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지난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 진상규명과 민주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범야권 연석회의'라는 이름으로 야당과 시민사회세력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정치권은 이날 모인 이들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신(新)야권연대를 형성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신야권연대를 형성하기까지는 장애물이 많다. 겉으론 손을 잡았지만 안으론 치열한 아귀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신야권연대의 복잡한 속사정을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민주당, 정의당, 무소속 안철수 의원 등과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종교계 등 야권성향 인사 100여명이 동참하는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 진상규명과 민주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범야권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가 지난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국가권력기관의 대선개입 진상규명과 특검도입을 요구하며 뜻을 모았다. 국가기관 대선개입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야당과 시민사회세력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지방선거 겨냥?
원포인트 연대?
이날 출범한 연석회의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리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사실상 지방선거를 겨냥한 신야권연대가 출범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날 참석한 정치권 인사들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론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진상규명을 위한 원포인트 연대일 뿐"이라며 선 긋기가 바쁜 모양새다.
안 의원 측 대변인 격인 금태섭 변호사는 연석회의가 내년 지방선거를 위한 신야권연대라는 언론보도가 잇따르자 다음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연석회의는)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불법행위 문제에 대해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특검이 필요하다는 것 때문에 모인 것"이라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다시 한 번 선을 그었다.
민주당과 정의당도 마찬가지다. 내년 지방선거가 고작 6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야권연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이들이 신야권연대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철수 가세한 신야권연대, 돌풍 일으킬까?
안철수-민주당 치열한 주도권 다툼
우선 범야권연대가 국정원 개혁을 내걸고 출범한 가운데 이들이 신야권연대로 발전하기에는 각자의 이해관계가 너무나도 다르다는 문제점이 있다. 일단 손을 잡고 모였지만 조금만 흠집을 내도 뿔뿔이 흩어질 엉성한 조합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특검도입과 예산·민생 법안 처리를 연계하는 문제에 대해 각 세력별 이견이 너무나 크다. 민주당은 특검도입과 예산·민생 법안 처리 연계에 대해 내부적으로 아직 확실한 입장정리가 된 것은 아니지만 새누리당을 압박할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연계 쪽으로 당내 분위기가 쏠리고 있다.
반면 안 의원 측은 특검과 예산·민생 법안 처리를 연계하는 것에 대해 분명한 반대의사를 밝히고 나서며 민주당과 각을 세우고 있다. 정의당은 아직 당론을 정하지 못한 상태다.
기초의원선거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입장도 서로 다르다. 신야권연대가 형성된다면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것이기 때문에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각자의 입장은 매우 민감하다. 안 의원 측과 민주당은 정당공천제 폐지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벌어진 입장차이
어떻게 봉합할까?
민주당은 지난 12일 정당공천제 폐지를 조속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여야 사무총장 회담을 제안했고, 다음날 안 의원은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세미나에서 "정당공천제 폐지는 정치가 국민들의 약속을 얼마나 지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리트머스시험지라고 생각한다"며 정당공천제 폐지를 재차 촉구하고 나섰다. 안 의원은 평소에도 기초의원선거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수차례 밝혀온 바 있다.
반면 정의당에서는 정당공천제 폐지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때문에 정당공천제 폐지는 범야권 정책연대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도 현재는 당론으로 정당공천제 폐지를 정해놓은 상태지만 새누리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선거 공천을 강행할 경우 이를 빌미로 공천을 시행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기초의원선거 정당공천 폐지는 여야의 공통된 대선공약이었지만 지난 4·24 재보선에서 민주당은 공약을 어기고 정당공천을 강행했다가 정당공천을 하지 않은 새누리당 계열의 후보들에게 전패 당하는 수모를 겪은 바 있다.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과의 연대 문제도 골치 아픈 문제 중 하나다. 범야권연대에 포함된 재야 측에서 '통진당과도 손을 잡아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안 의원 측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지만 자칫 야권성향의 시민사회세력과의 연대가 느슨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미 새누리당 진영에서는 '연석회의'에 이름을 올린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함세웅 신부,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 백승헌 변호사 등을 거론하며 통진당을 제도권 정치에 진입시킨 인물들이 또 다시 신야권연대에 참여하고 있다면 전방위로 공격에 나서고 있다.
