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 사람들 릴레이인터뷰 ⑤> 남궁진 전 장관

“곁에서 본 DJ, 매일 자신과 치열하게 싸웠다”



학창시절 시작한 민주화 운동으로 DJ와 필연적 만남
78일간 가택연금 함께 하며 고난의 시절 ‘동고동락’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동교동계 인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오랜 시간 김 전 대통령의 곁에 머물면서 그의 삶을 생생히 목도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세간에 알려진 ‘김대중’보다 더 따뜻했던, 눈물 많고 정 많은 김 전 대통령을 보았고 민주화를 위해 끝없이 투쟁한 인동초 삶의 곁에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의 유훈도 이들에게는 평소 들어오던 말일 뿐이다. 동교동계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의 숨겨진 일면들과 그가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되새겨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아간 세월은 한반도의 사계를 닮았다. 그는 한겨울 눈보라보다 더 매서웠던 군사정권의 탄압 속에서 민주화라는 봄을 꿈꿨다. 여름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민중 속에서 살아 숨쉬었으며 누구보다 추억할 것이 많은 가을을 보냈다.
김 전 대통령과 같이 길을 걸었던 이들에게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김 전 대통령이 떠나고 이들은 어떤 계절을 보내고 있을까.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난달 15일 고즈넉한 인사동 한켠에서 남궁진 전 장관을 만났다.
다음은 남궁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
 
- 국장 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땅이 꺼지는 슬픔이었다. 나라의 진로와 국민이 나아가야 할 길을 가르쳐줄 스승을 잃은 충격일 것이다. 국장 후 거의 낙담한 채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고 있다.

- DJ와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인가.
▲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인연이 닿았다. 4·19가 일어났을 때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당시 서울에는 중앙, 보성, 배제, 양정, 경성, 휘문, 중동 등 7대 사립고와 이 학교들의 학생회장단 모임이 있었다. 나는 그 해 중앙고 학생회장이자 학생회장단회의  의장을 맡고 있었다. 이 나라에 민주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전 고등학교가 4·19를 결의했다. 이들 중에 경동고 대표로 온 최장집 고려대 교수와 보성고 대표였던 서진영 교수가 기억에 남는다.

- 파란만장한 고교 시절이었다. 최장집·서진영 교수와는 대학에서 다시 뭉치지 않나.
▲ 고등학생 때는 4·19로 수배자 신분이 되더니 대학에 오니 한일협정이 문제가 됐다. 고려대에서 모이게 된 최장집, 서진영 교수와 함께 6·3 한일협정 반대를 주도하는 씽크탱크 역할을 했다. 산업화는 성공했지만 민주주의가 되지 않으면 나라의 발전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신체제, 긴급조치로 전국이 혼란스러웠다. 당시 정권이 북한을 비방하는 것을 보고 ‘김일성,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인 독재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18년 독재나 뭐가 다른가’라는 생각을 했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안 좋은 상황에 놓였고 우리가 나은 상황이 됐다뿐이지….
1980년 민주연합 연정에 가담해 민주화운동을 했다. 1984년에 김영삼 총재와 김대중 선생을 대신한 김상현 전 의원의 민추협에 함께했다. 기획위원과 기관지인 민주통신 발행의 편집 책임을 맡았다.
민주통신 발행은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중앙정보부나 경찰에 체포되면 안 되기 때문에 비밀 아지트를 이용했다.

- 민추협 활동으로 DJ와 직접적인 인연이 생긴 것인가.
▲ 민추협이 신민당으로 총선에 나서자 1985년 2월8일 김 전 대통령이 귀국했다. 정권이 그를 공항에서 체포하려고 할까 봐 미국에서 하원의원 두명이 따라와 김 전 대통령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의 귀국은 국민적인 지지를 받았고 곧 치러진 총선에서 신민당은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압승을 거뒀다.
2월14일 김 전 대통령이 나를 “보자”고 했다. 비서실 전문위원을 맡아 달라 부탁했다. 6개월간 비서실 전문위원을 하자 비서를 하라고 하셨다.
- DJ와 78일간의 가택연금을 함께한 것으로 알고 있다.
▲ 1985년 2월8일 귀국 후 54번의 연금을 당했지만 60항쟁 전후 78일간의 연금이 가장 긴 연금이자 마지막 연금이었다. 당시 동교동에는 김 전 대통령 내외분과 나, 김옥두 전 의원, 운전기사까지 5명이 있었을 뿐이다. 경찰 2000여 명이 동교동 자택을 감싸고 있어 누구도 들어오거나 나가지 못했다. 손님은 물론 김 전 대통령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아들들도 들어오지 못했다.

