가 연루된 사건들을 파고드는 속도가 달라졌다. 정권 말기 검찰의 생존 본능이라는 평가다. ‘명태균 게이트’의 한 갈래인 윤 전 대통령과 김씨의 공천 개입 의혹 수사도 갑작스레 빨라졌다. 검찰은 이 사건의 핵심 내용을 알고 있었음에도 꽁꽁 싸매왔다. 봐주기 논란 해소를 위해 김씨를 시작으로 윤 전 대통령까지 소환 조사할 가능성이 큰 대목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도 열흘이 지났다. 12·3 내란 사태를 수사하는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도 9부 능선을 넘었다. 체제를 유지하면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 조사를 준비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명태균 게이트’ 공천 개입 의혹을 받고 있다. 출금 연장 추가 영장 검찰 내부에서는 서울중앙지검이 정치권의 특검 명분을 약화하기 위해서라도 윤 전 대통령에 대해 최후의 수단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윤 전 대통령은 이제 불소추특권을 적용받지 못한다. 김건희씨도 영부인 지위를 상실해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를 받을 전망이다. 두 사람 모두 자연인이 되면서 회피 수단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선 윤 전 대통령은 파면 전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만 기소된 상태다. 현직 대통령의 경우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는 형사상 소추가 되지 않는 불소추특권을 적용받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위헌이자 위법하다고 인정한 만큼 직권남용 혐의가 추가로 적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앞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지난 1월 불소추특권을 고려해 윤 전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만 기소하고 직권남용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다. 검찰이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연장한 만큼 이달 안에 소환 조사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중앙지검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히 얘기할 순 없다”면서도 “사저로 돌아갔으니 일정을 조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의 외환 혐의 관련 수사도 진행 중이다. 경찰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을 확보하면서 “NLL(북방한계선) 인근서 북의 공격을 유도” 등과 같이 북풍 공작을 구상한 정황을 확인했다. 고발 3건을 접수한 경찰은 지난달 4일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사건을 이첩했다. 경찰은 또 대통령경호처의 체포영장 집행 방해와 보안폰(비화폰) 서버 삭제 등 증거인멸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경찰은 김성훈 경호처 차장과 이광우 경호본부장의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수사하면서 윤 전 대통령을 윗선으로 지목했다. 채상병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공수처는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관계자들과 국방부 수뇌부에 대한 조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공수처 수사는 윤 전 대통령의 격노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피의자로 이첩하는 해병대 수사단의 결과가 왜곡된 것을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다. 불소추특권 상실로 부담감↓…직권남용 적용 가능 경찰·공수처 수사 한창…대면 조사 가능성 거론 공수처는 지금까지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등 윤 전 대통령의 격노를 간접적으로 들은 것으로 알려진 피의자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비상계엄 수사에 인력을 집중하며 채 상병 수사는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다. 비상계엄 정국이 마무리된 만큼 공수처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 등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 전 장관은 윤 전 대통령 격노를 직접 듣고 해병대 수사단 조사를 무마하려 한 혐의, 임 전 비서관은 당시 대통령실과 국방부 사이서 조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이 사실상 봐주기 논란에 휩싸였던 명태균 게이트의 정점에도 윤 전 대통령이 있다. 서울중앙지검 명태균 의혹 전담 수사팀(팀장 이지형 차장검사)은 윤 전 대통령과 김씨가 지난 2022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지난해 22대 국회의원 선거 등에서 공천에 개입했단 의혹을 수사 중이다.