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여인' 박근혜 싸움의 기술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10.01 11: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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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 없는 정면돌파 "붙었다 하면 백전백승"

[일요시사=정치팀] 박근혜 대통령의 '싸움의 기술'이 주목을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저자세 외교라는 비판을 받아온 남북관계에서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고수하며 성과를 내는가 하면, 야당의 긴 장외투쟁에도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며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치9단 여야 정치인들과의 기싸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다. 일단 붙었다 하면 이기고야 마는 '철의 여인' 박 대통령의 싸움의 기술은 무엇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차분하고 조곤조곤한 말투와는 다르게 의외로 파이터형 정치인으로 손꼽혀 왔다. 문제가 생기면 적당히 타협하고 우회하기보다는 정면돌파 방식을 선호한다. 박 대통령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불거지는 '불통' 논란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장외투쟁 불사
상대방 백기투항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2005년 12월에 있었던 사학법 투쟁이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사학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처리하자 이에 반발해 '장외투쟁'을 선언했다. 장외투쟁은 해를 넘겨 2006년 1월까지 이어졌고 국회는 53일 동안이나 파행됐다.

결국 먼저 백기를 든 건 열린우리당이었다. 당시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는 사학법 재개정을 약속하며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와 국회를 정상화하는 데 합의했다. 장외투쟁으로 주도권을 잡은 박 대통령은 그해 열린 지방선거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박 대통령의 숨길 수 없는 파이터 기질은 지난 2010년 세종시 수정안 처리 과정에서도 빛을 발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친이계 의원들이 제출한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이례적으로 반대 토론자로 직접 나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살아있는 권력인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당내 최대계파였던 친이계와의 정면승부를 피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한나라당 친박계와 야당이 대부분 반대표를 던지면서 세종시 수정안은 105 대 164로 부결됐다. 박 대통령이 세종시 논란 과정에서 보여준 일관된 자세는 지난 대선과정에서 충청권의 민심을 얻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박 대통령의 타협없는 정면돌파 방식은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성과를 냈다. 박 대통령은 새 정부 출범 초기부터 북한의 대남 강경기조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북한은 장거리 로켓발사에 이어 3차 핵실험까지 강행하며 박근혜정부를 위협했다.

거의 매사가 정면돌파, 불통 논란도
때때로 허 찌르는 변칙공격에도 능해

일각에선 북한의 돌발행동에 대해 새롭게 출범한 박근혜정부에 대한 기선제압용이라는 분석까지 있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오히려 단호한 태도로 북한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급기야 군통신선 차단과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 철수라는 강경책까지 내놨지만 박 대통령도 개성공단 잔류인원 철수라는 맞불작전을 펼치면서 물러서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강경 대북정책 기조는 고질적으로 대북 저자세 외교라는 비판을 받아온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박근혜식 대북정책은 결과적으로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 냈다. 박 대통령의 대북강경책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던 야권 인사들조차 최근에는 지지를 보내고 있을 정도다. 새 정부 초기 낮은 지지율로 곤혹을 겪었던 박 대통령이 현재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게 된 것도 원칙있는 대북정책의 영향이 크다.

이처럼 박 대통령은 정면돌파를 좋아하는 파이터지만 한편으론 허를 찌르는 한 수로 상대를 제압하는 변칙공격에도 능하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박 대통령은 민간인 불법사찰에 이어 돈봉투사건까지 불거져 당이 회생불능에 빠졌다고 판단되자 아예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는 파격안을 내놓는다.


주변 반대에도
불도저 추진력

또 김종인·이상돈·이준석 등의 전혀 새로운 외부인사들을 대거 영입하는가 하면, 경제민주화를 주창하며 이념적 지표 또한 대폭 좌클릭하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 이런 전략이 주효해 새누리당은 4월 총선에서 152석이란 예상 밖의 대승을 거뒀다.

지난 대선기간 과거사에 대해 사과한 일이나 지난 16일 국회에서 귀국보고회 형식으로 여야 대표들과의 깜짝 3자회담을 가진 것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박 대통령의 또 하나의 무기는 바로 든든한 '콘크리트 지지율'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싸움의 기술에 대해 "박 대통령에게는 싸움의 기술이 따로 필요 없는 거 아닌가?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백전백승하는 콘크리트 지지율이 있지 않은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기초연금 대선공약 후퇴 논란에 대해서도 야권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했지만 정작 대상이 되는 노인층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일부 노인단체에서는 기초연금 공약 수정에 대해 존중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만약 노무현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런 식(기초연금 공약후퇴)으로 했다면 노인단체 등에서 난리가 났을 것"이라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친박계 의원들이 공천헌금과 관련해 물의를 빚었을 때도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은 굳건하게 유지됐다. 제1야당인 민주당이 50일 넘게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 역시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민주당은 장외투쟁이 길어지면서 지지율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야권의 장외투쟁이 길어지면서 정치권이 민생을 좌시하고 자존심 싸움만 벌이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만 같은 매를 맞아도 콘크리트 지지율 덕분에 맷집이 좋은 박 대통령이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은 이른바 국민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이벤트 정치'에도 능하다. 박 대통령이 지난 2004년 불법대선자금사건으로 한나라당이 '차떼기당'이라는 비판을 받자 당사를 매각하고 천막당사로 이전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바닥을 맴돌던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천막당사 이전을 계기로 반등하기 시작한다.