- 상당히 긴 시간이었는데 가택연금 기간 동안 DJ는 어떻게 지냈나.
▲ 아침 6시 반이나 7시면 머리를 빗고 넥타이에 양복을 단정히 입으시고 나서야 거실로 나오셨다. 연금 중이라 누구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집이니 편안한 옷을 입고 계실 만도 한데 한결같으셨다. 연금 40일째쯤 “편하게 입으시지요”했다.
그러자 김 전 대통령은 ‘인간에게는 인간과 자연과의 싸움, 인간과 인간과의 싸움, 인간의 그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세 가지 싸움이 있다’는 토인비의 말을 꺼냈다. 매일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민족과 남북화해협력 등 하고자 하는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절제해야 하고 자신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흐트러질 수 없다고 했다.

- 연금생활 동안 소소한 취미생활도 즐기셨을 것 같은데.
▲ 꽃을 사랑하셨다. 자택에 40여 평 남짓한 마당이 있는데 그곳에 꽃을 심었다. 그리고 꽃마다 팻말을 세웠다. 동교동에 오는 사람들이 꽃과 친해질 수 있게 하고 싶어서였다.
장미를 특히 사랑해 한 블록 가득 장미를 심었다. 멀쩡한 장미를 잘라내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를 보고 동교동을 찾았던 기자가 “가혹한 면이 있다”고 했다. 내가 김 전 대통령에게 왜 장미를 잘라내냐고 물으니 “이 꽃을 잘라야 새로 나오는 꽃봉오리의 꽃의 더 아름답게 필 것”이라고 하셨다.
김 전 대통령의 꽃밭관리는 특별했다. 매일매일 응달에 있던 꽃들은 양달로, 양달에 있던 꽃들은 응달로 옮겨 심었다. 그 의미를 물으니 “정부의 따사로운 손길이 응달진 사람들에게도 미쳐야 한다”고 하시더라. 기회가 생겨 집권을 하게 되면 서민과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는 나름의 의지였던 것 같다. 실제 집권을 하고 청와대로 들어간 김 전 대통령은 ‘생산적 복지’를 주장, 기초생활비 등을 제도화했다.

- DJ 하면 ‘책’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 동교동 지하에는 김 전 대통령의 서재가 있다. 3만 권의 장서가 있는데 그 책의 분류를 내가 했다. 문학, 철학, 역사, 과학 등 다양한 책들을 도서관처럼 라벨을 붙여 정리했다. 정리를 하다 보면 그 책이 어떤 책인지 알기 위해 목차나 서문이라도, 책의 내용 일부라도 봐야 했다. 거의 모든 책에 볼펜으로 중요한 내용이 표시돼 있었고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토요일이면 당번 비서에게 신문을 가지고 오라고 하셨다. 이주의 신간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신간 중 목록을 정해 사오라고 했다. 한 번에 2~30권의 신간을 사서 서재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시간이 날 때 책의 목차나 서문을 보고 버릴 것, 서가에 꽂을 것, 책상 위에 둘 것으로 분류했다. 책상 위에 둔 책은 지니고 다니시면서 정독하셨다.

