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침묵을 지키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지난 23일 국가기관 대선개입과 관련해 입을 열었다. 문 의원은 이날 성명을 통해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위기"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유력한 대선주자였던 문 의원이 불공정 대선에 대해 직접 언급하고 나서자 정치권엔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그동안 불공정 대선 논란과 관련, 거리를 둬왔던 문 의원이 직접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지난 23일 국가기관의 대선개입과 관련해 입을 열었다. 문 의원이 이날 발표한 성명의 내용은 무척 파격적이었다. 문 의원은 그동안 불공정 대선 논란과 관련해 거리를 둬왔다. 대선 직후 부정개표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민주당이 한 달 넘게 장외투쟁을 가질 때도 문 의원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재개표를 요구하는 국민들을 달래기도 했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선거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순 없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런 문 의원의 이날 성명은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달라진 문재인
문 의원은 성명을 통해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지난 대선은 불공정했다. 미리 알았든 몰랐든 박근혜 대통령은 그 수혜자"라며 "박 대통령은 직시해야 한다. 본인과 상관없는 일이라며 회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지난 대선의 불공정과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위기라고도 했다. 지난 대선을 불공정 대선으로 명확히 규정한 것과 다름없는 발언이었다. 대선에서 박 대통령과 경쟁했던 당사자가 직접 대선의 불공정성을 언급하는 것은 자칫 대선불복으로도 비춰질 수 있는 문제였다.
그 후폭풍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문 의원은 그동안 불공정 대선 논란과 관련해 거리를 두어왔던 게 사실이다. 문 의원이 박 대통령의 책임론까지 들먹이며 불공정 대선을 언급한 것은 그래서 큰 의미를 가진다.
문 의원은 이후 대선불복 논란이 거세지자 대선불복은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지만 지난 대선에서 무려 1490만표를 얻었던 당사자가 불공정 대선을 언급하고 나선 것은 대선불복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당장 여권은 문 의원에 대한 총공세에 나섰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어느 대선에서도 선거사범은 있어왔지만 선거사범을 문제 삼아 대선불복 얘기한 예는 없었다"며 "민주주의 무너뜨리는 의심의 독사과, 의심의 독버섯을 경계해야 한다고 당이 수차례 경고했음에도 어제는 문재인 의원이 직접 이 부분을 거론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도 "모든 선거에서 패배한 후보는 보통 깨끗이 인정하고 선거의 패배는 자신의 부덕의 소치였다고 인정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하물며 대선후보였는데 끊임없이 바깥에서 선거 패배의 이유를 찾는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특히 "무책임한 태도는 사초실종 책임을 모면해보려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할 것"이라며 "이런 분을 선택하지 않은 국민들이 참으로 현명했다는 생각"이라고까지 말했다.
사초실종 극복하고 야권 구심점 우뚝 설까
문재인 자충수에 민주당 또 다시 위기?
민주당 내에서도 문 의원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 문 의원의 성명발표가 친노와 비노계 간의 계파갈등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비노계인 당 지도부는 문 의원이 직접 나서면서 한창 탄력을 받고 있던 국가기관의 정치개입 의혹 정국이 '대선불복'으로 비화되며 스스로 물타기한 꼴이 됐다며 문 의원을 비판하고 있다.
또 문 의원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열람을 주장하면서 당이 위기에 몰렸었는데 연이은 실책으로 당이 위기에 빠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선수로 뛰었던 사람이 직접 나서서 부정이라고 떠들면 국민 중에 누가 승복하겠느냐는 비판도 나왔다. 게다가 문 의원 측은 성명을 발표하기 전 당 지도부와 충분히 상의를 했다고 밝혔으나 당 지도부는 사실상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다며 불쾌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당 안팎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 의원이 불공정 대선을 언급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표면적인 이유는 국정원 수사를 둘러싼 검찰의 내분과 찍어내기 의혹, 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의혹 등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지지층의 격앙된 감정을 방치할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지난 대선의 유력한 대선후보로서 입장을 표명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비노계 진영에선 불공정 대선의 전모를 밝히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문 의원이 입장표명을 강행한 것을 두고 존재감 과시 등 자기 정치만을 생각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490만표에 달하는 지지를 얻었던 문 의원이 직접 불공정 대선을 언급함으로써 박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정치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본인이 대여 투쟁의 구심점이 돼 정치 전면에 나설 수 있다는 계산이다.
특히 문 의원의 성명은 당 중진과 지도부의 잇따른 강경 발언과 함께 나왔는데, 이번 성명 발표를 통해 이들을 아우르며 정치세력화할 가능성도 있다. 문 의원의 성명 발표는 대선패배와 남북대화록 사건으로 궁지에 몰려있던 친노진영이 당 내에서 다시 정치재개 명분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다목적 포석이 된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을 반전시키고 지난 대선이 심각한 부정선거였음을 부각시켜 대선패배 책임론도 털고 가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일각에선 박근혜정부의 검찰 찍어내기와 군 사령부 댓글 의혹 등으로 최근 여론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흐르자 문 의원이 타이밍 정치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모 아니면 도?
지난 남북대화록 정국에서도 문 의원은 회의록 전문이 공개되고, 회의록에 나온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이 NLL 포기가 아니라는 여론이 우세하단 설문조사가 나오자 원문 공개라는 초강수를 꺼내들었었다. 이번 성명도 마찬가지로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책임론이 우세하다는 결과가 나오자 움직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동안 국정원 개혁을 위한 촛불집회에도 나타나지 않던 문 의원이 갑자기 이렇게 강도 높은 성명을 낸 것은 너무나 쌩뚱맞다는 지적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성명 발표를 통해 문 의원이 얻을 것이 별로 없다며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될 것이란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문 의원이 던진 최후의 승부수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 정치권의 이목의 집중되고 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