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 사람들 릴레이인터뷰 ④> 김옥두 전 의원

“다음 세상에서도 DJ 모시겠다”



민주화운동 함께한 동교동계, 인동초 삶도 함께 견뎌
모진 고문·수감생활…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몰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동교동계 인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오랜 시간 김 전 대통령의 곁에 머물면서 그의 삶을 생생히 목도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세간에 알려진 ‘김대중’보다 더 따뜻했던, 눈물 많고 정 많은 김 전 대통령을 보았고 민주화를 위해 끝없이 투쟁한 인동초 삶의 곁에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의 유훈도 이들에게는 평소 들어오던 말일 뿐이다. 동교동계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의 숨겨진 일면들과 그가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되새겨봤다.

김대중 전 대통령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머물렀다. 그러나 동교동 사람들 중에서도 ‘동교동계’라 불리는 이들은 좀 더 특별하다.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의 이름도 쓰지 못하고 ‘동교동 재야인사’라는 이름으로 세상과 소통할 때 그와 함께하며 민주화 운동을 했던 ‘동지’들이기 때문이다.
그중 한 명이 김옥두 전 의원이다. 수십 년 세월 동안 모진 고문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김 전 대통령과 같은 곳을 봤고, 죽어서도 김 전 대통령을 모시고 싶다고 말하는 이. 그에게는 김 전 대통령이 인동초 꽃을 피우기까지 살아왔던 모진 겨울이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완연한 가을 날씨를 보이던 지난 14일 광화문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김 전 의원과의 일문일답.

- 국장 후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 종종 김 전 대통령의 묘지를 찾고는 한다. 오늘도 다녀왔다. 이희호 여사와 권노갑 고문 등 김 전 대통령을 그리는 이들과 함께 참배를 하고 바로 오는 길이다. 49재는 치르지 않기로 했지만 애도기간으로 여기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 아직도 DJ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나나.
▲ 일본에서 납치를 당하셨다가 가까스로 돌아오신 후 매년 8월13일은 ‘제2의 생일’로 기념해왔다. 올해도 도쿄 피랍 생환 36주년을 기념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던 중 입원을 하셨다. 이전에도 입원을 하셨지만 건강을 회복하셨기 때문에 당연히 강건하게 돌아와 행사에 참석하실 것으로 생각했는데…. 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을 느꼈다.
국장을 치르면서 자녀의 손을 잡고 가족끼리 빈소를 찾은 이들을 많이 보았다. 진심으로 슬프게 울더라. 나도 굉장히 많이 울었지만 지금도 눈물이 난다. 김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전히 살아계신 것만 같다. 동교동 자택 거실에 있으면 김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곧 들어오셔서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주옥같은 말씀을 해주실 것만 같다.
 
- 동교동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된 것인가.
▲ 나는 오랜 기간 김 전 대통령의 비서로 있었지만 처음부터 동교동 자택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다. 1965년 초 김 전 대통령이 자비를 털어 운영하던 정책연구실인 한국내외문제연구회에 비서로 들어갔다. 거기서 성실성을 인정받아 1966년 말 동교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김 동지! 내 그동안 자네를 유심히 지켜봤는데 성실성이 참 마음에 드네. 내일부터는 동교동으로 출근해 일을 하도록 하소. 도와주기 바라네”라고 하셨다.

- DJ가 걸어온 길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 김 전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탄압의 역사였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모진 탄압을 받았다. 암울한 시대에는 희망이 없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행동하는 양심으로 국민과 민족,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평생을 살아오셨다.
정의가 아닌 것은 행하지 않으셨다. 말뿐 아니라 실천하셨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며 인동초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셨다. 나는 그 역사의 증인 중 한 사람일 뿐이다.
 
- DJ에 대한 탄압은 1971년 대선에서 DJ가 박정희 정권을 위협하는 결과를 보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 1971년 대선에서 우리는 수많은 표를 잃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대권을 두고 승부를 벌였을 때 동교동의 표는 다 무효가 됐다. 부정선거라는 이유로 김 전 대통령과 그 가족, 동교동 사람들 1600명의 표가 전부 효력을 잃었다. 게다가 영남지역에는 공명선거 감시단 참관인들이 아예 발을 붙일 수도 없었다. 협박해서 쫓아버리거나 술과 밥과 돈으로 매수했다.