- 78일간의 연금은 어떻게 끝난 것인가.
▲ 전두환 전 대통령은 “개헌은 없다”며 이전처럼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으려 했다. 그러나 직선제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은 타올랐고 전 민주세력이 민주화를 위한 열망을 불태웠다. 박종철 열사 등 희생자도 나왔다. 민심은 들불처럼 일어났고 6·10항쟁으로 이어졌다. 그제야 연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연금에서 풀려난 날을 기억하나.
▲ 6월20일 새벽에 잘 아는 분에게 전화가 왔다. 3시에 쿠테타가 일어나니 몸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받고 새벽 5시에 김 전 대통령이 잠든 방의 문을 두드렸다. 김 전 대통령이 “무슨 급한 일인가”하시더니 말을 전해 듣고는 “어, 알았네. 나가있게”하셨다.
김옥두 전 의원과 나는 3시에 무장군인들이 쳐들어온다는 말에 낙담해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샤워를 하고 속옷을 갈아입었다.
김 전 대통령이 부르셔서 갔더니 수북이 쌓인 수첩을 앞에 두고 계셨다. 김 전 대통령은 수첩을 책상 위에 놓거나 바닥에 던지거나 해서 하나하나 분류했다. 그리고는 “바닥에 둔 것은 태워라. 그리고 책상 위에 둔 것은 역사에 남아야 하는 기록물이니 꽃을 옮겨 심는 척하고 깊게 파서 숨겨라”라고 했다. 수첩에 김 전 대통령의 교우관계나 연락처, 비밀 이야기가 있으니 정권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김 전 대통령이 매일 했던 것처럼 꽃을 옮겨 심는 척하고 화단 한쪽을 깊게 파 수첩을 숨겼다.
점심시간에 김 전 대통령 내외분이 한복으로 갈아입고 나오셨다. 최후의 오찬이었다. 민주주의의 장송곡을 불러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다섯 명 모두 식탁에 앉아 종교에 따라 성호를 끗거나 기도를 했다. 나는 눈만 감았을 뿐 기도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김 전 대통령이 김옥두 전 의원에게 “김 차장, 뭐라고 기도했어요”라고 물으시는 게 아닌가. 김 전 의원이 “예, 저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하루속히 이뤄지고 오늘 선생님 내외분이 다치지 않고 건강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이 “남궁 동지, 뭐라고 기도했어요”라고 묻자 나는 차마 눈만 감았다 떴다고 할 수 없었다. “예, 선생님. 저도 비슷한 기도를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이 한 말은 아직도 생생하다. 김 전 대통령은 “응, 그렇지. 그런 기도도 좋지. 그러나 오늘 같은 날은 ‘모든 것을 주께 맡깁니다’라는 기도가 더 좋을지도 모르지”라고 하셨다. 나와 김 전 의원은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 물을 틀어놓고 엉엉 울었다.

- 국민의 정부가 들어섰을 때 동교동에서 지명직 공직에는 나서지 않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청와대에서나 문화부 장관으로 활동하게 된 사연이 있을 성싶다.
▲ 대선 막바지에 성명을 발표했는데 두 가지 의미를 지녔다. 하나는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고생을 해서 집권을 하면 권력을 남용하지나 않을까 하는 국민들의 불신을 씻어주기 위해서였다. 나머지 하나는 우리가 지명직 공무원이 되면 사회 각 분야에서 인재들을 뽑아 쓸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옷로비 사건이 터지면서 김 전 대통령은 딜레마에 빠졌다. 인재도 좋지만 청와대에는 투철한 국가의식을 가진 이가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명감 없이는 안 된다는 게 김 전 대통령의 판단이었다.
국감 중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나를 찾아 청와대로 들어와 줄 것을 부탁했다. 위기를 극복하고 인사쇄신을 해서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국민과 약속을 했는데 안 됩니다. 선거가 5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 청와대에 가려면 국회의원직을 두고 가야 합니다. 제 자신이 아깝습니다”라고 말했다.
선거를 얼마 앞두고 있지 않은 시점에서 청와대행이 썩 내키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은 사죄하고 열심히 하는 것으로 답하면 된다. 지역민도 납득할 수 있게 설득하면 된다. 출세를 하러 오는 것도 아니고 희생을 하는 것인데 비판이 아니라 동정받을 일이다. 어려우니 도와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일주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집에 와서 집사람과 상의했더니 “당신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이 나같이 부족한 사람을 불렀는데 부귀영화를 위해 김 전 대통령의 요청을 거절하는 것은 비서로서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김 전 대통령에게 조그마한 보탬이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새벽 6시 반에 전화를 해서 “하겠습니다”했다. “고마워”하셨다. 전화를 끊고 많이 울었다.

