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흔드는 '문고리 권력' 실체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10.15 14: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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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의 여왕'(?) 스스로 자초한 '인의 장막'에 갇혔다

[일요시사=정치팀] "박근혜정부가 '문고리 권력'에 휘둘리고 있다?" 지난 8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임명 이후 정치권에서는 문고리 권력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 이미 김 실장은 '부통령'으로 불릴 정도다. 김 실장은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대통령 면담요청을 거부해 '진영 사퇴파동'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청와대를 흔드는 문고리 권력의 실체는 무엇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인의 장막', '문고리 권력' 등의 논란을 겪어왔다. 박 대통령의 보좌진들은 박 대통령의 과거 국회의원 시절 때부터 웬만한 국회의원 못지않은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했다.

박 대통령의 문고리 권력 논란을 촉발한 대표적인 사건은 지난 2011년 발생했던 일명 '박근혜 쪽지 사건'이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다음해 4·11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기로 한 상태였다.

박심 얻어
호가호위?

그런데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내 쇄신파와 친박계 사이에서 재창당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자 친박계 의원들은 당 개혁과 거리가 먼 퇴행적 메시지를 '박근혜의 뜻'이라며 쇄신파에 전달해 갈등을 더욱 증폭시켰다. 당시 쪽지에는 '재창당 거부' '총선까지 전권을 가진 비대위 구성' '당권·대권 분리 당헌 유지' 등 3개 사항의 내용이 담겨 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심지어 일부 친박 의원들은 '박근혜의 뜻'이라며 "공천권을 달라"고 했다가 호가호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쇄신파였던 한나라당 김성식 전 의원은 쇄신방안을 담은 문건을 작성해 박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하고 대화하길 희망했으나 박 대통령이 대화창구로 지목한 의원은 "재창당 문구가 있는데 어떻게 전할 수 있느냐"는 취지로 거절해 쇄신파의 뜻을 전달할 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김기춘 한 마디에 새누리당 지도부 '우르르'
'왕실장' 아니라면서 왕실장 행보 가속화

논란이 거세지자 일부 쇄신파 의원들은 직접 박 대통령을 찾아가 "정말 본인의 뜻이냐"고 물었지만 박 대통령은 끝내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당시부터 이미 박 대통령은 문고리 권력에 가로막혀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을 둘러싼 문고리 권력 논란은 이후로도 끊이질 않았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은 지난해 4월 박 대통령의 김형태, 문대성 당선자 논란에 대한 초기 대응과 관련, "박 위원장(현 박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보고가 사실과 다르게 가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 제 짐작"이라며 '허위보고' 의혹을 제기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때문에 새누리당 내에서도 "평의원인데도 (측근을 거치지 않고는) 이렇게 만나기 어렵고 소통하기 어려운데 만일 대통령이 된다면 얼마나 더 만나기 어려울지 모르겠다"며 박 대통령을 둘러싼 문고리 권력을 우려하기도 했다.

오래된 고질병
심해져 불치병

그런 우려는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현실이 되고 있는 모양새다. 박 대통령은 지난 8월 여름휴가가 끝나자마자 대대적인 청와대 비서진 인사를 단행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특히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기용은 여러모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김 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지내고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한 인물이었다. 대표적인 공안통인 그는 법무부 장관 신분으로 '초원복집사건'에도 연루됐었던 인물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킨 초원복집사건은 지난 1992년 대선 당시 김기춘 법무부 장관이 부산지역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김영삼 민자당대통령후보 지원을 위한 대책회의를 하다 발각된 사건이었다.

김 실장은 또 정홍원 국무총리와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보다 나이와 사법연수원 기수에서 한참 선배다. 때문에 박 대통령이 김 실장을 임명한 것은 청와대가 정부와 당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카드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김 실장에 대해 정치권에서 '부통령'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이유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김 실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청와대 비서실은 국정운영에 있어 몸의 중추기관과 같다"며 힘을 실어줬다.

청와대 비서진에 대한 대대적인 인사단행 이후 박근혜정부의 문고리 권력 논란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김 실장은 이후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태,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식 논란, 진영 전 장관 사퇴 논란 등에서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다.

때문에 지난 4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실 결산심사는 마치 '김기춘 성토장'과도 같았다.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의혹과 관련 민주당 의원들은 청와대 기획·배후설을 주장하며 시종일관 김 실장을 몰아 붙였고,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김 실장을 향해 "소통의 문이 되겠다고 했지만 현재 상태는 불통의 벽으로 그것도 철벽이 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이날 운영위에서 특히 논란이 됐던 점은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박 대통령에게 면담을 신청했다가 김 실장에게 거절당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였다.

