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측근비리 근절을 강하게 역설했다. 권력형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특별감찰관제'를 도입하고 대통령 친인척도 공직자처럼 재산내역을 공개하거나 주식거래 등을 제한하는 방법도 검토했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후 이 같은 논의는 자취를 싹 감췄다. 그래서일까? 출범한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박근혜정권 언저리에서 벌써부터 측근비리 소문이 하나 둘 새어나오고 있다. 박근혜정권도 측근비리로 골머리를 앓았던 역대 정권의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것일까? <일요시사>가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박 대통령 주변의 요주의인물들을 미리 살펴봤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새누리당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친인척과 권력형 비리에 대해서는 '특별감찰관제'를 도입해 사전에 강력하게 예방하고 문제가 생기면 상설특검을 통해 즉각 수사에 착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측근비리 척결에 강한 의지를 보인 박 대통령은 또 대통령 친인척도 공직자처럼 재산내역을 공개하거나 주식거래 등을 제한하는 방법도 검토 했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후 이 같은 논의는 자취를 감췄다. 표면적인 이유는 '효율'의 문제다.
특별감찰관제
대선용 립서비스?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는 지난 13일 인사청문회에서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상설특검제 및 특별감찰관제 도입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 후보자는 "기존의 사법제도와 비교해 비용과 국가 전체적 효율성 등을 봐서 인풋(투입)만큼 아웃풋(산출)이 나올지도 고려해야 한다"며 "과연 그쪽(상설특검제 및 특별감찰관제)으로 간다고 해서 제대로 될 것인지, 누가 통제할지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인식도 결국 김 후보자의 인식과 대동소이할 것이란 분석이다.
어찌 보면 박 대통령이 언급한 특별감찰관제는 결국 '대선용 립서비스'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민주당은 대선이 끝난 이후 박 대통령에 특별감찰관제 도입 공약을 지킬 것을 요구했지만 청와대는 묵묵부답이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박 대통령 주변은 과연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까? 가장 먼저 문제를 일으킨 건 역시 친인척이었다. 취임 7개월여 만에 5촌 조카가 사기 혐의로 구속되고, 조카사위는 불공정 주식거래로 불구속 기소됐다.
박 대통령의 팬클럽 '근혜봉사단'의 이성복 전 중앙회장은 2010년 지방선거와 지난해 19대 총선 과정에서 공천을 도와주겠다며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가 최근 밝혀져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배우자와 자녀 없지만 친인척 50여명
'문고리권력' 3인방, 비리역사 끊을까?
이들은 비록 박 대통령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정권 초기임을 감안하면 결코 간과하고 넘어갈 수만은 없는 문제다. 측근비리가 연이어 발생한다면 정치쇄신에 대한 박 대통령의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고, 책임론으로 조기에 레임덕을 겪을 우려도 있다. 특히 대통령 측근비리의 근절을 바라는 국민들에게 또 한번 실망감과 허탈감을 안겨 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미리 경계해야 할 요주의인물은 누구일까? 역대 정권의 사례와 비교해 박 대통령 주변의 위험인물들을 미리 살펴봤다.
우선 가장 위험도가 높은 인물들은 역시 친인척이다. 역대 정권의 사례를 비춰볼 때 가장 비리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고, 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 대통령이 입는 데미지도 컸던 것이 바로 친인척 비리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형 기환씨와 동생 경환씨, 사촌형 순환씨, 사촌동생 우환씨가 횡령,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줄줄이 구속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역대 최초로 대통령 재임 중 아들이 구속되는 사례를 남겼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들 셋이 각종 게이트에 연루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형 건평씨의 비리 등이 불거져 끝까지 곤욕을 치렀다.
친인척 비리
반복될까?
박 대통령의 직계가족은 동생 지만씨와 근령씨 뿐이다. 하지만 사촌 이내의 친인척은 최소한 5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은 현재 사기 혐의로 재판 중이다.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과 관련한 의혹도 끊임없이 불거져 오고 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지만씨의 육사 37기 동기생들이 약진하고 있는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친동생들보다 더 위험도가 높은 인물들은 그 배우자들이다. 근령씨의 14살 연하 남편인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겸임교수는 육영재단의 이사장으로 있던 근령씨가 재단에서 나가게 되자 2009년 박 대통령의 미니홈피에 비방글을 수차례 올린 혐의로 징역살이를 한 전력이 있다.
지만씨의 부인 서향희 변호사는 지난 대선 당시 안대희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이 "서 변호사를 제외하면 박 후보 친인척 중에 문제되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요주의인물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경계해야 할 인물들은 이른바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정권 실세들이다. 역대 정권에선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청와대 제1부속실장들이 자주 말썽을 일으켜 왔다.