- DJ가 한 일 중 가장 가슴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 김 전 대통령이 역사에서 평가받을 만한 일은 6·15 선언을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평양에 가시기 전 이회창 총재와 김 전 대통령이 영수회담을 가졌다. 사전 합의문을 조율하고 영수회담 후에 발표했다.
합의문을 조율하기 위해 한나라당에서 이완구, 김형오 등 7~8명이 나왔고 민주당에서도 나갔다.
합의 마지막까지 “남북문제는 김대중 정부가 ‘상호주의’로 해나가기로 한다”는 내용이 문제가 됐다. 상호주의란 한 가지를 주면 한 가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인데 김 전 대통령은 남북문제는 이러한 관점으로는 해결이 힘들다고 봤다.
그래서 “이 조항을 빼자”고 했더니 한나라당에서 “그럼 영수회담은 없다”고 하더라. 나흘을 밀고 당기기를 했다. 결국 ‘전략적 상호주의’를 넣고 합의했다. 김 전 대통령은 매우 실망했지만 한나라당에서는 ‘전략적’이라는 말을 넣었다고 난리가 났다.

- DJ가 한 일 중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일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최근 존 포드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된 존스타인 벡의 <분노의 포도>를 봤다. 대공황 시절을 담고 있는데 경제가 무너지면 국민들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 같은 시절이 있었다. IMF 외환위기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들에게 IMF 외환위기의 절박한 내용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
대중에게는 ‘금 모으기 운동’이라는 국민들의 비장한 결단이 나라를 살렸다고, 위대한 국민이라고 했다. 하지만 금 224톤을 판돈은 20억 달러에 불과했다. 국민을 속여도 유분수지 그 돈 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는 사태였다.
김 전 대통령의 명성을 들은 세계은행(IBRD)에서 “지구상에 김대중, 만델라, 하벨이라는 위대한 인물이 있는데 김대중이 대통령이 됐으니 도와주자”고 했다. 50억 달러를 5년 분할해서 주기로 했는데 한 번에 줬다. 미국도 도와주겠다던 7억 달러의 배인 14억 달러를 줬다. 일본에서는 단기 채권을 2년간 유예했다. 결국 서울대에서 10년 만에 극복하면 천운이라고 한 IMF를 2년 반 만에 극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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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선 인물난 속에서도 조직표를 놓지 못하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자들은 장동혁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고 있다. 조직표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은 국민의힘을 더 깊은 늪으로 몰고 있다. 리얼미터·한국갤럽이 지난달 각각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높지만,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2.2%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면 갈수록 지지율 격차 민주당 지지율은 51.1%로 집계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조사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였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로 집계됐고, 국민의힘은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두 조사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 결과들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언제나 중요한 승부처로 거론되는 서울시장·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양향자 최고위원·새누리당 함진규 전 의원 등 2명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추미애 의원·한준호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게 지속해서 출마를 권유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적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당의 강경 노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났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출마 권유에도 “불출마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그러자 양 최고위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정당·국가 운영과 공천은 원칙·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게 ‘절대로 떠밀려서 나오는 선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 암시로 해석됐고, “유 전 의원에게도 출마를 간접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겹치는 악재에 강경 보수 조직표 의존? 장동혁 지원 유세? 각지 후보들 ‘난색’ 하지만 유 전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유 전 의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현재 신청하신 훌륭한 두 분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방선거 공천이 사실상 완료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사퇴했다. 부산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손영광 울산대 교수를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손 교수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의 아들이다. 이는 박 시장이 직접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손 교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고, 누구의 아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박 시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손 교수 영입에 대해선 “경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교회 조직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방문해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진숙’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이 전 위원장의 공천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은 정권의 무도함에 맞선 최전선 투사”라며 “대구시장 후보에 현역 의원이 공천되면, 그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이 전 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추천되고 있다”며 “이 전 의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 공천 가능성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 인지도 하나만 달랑 갖고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일보>는 지난달 27일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는 제목의 사설을 공개했다. 이 사설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는 중량감·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2명”이라며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도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니냐”고 비판했다. 낮은 당 지지율과 공천 과정의 잡음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도 난감해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유권자에게 “공개적 절윤 선언과 달리 인적 절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영향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7년 만에 대표 거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선거 유세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변신한 모습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지난달 26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는 조금 예민한 문제”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는 후보가 시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전하는 시민을 위한 시간”이라며 “장 대표는 노선형 정치인이 됐으므로, 정책 선거 현장이 정치 선거로 비화하면 유불리를 떠나 서울시민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일엔 의견을 바꿔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저는 국민의힘이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낮은 지지율과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예고됐던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집회 개최 및 참여 등 강경 보수 행보를 유지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규모 집회는 손 목사·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유튜버 전한길씨 등이 주도했다. 