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명씨의 청탁을 받고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에 개입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은 명씨가 운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래한국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받았다는 의혹도 받는다. 이미 윤 전 대통령의 음성을 통해 공천 개입 정황이 확인된 상황서 검찰은 명씨의 이른바 ‘황금폰’ 포렌식은 물론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해 왔다. 김씨는 지난 2022년 5월9일 명씨에게 전화를 걸어 “당선인(윤 전 대통령)이 (당에) 전화했는데 ‘(김영선을) 그냥 밀라’고 했다”며 “잘될 거니까 지켜보자”고 말했다. 검찰은 김씨가 2021년 7월 명씨로부터 대선 지지율 등 여론조사 결과를 미리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도 확보한 상태다. 명씨는 김씨가 지난해 총선서도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김씨가 김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김상민 검사가 (경남 창원 의창서) 당선되도록 지원해라. 그러면 선거 끝나고 장관 또는 공기업 사장 자리를 주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무렵 김씨가 김 전 의원과 11차례 통화한 내역도 확보한 상태다. 다만 김 전 검사는 국민의힘 공천을 받지 못했다. 특검을 막아라 중앙지검 수사팀은 김씨에게 지난 2월부터 최근까지 두 차례 “공천 개입 의혹 관련해 대면 조사 필요성이 있으니 출석해달라”며 소환을 통보했다. 명씨 사건이 중앙지검으로 이송되기 전 수사를 담당했던 곳은 창원지검이다. 창원지검은 김씨가 국민의힘 공천에 깊숙하게 개입한 정황을 지난해 수사를 마무리하기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뉴스타파>가 공개했던 창원지검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창원지검은 명씨와 윤 대통령 부부의 통화 녹음 파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모두 김 전 의원 공천과 관련된 통화였다. 창원지검은 김 전 의원과 명씨가 나눈 카카오톡 대화 메시지도 확보해 ‘공천 개입’ 의혹을 적극적으로 들여다봤다. 먼저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명씨에게 “창원 의창구가 김 전 의원 단수공천이 아닌, 경선이 될 것 같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명씨는 김씨가 “윤상현 의원(공천관리위원장)에게 두 번이나 전화를 했다”면서 김 전 의원은 단수공천이 확실하다고 했다. 이어 이 의원에게 “사모님과 당선인에게 물어보세요” “사모님이 대표님께 전화할 겁니다”라면서 김씨가 김 전 의원 단수공천을 확정했다는 취지로 반복해서 말했다. 이들의 대화 말미서 명씨는 이 의원에게 “의문이 있으면 사모님께 전화하면 됩니다”라고 강조했다. 두 사람의 마지막 카톡 대화 1시간 뒤인 5월9일 오전 10시1분이다. 검찰은 명씨가 윤 대통령과 통화하며 녹음한 사실을 확인했다. 녹음 파일의 제목은 ‘통화녹음 윤석열대통령_220509_100104’. 2분30초짜리 파일이다. 검찰은 명씨가 이 녹음 파일을 저장한 USB를 자신의 PC에 꽂아서 지난 2023년 4월과 7월경에 수차례에 걸쳐서 재생한 사실을 PC 포렌식을 통해 파악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공개한 20초 분량의 윤 대통령 육성이 이날 녹음된 통화 중 일부다. 같은 날 명씨는 이 의원에게 “윤 대통령께서 저한테 전화오셨습니다. 윤한홍·권성동 의원에게 그런 말 들은 적 없다고 하시면서 윤상현 의원에게 전화해서 김 전 의원으로 전략공천 주라고 전화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김씨와 윤 전 대통령이 공천에 개입한 정황이 확인됐음에도 김씨는 명씨 사건과 관련해 단 한 번도 소환 조사를 받지 않았다. 검찰 내부서도 봐주기 논란을 피하기 힘들다는 비판이 역력하다. 검찰의 봐주기 논란에 불을 지펴온 민주당 등 야 6당은 수차례 ‘명태균 특검법’을 발의해 왔다. 수사 대상에는 명씨와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범여권 ‘잠룡’부터 윤 전 대통령과 김씨까지 포함됐다. 못 미더운 수사기관 당초, 명태균 특검법 초안에는 윤 전 대통령과 김씨의 2022년 대우조선 파업 등 의혹과 관련해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을 수사 대상에 포함하려 했다. 하지만 ‘불법적 정황 증거’를 파악하기 힘들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인지 수사 범위를 확대하는 것으로 보완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정책 결정과 사업에 개입했다는 것으로 수사 대상을 한정 짓지 않고 추가 수사 가능성을 열어뒀다. 명태균 특검법 제2조 제6항에는 ‘제1호부터 5호까지 관련된 의혹 사건에 대한 증거인멸 및 범인 도피, 조사·수사를 고의적으로 지연·해태·봐주기를 하는 등 공무원의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과 이에 관련된 불법행위를 했다는 의혹 사건’이라고 적시돼있다. 