- 이후 어떤 고초를 겪은 것인가.
▲ 1972년 박 전 대통령이 영구집권을 위해 유신을 선포했다. 그 이튿날쯤이다. 나는 동교동 자택으로 막 들어가다 중앙정보부 기관원들에게 끌려가야 했다. 광화문 분실에서 갖은 고문을 당했다.
동교동 사람들 대부분이 4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로지 한길을 걸어왔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형무소에 가고 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나도 여러 번 겪었는데 1980년 5·18때가 가장 심했다. 두 달간 내란음모죄로 고문을 당했다.
‘김대중은 사상적으로 나쁘다’ ‘김대중과 가까운 군인, 경제인, 학생, 교수, 언론인은 누구냐’ 몰아치듯 질문이 이어졌다. 김 전 대통령의 사상이 이상하다는 글만 써 주면 원하는 대로 돈도 주고, 국회의원도 시켜주고,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겠다고 회유하기도 했다.

- DJ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 없나.
▲ 오히려 정반대였다. 고문이 극심해지자 “너희들이 내 몸을 찢어발긴다 해도 내 정신을 뺏을 수는 없다. 차라리 죽여라”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을 모셨던 동지, 가족, 친지들이 탄압을 받는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자기가 싫어서 나간 사람은 있어도 김 전 대통령을 배신한 이는 없다. 김 전 대통령의 인간성, 정, 행동하는 양심을 그분을 모시며 모두 봐왔기 때문이다.
정권이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온갖 비방을 했지만 모시고 있는 사람이 봤을 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장기집권을 위해 김 전 대통령을 탄압한 것에 불과했다.
당시에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분이 대통령이 될 거라고는 꿈도 못 꿨다. 한길을 걷다 보니 나도 국회의원이 됐다. 김 전 대통령 밑에서 공부했던 비서들은 의원회관에서 날을 새가며 공부를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국감스타가 됐고 ‘과연 훌륭한 이에게 배워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 DJ의 감옥생활은 어떠했나.
▲ 1980년 내가 서울구치소에 수감됐을 때 김 전 대통령도 다른 곳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이중 감옥생활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 전 대통령이 머무는 감방 양 옆을 비워서 누구도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면회를 갈 때도 그분만 다니는 길이 따로 있었다.
면회를 하기 위해 어두운 길을 걸어오는데 가족들이 항의해서 겨우 불을 켤 수 있도록 했다. 인터폰으로만 이야기하고 볼펜도 주지 않았다. 하루는 운동을 하다가 못을 하나 구해서 책을 읽다가 중요한 부분이 있으면 점자식으로 찍어서 표시했다. 그런 책들이 한두 권이 아니다. 한 달에 한 번 밖으로 엽서를 보낼 때는 엽서 한 장에 깨알같이 글자를 써서 수만 자를 적어 보냈다.
 
-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DJ는 사형을 선고받게 되지 않나.
▲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최후진술에서 “나는 아마도 사형판결을 받고 또 틀림없이 처형당하겠지만 내가 처형당한다는 것도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던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이 기회를 빌어 유언을 남기고 싶다. 내 판단으로는 머지않아 1980년대에는 반드시 민주주의가 회복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확실히 믿고 있다. 그때가 되거든 먼저 죽어간 나를 위해서든, 또 다른 누구를 위해서든 정치적인 보복이 이 땅에서 다시는 행해지지 않도록 부탁하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내 마지막 남은 소망이기도 하고 또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는 내 마지막 유언이다”라고 했다.
재판부는 “김대중 사형!”을 선고했다. 짜여진 각본에 따라 일사천리로, 속전속결로 진행된 재판이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일본과 미국 등 전 세계의 여론이 들끓었고 대대적인 석방시위가 벌어졌다. 카터 행정부로부터 김 전 대통령의 제를 정식으로 인계받았던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국 방문의사를 매개로 사형이 확정된 김 전 대통령을 구명하고자 애썼다.

