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 사람들 릴레이인터뷰 ④> 김옥두 전 의원

“다음 세상에서도 DJ 모시겠다”



민주화운동 함께한 동교동계, 인동초 삶도 함께 견뎌
모진 고문·수감생활…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몰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동교동계 인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오랜 시간 김 전 대통령의 곁에 머물면서 그의 삶을 생생히 목도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세간에 알려진 ‘김대중’보다 더 따뜻했던, 눈물 많고 정 많은 김 전 대통령을 보았고 민주화를 위해 끝없이 투쟁한 인동초 삶의 곁에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의 유훈도 이들에게는 평소 들어오던 말일 뿐이다. 동교동계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의 숨겨진 일면들과 그가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되새겨봤다.

김대중 전 대통령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머물렀다. 그러나 동교동 사람들 중에서도 ‘동교동계’라 불리는 이들은 좀 더 특별하다.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의 이름도 쓰지 못하고 ‘동교동 재야인사’라는 이름으로 세상과 소통할 때 그와 함께하며 민주화 운동을 했던 ‘동지’들이기 때문이다.
그중 한 명이 김옥두 전 의원이다. 수십 년 세월 동안 모진 고문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김 전 대통령과 같은 곳을 봤고, 죽어서도 김 전 대통령을 모시고 싶다고 말하는 이. 그에게는 김 전 대통령이 인동초 꽃을 피우기까지 살아왔던 모진 겨울이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완연한 가을 날씨를 보이던 지난 14일 광화문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김 전 의원과의 일문일답.

- 국장 후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 종종 김 전 대통령의 묘지를 찾고는 한다. 오늘도 다녀왔다. 이희호 여사와 권노갑 고문 등 김 전 대통령을 그리는 이들과 함께 참배를 하고 바로 오는 길이다. 49재는 치르지 않기로 했지만 애도기간으로 여기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 아직도 DJ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나나.
▲ 일본에서 납치를 당하셨다가 가까스로 돌아오신 후 매년 8월13일은 ‘제2의 생일’로 기념해왔다. 올해도 도쿄 피랍 생환 36주년을 기념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던 중 입원을 하셨다. 이전에도 입원을 하셨지만 건강을 회복하셨기 때문에 당연히 강건하게 돌아와 행사에 참석하실 것으로 생각했는데…. 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을 느꼈다.
국장을 치르면서 자녀의 손을 잡고 가족끼리 빈소를 찾은 이들을 많이 보았다. 진심으로 슬프게 울더라. 나도 굉장히 많이 울었지만 지금도 눈물이 난다. 김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전히 살아계신 것만 같다. 동교동 자택 거실에 있으면 김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곧 들어오셔서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주옥같은 말씀을 해주실 것만 같다.
 
- 동교동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된 것인가.
▲ 나는 오랜 기간 김 전 대통령의 비서로 있었지만 처음부터 동교동 자택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다. 1965년 초 김 전 대통령이 자비를 털어 운영하던 정책연구실인 한국내외문제연구회에 비서로 들어갔다. 거기서 성실성을 인정받아 1966년 말 동교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김 동지! 내 그동안 자네를 유심히 지켜봤는데 성실성이 참 마음에 드네. 내일부터는 동교동으로 출근해 일을 하도록 하소. 도와주기 바라네”라고 하셨다.

- DJ가 걸어온 길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 김 전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탄압의 역사였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모진 탄압을 받았다. 암울한 시대에는 희망이 없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행동하는 양심으로 국민과 민족,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평생을 살아오셨다.
정의가 아닌 것은 행하지 않으셨다. 말뿐 아니라 실천하셨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며 인동초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셨다. 나는 그 역사의 증인 중 한 사람일 뿐이다.
 