이는 창원지검이 현재 수사를 진행하고 있음에도 수사 진척 사항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만큼, 검찰이 의도적으로 수사를 지연시키거나 미진하게 수사를 진행한 부분이 있다면 이 부분을 직무유기 또는 직권남용으로 특검 수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 특검법은 지난달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에게 가로막혔다. 민주당은 이번 주 명태균 특검법에 대한 재표결에 나선다. 이는 조기 대선 레이스에 맞춰 명태균 게이트 의혹을 수면 위로 꺼내 윤 전 대통령과 김씨, 국민의힘 차기 대선주자들을 동시에 흔들겠다는 계획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명태균 특검법이 국민의힘 차기 주자로 꼽히는 홍준표 전 대구시장을 향한 견제구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명씨와 연관된 의혹 당사자로 거론되는 상황서 명태균 특검법 움직임 자체가 압박이 될 수 있다. 오 시장 측은 “명씨의 미공표 여론조사를 받아본 적도 없다”며 비용 대납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전면 부인해 왔다. 또 명씨 주장에 “새빨간 거짓말” “전혀 사실이 아니다” 등의 표현으로 강하게 반박했다. ‘명태균 게이트’ 봐주기 의혹 해소 급선무 “성과 뺏기면 안 돼” 강도 높은 수사 예고 “여러 차례 만났다”는 주장에 관해서도 오 시장 측은 ‘2021년 1월께 김 전 의원 소개로 명씨를 두 번 만났고, 당시 캠프 실무를 총괄한 강철원 전 정무부시장이 추가 연락한 것은 맞지만, 부정 여론조사 수법을 확인한 뒤 상대할 가치가 없는 인물이라 생각해 2월께 완전히 끊어냈다’고 입장을 밝혔다. 강 전 부시장은 앞서 검찰 참고인 조사에 출석하면서 “5%의 사실에 95%의 허위를 엮고 있는 명태균 진술의 실체를 명확히 밝히는 자리”라고 하기도 했다. 다만 실제 특검이 가동될지는 미지수다. 거부권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서려면 200명의 찬성이 필요한데 국민의힘에서 최소 8명의 이탈표가 넘어와야 한다. 민주당은 차기 주자들 간의 역학관계에 따라 국민의힘 단일대오가 무너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명씨와 김 전 의원이 보석으로 풀려난 것도 변수다. 창원지법 형사4부(부장판사 김인택)는 지난 9일 구속 기소된 명씨와 김 전 의원이 신청한 보석을 허가했다. 검찰이 지난해 11월15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이들을 구속한 지 145일 만이다. 재판부는 보석 조건으로 ▲각각 주거지 제한 ▲보증금 5000만원 납입 ▲거주지 변경 시 허가 의무 ▲법원 소환 시 출석 의무 ▲증거인멸 금지 의무 등을 걸었다. 재판부는 “재판 진행 경과 등에 비춰볼 때 구속 기간 만료 내에 공판 종결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측면 등을 고려해 조건을 부과해 보석을 허가했다”고 사유에 대해 설명했다. 앞서 명씨 변호인은 명씨가 사형이나 무기 또는 장기 10년이 넘는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지 않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염려가 없는 점, 무릎 건강이 좋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지난해 12월 법원에 보석 허가청구서를 제출했다. 명씨가 다시 폭로전에 나설 경우 6월 대선 전까지 수사 결론을 내야 한다는 여론이 생길 수 있다. 다만 이미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과도한 여론전에 나서면 역효과를 낼 수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석방되면서 수사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미 출장 조사 등 수사가 상당 부분 진척됐고, 황금폰을 명씨로부터 제출받아 포렌식을 마치는 등 필요한 증거자료가 상당 부분 확보돼 공소 유지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 중이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한 검찰 간부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이 크냐”는 질문에 “이제는 부담감 없이 마음껏 수사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앙지검 관계자는 “특검에 성과를 뺏겨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고 수사팀도 의지가 강하다. 심우정 검찰총장이 간부 회의를 통해 ‘타협하자’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요리조리 눈치 보기 검찰은 명씨 사건뿐만 아니라 김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재수사도 검토 중인 모양새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0월 이 사안에 대해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무혐의 처분했다. 하지만 고발인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이 검찰 무혐의 처분에 항고해 서울고검은 재수사 여부를 검토 중이다. 특히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로 기소됐던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이 파면 선고 전날인 지난 3일 대법원서 유죄를 확정받으면서 재수사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