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2014년 새해가 밝았다. 민생에 더욱 더 신경을 써야 할 시기지만 정치권의 시선은 벌써 올해 6월 열릴 지방선거로 쏠린 듯하다. 특히 각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사회의 분위기는 더욱 뒤숭숭하다. 자신들에 대한 인사권을 좌지우지할 단체장이 바뀌는 민감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여 앞둔 지자체 내부의 복잡한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벌써부터 곳곳에선 지방선거와 관련한 잡음이 속속 들려오고 있다. 최근 경기도 의정부시는 공무원들이 지방선거 관련 동향을 수시로 민주당 소속 안병용 시장에게 보고한 문건이 드러나 구설수에 휘말렸다. 안 시장 측은 "선거동향 보고가 아닌 지역일일 보고"라고 해명했지만 새누리당은 공무원의 불법적 선거개입이 드러났다며 책임자의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처럼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무원들이 정치적 중립의무를 어겼다는 의심을 받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선거개입 비일비재
지난 2012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공무원의 선거법 위반 행위 조치 현황’에 따르면 지난 제5회 지방선거에서 공무원의 선거개입 건수는 257건이나 된다. 이는 지난해 치러진 제19대 총선 19건에 비해 13배나 많은 수치다.
지방선거에서 공무원의 선거법 위반 행위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근본적으로 자신들과 이해관계가 직간접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들이 선거 때마다 줄서기에 나서는 이유는 바로 '인사' 때문이다.
지방선거가 끝난 후 벌어지는 보복인사와 측근인사는 이미 정례화 되다시피 했다. 이처럼 자치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인사태풍이 불어 닥치는 바람에 공무원 사회는 지방선거에 매우 예민하다. 자신이 줄을 선 후보가 당선되면 승진이나 주요보직에 배정되는 등 많은 혜택이 주어진다. 오히려 중립을 지킨 공무원들이 불이익을 받는 구조다.
또 설령 공무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적발되더라도 처벌 수위가 너무 낮은 것도 문제다. 공무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정직, 감봉, 견책의 처벌을 받더라도 각각 18개월, 12개월, 6개월의 시간이 경과할 경우 승진에 대한 직접적인 제약이 없어지게 돼 해볼 만한 도박이라는 것이다.
가뜩이나 처벌수위가 낮은데다 각 지자체들은 선거법 위반 공무원들에게 봐주기 처벌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경기도 내 지방자치단체들의 선거법 위반 공무원들에 대한 처벌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 2011년 6월 이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경기도 내 공무원은 경기도 2명, 안성시 3명, 부천시 2명, 성남시 1명, 여주시 1명 등 모두 9명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내려진 행정처분은 모두 훈계나 불문경고뿐이었다. 공무원의 줄서기를 필요로 하는 수요도 높다. 선거는 정보전이기도 하다. 고급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공무원들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인구가 적은 지자체의 경우는 공무원 조직 내부 여론이 지자체 선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모 자치단체장의 경우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공무원을 괴롭히고 독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 같은 공무원들의 평가가 시민들에게까지 알려지면서 재선에 발목이 잡히기도 했다.
편갈린 공무원, 성향 다르면 겸상도 안해
솜방망이 처벌, 줄서기 해볼 만한 도박?
공무원들의 선거개입 유형도 다양하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모 지자체 공무원들은 자신의 본래업무는 내팽개치고 아파트부녀회, 경로당, 관변단체 등을 돌면서 "우리 시장만큼 일 잘하는 사람 없다. 우리 동에서 몰표가 나와야 힘이 실린다"며 당시 지자체장을 노골적으로 지지한 사실이 적발돼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이들은 '지역민심 적극 대응조치'란 대외비 매뉴얼까지 만든 후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지자체의 공무원들은 현직 시장에게 이른바 '충성맹세'를 하고 사전선거운동을 한 정황이 발각돼 지역정가를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다. 게다가 이를 폭로한 것은 동일 지자체의 전산 담당 공무원으로 해당 시장이 취임한 후 인사상 불이익 등을 당하자 앙심을 품고 있던 중 시장의 이메일에서 이같은 내용을 빼내 경쟁후보 측에 전달한 것이었다.
간접적인 선거개입은 더욱 극성이다.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지역주민들에게 알리거나 현직 단체장의 성과를 지역주민들에게 소개하는 방식이다.
일부 공무원들은 가족까지 동원해 선거운동을 돕기도 한다. 모 지자체 공무원들은 부인을 비롯한 자신의 가족들을 유력 후보의 출판기념회나 선거사무소 개소식 등의 행사장에 보내 행사진행을 돕는 등의 일을 시켰다. 공무원 자신이 직접 선거에 개입한 것이 아니라 처벌 여부도 애매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지방선거 기간에는 공무원들이 당장 후보들에게 눈도장 찍기에 급급하느라 업무는 뒷전인 경우가 많다. 해당 분야의 행정 공백 상태가 선거기간 내내 이어지는 셈이다.
그나마 현 지자체장의 재선이 유력한 지역에서는 오히려 줄서기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많은 공무원들이 줄을 대려하지만 지자체장 입장에선 그들의 도움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일방적인 충성에 그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는 공무원 사회 내부에서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공무원들이 각자 후보별로 나뉘어 편 가르기와 불협화음이 연출된다. 성향이 다른 공무원들은 겸상조차 안할 정도라는 것이다. 이는 현지자체장의 레임덕으로도 이어져 행정효율성은 극도로 떨어진다.
모 공무원은 "지방선거가 다가오면 동료들도 선거운동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다. 게다가 윗선에서도 무언의 압박이 내려온다"면서 "노골적으로 선거운동을 도울 수는 없지만 무시할 경우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될지 몰라 불안한 게 지방선거 즈음 공무원들의 심리"라고 설명했다.
줄서야 산다
또 다른 공무원도 "사실상 공무원들 사이에서 여당과 야당이 있다. 누구는 누구 사람, 누구는 어느 성향인지 알게 모르게 다 구분이 된다. 특히 고위 공무원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정권이 바뀌면 다 자기 사람들로 장관을 임명하듯, 지자체장이 바뀌면 다 자기 사람들로 국장들을 임명한다. 능력으로 거기까지 오른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며 "능력과 성과보다는 줄서기에 따라 승진이 결정되니 일반 공무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당연히 그 피해는 지역주민들이 입을 수밖에 없다. 공무원들의 줄서기를 근절할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