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상자 'MB 불법대선자금' 의혹 추적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8.06 11: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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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폭탄 초침소리 째깍째깍 "이재현(CJ그룹 회장) 털 때 알아봤다"

[일요시사=정치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련한 불법대선자금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재현 CJ그룹회장의 개인비리를 수사하던 검찰이 지난 2007년 CJ그룹이 이 전 대통령의 측근에게 거액을 전달한 정황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돈의 성격이 대선자금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법대선자금이란 정치권 핵폭탄의 심지에 다시 불이 붙은 셈이다. 그간 소문만 무성했던 이 전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의혹은 드디어 낱낱이 밝혀지게 될까? <일요시사>가 이 전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의혹을 추적해봤다.



역대 정권에서 불법대선자금과 관련해 자유로운 정권은 없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1년 대선에서 당시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의 10%에 해당되는 600억원을 대선자금으로 쓴 것으로 알려져 지금까지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 때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3000억원의 대선자금을 지원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불법대선자금
자유로운 정권 없어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대선자금 수사에서 "노무현 캠프의 불법대선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이 넘으면 사퇴하겠다"고 초강수를 뒀지만 검찰은 한나라당에 823억원, 노무현 캠프에 114억원의 불법대선자금이 흘러들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대선자금의 10분의 1이 넘는 액수였다.

송광수 당시 검찰총장은 퇴임 후 한 강연에서 "검찰이 10분의 2, 3을 찾아냈더니 대통령 측근들이 '검찰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른다'고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검찰이 노무현 캠프의 불법대선자금의 규모를 그나마 축소시켜 발표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역대 대통령들은 대부분 불법대선자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이 전 대통령과 측근들은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한 후 "역대 어느 대선보다 돈을 적게 썼다. 깨끗한 대선을 치렀다"고 주장했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정치권 인사는 별로 없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17대 대선이 끝난 뒤 경선 때 21억8098만원, 대선 때 352억1322만원 등 총 373억9420만원을 선거비용으로 썼다고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했다. 그러나 당시 박근혜 후보와 맞붙은 한나라당 경선은 본선보다 더 치열했다. 야권 대선주자들과의 지지율 격차가 워낙 커서 한나라당 경선에서의 승리가 곧 대선 승리로 여겨지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2007 이명박 대선자금 얼마나 되기에?
다시 열린 판도라상자에 정치권 '벌벌'

경선과정에서 당에 엄청난 돈이 뿌려졌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돌았다. 이에 비춰볼 때 이 전 대통령 측이 신고한 경선비용 21억8098만원은 너무나도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전 대통령은 임기 말 불법대선자금과 관련한 의혹들이 이곳저곳에서 불거져 나와 곤혹을 치렀다.

지난해 7월,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최측근이었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 등이 줄줄이 비리에 휘말려 검찰의 조사를 받는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이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대국민사과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특히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로 구속된 최 전 방통위원장은 재판 과정에서 "대선자금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며 수차례 불법대선자금을 받았음을 노골적으로 폭로했다.

저축은행 비리로 구속된 임석 전 솔로몬저축은행회장도 검찰조사 과정에서 이상득 전 의원에게 대선자금으로 쓰라고 돈을 줬다며 불법대선자금을 거론했다. 이명박정부의 실세로 군림했던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도 불법정치자금수수와 관련한 검찰조사에서 지난 대선자금에 대해 털어놓을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겨 불법대선자금과 관련한 의혹을 더욱 가중시켰다.

연이은 증언
검찰은 모르쇠


이외에도 이 전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과 관련한 증언은 줄을 이었지만 이명박정권 하에서 검찰은 불법대선자금 수사에 너무나도 소극적이었다. 심지어 검찰은 노골적인 모르쇠로 불법대선자금 의혹 덮기에 앞장서기도 했다.

검찰이 불법대선자금 수사를 외면한 표면적인 이유는 공소시효였다. 지난 2007년 12월 정치자금법의 개정으로 대선자금에 대한 공소시효는 5년에서 7년으로 늘었지만 법 개정 전인 2007년 12월 이전에 받은 대선자금은 공소시효가 5년만 적용된다. 2007년 대선 경선 전 대선자금을 본격적으로 모았다면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됐거나, 수사에 착수하자마자 공소시효가 만료된다는 이유였다.

민주당에서는 이처럼 신빙성 있는 증언들이 줄을 잇는데 수사를 안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검찰을 질타했지만 검찰은 요지부동이었다. 당시 검찰은 MB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권재진 전 법무장관과 충직한 MB맨으로 불리는 한상대 전 검찰총장, 그리고 BBK 주임검사로 이명박정부 들어 승승장구했던 최재경 전 중수부장 등이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가 새롭게 출범하면서 검찰의 분위기는 180도로 바뀌었다. 검찰 뿐만 아니라 감사원, 국세청 등 국내 사정기관들이 총출동하다시피 해 MB정부와 관계가 깊었던 대기업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새정부 들어 사정기관의 집중조사를 받고 있는 CJ그룹과 효성그룹, 롯데그룹은 모두 MB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기업들이다. 특히 CJ그룹 수사는 박근혜정부 들어 실시된 첫 대기업 수사였다. 수천억원대의 탈세 및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 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고려대 출신으로 이명박정부의 실세로 불렸던 천신일 세중나모회장, 곽승준 전 미래기획위원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과 돈독한 친분을 자랑했었다.