- 워낙 생명의 위협을 많이 받았던 DJ였으니 경호도 철저했을 것 같다.
▲ 김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경호를 책임졌었다. 김 전 대통령은 여러 번 생명의 위협을 받아왔기 때문에 경호에 만전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2층에서 계단으로 내려올 때 누가 뒤에서 밀지 않을까, 식사를 하면 누가 독극물을 넣은 것은 아닌가, 자동차를 타면 타이어에 구멍이 나서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경호원 한 사람 한 사람이 24시간 경호체제로 김 전 대통령을 철통경호했다.
일화도 많다. 오후 7~8시쯤 날이 저물 무렵 김 전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으면 창살이 날아왔다. 옷에 스치면 옷이 찢어질 정도였고 그 창살을 맞고 다친 이도 있다. 식사를 할 때마다 항상 옆에서 은수저를 준비해 독이 들었는지 확인했다.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전방에 간 일이 있다. 청와대 경호실 책임자가 당선자에게 방탄조끼를 줬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내가 우리 군인을 믿지 않으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며 끝내 그 방탄조끼를 입지 않았다.
 
- 대선기간 동안 경호문제뿐 아니라 건강문제에도 크게 신경 써야 했을 것 같은데.
▲ 워낙에 건강하셨다. 대선기간 동안 하루에 19군데에서 유세를 펼쳐 연설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악수를 했다. 유세를 하고 곧장 다른 장소로 이동하다 보니 제대로 식사를 할 시간도 없었다. 차에 군것질거리를 뒀는데 많은 사람들과 악수한 손 그대로 집어 드셨다.
5분간의 토막잠도 그분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많은 영향을 줬을 것이다.
대선기간 중 ‘DJ가 쓰러졌다’ ‘유세를 못 한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당시 대선주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토론회를 했는데 매주 TV토론회에 건강한 모습이 나왔다. 상대후보 측에서 퍼뜨린 유언비어는 그 TV토론회 때문에 거짓으로 탄로 났다.


- 곁에서 지켜본 DJ는 어떤 사람이었나.
▲ 온화하고 따뜻한 분이셨다. 비서에게도 반말하는 일이 없이 항상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손이 따뜻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참 따뜻한 분이셨다. TV에서 슬픈 장면이 나오면 눈물을 흘리곤 하셨다. 이희호 여사와 산책을 하거나 드라이브를 다니셨는데 꽃을 좋아해 꽃이 많이 핀 곳으로 드라이브를 가시고는 했다.
새도 좋아했지만 키우지는 못했다. 새를 키우려면 가둬야 하는데 그게 철창 아니냐. 김 전 대통령 본인이 철창에 갇혀봤기 때문에 가두는 것을 싫어했다. 자택에 참새들이 모이면 모이를 주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 DJ 하면 깊은 학식이 생각난다. 그 학식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나.
▲ 워낙 명석하신 분이셨다. 어느날 신문에 기사가 났는데 한 달여 전에 난 기사를 보지 않고서는 이해가 어려운 기사였다. 김 전 대통령은 “한 달 전 모일에 무슨 신문 몇 면에 이런 기사가 났는데 찾아오라”고 하셨는데 해당 신문을 찾으면 찾으시는 기사가 분명 있었다. 사람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것은 놀라울 정도였다.
책을 정말로 많이 읽으셨다. 책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보니 주무실 때도 책을 보다 잠드는 경우가 많았다. 종종 글귀를 인용하시고는 했는데 그 말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말씀하셨다.
또한 선거 때 수행을 하다 보면 시간 날 때마다 영어 단어를 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생 공부를 하신 것이다.
예전에 권노갑 고문의 지인 중 한국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진 이가 있었다. 몇 년 동안 공부를 해왔는데 김 전 대통령을 만나 두 시간여를 이야기하더니 “몇 년간 배운 것을 두 시간 동안 다 알게 됐다. 존경스럽다”고 하더라. 그 정도로 학식이 깊으셨다.
 