- DJ에 대한 탄압은 1971년 대선에서 DJ가 박정희 정권을 위협하는 결과를 보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 1971년 대선에서 우리는 수많은 표를 잃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대권을 두고 승부를 벌였을 때 동교동의 표는 다 무효가 됐다. 부정선거라는 이유로 김 전 대통령과 그 가족, 동교동 사람들 1600명의 표가 전부 효력을 잃었다. 게다가 영남지역에는 공명선거 감시단 참관인들이 아예 발을 붙일 수도 없었다. 협박해서 쫓아버리거나 술과 밥과 돈으로 매수했다.

- 이후 어떤 고초를 겪은 것인가.
▲ 1972년 박 전 대통령이 영구집권을 위해 유신을 선포했다. 그 이튿날쯤이다. 나는 동교동 자택으로 막 들어가다 중앙정보부 기관원들에게 끌려가야 했다. 광화문 분실에서 갖은 고문을 당했다.
동교동 사람들 대부분이 4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로지 한길을 걸어왔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형무소에 가고 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나도 여러 번 겪었는데 1980년 5·18때가 가장 심했다. 두 달간 내란음모죄로 고문을 당했다.
‘김대중은 사상적으로 나쁘다’ ‘김대중과 가까운 군인, 경제인, 학생, 교수, 언론인은 누구냐’ 몰아치듯 질문이 이어졌다. 김 전 대통령의 사상이 이상하다는 글만 써 주면 원하는 대로 돈도 주고, 국회의원도 시켜주고,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겠다고 회유하기도 했다.

- DJ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 없나.
▲ 오히려 정반대였다. 고문이 극심해지자 “너희들이 내 몸을 찢어발긴다 해도 내 정신을 뺏을 수는 없다. 차라리 죽여라”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을 모셨던 동지, 가족, 친지들이 탄압을 받는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자기가 싫어서 나간 사람은 있어도 김 전 대통령을 배신한 이는 없다. 김 전 대통령의 인간성, 정, 행동하는 양심을 그분을 모시며 모두 봐왔기 때문이다.
정권이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온갖 비방을 했지만 모시고 있는 사람이 봤을 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장기집권을 위해 김 전 대통령을 탄압한 것에 불과했다.
당시에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분이 대통령이 될 거라고는 꿈도 못 꿨다. 한길을 걷다 보니 나도 국회의원이 됐다. 김 전 대통령 밑에서 공부했던 비서들은 의원회관에서 날을 새가며 공부를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국감스타가 됐고 ‘과연 훌륭한 이에게 배워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 DJ의 감옥생활은 어떠했나.
▲ 1980년 내가 서울구치소에 수감됐을 때 김 전 대통령도 다른 곳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이중 감옥생활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 전 대통령이 머무는 감방 양 옆을 비워서 누구도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면회를 갈 때도 그분만 다니는 길이 따로 있었다.
면회를 하기 위해 어두운 길을 걸어오는데 가족들이 항의해서 겨우 불을 켤 수 있도록 했다. 인터폰으로만 이야기하고 볼펜도 주지 않았다. 하루는 운동을 하다가 못을 하나 구해서 책을 읽다가 중요한 부분이 있으면 점자식으로 찍어서 표시했다. 그런 책들이 한두 권이 아니다. 한 달에 한 번 밖으로 엽서를 보낼 때는 엽서 한 장에 깨알같이 글자를 써서 수만 자를 적어 보냈다.
 
-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DJ는 사형을 선고받게 되지 않나.
▲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최후진술에서 “나는 아마도 사형판결을 받고 또 틀림없이 처형당하겠지만 내가 처형당한다는 것도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던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이 기회를 빌어 유언을 남기고 싶다. 내 판단으로는 머지않아 1980년대에는 반드시 민주주의가 회복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확실히 믿고 있다. 그때가 되거든 먼저 죽어간 나를 위해서든, 또 다른 누구를 위해서든 정치적인 보복이 이 땅에서 다시는 행해지지 않도록 부탁하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내 마지막 남은 소망이기도 하고 또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는 내 마지막 유언이다”라고 했다.
재판부는 “김대중 사형!”을 선고했다. 짜여진 각본에 따라 일사천리로, 속전속결로 진행된 재판이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일본과 미국 등 전 세계의 여론이 들끓었고 대대적인 석방시위가 벌어졌다. 카터 행정부로부터 김 전 대통령의 제를 정식으로 인계받았던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국 방문의사를 매개로 사형이 확정된 김 전 대통령을 구명하고자 애썼다.