검찰은 최근 이 회장의 개인비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CJ그룹이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 전 대통령의 한 측근에게 거액을 건넨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일단 돈의 성격이 대선자금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돈이 대선자금으로 확인되더라도 공소시효가 5년인 당시의 정치자금법이 적용돼 처벌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판도라상자가 다시 한 번 열리면서 정치권은 긴장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검찰이 사실상 정관계 로비 수사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으로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또 정치권에서는 박근혜정부가 이 전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의혹을 정국반전의 카드로 적극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의혹은 박근혜 대통령에겐 무척 매력적인 정국반전 카드다.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으로 여론의 관심을 환기시켜야 하는 박 대통령으로서는 이 전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의혹을 들춰내 전 정권과의 선긋기 및 차별화를 확실하게 하는 동시에 당내 친이계를 견제하고 국정원 이슈까지 희석시킬 수 있는 다목적 카드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친이계 현역의원 몇 명만 불법대선자금과 연루되었다는 정황만 나와도 국정원 이슈는 당분간 묻히게 될 것"이라며 "공소시효가 지나 실제로 처벌받지는 않겠지만 친이계의 정치적 영향력은 크게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달라진 검찰
털리는 친MB

게다가 새정부가 들어서면 전 정권과 관련한 비리 수사는 그동안 통과의례와도 같았다. 박 대통령은 평소 전 정권의 잘못을 인위적으로 들춰내진 않겠지만 자연스럽게 나오는 전 정권의 문제에 대해선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때문에 지난 2007년 모금한 불법대선자금의 공소시효는 이미 지났지만 앞으로도 사정기관을 통해 이 전 대통령과 관련된 기업들을 조사하면서 자연스럽게 불거져 나오는 불법대선자금 의혹이 상당 부분 밝혀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국내 사정기관에는 과거와 달리 이 전 대통령을 보호해줄 인사도 없다. 비록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이 전 대통령과 관련한 불법대선자금 의혹을 자연스럽게 언론에 흘리는 것만으로도 박 대통령은 원하는 효과를 얻어낼 수 있다.

CJ 털다 발견한 불법대선자금 정황
박근혜, 친MB기업 터는 이유 있다?


이미 검찰을 비롯한 감사원·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 등 사정기관들은 CJ그룹의 다음 타깃으로 롯데를 지목하고 롯데그룹을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롯데그룹은 MB정권에서 급성장했다. 안보상의 이유로 수 십년 간이나 허가를 받지 못했던 제2롯데월드의 건설을 허가 받는가 하면, 롯데는 MB정부 시절인 2007년 말부터 2012년 말 사이 49조2000억원이던 자산 총액이 95조800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처럼 앞으로도 상당기간 각종 사정기관의 칼날은 MB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던 대기업들을 향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지난 2007년 불법대선자금의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다는 점은 오히려 박 대통령에겐 유리한 조건이다. 자칫 수사도중 새누리당의 현역의원들이 불법대선자금과 연루돼 처벌을 받게 된다면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는 국회 내 과반이 깨지고 정당지지도와 오는 10월 재보선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이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으며 고초를 겪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처럼 동정론이 일어 역풍을 불러올 소지도 다분하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것은 박 대통령이 이 같은 후폭풍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다목적 카드
MB의 위기

상황에 따라 아직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카드를 사용할 수도 있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대선 승리 후 당선축하금 명목으로 대기업의 후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대선 승리 후인 2008년 받은 불법정치자금이라면 정치자금법이 개정된 이후 이므로 아직 공소시효가 남아 있다.

이 전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과 관련, 정치권에서는 문제는 검찰의 의지라는 이야기가 자주 거론됐다. 일례로 지난 1993년 김영삼정부가 출범한 직후 검찰 특수부에는 한 명단이 배포됐다고 한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검사는 "아무런 혐의나 단서도 없이 단지 이름만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검찰은 당시 명단에 있었던 사람들의 대다수를 구속하는데 성공한다. 검찰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지금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역대 불법대선자금과 관련해 자유로운 정권은 없었다. 그것은 심지어 박 대통령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박 대통령과 검찰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이 전 대통령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간 소문만 무성했던 이 전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판도라상자는 실제로 열리게 될까? 이 전 대통령은 새정부 초반부터 궁지에 몰리게 됐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다시 찾아온 '검찰 전성시대' 

초대형 이슈 쥐락펴락 '슈퍼 갑'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과 전 국정원장의 개인비리, 재벌 총수의 횡령·배임·탈세와 비자금 조성, 전 국세청장의 세무조사 무마 금품수수 의혹,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史草) 실종사건까지. 검찰이 잇따르는 대형사건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 등 전 분야의 굵직한 사건이 모두 검찰 손으로 들어오면서 검찰의 존재감이 한껏 높아진 것이다. 특히 관련사건 수사과정에서 국정원과 국세청, 경찰청 등 검찰이 타 권력기관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실시하면서 우리나라에선 검찰이 '슈퍼 갑'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기본과 원칙, 공정성을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경우 '기회'는 곧바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공정한 수사를 주문했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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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