누구든 부속실장을 통해야만 대통령을 만날 수 있고, 부속실장은 대통령 일정과 각종 보고를 전담한다. 그래서 부속실장은 대통령의 측근 중의 측근이다. 부속실장은 늘 유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김영삼정권에서는 장학로 당시 부속실장이 기업인·공무원·정치인 등으로부터 27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노무현정부 때는 정권 출범 초기인 2003년 양길승 당시 부속실장이 살인교사, 조세포탈 등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른 나이트클럽 소유주에게 향응을 받은 사실이 발각됐다. 이명박정권에서도 김희중 당시 부속실장이 솔로몬저축은행 임석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박근혜정부에서 주목받는 인물들은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불리는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실 비서관,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실 비서관이다.
이재만 비서관은 청와대의 안살림을 챙기는 중책을 맡고 있다. 그는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수석보좌관으로 3인방 중 맏형 격이다.
정호성 비서관이 맡고 있는 청와대 1부속실은 대통령을 만나려면 꼭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도 대통령과 만나려면 1부속실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1부속실은 문고리 권력의 최정점으로 불린다.
안봉근 비서관 역시 만만치 않은 위세를 자랑한다. 안 비서관은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부터 의원보다 힘센 비서관으로 불리기도 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조차 박 대통령과 통화하려면 반드시 그를 거쳐야 했다는 후문이다.
3인은 모두 박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했을 때부터 함께 해온 이들로 그동안 아무런 말썽도 일으키지 않은 검증된 사람들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15년 동안 이명박 전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보좌하고도 청와대에 입성한 후 사고를 친 김희중 전 청와대 부속실장의 경우를 떠올리면 박 대통령도 결코 방심해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문고리권력
더 강해졌다
세 번째로 경계해야 할 인물들은 바로 박 대통령의 팬클럽을 비롯한 외곽조직이다. 이들은 역대 정권에는 찾아 볼 수 없었던 박 대통령만의 뇌관이다.
최근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의 측근들보다 이들을 향한 우려가 더 높아지고 있다. 일반적인 정치인들의 지지모임은 대부분 해당 후보에 대한 줄서기 성격이거나 지역주의 또는 해당 정당과 결합된 측면이 강했다.
따라서 정치인이 선거에서 패하거나 정당을 옮길 경우엔 지지모임도 쉽게 와해되곤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팬클럽들은 다르다. 박 대통령의 팬클럽은 대략 30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역대 정치인들 중 최대 규모다.
특히 메이저급 팬클럽은 조직력 또한 무척 끈끈하다. 회원들 간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것은 기본이고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고 매년 창립기념행사도 연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한 팬클럽은 창립대회를 위해 대전의 한 체육관을 통째로 빌렸을 정도다.
팬클럽 등 사조직 간부들도 경계대상
대통령과 친분 두터운 정치낭인도 문제
박 대통령의 팬클럽은 과거부터 종종 말썽을 일으켜왔다. 지난 2007년 대선 경선에서는 자원봉사 성격의 외곽조직인 '한강포럼' 홍모 대표가 수억원의 돈을 수수한 정황이 포착돼 당시 박 대통령을 난감하게 만든 일도 있었고, 가장 규모가 큰 팬클럽인 박사모의 정광용 회장은 온갖 비리 의혹이 끊이질 않아 눈총을 받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도 팬클럽 '근혜봉사단'의 이성복 전 중앙회장이 2010년 지방선거와 지난해 19대 총선 과정에서 공천을 빌미로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가 밝혀져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네 번째는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었으나 현재는 정치낭인이 된 인물들이다. 지난 대선 기간 박 대통령은 경선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홍사덕 전 의원이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데 이어 친박계인 송영선 전 의원이 박 대통령을 거론하며 금품을 요구한 녹취록이 공개돼 곤혹을 치러야만 했다.
실제로 정치권의 사람들은 현역에서 물러나 정치낭인이 되고 나면 이러한 유혹들에 좀 더 쉽게 흔들릴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치낭인?
정권실세?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고정적인 수입이 끊기고 나면 이러한 유혹에 흔들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로비를 벌이고자 하는 사람들도 현역보다 접근하기가 수월하고 이목을 적게 받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정치낭인을 노리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 경우 필수적인 전제조건은 현재는 비록 정치낭인이지만 박 대통령과 끈끈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에서 낙선한 후 현재는 정치낭인으로 떠돌고 있는 친박계 인사들이나, 박 대통령의 7인회 멤버 중 아직 박근혜정부에서 등용하지 못한 새누리당 김용환·최병렬 상임고문과 안병훈 기파랑 대표, 김용갑 전 의원 등이 대표적인 인물로 지목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들이 반드시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억측이지만 역대 정권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며 "비리 없는 깨끗한 정권을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대통령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