울림이 큰 방에서 나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이는 특정 성향·신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정보·주장을 계속 접하면서 그 의견이 굳어지는 현상을 비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두고 에코 체임버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동원한 인파·우호적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열렬한 지지는 쉽게 눈에 띈다. 선거에선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캠프에선 이를 유권자의 보편적 정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엔 당원투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당원의 뜻이 공천에 반영되면, 정당의 민주적 구조가 탄탄해진다. 하지만 조직표 동원 경선이 될 위험이 커진단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당내 강경파·특정 조직의 관성은 중도층·무당층까지 포함하는 전체 민심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권은 불가능 후보도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표를 움직이는 지역 토착 세력·강경 지지층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장 분위기를 착각한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확증 편향 현상은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던 고대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격언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직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뉜다. 일정한 득표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득표 이상의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례는 일본 공명당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란 종교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덕분에 공명당은 엄청난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창가학회 회원 1명은 강력한 선거운동원이 된다. 그 1명은 주변 지인 모두에게 공명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흔히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정을 하면서 창가학회·공명당의 조직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공명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구에선 그 조직력이 고스란히 자민당 후보의 선거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명당은 종교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명당이 정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공명당과 손을 잡았다고 무조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지난 2월 진행된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하 중원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하 입민당)은 자민당과 결별한 공명당과 손잡고 ‘중도개혁연합’이란 선거 연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입민당·공명당은 원래 총 169석을 보유했지만, 선거 결과 49석만 확보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중 입민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21석에 불과했다.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되면 각각 28석을 확보한 공명당·국민민주당이 제1야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조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란 걸 보여준 선거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인물난…유승민은 거듭 고사 손현보 아들 등장·컷오프 이진숙 못 놓는 이유?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 안정적인 하한선을 보유했지만, 상한선·기대치도 낮은 사례로 일본 공명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강한 특정 집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당은 그에 대한 다른 유권자의 거부감 때문에 집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좌파당 ▲영국 민주연합당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독일 좌파당은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사회주의 통합당 후신이 모여 조직됐다. 따라서 구동독 지역의 고령 유권자·옛 공산당 관료·강성 노동계급 등이 핵심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연유로 구동독 지역에선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체 민심과 조화를 이루긴 어렵고,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주로 거론된다. 영국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 강성 개신교·연합주의자 조직에 기반한다. 이들의 강경한 종교 성향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등의 정서와 많이 멀다. 따라서 이들도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겸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된다. 지난 2017년엔 영국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민주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맺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은 이스라엘 내 극단적인 유대교 원칙주의자들로서 사회적 민폐라고 거론되는 하레디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활동보다 경전 공부에 몰두한다. 극단적인 일부 하레디는 19세기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일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면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아 이스라엘 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를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랍비의 지시에 따라 절대적인 투표 성향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당 리쿠드당은 이들과의 연정을 통해 조직표를 동원한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다양한 성향의 여러 파벌이 모여 구성된 특성을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했다.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바뀌어도 국정 기조가 바뀌어 유권자에게 정권교체 체감을 주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중의원 의원 선거 대승은 자민당으로서도 기존과 다른 형태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민한 유튜브·SNS 활용 ▲실용적 포퓰리즘으로 통하는 사나에노믹스 등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팬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승리로 연결됐다. 공명당 등 해외 사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월에 입증된 자민당의 승리 비결을 외면하고, 공명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후보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더 깊은 늪’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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