- DJ의 공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임기동안 IMF를 극복하면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은 다 하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일 내에 IMF를 극복해냈을 뿐 아니라 외환보유고를 최고로 만들었다. 전 세계에 경제위기가 몰아쳤을 때 이를 넘길 수 있었던 것도 그것이 기반이 된 때문 아니겠냐.
정치, 경제 문제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토대도 닦았다. 중산층과 서민을 위해 애썼다. 남북 화해협력시대를 열자고 하셨고 서거 후에는 북한에서 특사가 와 이명박 대통령을 만남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에 일조했다.
입원하시기 전에 9~10월경이면 북미간 대화가 이뤄질 거라고 하셨는데 지금 그렇게 되지 않았나. 김 전 대통령이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장관에게 대북관련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안다. 이 중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함으로써 북미간 대화의 장을 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국내보다는 외국에서 김 전 대통령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것 같다. 내가 봤을 때 전 세계를 통틀어 김 전 대통령처럼 고통 받고,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람이 없다. 감옥에 가고 사형선고를 당하고 57회의 연금까지.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한번도 굽히지 않았다.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라 부르며 진지한 경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이 장기집권을 위해 유포한 퍼트린 유언비어와 그로 인해 김 전 대통령을 비판하게 된 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이제 와서는 그들이 김 전 대통령이 어떤 이였는지 알게 되고 있는 것 같다.
 
- 시간이 더 흐르면 DJ에 대한 평가가 더 나아질 것으로 보는가.
▲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은 높이 평가될 것이다. 어떤 직책에 있었느냐가 아니라 과연 ‘행동하는 양심’으로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대한 부분이 평가받을 것이다.
 
- 정치권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 정치는 노장의 조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과 시민단체가 잘 뭉치길 바란다. 또한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당이 됐으면 좋겠다. 민주당은 정통 있는 정당인 만큼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해 잘해나갈 것으로 믿는다.
민주주의가 튼튼하고 국민들이 잘사는 세상이 되도록 정치가 잘해야 할 것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김 전 대통령을 모신 것은 내 인생 최고의 행복이었다. 항상 그분의 비서였으며 죽어서도 김 전 대통령을 모실 것이다. 그분의 유업인 국민화합에 만분지일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김옥두는 누구?

▲1938년 8월 18일 전남 장흥 출생
▲1985년~1992년 김대중 총재 비서실차장
▲1987년 평화민주당 김대중 대통령후보 경호실장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1999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비서실장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2000년 새천년민주당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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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배우 김씨와 워커힐 카지노 간 ‘에테르노’ 회장