비판적 여론
아름다운 연대
선거 때만 되면 되풀이되는 정치공학적 야권연대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 또한 이들을 망설이게 하고 있다. 지난 선거들에서 단일화의 약점은 이미 충분히 드러난 상태다. 야권이 연대할 경우 단일화 과정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단일화 과정에서 야권이 민생을 착실하게 챙기기보다는 단일화 자체에만 매진한다는 느낌을 유권자들에게 줄 수 있고, 단일화 과정에서 야권후보들 간의 이전투구가 벌어져 단일화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상대 지지층을 전부 흡수하기 힘들다는 약점도 있다.
내부적으로는 친노계(친노무현계)와 안 의원 사이의 앙금도 여전히 남아있다. 친노계로 분류되는 민주당 홍영표 의원이 신야권연대 이야기가 진행되던 시점에 별안간 지난해 야권단일화 과정의 비화를 담은 비망록을 출간한 것도 사실상 안 의원을 향한 견제구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홍 의원의 비망록 출간을 두고 당내 비노계(비노무현계) 의원들은 "안 의원과 우리는 언젠가는 다시 힘을 합쳐 정권을 탈환해야 하는 동반자가 아닌가? 이런 식으로 물밑 협상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홍 의원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비노계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안 의원의 편을 들고 나선 것이다.
신야권연대에 대한 친노의 경계심은 대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약 당내 비노 진영과 안 의원 측이 손을 잡고 내년 지방선거를 주도하면 공천 과정 등에서 친노계 사람들이 대거 탈락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민주당 내에서 친노세력의 영향력은 크게 꺾이게 된다.
너무 다른 입장, 완벽한 연합까진 가시밭길
과거 연대와는 전혀 다른 연대가 될 것
하지만 비노 진영에서도 안 의원 측과의 연대에 대한 우려는 있다. 자칫 민주당의 경쟁상대가 될 수밖에 없는 안철수신당(이하 신당)이 신야권연대로 날개를 달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잇단 선거 패배와 제1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민주당이 신야권연대 과정에서 신당의 들러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다.
민주당과 신당은 현재 신야권연대를 통해 서로 야권의 중심에 서고자 물밑에서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안 의원 측으로서도 민주당과의 연대가 탐탁치만은 않은 눈치다. 특히 섣부른 민주당과의 연대가 오히려 신당의 지지율을 반감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현재 민주당의 지지율은 고작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를 맴돌고 있다. 새누리당과의 지지율 격차가 두 배 가량이나 벌어졌다. 이런 민주당과 연대하는 것이 과연 신당에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불만이 신당 내부에 쌓여있다는 것이다.
상당수 신당 관계자들은 민주당과의 전면적인 정책연대보단 민주당이 신당 유력지역에 후보를 안내기만 바란다는 후문이다. 따라서 신야권연대는 과거 연대와는 무척 다른 연대가 될 개연성이 크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전면적인 연대가 아닌 지역을 서로 나눠 출마하는 간접적 연대론이다.
간접 연대론
성공할까?
가장 대표적인 연대설은 바로 서울시장 선거에 신당 측이 후보를 내지 않는 대신 민주당은 경기도지사 후보를 신당 측에 양보할 것이라는 설이다. 특히 호남지역의 경우는 민주당, 정의당, 신당이 양보 없는 전면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무척 농후하다. 호남에서의 승자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차기 야권연대를 주도하는 세력이 누가 될 것인지 가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 정치전문가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야권이 연대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사실은 야권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현재 뜸을 들이는 것은 서로 연대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기싸움에 불과하다. 겉으론 손을 잡았지만 내부 속사정은 치열한 아귀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하지만 연대과정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신야권연대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