- 워낙 생명의 위협을 많이 받았던 DJ였으니 경호도 철저했을 것 같다.
▲ 김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경호를 책임졌었다. 김 전 대통령은 여러 번 생명의 위협을 받아왔기 때문에 경호에 만전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2층에서 계단으로 내려올 때 누가 뒤에서 밀지 않을까, 식사를 하면 누가 독극물을 넣은 것은 아닌가, 자동차를 타면 타이어에 구멍이 나서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경호원 한 사람 한 사람이 24시간 경호체제로 김 전 대통령을 철통경호했다.
일화도 많다. 오후 7~8시쯤 날이 저물 무렵 김 전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으면 창살이 날아왔다. 옷에 스치면 옷이 찢어질 정도였고 그 창살을 맞고 다친 이도 있다. 식사를 할 때마다 항상 옆에서 은수저를 준비해 독이 들었는지 확인했다.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전방에 간 일이 있다. 청와대 경호실 책임자가 당선자에게 방탄조끼를 줬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내가 우리 군인을 믿지 않으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며 끝내 그 방탄조끼를 입지 않았다.
 
- 대선기간 동안 경호문제뿐 아니라 건강문제에도 크게 신경 써야 했을 것 같은데.
▲ 워낙에 건강하셨다. 대선기간 동안 하루에 19군데에서 유세를 펼쳐 연설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악수를 했다. 유세를 하고 곧장 다른 장소로 이동하다 보니 제대로 식사를 할 시간도 없었다. 차에 군것질거리를 뒀는데 많은 사람들과 악수한 손 그대로 집어 드셨다.
5분간의 토막잠도 그분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많은 영향을 줬을 것이다.
대선기간 중 ‘DJ가 쓰러졌다’ ‘유세를 못 한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당시 대선주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토론회를 했는데 매주 TV토론회에 건강한 모습이 나왔다. 상대후보 측에서 퍼뜨린 유언비어는 그 TV토론회 때문에 거짓으로 탄로 났다.


- 곁에서 지켜본 DJ는 어떤 사람이었나.
▲ 온화하고 따뜻한 분이셨다. 비서에게도 반말하는 일이 없이 항상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손이 따뜻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참 따뜻한 분이셨다. TV에서 슬픈 장면이 나오면 눈물을 흘리곤 하셨다. 이희호 여사와 산책을 하거나 드라이브를 다니셨는데 꽃을 좋아해 꽃이 많이 핀 곳으로 드라이브를 가시고는 했다.
새도 좋아했지만 키우지는 못했다. 새를 키우려면 가둬야 하는데 그게 철창 아니냐. 김 전 대통령 본인이 철창에 갇혀봤기 때문에 가두는 것을 싫어했다. 자택에 참새들이 모이면 모이를 주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 DJ 하면 깊은 학식이 생각난다. 그 학식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나.
▲ 워낙 명석하신 분이셨다. 어느날 신문에 기사가 났는데 한 달여 전에 난 기사를 보지 않고서는 이해가 어려운 기사였다. 김 전 대통령은 “한 달 전 모일에 무슨 신문 몇 면에 이런 기사가 났는데 찾아오라”고 하셨는데 해당 신문을 찾으면 찾으시는 기사가 분명 있었다. 사람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것은 놀라울 정도였다.
책을 정말로 많이 읽으셨다. 책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보니 주무실 때도 책을 보다 잠드는 경우가 많았다. 종종 글귀를 인용하시고는 했는데 그 말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말씀하셨다.
또한 선거 때 수행을 하다 보면 시간 날 때마다 영어 단어를 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생 공부를 하신 것이다.
예전에 권노갑 고문의 지인 중 한국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진 이가 있었다. 몇 년 동안 공부를 해왔는데 김 전 대통령을 만나 두 시간여를 이야기하더니 “몇 년간 배운 것을 두 시간 동안 다 알게 됐다. 존경스럽다”고 하더라. 그 정도로 학식이 깊으셨다.
 