[단독] 배우 김씨와 워커힐 카지노 간 ‘에테르노’ 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에테르노 압구정 아파트 시행사 ‘넥스플랜’ 회장 차준영이 영화배우 김모씨와 파라다이스 워커힐 카지노에 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커힐 카지노 관계자는 지난해 7월경 ‘VVIP 고객인 차준영 회장의 요청으로 김씨 출입을 허용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업계 관계자와 나눴다. 문제는 5100억원에 달하는 금융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한 차준영이 어떻게 워커힐 카지노 VVIP냐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카지노 출입설’이 단발성 풍문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PM 전문가로 알려진 차준영은 축구선수 손흥민, 연예인 황정음 등의 에테르노 분양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부동산의 임대관리 등을 전담하는 전문가인 차준영은 에테르노 청담, 압구정의 시행사 넥스플랜의 회장이다. 에테르노 간 큰 베팅 최근 차준영은 조카인 차가원 피아크그룹 회장과 가수 겸 프로듀서 MC몽이 불륜 관계라는 의혹을 지난해 12월 <더팩트>에 제보하기도 했다. 이른바, ‘MC몽 불륜설’을 흘린 배경에는 지난해 6월 빅플래닛메이드엔터테인먼트 주식 21%에서 출자전환 후 2%를 소유했던 MC몽에게 ‘나누어 갖자’며 강요했던 사건에서 출발한다. 현재 차준영에게는 DL이앤씨 등과 소송 과정에서 발생한 수천억원 이상의 손해배상 채무가 있다. MC몽이 스스로 불륜설이 조작이었음을 주장하자, 그의 해외 원정도박 등을 언론사에 제보한 것도 차준영이다. 압구정의 모 샤브샤브 전문점 사장에 따르면 “최근 연예인 해외원정 도박 기사를 쓴 종편 방송 기자들에게 차준영이 식사를 대접했다”고 한다. 미국 영주권자인 차준영은 국내 카지노를 활보하면서 한 연예인의 해외 도박을 제보한 셈이다. <일요시사>가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1월26일 파라다이스 워커힐 카지노 직원은 동종업계 종사자와 나눈 카카오 메시지에서 넥스플랜 차준영의 요청으로 가수 겸 배우 김씨와 지인 여성들이 함께 출입했다고 언급했다. 이에 “김씨는 내국인인데 워커힐 파라다이스 입장이 가능한가요?”라고 묻자, 워커힐 카지노 직원은 ‘차준영 회장과 같은 VVIP 고객의 요청이기 때문에 김씨의 Visitor(방문객) 출입은 허용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카지노에서 VIP란 2개월 동안 하루 평균 4시간씩 5일 이상 게임해야 하고, 한 게임당 평균 50만원 이상을 베팅해야 VIP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게임 실적을 분석한 두 달 동안 로스 금액(따거나 잃은 돈)이 1억원 이상 유지돼야 한다. 이보다 더 높은 실적을 요구하는 등급이 VVIP인데 보통 카지노에서 초청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카지노 업계에서 차준영은 “수백억원을 베팅하는 큰 손”이라고 표현했다. MC몽도 <일요시사>와 인터뷰에서 “차준영은 나에게 10~20억원 정도는 배팅해야 된다며 도박을 권유했던 사람”이라며 “시행사 투자금 들고 카지노 쫓아가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차명 통장으로 분양금 받아 차준영 회사로 황정음·손흥민 에테르노 분양 대금의 행방 다만 대한민국 카지노 출입 기준은 ‘VIP 여부’가 아니라 ‘국적’이다. 현행 관광진흥법상 내국인은 원칙적으로 카지노 출입이 금지되며,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경우는 외국 국적자에 한한다. 카지노 멤버십 등급, VIP·VVIP 여부, 이용 금액, 단골 여부 등은 출입 적법성 판단에 어떠한 법적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VVIP의 요청이라서 김씨의 출입을 허용했다”는 설명은 법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이는 면책 사유가 아니라 오히려 카지노 사업자가 출입자 신분 확인 의무를 완화하거나 소홀히 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발언에 가깝다. “VIP 요청이라 허용했다”는 표현은 김씨의 출입 허용 판단의 기준이 ‘법’이 아니라 고객의 경제적 가치였음을 인정하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차준영의 도박 자금의 출처도 궁금해진다. 