또 부모님을 모두 흉탄에 잃은 가녀린 여성정치인이란 타이틀은 박 대통령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의 감성정치에 더욱 힘을 실어줬다. 특히 박 대통령의 '눈물'은 종종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하곤 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총선을 앞두고 TV 광고에 나와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며 눈물로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한나라당은 그해 총선에서 80석도 얻기 힘들 것이라던 예상을 깨고 개헌 저지선의 의석수를 확보했다. 물론 한나라당의 선전이 박 대통령의 눈물 때문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만은 틀림없다.

박 대통령의 눈물은 지난 2005년에도 큰 힘을 발휘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당대표로서 '사학법 장외투쟁'을 이끌었다. 하지만 당내에선 반발이 적지 않았다. 소장파를 중심으로 제기된 복귀론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의원총회장에서 잠시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장내는 숙연해졌고 복귀론은 순식간에 수그러들었다.

박근혜 눈물
경계대상 1호


이러한 박 대통령의 눈물의 위력을 뼈저리게 경험한 탓인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과정에서는 박 대통령과 경쟁을 벌였던 이명박 후보 측이 아직 흘리지도 않은 박 대통령의 눈물에 대해 견제구를 날리는 장면도 연출됐었다.

당시 이명박 후보 측은 “(박근혜 후보가) 고 육영수 여사 추도식에서 눈물을 흘릴 것이라는 '박 후보 눈물 호소설'이 떠돌고 있다”며 박 대통령의 눈물을 경계했다. 당시 두 후보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던 터라 이명박 후보측은 박 대통령이 고 육영수 여사 추도식에서 눈물을 보일 경우 동정표가 쏠릴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박 대통령 측 이정현 대변인은 "이명박 후보가 이렇게 잔인하고 비정하고 비인간적이고 천륜을 짓밟는 사람이었느냐"며 "박 후보가 어머니 추도식에서 눈물 흘리는 것조차 이 후보는 정치적으로 막고, 비난하고, 음해의 대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박 대통령의 또 다른 싸움의 기술은 '유머'다. 지난 4월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민주당 지도부와의 만찬을 가졌다. 이날 만찬의 분위기는 초반부터 냉랭했다. 청와대 측 인사 중 한명이 "인사청문회나 국회 상임위에서 질의하는 것 같다"고 했을 정도였다.

천 마디 말보다 강력한 눈물 한 방울
콘크리트 지지율이 가장 큰 무기?

그러자 박 대통령은 "그게 (국회의원의) 직업병이더라고요"라고 해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그러곤 "제가 아는 검찰 한 분은 말버릇이 (일상 대화에서도 신문하듯) '한 가지만 물어보겠다' '마지막으로 묻겠다'고 한다"고 덧붙여 폭소를 이끌었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은 검찰 개혁과 관련해 "제가 꼭 챙기겠다"고 다짐했고, 당시 큰 비판을 받고 있던 인사문제에 대해서도 사과 발언을 해 만찬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당시 만찬에 참여했던 민주당 의원들은 그 후 박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자신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야권인사들을 앞에 두고 유머를 통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꼬인 관계를 풀어내는 것은 웬만한 정치내공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의 '카리스마 리더십' 또한 주요한 싸움의 기술이다. 박 대통령은 일명 레이저 눈빛으로 유명하다. 레이저 눈빛이란 박 대통령이 상대방을 쏘아보는 눈빛을 빗댄 말인데 박 대통령이 회의석상에서 불편한 얘기를 한 사람을 굳은 표정으로 쳐다보는 경우가 많아 생긴 말이다. '박근혜 레이저'로 대표되는 박 대통령의 카리스마 앞에서는 중진급 정치인들조차 맥을 못 출 정도다.

'박근혜 레이저'
중진도 꼼짝 못해

박근혜정부 출범 6개월이 지났음에도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관계가 '청와대 우위의 수직적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는 이유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꾸준히 청와대를 향해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건전한 당·청 관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한편 이미 정치권에서 뛰어난 싸움의 기술을 보여줬던 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동시에 검찰, 국세청, 국정원 등의 사정기관을 꽉 틀어쥐고 더욱 무시무시한 싸움의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친MB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과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혐의 수사,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까지.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청와대는 자신들과의 관련성을 적극 부인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청와대의 입김이 미친 것이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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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