- DJ의 공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임기동안 IMF를 극복하면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은 다 하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일 내에 IMF를 극복해냈을 뿐 아니라 외환보유고를 최고로 만들었다. 전 세계에 경제위기가 몰아쳤을 때 이를 넘길 수 있었던 것도 그것이 기반이 된 때문 아니겠냐.
정치, 경제 문제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토대도 닦았다. 중산층과 서민을 위해 애썼다. 남북 화해협력시대를 열자고 하셨고 서거 후에는 북한에서 특사가 와 이명박 대통령을 만남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에 일조했다.
입원하시기 전에 9~10월경이면 북미간 대화가 이뤄질 거라고 하셨는데 지금 그렇게 되지 않았나. 김 전 대통령이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장관에게 대북관련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안다. 이 중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함으로써 북미간 대화의 장을 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국내보다는 외국에서 김 전 대통령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것 같다. 내가 봤을 때 전 세계를 통틀어 김 전 대통령처럼 고통 받고,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람이 없다. 감옥에 가고 사형선고를 당하고 57회의 연금까지.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한번도 굽히지 않았다.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라 부르며 진지한 경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이 장기집권을 위해 유포한 퍼트린 유언비어와 그로 인해 김 전 대통령을 비판하게 된 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이제 와서는 그들이 김 전 대통령이 어떤 이였는지 알게 되고 있는 것 같다.
 
- 시간이 더 흐르면 DJ에 대한 평가가 더 나아질 것으로 보는가.
▲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은 높이 평가될 것이다. 어떤 직책에 있었느냐가 아니라 과연 ‘행동하는 양심’으로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대한 부분이 평가받을 것이다.
 
- 정치권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 정치는 노장의 조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과 시민단체가 잘 뭉치길 바란다. 또한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당이 됐으면 좋겠다. 민주당은 정통 있는 정당인 만큼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해 잘해나갈 것으로 믿는다.
민주주의가 튼튼하고 국민들이 잘사는 세상이 되도록 정치가 잘해야 할 것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김 전 대통령을 모신 것은 내 인생 최고의 행복이었다. 항상 그분의 비서였으며 죽어서도 김 전 대통령을 모실 것이다. 그분의 유업인 국민화합에 만분지일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김옥두는 누구?

▲1938년 8월 18일 전남 장흥 출생
▲1985년~1992년 김대중 총재 비서실차장
▲1987년 평화민주당 김대중 대통령후보 경호실장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1999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비서실장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2000년 새천년민주당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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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터질’ 2025 국감 관전 포인트