차준영은 ‘에테르노 압구정’을 분양하는 과정에서 친형이자 피아크 그룹 차가원 회장 아버지인 차대영의 계좌로 분양계약금 등 수백억원을 받은 뒤, 자신의 회사인 넥스플랜 계좌로 25억원을 입금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통장 이체 내역을 살펴보면 2025년 3월20일 오후 5시47분 에테르노 압구정 시행수탁자인 A 신탁에서 차대영의 통장으로 30억원이 이체됐다. 이어 3월24일 오전 10시43분 넥스플랜으로 5억원이 이체되는 방식으로 총 25억원이 넥스플랜으로 직접 흘러갔다. 앞서 차준영은 2024년 9월 DL이앤씨로부터 받은 공사대금 등 청구 소송에 패소하면서 5184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통장과 제반 금융에 압류가 설정되자, 차준영은 “가족에게 생활비를 송금한다”는 목적으로 차대영이 개설한 통장을 빌렸다. 고소장에 따르면 차대영은 2024년 10월경 “예금채권 압류로 정상적 금융거래가 불가능해졌다”는 사정을 호소한 동생에게 생활비 등 기본 거래용이라며 하나은행 저축예금 계좌 1개를 무상으로 빌려줬다. 그러나 2025년 7월경 거래내역을 확인하자 잔액이 0원이었고, 생활비 용도와 무관한 거액 거래가 다수 발견돼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통장을 재발급받은 뒤 2025년 7월25일 내용증명으로 사용허락 철회를 통지했다는 것이다. 꿀꺽한 ‘셀럽 마케팅’ ‘신탁형 PF’ 구조인 에테르노 압구정은 분양수입금이 신탁계약상 A 신탁사 명의 관리계좌로 수납돼야 하는데 ‘차준영→넥스플랜’으로 직접 받으면 “수분양자 입장에서는 법적으로 납부효력이 문제될 수 있고(미납 취급 위험), 신탁사가 보호해줄 수 없는 영역이 생긴다”는 논리를 제시할 수밖에 없다. 형사상 “업무상 횡령” 및 “자금세탁”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에 차대영은 동생을 상대로 계약서 위조 및 금융실명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차준영은 차대영의 명의로 에테르노 압구정 분양계약을 지난 2024년 30억원에 체결하기도 했다. 차준영과 A 신탁사 직원이 공모해 계약명의자인 차대영의 동의 없이 분양계약서를 위조하고 거액을 이체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경찰 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차대영은 지난해 12월31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차 회장과 넥스플랜 소속 직원, A 신탁 소속 직원 등 총 3명을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금융실명거래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시행사는 차준영의 회사인 넥스플랜, 신탁사는 A 신탁, 시공사는 장학건설이다. 고소장에 따르면 차준영과 넥스플랜 소속 직원, A 신탁 소속 직원 등 3명은 2024년 10월25일께 차대영 명의로 에테르노 압구정 한 채의 공급계약서를 위조했다. 위조계약서를 A 신탁, 장학건설 관계자에게 진정하게 성립한 것처럼 교부했다는 게 차대영 측 주장이다. 이어 2025년 3월12일께 같은 방법으로 차대영 명의의 공급계약 해제합의서를 다시 위조하고 이를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통장 거래내역을 보면 2024년 10월25일 오후 2시39분 차대영 명의의 하나은행 계좌에서 A 신탁 계좌로 30억원이 ‘에테르노 압구정 102호 분양대금 일부’ 명목으로 이체됐다. 오후 2시44분 이 거래는 취소됐고 다시 오후 2시50분 같은 금액을 재이체했다. 이후 2025년 3월20일 오후 5시47분 ‘공급계약 해제에 따른 분양대금 반환’ 명목으로 30억원이 계좌로 반환됐다. 날아간 통일 동산 차대영은 “2024년 10월부터 2025년 7월까지 내 계좌에서 수십억원 규모의 거래가 이뤄졌다”며 “나는 분양계약을 체결한 적도, 그에 대한 동의를 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A 신탁이 본인 확인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통상 신탁사가 수십억원대 분양계약을 체결할 때는 계약자 본인의 신분증 확인, 본인 서명 또는 날인, 본인 통장 확인 등의 절차를 거친다. 대리인이 계약하더라도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는 필수다. 에테르노 압구정은 축구선수 손흥민, 황정음 등 연예인들이 200억원 이상을 쏟아부은 아파트로 관심을 끌었다. 이와 반대로 분양대금은 차준영이 친형에게 빌린 통장으로 입금돼 관리되고 있던 것이다. 