모 일간지는 "진 전 장관이 복지부의 최종안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최초 수용된 뒤 갑자기 뒤집히자 직접 해명하기를 원했고, 이 문제를 김 실장과도 논의한 뒤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는 여권 관계자의 발언을 보도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은 자신이 주도한 수정안을 마치 진 전 장관이 동의한 안인 것처럼 박 대통령에게 허위보고를 한 정황도 드러났다고 전했다.

김 실장은 야당의원들의 책임추궁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해당 언론사에 대해서는 정정보도 청구와 함께 향후 법적 책임까지 묻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보도가 사실이라면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진 전 장관은 친박 핵심 중의 핵심인사였다. 그런 진 전 장관조차 문고리 권력에 가로막혀 자신의 뜻을 박 대통령에게 전달할 수 없었다면 현재 박근혜정부는 문고리 권력에 의해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정작 당사자인 진 전 장관은 이 같은 보도가 있은 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또 최 고용복지수석이 자신이 주도한 수정안을 마치 진 전 장관이 동의한 안인 것처럼 박 대통령에게 허위보고를 했다는 의혹도 결코 간단치 않은 문제다. 사실이라면 문고리 권력을 이용한 횡포가 김 실장 이하 청와대 비서진들 사이에서도 만연해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게다가 김 실장은 지난 1일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를 초청해 만찬을 가지면서 스스로 문고리 권력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아무리 순수한 의도를 가진 만찬이라고 해도 임명직인 대통령 비서실장이 선출직인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를 불러 공식적으로 만찬을 가지는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당장 민주당은 김 실장이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를 초청해 만찬을 가진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우원식 민주당 최고위원 "(새누리당) 원내지도부가 청와대에 가는 것은 대통령 초청에 응해 가는 것이 일반적인 예인데 대통령 비서실장 초청으로 식사자리를 한 것은 참 어색하다"며 "대통령 주재 자리에서 (논의가) 있을법한 현안과 인사 난맥상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한 것도 참 이상하다"고 꼬집었다.


당시 만찬자리에서 김 실장은 '왕실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언급하며 "언론들이 하도 그래서(써서) 운신을 못하겠다. 방구 뀐 것까지 다 소문이 난다"며 "나는 대통령의 뜻을 밖에 전하고 바깥 이야기를 대통령께 전할 뿐"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왕실장 아니다?
누가 봐도 왕실장

하지만 야권은 자신은 왕실장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김 실장이 왕실장 행보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거수기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4일 박준우 청와대 정무수석과 새누리당 의원들 간에 벌어진 언쟁도 문고리 권력화로 인한 부작용이 드러난 사례로 지적된다.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청와대 예산결산 심사가 끝난 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 주재로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 뒤풀이 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박준우 수석을 비롯해 여야 원내지도부가 참석했다. 식사 도중 민주당 정성호 수석부대표가 "예전에는 정무수석이 여야를 넘나들면서 의원들을 만났는데 요즘은 그런 게 전혀 없다. 정무수석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 문고리 권력 전횡 "도 넘었나?"
각종 기획설 배후로 지목되며 '시끌시끌'
 


하지만 박 수석이 발언에 반응을 보이지 않자 새누리당 김태흠 원내대변인이 "왜 아무 말이 없느냐. 정무수석은 뭐하는 사람이냐"며 언성을 높였다고 한다.

이날 해프닝이 전해지자 청와대의 불통에 대한 여야의 쌓인 불만이 박 수석에게 표출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올해 8월 초 박 대통령이 정무수석에 외교관 출신인 박준우 수석을 임명하자 정치권은 의아해 했다. 정무수석은 정치현안을 막후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여야 의원들과 수시로 만나야 하는 자리다.

일반적으로 정무수석은 중진 정치인이 맡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박근혜정부에는 과거 정권과는 달리 국회와의 소통 창구였던 정무(특임)장관도 없다. 때문에 박 수석 임명은 박 대통령 스스로 정치권과의 소통을 포기하고 인의 장막에 갇히기를 자초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비서정치 폐단
반드시 개선해야

한 정치평론가는 박근혜정부의 문고리 권력 논란에 대해 "박 대통령은 비서정치의 폐단에 대한 심각성을 못 느끼고 있는 것 같다"며 "자신에게 항명하는 이는 곁에 두려 하지 않는 성향 탓에 자신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문고리 권력에 더 많은 힘을 실어주려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반드시 부작용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마천의 <사기>를 인용해 "귀족 출신에 세력 또한 압도적이었던 항우가 유방에게 진 이유에 대해 '항우는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고 오직 항(項)씨 일가나 처남들만 총애하고 신임했다'는 구절이 있다"며 "문고리 권력에 둘러싸인 대통령은 결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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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