‘박 터질’ 2025 국감 관전 포인트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추석 연휴 직후 진행될 국정감사에선 여야가 수많은 현안을 놓고 공방을 진행할 예정이다. 현안을 밀어붙이려는 더불어민주당과 자기 앞가림도 어려운 국민의힘이 이번에도 맹탕 국감을 진행하는 데 머무를지 많은 국민이 지켜볼 예정이다. 2025년 국정감사는 13일부터 오는 31일까지 진행된다. 첫날인 13일엔 국방위·정무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이하 과방위)·국토교통위·법제사법위(이하 법사위)·행정안전위(이하 행안위)·기획재정위(이하 기재위)의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누가 또… 회피성 출장 정치적인 주목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은 국회 운영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운영위는 대통령비서실 등을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다. 지난달 24일 전체회의서 증인·참고인 명단을 확정할 때, 당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이었던 김현지 제1부속실장 출석 여부는 큰 논란이 됐다. 이번 증인·참고인 명단에 김 실장은 명단에 포함되지 않자 운영위 국민의힘 간사인 유상범 의원은 “김 비서관은 절대 불러선 안 되는 존엄한 존재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의 최측근이라고 평가받는 김 비서관을 국회에 보내지 않으면, 뭔가 숨기는 게 있기 때문이란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 의원에 따르면, 지난 1992년부터 지난해까지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이었던 11명은 한 해도 빠짐없이 국감에 출석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간사인 문진석 의원은 “정부 출범 후 6개월 동안은 정부에 협조적 태도를 보이는 게 관례”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박상혁 의원도 “대통령비서실 최종 책임자는 강훈식 실장”이라며 “비서실장이 증인으로 채택된 것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비서실은 여야의 논쟁이 이어지던 지난달 29일 돌연 김 실장을 제1부속실장으로 발령냈다. 김남준 당시 제1부속실장은 대통령실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1부속실장은 국정감사에 출석할 의무가 없다. 김 실장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다. 이 대통령과의 인연을 맺은 시기는 지난 1998년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은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이 이 대통령에게 소개한 것을 계기로 당시 이 대통령이 설립했던 성남시민모임에 합류했다. 장성철 공감과정책 소장은 지난 8월 “김 실장이 실세라는 소문은 자자했지만 누구도 만나지 않고, 로비도 안 통한다고 알려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실장의 남편은 세무사인데, 사람이 너무 몰려 견디지 못한 남편은 얼마 못 가 개업한 세무사 사무소를 폐업했다”고 설명했다. 신상 정보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채 ‘대통령의 집사’로 통하는 총무비서관으로 임명됐던 인물 사례로는 박근혜정부 당시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이 있다. 이 전 비서관은 박근혜정부 ‘문고리 3인방’ 중 1명으로 거론됐다. 이런 전례가 있어서 야당도 김 실장에 대한 공세를 준비하려고 했다. 김현지 증인 거론되자 급하게 보직 변경 사이버 레커 피해자 쯔양도 참고인 출석 대통령실은 보직 이동으로 이를 피했고, 이는 상당히 오랫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정치적 구설수로 연결됐다. 김 실장이 대장동 소재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야권의 공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김 실장이 국회에 직접 출석해 야당의 공세를 받는 일은 피했지만, 여야 간 공방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선 오는 14일 국민의힘 김장겸 의원의 신청으로 유튜버 쯔양이 참고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쯔양 측도 “국회 출석에 부담이 있었지만, 고민 끝에 사이버 레커 관련 추가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결정했다”면서 출석 의사를 밝혔다. 쯔양은 구제역·카라큘라·주작감별사·크로커다일 등 온라인견인차 공제회에 소속된 유튜버들로부터 “과거사를 폭로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수익금 수십억원을 갈취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구제역은 항소심에서까지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한 경제지의 법조 전문 기자로 근무하면서 이들이 쯔양을 협박하도록 배후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최우석 변호사는 제1심에서 법정 구속됐다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그외 유튜버들은 각각 징역형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이 쯔양을 공갈한 사실이 알려진 후 “기성 언론사와 비교해 사이버 레커에 대한 법적 규제가 너무 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어 ▲수익 창출 정지 ▲처벌법 신설 ▲전담 규제 기관 신설 등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과방위 국감에선 쯔양의 피해 증언을 토대로 그동안 제시됐던 관련 대책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많은 논점이 제기돼 여야 간 격론이 가장 치열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교육위원회(이하 교육위)다.