배우 출신 황정음의 에테르노 압구정의 수상한 계약도 눈길을 끈다. 2025년 3월20일 황정음은 압구정 모 부동산에서 총 분양금 230억원에 달하는 ‘에테르노 압구정 501호’ 분양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은 통상 총 분양금에 10%에 달하지만, 황정음의 계약금은 4억원이라는 점도 특혜성 계약이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황정음 측은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계약금이 아니라 청약금인 줄 알았다”며 “내용증명을 통해 계약 철회 의사를 밝혔으나 현재까지 4억원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밖에 에테르노를 분양받은 손흥민 등 일부 유명인사들은 차준영을 직접 만나 거래하기도 했다. 차준영이 친형의 통장을 빌린 결정적인 이유는 파주 통일동산 개발사업의 실패다. 2024년 9월 DL이앤씨는 파주 통일동산 콘도 사업과 관련해 넥스플랜을 상대로 제기한 공사대금 등 청구 소송에서 5000억원대 지급 판결을 받아냈다. 판결 금액, 공사 중단 경위, 청구 내역(공사비·구상금·대여금 등)과 같은 구체 항목까지 드러났다. <비즈한국> 보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재판장 박준민)은 2024년 9월10일 DL이앤씨가 파주 통일동산 콘도 조성사업 시행사이자 차준영이 운영하던 ‘시티원’을 상대로 낸 공사대금 등 청구 소송에서 시티원이 DL이앤씨에 5184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분양가 230억인데···황정음 계약금 4억 어디로? 시티원에서 넥스플랜으로…법인 바꾸고 자금 회수 인용된 청구 채권은 하자보수금을 제외한 기성 공사비 611억원과 구상금 3524억원, 대여금 1000억원, 지연손해금(법정이자) 50억원 등이다. 앞서 DL이앤씨는 ​2020년 8월 공사비 등 이 사업에 투입한 비용 총 5781억원을 정산해달라며 시티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는데, 청구 채권 상당액을 인정한 일부 승소 판결이 나온 셈이다. 소송 당사자인 시티원과 DL이앤씨는 각각 이 사업 시행사와 시공사로, 2006년 12월 공사 기간을 28개월, 공사비를 4125억원, 지체상금을 1일당 공사비 0.1%(최대 5%)로 정하는 공사 도급계약을 맺었다. 공사대금은 분양대금 납입 일정에 맞춰 분할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파주 통일동산 콘도 조성사업은 공정률 33%에서 18년째 멈춰 있다. 결국 DL이앤씨는 2020년 8월 사업비용을 정산해 달라며 시티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공사 중단까지 투입된 공사비 1207억원과 연대보증인으로서 대위변제한 시티원 채무 3524억원, 시티원에 직접 빌려준 대여금 1000억원에서 상계 채권을 제외한 총 5781억원을 달라는 취지였다. DL이앤씨는 이 사업 시공자로서 공사비를 직접 투입한 것은 물론 시티원 측에 사업비를 직접 대여하거나 연대보증인으로서 시티원이 갚지 못한 사업비 원리금 등을 대신 갚아왔다. 시티원은 오히려 DL이앤씨가 사업 현장을 원상 복구하고 지체상금과 사업 손해를 물어내야 한다며 2022년 4월 반소를 제기했다. 양측이 맺은 도급 계약에 따라 DL이앤씨가 착공일로부터 28개월까지 공사를 마쳐야 하는데, 별다른 이유 없이 공사를 중단했다는 것. 공사 현장은 20년 동안 방치돼 흉물이 됐다. 공사 재개에는 2691억원이 필요해 회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DL이앤씨가 현장을 철거하고, 공사 지연에 따른 지체상금 187억원(공사비 5%)과 미래 분양 수익을 포함한 사업 손해 5140억원도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차준영의 자금 운용 건전성에 적신호는 해소되지 못한 반면, 카지노에선 VVIP로 불렸다. 정작 부동산시장에서 금융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하면서 불과 수개월전까지 워커힐 카지노를 출입한 셈이다. 차준영에게 제기된 문제는 초고가 주택 분양 계약의 공정성, 대형 개발사업의 책임 귀속, 그리고 국내외 카지노 출입 논란까지 확장되고 있다. 법인 바꿔 타짜 행세 쟁점 중 하나는 ‘에테르노 압구정 직접 계약’이다.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이 에테르노 압구정과 관련해 시행사 대표와 직접 계약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분양 절차의 투명성과 이해상충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통상 초고가 주거상품의 분양은 다층적 심사·중개·검증 절차를 거치는데, 이 과정이 축약되거나 개인 간 직거래로 처리됐다면 ‘특혜’ 또는 ‘절차 생략’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