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윤석열정부를 겨냥해 리박스쿨 관련 공세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리박스쿨은 ‘이승만·박정희 학교’의 약자로 알려졌다. 리박스쿨은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부정선거론에도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일각에선 “극우 성향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리박스쿨에 대해선 지난 대선서 일명 ‘자손군(자유 손가락 군대)’로 알려진 댓글 조작팀을 운영했단 의혹이 제기됐다. 자손군은 국민의힘 김문수 당시 대선후보에게 우호적인 댓글을 달면서, 이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함께 달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뜨거울 교육위 리박스쿨은 불과 하루 동안 진행되는 교육을 이수한 이들에게 늘봄학교 강사 자격증을 발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자격증 발급과 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알선을 미끼로 댓글 작성을 제안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수강생과 교육 이수자를 상대로 김 후보에게 우호적인 댓글을 작성하도록 지시했다”는 의혹도 있다. 일각에선 “윤석열정부가 리박스쿨에 특혜를 제공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리박스쿨은 서울교대와의 협약을 토대로 서울 소재 10개 학교서 늘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전직 우체국장이었던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가 교육부의 교육정책 자문위원 직함을 가졌던 것도 그동안 제기됐던 특혜 의혹의 일부분이다. 민주당에선 신문규 전 대통령실 교육비서관을 증인으로 부를 예정이다. 윤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씨의 박사 과정 논문 관련 논란도 재점화될 예정이다. 김씨는 국민대 대학원에서 지난 2007년부터 2년 동안 3편의 논문을 작성했다. 이 중엔 ‘회원 유지’를 영문 ‘Member Yuji’로 표기한 논문도 있어 윤 전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부터 큰 논란이 돼왔다. 아울러 역술인의 홈페이지와 사주팔자 관련 블로그에 게재된 내용을 출처 표기 없이 무단 전재한 논문도 있었다. 논란이 불거진 후 국민대는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국민대는 지난 2021년 “만 5년이 지나 접수된 제보는 처리하지 않는다는 규정에 따라 검증 시효가 지나 본조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혀 적잖은 비판을 받았다. 여론의 비판을 이기지 못해 재조사에 착수했지만,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 “연구 부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거나 “학회의 검증 기준을 알 수 없어 검증할 수 없다”는 취지로 의혹을 무마하려고 했다. 김씨의 논문은 지난 2022년 교육위 국감에서도 큰 화제였다. 김지용 국민대 이사장과 임홍재 총장은 해외 일정을 이유로 국감에 출석하지 않았다. 국민대는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몰락하고,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난 7월이 돼서야 김 여사의 박사학위를 최종 취소했다. 이에 대해선 “정치 상황 변화에 따른 대응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될 수밖에 없어, 국감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이사장은 이번 국감서도 증인으로 채택됐다. 물론 범여권도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윤 전 대통령은 조국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이 문재인정부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그의 일가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려다가 정치적으로 주목받았다. 조 비대위원장은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형을 확정받았다가, 지난 8월 광복절 특사로 석방됐다. 조 비대위원장의 딸 조민씨에게도 논문 관련 논란이 있다. 조씨는 한영외고 1학년이었던 지난 2009년 대한병리학회지에 게재된 논문 제1저자로 등재됐고, 이를 고려대학교 수시전형 자기소개서에 기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백종원 대표 증인으로? 조씨는 단국대 의대 의과학연구소에서 2주 동안 인턴으로 활동한 후 논문 제1저자로 등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논문은 연구부정행위가 인정돼 게재가 철회됐다. 조 비대위원장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 조 비대위원장을 둘러싼 비판은 그가 석방된 이후 곧바로 정치 행보에 들어가고 비대위원장까지 맡으며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김동원 고려대 총장을 증인으로 부른다. 지난 6월 학생 3명이 사망한 부산 브니엘예고 사태도 국감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사망한 학생들은 전임 강사와 심각한 마찰을 빚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부모들은 전임 강사의 수업 중 태도를 문제 삼아 고소를 준비하고 있었다. 학교 측에 “부실하게 운영돼 각종 민원이 이어졌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아울러 “교장이 특정 학원과 연결돼 해당 학원에 다녀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선·후배 간 군기도 과도해 폭력적”이란 지적도 이어졌다. 현임숙 브니엘고 교장은 증인으로서 국감에 출석할 예정이다. 금융위원회를 소관 기관으로 두고 있는 국회 정무위에선 롯데카드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연이은 홈플러스 지점 폐쇄가 쟁점으로 두드러진다. 롯데카드에선 지난 8월 해킹 사고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약 222만명의 결제 정보가 유출됐고, 47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롯데카드는 지난달 1일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 사실을 신고했다. 홈플러스는 회생 절차에 돌입한 이후 임대료가 조정되지 않는 점포를 중심으로 총 15개의 점포를 폐쇄했다. MBK 파트너스는 지난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하면서 금융권에서 7조2000억원을 차입했다. 담보는 홈플러스 주식이었다. 이 때문에 홈플러스는 5조원대 부채를 떠안았고, 8년 동안 부담한 이자만 약 3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는 지난 3월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이후 지점 폐쇄에 대해선 “알짜 부동산을 매각해 차입금을 상환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롯데카드와 홈플러스의 최대주주는 MBK 파트너스다. 정무위는 김병주 MBK 파트너스 회장을 증인으로 부른다. 현안 많은 교육위, 여야 불꽃 공방 예상 롯데카드·홈플 논란에 김병주도 국회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에선 하이볼 원산지 표기 논란을 놓고,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국감에 출석할 예정이다. 앞서 백 대표는 매출·수익률 허위 과장 논란이 불거진 연돈볼카츠 사태와 관련해 국감 증인 출석 여부가 거론됐던 적이 있다. 백 대표는 지난 2월 돼지고기 함량 및 가격 논란에 휘말린 빽햄 사태가 불거진 이후 지속해서 그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와 관련해 광범위한 위법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법사위에선 최근 정치권 최대의 이슈로 거론되는 ▲대법관 증원 ▲검찰 해체 ▲조희대 대법원장 논란 등이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시도하는 대법관 증원과 검찰 해체 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설치에 대한 비판 공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최대 숙원이었던 검찰 해체를 달성했기 때문에 쉽게 물러서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달 30일 조 대법원장의 대선 개입 의혹 청문회를 진행했다. 조 대법원장은 출석을 거부했고, 민주당은 고발 조치와 국정감사 증인 소환을 압박 카드로 제시했다. 대법관 증원은 대법원에서 매우 꺼리는 이슈였기 때문에, 이번 법사위 국감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사법부의 대결로 채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외에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선 ▲대왕고래 프로젝트 실패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 등에 대한 정치적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왕고래 프로젝트에 대해선 “윤석열정부가 정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반전하기 위해 성급하게 발표했다”는 논란이 이어졌다. 이정부의 정부 조직 개편으로 신설되는 기후에너지환경부의 경우 “환경부가 재생에너지·원자력 발전을 맡고, 기존 화석연료 정책은 산업부에 남는 등 이원화한다”는 데 따른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위원회에선 건강보험공단에 대한 국정감사 중 건강보험 재정 등 이슈가 여야 간 공방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의사·간호사 증원 문제도 다시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방위에선 ▲해병 대원 특검법 ▲비상계엄 사태 ▲합참 이전 비용 등 이슈가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노동위원회에선 영풍 석포제련소의 환경오염시설법 위반 논란과 관련해 장형진 영풍 고문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우려되는 맹탕 국감 이번 국감은 이정부 출범 후 처음 진행되는 국감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이 다수의 의석을 앞세워 각종 현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장외 투쟁 ▲중도 공략 ▲특검법 방어 등 당내 현안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많은 현안 앞에서 이전처럼 존재감 부각 목적의 쇼 위주로 진행되는 맹탕 국감으로 끝나진 않을지, 국민의 시선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